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산수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강동(江東)지방을 가장 좋은 곳이라 하는데 나는 그렇게 믿지 아니하였다. 내 생각으로는, “하늘이 물(物)을 창조할 때에 어디는 좋게 어디는 나쁘게 하려는 마음이 본시부터 없었을 터이니, 어찌하여 한 쪽 지역에만 후하게 했겠는가.” 하였었다. 그러다가 남쪽 지방으로 다니면서 경치가 빼어난 곳은 모조리 찾아다니며 실컷 보았다. 그리고 천하의 좋은 경치라는 것이 아마 이 이상 더 나은 곳은 없으리라고 생각하였다. 또 그곳을 떠나서 동쪽으로 갔는데 명주(溟州.강릉)ㆍ원주(原州)의 경계부터는 풍토가 특별히 달라지는데 산은 더욱 높고 물은 더욱 맑았다. 일천 봉우리와 일만 골짜기는 서로 빼어남을 경쟁하는 듯하였다. 백성들이 그 사이에 거주하는데 모두 비탈에서 밭을 갈고 위태롭고 거두어들이는 것을 보니, 딴 세상이 있는 듯 놀라워, 과거에 다니며 보던 곳은 마땅히 여기에 비하여 모두 모자라고 꿀려 감히 거둘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서야 태초에 천지를 창조할 때에 순수하고 웅장한 기운이 홀로 어리어서 이곳이 된 줄을 알게 되었다.
죽령(竹嶺)에서 서쪽으로 20여 리를 가면 당진(唐津)이라는 물이 있다. 아래에는 자갈이 많은데 모양이 모두 둥글고 반질반질하며 푸른 빛이 난다. 빛은 투명하여 물이 푸르게 보이며 잔잔하여 소리가 나지 아니하고, 물고기 수백 마리가 돌 사이에서 장난을 하고 있다. 좌우편은 모두 어마어마하게 깎아 세운 듯 산이 솟아서 만 길이나 될 듯한데 붉은 바탕에 푸른 채색을 올린 것처럼 보인다. 벼랑과 골짜기의 모양은 요철(凹凸)같아 움푹하기도 하고 불룩하기도 하여 두둑같기도 하고 굴같기도 하다. 기이한 화초, 아름다운 대나무가 엇갈리게 자라서 그림자가 물밑에 거꾸로 비친다.
이러한 것은 그 대략만을 적었을 뿐이요, 그 기묘하고 수려한 점은 무어라 형언할 수가 없다. 마침내 끊어진 벼랑 어귀에서 말에서 내려 석벽(石壁)이 있던 자리에서 배를 띄웠다. 배 안에서 사람이 말을 하면 산골짜기는 모두 메아리를 친다. 곧 휘파람을 불며 노래를 부르고 스스로 만족스럽게 놀면서 하루 종일 돌아설 줄을 모르고 있었다. 어두운 저녁빛이 먼 데서부터 스며들었다. 그곳이 너무 싸늘하여 오래 머무를 수가 없기에 시(詩) 한 편을 읊어서 거기에 써놓고 그곳을 떠났다.
푸른 물 출렁출렁 쪽빛과 같은데 / 碧水溶溶色似藍
물결에 비친 푸른 절벽은 험한 바위가 거꾸로 서 있는 듯 / 映波靑壁倒巉巖
만리 길 정처없이 동으로 가는 나그네는 / 飄然萬里東征客
홀로 돛대 한 폭을 가을 바람에 달고 가네 / 獨掛秋風一幅帆
내가 동쪽 지방으로 수레바퀴와 말발굽을 끌고 다닌 곳이 많았으나, 여기보다 더 좋은 곳은 없었다. 만일 서울 부근에 가까이 있었다면, 놀기 좋아하는 귀족들은 반드시 하루에 천 냥씩이라도 값을 올려 가면서 다투어 사들일 것이다. 다만 먼 지역에 떨어져 있기 때문에 오는 사람이 적고 간혹 사냥꾼이나 어부가 여기를 지나지만 별로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이것은 반드시 하늘이 장차 여기를 숨겨 두었다가 우리같이 궁하고 근심 있는 사람을 기다린 것일 듯하다. 명주(溟州)의 남쪽 재를 넘어서 북으로 해변에 이르니, 조그마한 성(城)이 있는데 동산(洞山)이라 한다. 민가가 사는 촌락은 쓸쓸하고 매우 궁벽하였다. 그 성에 올라서 바라보니 어스름 저녁빛이 어둑어둑하여지는데, 길 옆에 고기잡이하는 집에는 등불이 가물거렸다. 사람으로 하여금 고향을 그리워하게 하며 고장을 떠난 서글픔에 쓸쓸한 감상이 일어나서 슬픔을 자아내게 하였다.
