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선언과 56차 안보협의회--무엇이 문제인가
허만 명예교수/전 한국유럽학회장
1992년 남북고위급 화담에서 한반도의 비핵화 공동선언을 했다. 양축이 비핵화를 통해 한반도의 평화 기반을 다지고, 나아가 통일 환경을 구축한다는 장기적 안보 전략을 깔았다. 이 목표를 달성하시 위해 노태우 정권을 1990년 주한 미 전술핵 전체를 자진해 철수시키는 대담한 조치를 취했다.
그렇지만 북은 이 선언을 함께하고도 뒤에서 핵무기 개발을 개을리 하지 않았고, 이 사실을 발견한 클린턴 정권은 북폭을 계획했었다. 이 때 김영삼 정권는 이를 적극 저지했고, 클린턴 행정부는 제내바 협정을 통해 북폭을 중단했다. 이로써 절호의 기회를 상실했다. 이러한 사건이 있은 후 곧 한·미·일은 핵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북한에 2개의 경수로(한국형 모델)를 건설, 제공하려고 노력했으나 북의 과도한 요구와 함께 사라미 전술(salami tactics) 사용으로 인해 좌절되었다. 이에 이어 한·미·일·러·북·중 6자회담이 베이징에서 4여 년 간 개최되었다. 이 회담은 핵 개발을 중단시키고, 동북아 평화와 안보 체제를 추구하고, 그 대가로 애너지를 포함한 포괄적 경제 지원을 계획했던 것이다.
전체적으로 40여 년간 지속해 온 비핵화 노력은 그 만큼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 지역 안보에 중요시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 선언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 비핵화를 국내외적으로 노력해 왔다. 만일 북이 핵보유국이 된다면 남북한 간 전략적 비대칭적 환경이 조성될 것이고, 그것이 동북아의 평화 질서를 뒤흔들 수 있을 것이다.
2024년 10월 30일 워싱톤에서 한미안보협의회를 개최했는데 북한의 비핵화를 논의하지 않았다. 김용헌 국방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 비핵화 논의보다 핵을 억제하는 협력 방안이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제 핵무기를 다량 생산하는 북한에 대해 비핵화를 요구하는 것이 비현실적인 생각이라는 것 같다. 요컨대 핵억제를 위한 현실적이고 실효적인 대안을 제시하려고 한다면 비핵화 문제를 집요하게 요구, 관철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번 안보회담에서 우리는 비핵화 외교의 지을 수 없는실수를 했다.우리는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안보협의에서 계속적으로 이 문제를 강조했는데, 이번 회담에서 뾰죽한 대안없이 슬쩍 사라졌다. 이것은 우리의 안보 전략상 매우 위험천만한 사건이다. 이러한 실수는 한국과 미국이 김정은에게 핵현대화를 해도 좋다는 신호를 발신했다고 본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비핵화에 대한 회의론이 감돌기 시작한 것으로 생각된다. 미라 랩 후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동아사아-오세아니아 선임보좌관은 지난 3월 “북한과 비핵화를 향한 중간 단계 조치”를 논의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중간 조치란 완전한 비핵화 이전에 북한의 핵동결-감축에 상응한 대북 제재에 해당하는 대가를 지불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안보협의회가 이러한 변화된 전략적 사고에 영향을 받지 않았는가 생각한다.
우리는 세계 안보 환경의 변화 추이를 더 냉철하게 관찰하고, 대비해야 한다. 북·러는 지난 6월 포괄적 전력적동반자조약을 체결한지 6개월 만에 전투 병력(일명 폭풍사단 포함)을 러시아에 파견했다. 이미 1만 이상 병력이 크르스크 지역에 집결했다는 보도가 계속 나오고 있다. 북한은 그 대가로 고급 군사기술 이전뿐만 아니라 핵국가로 인정받으려는 속셈을 하고 있을 것이다. 유엔안보리상임이사국으로서의 러시아의 인정을 기대할 것이다. 이 같은 변화는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 안보 지형을 크게 흔들기에 충분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우크라이나는 한국에게 전략무기 공급을 집요하게 요구해 온 터이다. 만일 우리가 전략무기를 공급한다면 전장은 확대될 뿐만 아니라 전쟁 강도를 고도화 시켜 한국의 평화 기반을 파괴시키는 충격을 받을 것이다. 결국 이 충격은 미국을 위시한 나토 32개국이 참전하는 확대전을 초래할 것으로 예견된다. 궁극적으로 확대전은 3차 세계대전으로도 진행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북·러 안보협력은 단순히 양국의 안보협력으로만 끝나지 않을 것이 확실시 된다. 더욱이 푸틴이 최근 북한의 핵보유국을 법적으로 인정하려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11월 2일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 부의장은 서방이 본격으로 참전할 때는 3차 세계대전으로 전환될 것이라면서 서방에 대해 협박을 서슴지 않았다. 이 협박은 한국에게도 해당된다. 요컨대 북핵억지와 함께 비핵화 실현은 한반도와 동북아 지형에 평화와 안보의 초석이다. 중간 단계는 자칫하면 사라미 전술에 능한 북한을 미국과 핵군축을 하게 될지 모를 가능성을 미리 열어 놓는 위험한 사고다. 이 논리에 어떤 주장이나 사족이 첨가되는 것이 허용돼서도 않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