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모차 아니고 유모차입니다.
안유정
사촌 남동생에게 아들 돌잔치에 초대한다는 카톡이 왔다. 양가 부모님만 모시고 식사한다던 계획에서 바뀌었단다. 그때부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우리 가족은 결혼식 민폐 하객 1순위였기 때문이다. 언젠가 남편 선배의 아들 결혼식에 축의금 10만 원을 내고 다섯 명이 간 적이 있다. 참석이 중요하지, 돈이 중요하냐는 남편의 말만 믿고 인면수심으로 따라갔다. 삼 남매는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몇 접시씩 뷔페를 먹었다. 훗날 남편은 그 선배와 연락이 끊겼다고 했다.
그래도 사촌지간인데 다섯 명이 우 몰려가 품앗이 해주고 싶었다. 그동안 우리 삼 남매의 돌 때, 곗돈 붓듯 다녀간 삼촌 외숙모의 얼굴도 떠올랐다. 이번엔 그 아들이 계 탈 차례였다. 5인 식대에 맞먹는, 45만 원까지 오른 금반지 반 돈을 사서 당당히 내돈 내밥을 하러 갔다.
돌잔치 연회장에 들어서자, 돌쟁이 아가를 안은 사촌 올케가 환히 반겼다. 올케는 애 하나도 힘든데 셋을 어떻게 키우냐는 말을 쏟으며 인사를 대신했다. 그래도 대가족이 들어오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고 했다. 그래서 둘째 계획도 있냐고 묻자, 체머리를 흔들며 복직 핑계를 댔다.
나도 첫째 돌잔치 때 시삼촌이, 애는 셋은 낳아야 서로 놀면서 큰다고 했을 때 “저도 제 인생이 있거든요.”라며 딱 잡아뗐었다. 셋을 낳아보니 이제야 그 뜻을 이해한다. 오히려 내 인생을 살도록 저희끼리 놀았다. 그래서인지 시삼촌의 외동딸은 두 아이의 엄마가 됐고, 외아들인 나의 남편도 세 아이의 아빠가 됐나 보다. 나와 같은 테이블에 앉은 친오빠의 아내도 자기 딸에게 “넌 외동이야.”라고 세뇌를 시켰던 사람이다. 그런데 어느샌가 둘째 아들을 임신 중이다. 둘째는 절대 안 갖겠다는 아이 하나인 엄마들의 말은, 처녀가 시집 안 간다는 말처럼 들렸다.
돌잔치 마감 직전까지 금값만큼의 음식을 욱여넣고 부른 배를 내밀며 나왔다. 식당 앞에서 친척들과 다음 만남을 기약할 때였다. 사촌 여동생이 지나가는 애견 케이지를 든 사람들을 보고 도리질을 했다. 사촌 여동생은 해장국집을 운영한다. 한번은 아저씨 손님이 식사 중에 벌떡 일어나더니 “누가 개새끼랑 겸상을 해!”하며 성을 냈다고 한다. 식사 중이던 견주는 하얀 푸들을 케이지에 밀어 넣고, 밥도 입에 넣다시피 먹고 허둥지둥 나갔다고 한다. 반려인과 비반려인의 엇갈린 시선 속에 식당 사장인 동생은 골머리를 앓는다고 했다.
시대의 변화에 따른 웃픈 이야기를 뒤로하고 우리 가족은 엘리베이터를 타러 갔다. 백화점 엘리베이터는 몇 번을 보낸 후에 겨우 탈 수 있었다. 분홍색 유모차를 미는 젊은 부부도 뒤따라 탔다. 유모차에 매달린 가방엔 하얀 기저귀가 빼곡히 차 있었다. 옛 생각에 미소가 나왔다.
다음 층에선 갈색 개모차를 미는 부부가 비집고 들어왔다. 그리고 그다음 층에서 개모차와 유모차가 함께 내렸다. 그런데 어라! 유모차의 망사 속으로 강아지가 보였다. 분홍 유모차도 개모차였다. 하마터면 개한테 까꿍 할 뻔했다. 순간, 비슷한 일이 떠 올라 고개를 주억거렸다.
몇 해 전, 딸이 네 살 때였다. 딸이 탄 유모차에 바람막이를 씌워 동네 개운산에 갔다. 주말인데 아이들이 집에서 밤, 도토리처럼 떼굴떼굴 부대끼느니 넓은 산에 풀어주자는 생각이었다. 산 초입부터 ‘밤, 도토리는 동물에게 양보하세요’라는 팻말이 곳곳에 붙은 가을이었다. 두 아들은 청설모를 찾느라 한창이었고, 맞은편에서는 산책을 마친 두 할머니가 걸어왔다.
