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복무중이던 79년 여름 북한군 세명이 연달아 휴전선 철책을 넘어 귀순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중 한명이 성씨가 나와 같았고 고향도 아버지 고향 인근이었다
어쩌면 친척일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후 내무반에서 tv를 보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34년만의 숙부상봉이라는 말과 함께 아버지가 그북한군하고 껴안는 장면이 저녁 톱뉴스로 나왔다
몇달후 정기휴가때 서울시내 한음식점에서 부모님과 함께 그를 만날수 있었다
보안과 담당형사와 함께 온 그는 크지않은 키에 날카로운 눈매와 근육질의 탄탄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해방전 아버지와 함께 서울에 유학왔다가 황해도 탄광으로 징용되서 고향으로 돌아간
큰아버지의 아들이고 내게는 한살위의 사촌형이 된다.
아버지는대학 4학년때 6.25를 만났고 곧 입대하여 진격하는 국군을 따라 고향마을 언저리까지 가셨다한다.
그때 동구밖에서 어린 아이를 등에 업은 젊은 여인을 만났는데 그녀는 다름아닌 아버지의 국민학교 동창생이었다.
그사이 그녀는 아버지의 형과 결혼하였고 등에 업은 여자아이는 조카였다.
그러나 고향마을은 북한군이 아직 장악하고 있어 부모님을 뵙지 못하셨다 한다.
그는 처음에 남한에 왔을때부터 숙부를 찾았다는데 아버지가 알고 있는 형수의 이름과 달라서 혼선이 있었다 한다.
알고보니 아버지의 형수는 그후 아이를 낳다가 사망했고 큰아버지가 재혼하여 태어난 아들이 지금의 사촌형이다.
사촌형은 남한에 온이후 명문 Y대에 진학하였고 우리가족과 자주 만나고 북한에서 영어를 배우지 못한
그에게 나는 영어과외를 해주고 영어시험도 대신 봐준적도 있다. 졸업후 그는 S전자에 취직했고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학위도 받았고 박사과정도 수료했다
아버지는 여의도 이산가족상봉때 남한에 친척이 한명도 없다는 걸 아시면서도 매일 여의도로 출근하셨다.
나는 대학시절 군민회 장학금도 받았고 취직후 첫월급을 군민회 장학금으로 기탁했다.
아버지는 20여년전 봄 나에게 통일되면 고향에 찾아가 내대신 할아버지산소에 술한잔 올리라는
유언을 남기시고 74세의 나이로 한많은 인생을 마감하셨다. 돌아가실때 니엄마와 합장하지 말고
봉분을 따로 쓰라 하셨는데 그땐 의아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유골이라도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이었던 같다. 아버지가 돌아가신후 사촌형과 한동안 함께 성묘도 다니고 자녀결혼식때는 서로 참석했다.
사촌형은 부모를 버리고 고향을 떠나왔다는 죄책감에 가슴아파했고 경상도 봉화 어딘가에 요양원을 세워
독거노인들에게 봉사하며 살겠다 했는데 지금은 서로 연락을 안하고 있다.
이젠 서로에게 가족이 있고 인연의 끈인 아버지가 안계시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그저 잘살고 있기를 바라고 있다. 언젠가 고향에 갈수 있는 날이 오면
할아버지의 산소도 알고 있을 그와 함께 가야 되겠다.
그런데 내생에 그런날이 올수 있을까
첫댓글 한국전쟁과 이산가족의 슬픔을 다시 봅니다.
어서 통일이 되어야 할아버지의 봉분에 엎딜 수 있겠네요.
잘 읽고 갑니다.
선배님 감사합니다
아버지 생전에 중국에서 북의 가족을 만나게
해드릴까요 했더니 많이 좋아하시더군요
건강이 안좋으셔서 못해드려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어쩜 그런 일이 저희들 곁에서도
전쟁은 절대 일어 나서는 안됩니다
배운고 앞장선 투사들은 정복의 야욕에 차서 그 보람으로 목숨을
초개같이 버리는 명분이라도 있지 일개 농투성이와 서민들은 무슨
이유로 죽고 헤어지고 평생 한으로 안고 가야합니까
다 같이 살자는게 정복자들의 노래는
모순 덩어리입니다
그산님 잘읽었습니다
운선작가님 감사합니다
전쟁은 어떠한일이 있어도 일어나면 안되는데
지금 지구 곳곳에서 전쟁중이고 북한의 김정은은 전쟁준비를 공언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말은 모두 모순투성이이고 아마 전쟁은 인류역사가 있는한
계속되리라 봅니다. 죄없는 국민만 고통받다 죽어가는 일이 반복될것 같습니다
남북으로 갈린
이산상봉과. 사촌형의 정착등 담담히
풀어낸 가족이야기는 현시대의 아픔이네요
그산 선배니의 아버님 그당시에도
대학을 다니신 엘리트셨네요
응모글 올려주님 감사드립니다
지인운영자님 감사합니다
고향에서 밤나무 과수원을 크게 하신 할아버지는
위로 두아들을 서울로 유학보내셨고 아버지는 당신의
아버지를 평생 그리워하셨습니다
이런 자리를 만들어주신 지기님과 운영자님께 감사드리고
글재주가 없어 주로 제가 겪은일 위주로 올리고 있습니다
고향의 언저리까지 진격했지만,
적군이 포진해 있어
가족을 만나 보지도 못하신
그 심정이 어떠하실지 가히 짐작하겠습니다.
