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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바로 서야 사회가 바로 선다
‘유쾌한 결별’ 의원, 노발대발 필자에게 전화하다
2014년 12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상고법원 설치를 추진하였다. 상고법원 도입을 위한 법원조직법 등 6개 법안 개정안은 2014년 12월, 국민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전체 국회의원의 과반수인 168명의 서명으로 발의됐다. 필자는 <경향신문>에 상고법원 설치를 반대하고 그에 적극 협력하는 국회의원들의 행태를 비판하는 기고문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이틀 뒤 노발대발 분노에 찬 국회 법사위원장의 전화를 받았다. 사실 그 전화는 ‘국회도서관장에게 걸 전화가 비서진의 실수로 필자에게 걸려온’ 것이었다. 한참을 고래고래 난리를 치던 그 법사위원장은 “제가 소준섭입니다”라는 나의 말에 금방 전화를 끊었다.
이 법사위원장은 바로 목하 “유쾌한 결별” 발언으로 보수 언론계의 ‘애정 어린 주목’을 한몸에 받고 있는 민주당 이상민 의원이다. 그가 위원장으로 있는 국회 법사위원회는 당시 필자를 면직시키기로 만장일치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면직을 모면할 수 있었던 필자는 이 사태를 계기로 대한변협의 ‘상고법원반대 TF(상고심제도 개선을 위한 TF)’ 활동을 하게 되었고, 마침내 상고법원을 저지하는 데 힘을 보탤 수 있게 되어 나름 보람을 느낀다. 당시 필자는 ‘상고법원 반대 TF’의 위원으로 1년 넘게 활동하면서 연구보고서를 제출했는데, 오늘 여기 싣는 기고문은 당시 보고서를 토대로 하여 보완, 정리한 글이다.
우리 사회가 오늘처럼 가치관이 흔들리고 사회 규범이 정착되지 못하는 중요한 요인은 무엇일까?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테지만, 필자는 그 요인들 가운데에서도 사법 시스템이 핵심 중의 하나라고 판단한다. 우리 사회에서 유명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세간의 한서린 풍자는 여전히 사회적 공감을 얻고 있으며, 법원의 결정은 대체로 정치적 상황과 정치권력의 풍향에 따른 편향성을 드러냄으로써 대중들의 실망감을 증폭시켜왔다.
본래 영장실질심사라는 절차는 영장이나 구속의 남발을 방지한다는 취지에서 도입되었지만, 결국 판사들과 법원의 권력을 강화하는 기제로 작동되는 결과를 낳았다. 또 정치인들은 서로 앞장서서 온갖 정치 문제를 고소 고발해 사법문제화하면서 법원의 힘은 그로 인해 더욱 강화된다.
당연히 “법 앞에서 만인은 평등하다.” 그러나 과연 우리 사회에서 ‘사법 정의’는 진실로 작동되고 있는가? 2015년의 OECD 조사에 의하면, 사법부 신뢰도는 27%로 42국 중 39위였다. 재판결과에 대한 불만으로 진정을 제기한 건수도 2011년 537건에서 2015년에는 1593건으로 4년 사이에 3배 가깝게 늘었다. 사법부에 대한 대중의 불신이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주는 증거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으로 법원이 반드시 개혁되어야 한다는 것은 촛불시위 현장에서도 커다란 공감을 얻은 이슈였다. 그러나 이 국민적 열망은 전혀 실현되지 못했다. 법원 개혁은 단 한 발짝도 걸음을 떼지 못했다. 사법농단 관련 판사들도 모두 법원의 무죄 판결을 받았다.