한 할머니가 유모차 앞에 멈추더니, 별안간 유모차의 햇빛 가리개를 휙 걷어 올렸다. 그리곤 “어? 개가 아니네?”라며 다시 가리개를 내렸다. 나는 입만 웃으며 “개모차 아니고 유모차에요.”라고 하자 “요샌 하도 둘만 낳고 안 낳는 집이 많아서, 하나는 갠 줄 알았지.”라고 했다. 할머니는 괜히 멋쩍었는지 우리 부부에게 애국자라고, 다 들리게 수군대면서 멀어져갔다.
개모차 미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서 그럴 수도 있다. 개모차가 유모차 판매량을 넘었다는 기사도 본적이 있다. 동네 근린공원에도 개모차에 앉아서 매일 산책 나오는 개가 있다. 하얀 믹스견에 양 볼에 연지 곤지를 찍고, 꼬리 끝에도 꽃분홍색으로 물들인 수컷 갑돌이다. 허리가 굽은 할머니는 그 개모차를 보행기 삼아 밀고, 개는 편히 앉아오니 상부상조였다. 그런데 그보다 더한 상생 관계였다. 장가 간 후로 왕래가 뜸한 두 아들보다 갑돌이가 더 행복을 주는 존재라고 했다. 할머니 내외는 개를 위한 적금과 보험도 들었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보면 전 재산을 자식 대신 반려동물에게 상속하고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뉴스도 과언이 아니었다.
내 주변에도 강아지를 자식처럼 키우는 독신 여성들이 있다. 개한테 엄마, 엄마 하면서 자신을 칭할 때 보면 안쓰럽기도 하다. 아이를 낳으면 진짜 “엄마”하고 말하는 아기의 첫 말을 듣는 감동도 느낄 텐데. 하지만 그녀들이 반려자가 아닌 반려동물을 택한 이유는 엄중했다. 제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세상에 결혼, 임신, 출산, 육아는 언강생심. 오르지 못할 나무 쳐다도 안 보는 식이었다. 오로지 자기의 삶만 잘 살다가 가면 된다는 주의였다.
아무리 현란한 광고로 현혹해도 직접 물건을 써 본 사람의 리뷰와 별점을 보고 구매하는 시대다. 출산하면 나라에서 다 키워줄 듯이 말하는 공익광고는 그런 N포 세대들에겐 소 귀에 경 읽기였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다고 거액의 출산지원금을 쏟아붓는 정책은 반짝세일일 뿐이었다. 물론 ‘오픈빨’이라는 게 있어서 출산율이 반짝 오를 순 있다. 하지만 미혼자들은 기혼자들의 생생한 리뷰를 참고한다.
기혼자가 말하는 ‘결혼 지옥’, ‘헬 육아’의 현실을 간접 경험한 뒤, 앞날을 신중히 결정한다. 내가 만약 육아에 별점을 준다면 별 다섯 개 중 두 개를 주겠다.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는 학업 및 의식주 등 실질적 지원이 더 필요해서다. 그런데 별 세 개는 살면서 차오른다. 마치 한 줄인 줄 알았는데 다음날 두 줄이 되어 있는 임신 테스트기의 자주색 평행선처럼 말이다.
자식은 자꾸 떠나보내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처럼, 벌써 두 아들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부모를 잘 따라다니지 않았다. 나중에 아이들이 분가해 더 자주 못 보고 살 수도 있다. 그래도 삼 남매가 어디서든 내 삶을 평행하게 동행해 주고 있다면 그 자체로 든든할 것 같다. 그래서 자식은 보험이라고 나의 어머니가 말했나 보다.
나 역시 결혼과 출산이라는 순리를 따른 걸 보면, 부모 자식을 잇는 연결고리가 서로 돌봐주는 삶의 순환이라는 걸 체득해서이다. 부모는 자식을 세상에 낳아주고, 자식은 부모가 세상을 떠날 때 보내준다. 탄생과 죽음이라는 당사자가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에 서로가 돌봐준다.