밤에 객주집에서 잤다. 석벽에 기대어 무릎꿇고 앉으니, 강물 소리 출렁거리며 그칠 줄을 모른다. 우레가 터지는 듯, 번개가 치는 듯, 사람의 머리 끝을 쭈뼛하게 하였다. 부견(符堅)이 군사 백만을 거느리고 와서 강남(江南)을 공격할 때에 군사를 지휘하여 퇴각시키다가 엉겁결에 대오가 무너져 걷잡을 수 없어 장비와 물자를 다 내버리고 빨리 달아나던 모양과 같았다. 어쩌면 그렇게도 웅장한 것인가. 마침내 시(詩)를 썼다. 이르기를,
바다에 나간 사람 반이나 되니 주민들은 적막하고 / 居民寂寞半溟濤
백 길이나 되는 산마루에 높은 건물이 솟아 있구나 / 百丈峯頭揷麗譙
돛대 그림자 가볍게 날아오니 생선 파는 시장은 넓어만 가고 / 帆影輕飛魚市闊
물결이 다투어 주름지니 바다의 어귀는 아득하여라 / 浪花爭蹙海門遙
싸늘한 황혼이 달빛을 띠고 말안장에 실려 왔는데 / 征鞍冷帶黃昏月
밤중 밀물 소리에 나그네의 베개머리는 시끄럽구나 / 客枕頻喧半夜潮
오강정 위에서 바라보는 운치만 못하지 않아 / 不減吳江亭上望
붉은 단풍 푸른 귤이 긴 다리에 비쳤어라 / 丹楓綠橘映長橋
새벽에 마을에서 들려오는 닭소리를 듣고 떠나서 낙산(洛山) 서쪽을 지나는데, 길 옆에 외따로 서 있는 소나무가 있었다. 마디와 눈[芽]이 또렷하고 가지와 줄기가 구불구불하여 땅을 덮고 있는데, 그 그늘 주위가 몇 십 보(步)나 되었다. 특이하도다. 소나무로서 이렇게 기괴하게 생긴 것이 세상에 또다시 있을까. 골 안은 깊숙하고 고요하며 구름 어린 물은 흐릿하여 아마도 인간이 사는 곳이 아니요 신선이 거주하던 곳인 듯, 높은 선비의 유적이 완연히 있었다. 나는 옛날 신라(新羅)의 원효(元曉)와 의상(義相) 두 법사가 신선굴 속에서 관음보살을 직접 보았다는 사실을 생각했는데, 스스로 범상한 몸과 속된 정신이라 신선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감을 탄식하였다. 남아 있는 이야기를 물어보려 하였으나 다만 산만 길게 뻗쳤고, 물만 흐르고 있음을 볼 수 있을 뿐, 수백 년 동안에 옛집과 남은 풍속이 모두 없어졌다. 이에 절구(絶句) 두 편을 지어서 이를 그리워하였다.
일찍이 들었노라 거사인 늙은 유마힐은 / 曾聞居士老維摩
지팡이를 휘날리며 허공을 건너서 만리 길을 지나갔다 / 飛錫凌空萬里過
벌써 문수보살을 보내어 문병하러 왔으니 / 已遣文殊來問疾
일 없이 비사리(중인도의 지명)를 나오지는 않았으리라 / 不應無事出毘耶 (원효를 가리킨 것이다)
지팡이를 휘날리며 좋은 곳을 찾아 외로운 바닷가에 이르렀더니 / 飛錫尋眞海岸孤
묘한 양상 바라보니 허무에서 나왔도다 / 親瞻妙相出虛無
대사로 인연하여 신령한 응답을 돌리지 못하였다면 / 不緣大士廻靈應
어떻게 신룡의 진주 한 덩이를 얻어낼 수 있었으랴 / 爭得神龍一顆珠 (의상을 가리킨 것이다)
한성(捍城)에서부터 북쪽은 가보지 못하였다. 세상에서 전하는 총석(叢石.총석정), 명사(鳴沙.명사십리)같은 곳은 모두 보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지금 강동에서 구경한 것은 정말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만약 모조리 구경하였더라면 비록 수만 장의 종이를 다 쓰며 천 자루의 붓이 다 망가진들 어떻게 모두 적을 수 있었으랴. 옛날에 사마태사(司馬太史)는 일찍이 회계(會稽)에 가서 우혈(禹穴)을 구경하여 천하의 장관을 다 보았으므로, 더욱 기걸차져서 그 문장이 시원스럽고 웅장한 기운이 있었다. 무릇 대장부가 널리 돌아다니며 먼 곳으로 구경을 다니어 천하를 휘젓는다면, 장차 그 가슴속의 수려한 기운을 넓히게 되는 것이다. 내가 만일 명예나 벼슬에 얽매어 있었다면 반드시 그 기이한 것들을 끝까지 찾아다니면서 평소에 가졌던 뜻을 달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에서 하늘이 나에게 후한 혜택을 베풀어 주셨음을 볼 수 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