최근에는 재판 지연이 큰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1심 판결에만 1년, 2년 심지어 3년이 넘게 걸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재판의 실패”요 “사법의 실패”다. 이는 헌법 제27조 제3항이 규정한 “국민의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이처럼 재판이 지연되면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도는 크게 하락하고, 재판과 법원의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특히 고등법원 부장 승진제가 폐지되고 일할 동기 부여가 사라지면서 재판 지연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시급하게 개선되지 않으면 안 된다. 법관 증원과 인사제도의 개선이 이뤄져야 하고, 유럽처럼 ‘정식 재판할 가치’가 있는 사건만 공판 중심주의 방식으로 하고 나머지는 신속·간이절차로 처리하는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2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현충탑 참배 후 남긴 방명록. 2023.1.2. 연합뉴스
1. 사법부가 정치권력에 의해 통제되는 ‘제왕적 대통령’의 국가
우리 헌법 제104조 제2항은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그런데 이 조항이 본래부터 존재한 것이 아니다. 유신 헌법에 의하여 법관추천위원회가 폐지되고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대법관을 임명하도록 바뀌었고, 현재의 헌법에 이르기까지 계속하여 명문화하고 있다.
대통령이 대법원장 임명권을 가지고 있는 이러한 현실에서 정치권력으로부터의 사법부 독립은 큰 취약점을 지닌다. 본래 4.19 이후 탄생한 1960년 헌법에서는 법관의 자격 있는 자로 구성되는 선거인단에서 선출하는 방식이었다. 더욱이 법관추천회의를 구성하여 그나마 법원 내부의 민주적 인사절차를 보장했던 1962년 헌법체제가 1972년 유신체제에 의하여 와해되면서 대법관이 임명과정은 철저하게 대법원장 개인의 권력, 혹은 그를 배후하는 대통령의 권력에 예속되는 왜곡 양상을 보이게 되었다. 즉, 대통령실 민정수석실을 경유하는 대통령의 의지가 직접 작용하게 된 것이다. 이로써 사법부의 조직 자체를 정치권력이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세계 어느 나라도 대법관을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는 나라는 없으며, 이는 대표적인 ‘유신 잔재’이다. 이 조항은 대법원의 대법관을 정치 권력의 의중에 따라 구성되게 하는 데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해온 독소 조항이다. (여기에서 ‘제청<提請>’이라는 용어는 “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조항처럼 하부 기관이 상부 기관에게 ‘올려’ 요청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3권 분립의 취지에도 부합하지 않으며,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의 구체적 사례 중의 하나이다.)
이제 박정희 유신체제에 의해 왜곡된 법관추천위원회를 원상회복해야 한다. 법관추천위원회는 민간위원과 각 법률가직역으로부터 대표성을 확보한 위원들의 참여를 보장하도록 해야 한다. 특히 지금은 전무한 국회의 관여를 보다 강화하고 또 실질화하는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독일의 경우, 기본법 제95조 제2항에 의하여 연방최고법원으로서 연방(통상)대법원, 연방행정법원, 연방재정법원, 연방노동법원 및 연방사회법원의 법관 임명은 각 관장 분야에 해당되는 연방장관이 법관선출위원회와 공동으로 결정한다. 법관선출위원회는 각 관장분야에 해당되는 16개주(州) 법무부장관 및 그와 같은 숫자로 연방하원이 선출한 위원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이렇게 자유롭게 임명된 최고법원의 구성원들은 재판에서 자유로운 독립성을 유지하게 된다.
2. 12명에 불과한 대법관, 이제 대폭 늘려야 한다
2018년 한해 대법원에 접수된 사건만 총 4만 7979건에 이른다. 우리나라 대법원에서 대법관 신분이지만 실질적으로 재판을 담당하지 않는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하면 대법관은 사실상 12명에 불과하며, 이 12명의 대법관이 모든 사건을 처리하고 있다. 2018년에 대법관 1명이 처리한 사건 수는 3998건이다. 주5일 근무를 기준으로 하루에 15.4건을 처리하는 셈이다. 결국 심리도 하지 않고 기각시켜 사건을 종료하는 ‘심리불속행’ 기각이 전체의 70~80%에 이르러 3심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고 있다.
우리나라 대법관 수는 총 16명이었던 1970년대보다 오히려 그 수가 줄었다. 공교롭게도 법률을 비롯하여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후퇴를 가져온 1981년 “전두환 국보위 시절” 법원조직법의 개정을 통해 대법관 수도 축소되었다.