내 골드미스 친구인 J의 어머니는 내게 일 년에 두어 번씩 전화한다. 딸의 중매 좀 서달라는 게 용건이다. 올해는 꼭 배필을 만나야 마음 편히 눈 감을 것 같다는 거다. 내 아버지도 호스피스 병상에서 내게 이런 말을 남겼다. 자식들이 배우자를 만났으니 됐고, 앞으로 손주들이 내 삶을 대신 살아줄 거니 죽어도 죽은 게 아니라고, 그러니 괜찮다고 했다.
열 살 때 고아가 돼 혈혈단신 고생하며 살았던 아버지는 천륜이라는 울타리를 재건하기 위해 가정을 꾸렸다. 숟가락 하나 들고 시작했다는 신혼살림에 이년 터울로 낳은 자식은 힘도 됐지만 짐도 됐을 터였다. 그러나 어느덧 성인이 된 아들딸은 미천한 생활을 일으키는 살림 밑천이 됐다. 천지 분간 못 했던 어린 자식들은 훗날 늙고 병든 부모에게 천군만마도 돼 주었다.
어릴 땐 엄마 아빠랑 천년만년 살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인생의 유한 속에서 부모 자식의 이별은 거스를 수 없었다. 그래도 아버지가 떠난 허한 자리를 메꿔준 건 아이들이었다. 정신없는 육아 속에서 우울할 틈도 없었다. 어느날 문득 잠들기 전에, 내 나이가 마흔다섯이니 이제 아이들 볼 날도 오십 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뭉클했던 적이 있다. 아이들이 하루하루 크는 모습도 붙잡고 싶을 정도로 아까웠다. 그래도 먼 훗날 내 몸이 식기 전, 내게 온기를 더해주는 존재가 나의 살점이자 분신인 자식들이라면 나도 마음 편히 세상을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아버지의 임종을 지킨 것처럼.
물론 주인을 구한 충견(忠犬)의 설화도 있듯이 누군가에겐 생의 마지막을 지켜주는 존재가 반려동물일 수도 있다. 그래도 육아(育兒)가 육견(育犬)보다 품이 많이 드는 만큼, 품어 키운 자식은 한평생 부모에게 품앗이한다. 나의 어머니는 자식과 텔레파시가 통한다는 뜻에서 ‘탯줄이 땡긴다.’는 말을 자주 했다. 아무리 품 안에 자식이라 해도, 열 달 한 몸으로 이어준 탯줄의 힘을 나도 믿는다. <끝> 원고지 21.2매
첫댓글 세상은 알게 모르게 변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정답도 없지요
개모차와 유모차 글 즐감했습니다
동물병원 수준을 넘어선지는 오래 되었고 애견호텔까지 성행하는 요즘 세상 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판단에 따라 옳은 소견대로 살아 갑니다
그러나 그 중심에는 늘 사람이었고 만물의 영장이 왜 사람일까와
창조주의 창조 질서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합니다
저 역시 세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세 아이를 잘 돌보시는 안 작가님 위대하십니다
우와 작가님께서도 세 자녀분들을 두셨군요. 대단하세요! 제 글을 잘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작가님도 위대하십니다!
진짜 울 유정작가님, 대단하셔요.
잘 감상했습니다~^^
아하하 작가님~ 잘 지내시죠? 여기저기 백일장 볼 때마다 작가님 생각이 나요~ 이번에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 갔다가 도시락만 까먹고 왔거든요 ^^ 아동 문학 벼락치기로 지원했다가 그냥 미끄러지고 왔어요~^^ 회원의 날 봬요~
삼 남매 육아 하시는 안 작가님 화이팅!
잘 읽었습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해장국집 운영하는 제 사촌 동생이 저 얘기를 해줬을 때 얼마나 웃겼는지, 그러면서도 정말 골머리를 앓겠구나 생각했어요. "누가 개새끼랑 겸상을 해!"하는 그 말이요 ㅎㅎ
글 잘 읽었어요
공감하는 부분이
너무 많네요
첨부한 사진을 보고
순간, 디카시가 발동했네요
본문의 작가님 사진을
디카시로 옮겨볼까 하는데
어떠세요?
물론, 출처를 명기하고요
우와. 대박이네요~ 디카시로 하시면 새롭게 태어나는 거니 박 시인님의 작품이지요~ 그리고 제 글을 말미암아 작가님께 디카시를 발동하게 했다니, 너무 기분 좋습니다. 잘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길고양이 9년 넘게 키우고 있지만 솔직히는 동물보호론자는 아니에요.
내다 버리고 싶을 때도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