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짐승 이야기
짐승과 동물은 그 의미가 비슷하면서도 차이가 있습니다.
짐승은 날 짐승과 길 짐승을 두루 이르는 말로서 몸에 털이난 동물을 뜻합니다.
그래서 짐승은 동물이면서 보통 네 발이 있기에 물고기나 곤충들은 포함되지 않으나 동물은 몸에 털이난 짐승은 물론 물고기나 곤충까지 포함된 포괄적인 호칭입니다.
흔히 짐승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묘사를 보게 되면 부정적 의미에 사용됩니다.
대표적으로 “이런 짐승같은 놈, 그는 짐승과 다를 바 없다,”라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서 짐승에 관한 표현이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곳이 바로 13장입니다.
13장은 총 18절이지만 짐승이라는 단어가 19번이나 등장합니다.
그런 점에서 흔히 13장을 666이 등장하는 장이라 말하지만 짐승장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계시록에서 짐승이 집중적으로 등장하는 다른 곳은 17장입니다.
18절 중에서 짐승이라는 단어가 10회 나옵니다.
그런데 이 두 곳의 짐승들은 서두에 언급한 현존하는 짐승들과는 별개입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짐승이라는 묘사는 대표적인 묵시문학적 표현이며, 적 그리스도에 동조하며 적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는 거짓 선지자의 무리를 상징하는 표현이라 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이 갖고 있는 편견 가운데 요한계시록이라 하면 지구 종말에 벌어질 무시무시한 일들을 연상하며 덮어 놓고 믿는 책이라는 선입견으로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집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을 찬찬히 읽고 묵상하게 되면 미래에 일어날 일로 국한한다기보다 성도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도 경험할 수 있는 개연성이 높은 말씀이라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의 근거를 제시하라고 한다면 대표적으로 요한계시록 13장과 14장을 들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가 밧모섬으로 귀양갔던 사도 요한이 보았던 환상을 글자로 옮겨 놓은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그림을 글자로 표현한 말씀입니다.
이러한 점을 전제로 13장을 보면 두 짐승이 등장하는데,“1.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 모독 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2.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요한계시록 13:1-2)
바다에서 나온 짐승의 정체와 관련하여 분명하게 알려주는 것은 그는 신성 모독하는 이름을 가졌고 나아가 용 곧 사탄으로부터 능력과 권세를 받은자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이 짐승은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대적자임은 분명합니다.
또한 이 짐승이 등장하게 되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는 자는 짐승에게 경배한다는 점입니다.(요한계시록13:8)
두 번째로 땅에서 올라온 짐승의 정체 역시“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어린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을 하더라”(계시록13:11)
간략하게 살펴보아도 이 두 짐승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용과의 연관성입니다.
또한 요한계시록에서 용에 대한 정의를 알려주는 말씀은 12:9절입니다.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이렇게 정리를 해 보면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두 짐승은 곧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을 대적하는 사탄과 그의 하수인들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짐승을 경배하는 자들만이 받을 수 있는 표인 육백육십육이라는 숫자나 그 표가 어떤 형태인가라는 문제 보다 더욱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신앙생활의 본질이 하나님을 우선시하고 경외하는 삶이 체질화되지 않으면, 삶속에서 이해관계가 충돌하게 될 때 우리 역시 권력이나 명예, 부 라는 이름의 가면을 쓴 오늘날의 짐승에게 굴복하고 그를 경배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오늘날에도 사탄은 광명한 천사나 우는 사자같이 삼킬자를 찾고 있습니다.
교활한 사탄은 성도를 넘어뜨리려고 성도의 가장 약한 점을 공략할것입니다.
누군가에겐 물질이, 어떤이에게는 권력이나 이성이 문제시 될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요한계시록 13장의 근원적 물음은 하나님의 백성이 머리숙여 경외하고 경배할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임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