고도의 복잡화와 전문화가 진행되는 현대사회에서 우리 법원의 정상화는 당연히 대법관의 대폭 증원과 전문법원화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12명의 대법관이 민사·형사라는 전통적인 분야를 넘어 행정, 재정, 사회, 노동, 특허 등 제 분야에 대한 전문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지 조금만 고민해도 상식적인 답이 나오는 사안이다. 최고법원으로서의 대법원의 재판을 받아보겠다는 국민이 많은데도, 대법관의 숫자를 현재와 같이 유지하기 위하여 대법원의 재판을 받을 수 없는 제도를 만들어 놓고 이를 통하여 국민에 대한 대법원의 사법서비스를 거부해서는 안 될 것이다.
독일에서 민사와 형사에 관한 상고심에 해당하는 연방(일반)대법원은 2014년 현재 128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행정, 재정, 사회, 노동 등 다른 분야를 합하면 320명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의 독일 연방 최고법원 구성은 전문화와 국민의 재판청구권 구현의 관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이렇게 독일 최고법원이 복수로 설치됨으로써 개개 최고법원들은 특정한 영역에 관련한 상고사건을 전문성을 가지고 재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하여 축적된 역량을 바탕으로 신속한 재판을 국민에게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프랑스의 경우, 행정사건을 제외한 일반사건의 최고법원인 파기원(대법원)은 129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미국의 경우, 헌법재판소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연방대법원이 위헌법률 심판 등 헌법재판소 기능을 같이 수행하기 때문에 ‘전문성 최대의 원칙’에 따라 각 전문법원에 소속된 다수의 전문적 대법관에 의한 “권리구제의 기능” 중심인 유럽과 달리 “법령해석 통일의 기능”이 강조된다.)
대법원 재판에 대한 국민들 수요 존재할 때까지 대법관 증원해야
사실 우리나라에서 법관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법관 정원은 2013년 10월 말 현재 2739명으로, 인구 10만 명당 5.37명에 불과하다. 유럽의 경우, 모나코의 54.5명을 비롯하여 우리와 유사한 법제를 가진 독일이 24.5명, 스위스 16.5명, 프랑스 11.9명 등이다. 심지어 폴란드나 체코, 러시아도 우리의 4~6배 수준의 법관을 확보하고 있다.
오늘날 검찰이 무소불위 권력을 무제한적으로 행사되고 있는 현실도 검찰의 기소 및 영장 남용을 제한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닌 법원이 자신이 가진 현재의 영역만을 지키는 데 급급하여 역할과 책무를 스스로 포기, 방기하면서 심화된 상황으로 해석된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된다. 무엇보다도 국민의 사법 접근권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법원과 법관을 대폭 증설, 증원하고 사법서비스의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마련되는 체제를 구축해나가야 한다.
현재 대법관 구성의 다양성 확보에 대한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현재와 같은 소수의 대법관 시스템은 각 부문의 전문지식을 가지는 인사가 대법관으로 될 가능성을 극단적으로 봉쇄하며, 폐쇄적인 집단의 형성으로 인하여 독립성을 상실하게 한다. 그리고 이는 대법원의 관료화와 권위주의화로 연결되어 대법원의 민주성도 위협하게 된다. 예를 들어, 2005년 현재 오스트리아의 헌법재판소는 14명의 헌법재판관 중 교수가 7명으로 반수를 차지하고 있고, 법조인 출신은 5명, 정부 관료 출신 2명이다. 법조인 출신 재판관 중에는 명예교수인 재판관도 2명이다.
대법관 권위란 ‘대법관 숫자의 희소성’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현재 대법관 증원에 대한 반대 논리의 저변에는 소수 엘리트주의의 고착에 의한 기득권 유지와 강화의 의도가 내포되어 있거나 혹은 헌법재판소 재판관 숫자와의 비교라는 경쟁 심리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고법원의 권위란 ‘대법관 숫자의 희소성’이 아니라 국민의 신뢰로 이뤄지는 것이다. 그리고 국민의 신뢰란 대법원이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을 통하여 사회구성원들이 그 판결을 수긍할 수 있으며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구현하고 국민들의 권리구제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스스로 보여줄 때 형성된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턱없이 부족한 대법관을 대폭 증원하고 전문부를 설치하여 전문적이고도 공정하며 신속한 상고심 서비스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국민이 대법원의 재판을 받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사회적 인식이 확산될 때까지 수요가 존재하는 한, 대법원의 재판서비스 기능을 확대해야 한다. ‘국민에 대한 충분한 사법서비스의 제공’이 목적인 것이지 ‘대법관 숫자’는 그 수단일 뿐이다. 장기적으로 우리 대법원도 독일, 프랑스 등 서구 대륙법 국가의 대법원처럼 100명 이상의 규모의 대법관을 두고 대법원 내에 전문부를 설치함으로써 공정하고 신속한 상고심의 수행에 의한 국민의 권리구제 실현에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또한 대법관을 증원함에 있어 소부(小部)의 숫자를 늘리면서 각 소부에 법관 출신이 아닌 비(非)법관 출신으로 시민사회를 대표할 수 있는 시민사회 대표형 대법관을 적어도 한 명씩 배치하는 방안이 적극적으로 모색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여 시민사회 대표형 대법관이 기존의 엘리트 판사의 시각이 아니라 법원 밖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시민사회 구성원의 시각에서 판결을 내릴 수 있다. 특히 소부 소속 대법관들 중 한 명이라도 반대 의견이 있으면 전원합의체 판결로 넘어가는 점을 고려할 때, 각 소부마다 한 명 이상의 시민사회 대표형 대법관을 배치하면 이 대법관들에 의해 반대 의견도 많이 개진될 수 있을 것이고, 이로 인하여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 재판도 활성화될 것이다.
실제 현재 1년에 4만 건이 넘는 사건들 중에서 평균 12~15건의 사건만이 전원합의체 판결에 회부되고 있어 대법원 재판이 너무 소부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도 상당한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그러므로 소부의 수도 늘리고 각 소부에 비법관 출신의 시민사회 대표형 대법관들을 배치한다면 이들의 활발한 반대 의견 개진으로 인해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사건의 수가 크게 증가해 ‘소부 중심 재판’의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다.
3. 법원행정처는 폐지되어야 한다
법원행정처는 법관의 재판을 보조하는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 스스로 법관에 대한 감시, 감독기관으로 기능하면서 전체 법관과 전체 재판을 획일화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렇듯 사법 관료화의 핵심으로 부상한 법원행정처는 일본 강점기 잔재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즉, 일본 제국 시대에 일본의 전체 법원과 재판관을 지배, 통제했던 사법성(司法省)을 그대로 모방한 제도이다. (사법성은 이후 최고재판소 사무총국으로 그 명칭이 변경되었다.) 현재 세계적으로도 법원행정처라는 시스템은 사법 후진국인 일본을 제외하고는 그 유례를 찾아볼 수가 없다.
일제강점기 이래 우리나라의 법원은 관료적 폐쇄성을 바탕으로 하는 계층구조로 일관되어 왔다. 법관은 고시에 합격한 영재로 충당되는 ‘순혈주의’가 관철되었고, 이들은 법조인으로서의 자기정체성을 연공서열의 승진 사다리라는 계층제적 관료주의 구조 속에서 구축하였다. 더구나 법관의 임용과 보직 발령 등이 모두 대법원장 1인에게 집중되고, 대법원장은 법원행정처라는 거대한 행정조직을 활용하여 이들에 관한 인사정보와 업무정보 등을 수집, 확보하고 실질적인 인사 권력을 행사하였다.
우리나라 사법 시스템은 상명하복을 전제로 하여 수직적 서열구조로써 계층화되어 있는 일반 행정관료 시스템과 유사하다. 즉, 수많은 승진 단계를 마련해두고 이를 사법구조와 직결시킴으로써 인사와 조직이 맞물려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하는 일점식(一點式) 중앙집권체제를 구성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실상의 승진체계 그 자체는 인사권자의 의지에 복종하도록 만든다는 직선적인 인과관계의 문제만이 아니라 법관들의 집단의식 내지는 직업의식에 작용하여 체제순응적 법관을 양산하고 있다.
법원행정처는 인사관리실이나 기획조정실이라는 시스템을 통하여 법원 전체를 통제하는 강력한 중앙권력을 구축한다. 법원행정처가 대법관으로 상징되는 사법부 수뇌부를 충원하기 위한 인력풀이라는 의미를 넘어, 사법부의 엘리트를 집합시키고 그들을 훈육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법관 인사 문제는 법관인사위원회 등의 기구에 귀속되어야 한다. 또 사법정책연구도 법원행정처가 맡고 있는 것은 과도하다. 각종 사법정책 연구는 별도의 연구소에서 진행될 일이며, 그것이 인사와 기획조정의 기능을 지니는 법원행정처의 내부 조직화해서는 안 된다.
근본적으로, 중앙에 의하여 관리되고 통제되는 인사관리나 통일된 사법정책 기획 혹은 사법정책 조정의 업무, 나아가 사법정책에 관한 제반 연구조사 사업들은 그 자체로 사법 독립과 부합되지 않는 개념들이다. 본래 독립기관이어야 할 법관에 대하여 상급 판사가 근무평정을 하고, 중립성이 의심되는 인사위원회가 법관들에 대한 인사 과정을 심의하는 현재의 인사 시스템에서 법관의 독립을 운위하기 어렵다. 법관은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하여야 함에도 이렇듯 기획하여 정립, 조정된 사법정책이 이를 통제하게 된다. 또 법관은 그 자체로 독립된 존재여야 함에도 법원행정처 인사관리실을 통한 관리, 통제는 상명하복의 계급질서 속에 모든 법관을 편입시킨다. 이는 마치 ‘검사동일체’의 원칙처럼 일종의 ‘법관동일체’라는 원칙을 연상시킨다. 이렇게 하여 사실상 법관의 독립은 부정당하고 있다.
법원 민주화를 위해 판사회의가 정상화되어야 한다
‘법관의 독립’을 위한 유력한 방안은 바로 판사회의이다. 사법권의 독립이란 비단 ‘입법부, 행정부로부터 사법부의 독립’ 나아가 ‘개별 법원의 독립’을 의미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는 사법권을 직접 행사하는 기관(심판 주체)으로서의 재판부의 독립, 나아가 더 구체적으로는 재판부를 구성하면서 실제로 재판을 수행하는 한 명 한 명의 법관의 독립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법원조직법은 각급법원의 판사회의를 대법원장의 자문기관으로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대법원장은 사법행정에 대한 전권을 행사하고 있고, 이에 대한 실질적인 견제수단은 전무한 상태이다. 진정으로 법관 독립을 기하고자 한다면, 우선 판사회의를 기속력 있는 의결기관으로 구성하고 일반 사법행정 권한이 판사회의에 관여할 수 없도록 독립시켜야 한다. 그리하여 최소한 각급 법원의 재판부 구성과 각 재판부의 사무분장은 각 법원 법관으로 구성되는 판사회의에서 결정되어야 한다.
독일에서 사무분담 및 사건배당은 사법권 독립의 핵심요소로 인식되고 있다. 이들 업무를 사법행정 사무로 인정한다든가, 각각의 소송에 따라 그 어떠한 이유를 붙여 임의로 재판부나 법관에 배당될 경우 사법권의 독립을 침해할 위험성이 존재한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독일 법원조직법은 재판부의 구성만이 아니라 각 재판부의 사무분담을 사법행정으로부터 분리하여 법관의 자치업무로 함으로써 법관이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독일의 각 법원에서 사무분장 계획의 수립은 대의원판사회의의 권한이다. 법관들은 재판상의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사무분장 계획을 수립하고 그 결정 과정에서 어떠한 지시도 받지 않으므로 사법행정이 영향을 미칠 여지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