그 가슴에 맺힌 한이
유언으로 고향 땅에 혼이 나마 가고 싶어하신
아버님의 고향 그리는 마음이 진하게 느껴지네요.
귀순하려 사선을 넘어 온 사촌 형도 대단합니다.
대한민국에서 뜻하는 바 이루시고
잘 적응하여 가정을 이루고 잘 사시면 좋겠네요.
그산님, 글 잘 읽었습니다.
콩꽃선배님 감사합니다
아버지는 1940년 14살의 어린 나이로 서울에 유학오셨다가
분단되어 평생 고향을 그리워하셨습니다
사촌형은 마지막 만남때 자주 못올것 같다며 제아버지께 인사드리러
저와 함께 휴전선아래있는 부모님묘소에 인사하러 갔었습니다
그때 제가 솔직히 왜넘어왔냐고 물었더니 북한군에 있을때 상관과 사이가 안좋았는데
부대를 옮긴후에도 또 만나게 되자 어릴때부터 작은아버지가 서울에 있고 아주 똑똑했었다고
많이 들었기에 왔다고 했습니다
요즘 같이 통신 수단이 발달했는데
사촌형과 연락이 끊겼군요.
그산 님과 부모님대에 얽힌 사연 잘 읽고 갑니다.
박작가님 반갑습니다
사촌형이 제번호를 알고 있고
카톡에 서로 이름이 남아있기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만날수 있습니다
사촌형의 두아들 결혼식은 갔었고
늦둥이 딸이 있고 남한에 친척이 없기에
분명히 저에게 연락하리라 봅니다
아... 분단된 이 나라에서 그런 극적인 상봉을 하셨네요.
늘 큰 아픔을 끼고 사셨을 아버님께는 말로 못할 반가움과 또 그로 인해 북에 남아있는 가족들에 대해서는 더 큰 그리움을 느끼셨을 테구요.
봉분을 따로 쓰라고 하신 그 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사촌형님과도 다시 연락이 닿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자리님 반갑습니다
아마 제아버님보다 더 기막힌 사연이 있는분들도
많을겁니다. 아버지는 사촌형의 귀순을 반가워하면서도
북에 남은 가족이 피해를 볼까봐 많이 걱정하셨습니다
합장을 하지말라고 하시기에 의아해했는데 통일되면
고향에 유골이라도 가고 싶으셨을거라 생각됩니다
사촌형은 제형보다는 저를 훨씬 더 편하게 생각했기에
일이 생기면 언제라도 저에게 연락하리라 봅니다
그때까지 참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이야기가
실재로 있었네요.
친척 간에 소식이 끊기는 건 드물지요.
찿자면 찿아질 거란 생각입니다.
소원 이루시길 바래요.^^
네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남북분단이 이땅에 수많은 비극을 만들었고
지금도 고통받는 분들이 많이 계실겁니다
사촌형은 제 전화번호를 알고 있기에 필요하면
언제든지 저에게 전화하리라 봅니다
아버지의 유언을 실행할수 있는 그날이
제가 죽기전에 꼭 오기를 바랍니다
분단의 세월은 기약 없이 길어지고
핏줄과 생이별한 고통을 품은 채 이산 가족들은 하나 둘 유명을 달리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반 만 년을 함께 살아왔고 분단의 세월은 80년이 채 안 되니
우리는 명확하게 하나이고 남북은 통일되어야만 합니다.
담담하게 쓰신 그산님의 가족사를 읽으며 한국인으로서 비감한 마음이 듭니다.
통일의 날이 곧 오기를! 꼭 그리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달항아리님 감사합니다
말씀대로 반만년역사중에 분단은 짧지만 통일은 갈수록 요원한것 같습니다
2세대인 저희는 부모님의 고향을 기억하지만 3세대 이후는 통일에 관심이
없어 보이고 이젠 서로 동족이라 여기지 않는것 같습니다
그래도 통일은 이루어져야하고 우리세대가 후세대들에게
그뜻을 이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항상 따뜻한 댓글 감사드리고 무더운 여름 건강히 잘보내시기 바랍니다
참 안타깝고 절절한 사연이군요
사촌형을 그렇게 만났으니
우연이라고 할 수 없는 너무나
기막힌 상봉이었네요.
서로 연락이 되어 함께 아버지의
한맺힌 유언을 풀어가셨음 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방송에서 자유를 찾아서 귀순했다고 하지만
이면에는 목숨을 걸고 철책을 넘어야할 사연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사촌형때문에 북한에 남은 네큰아버지는 죽었을거라고 저한테
얘기하신적이 있습니다. 제카톡에 사촌형이름이 있기에 내년에 부모님 묘소를
이천호국원으로 이장할때 연락해야 되겠습니다
참으로
쓸쓸한 이야깁니다.
제 생각입니다만
10년 이상 생존하면
고향 돌아갈 날 만날 겁니다.
아마도 머지않은 장래에 아버지께서 그토록
염원하시던 소망도 이루시겠습니다.
무더운 날씨..
귀향할 그날을 위해서라도 건강 잘 챙기시고요...
가을이오면님 반갑습니다
그러고 보니 10년후에 저는 80을 앞둔 노인이 되네요
사람앞날은 알수없기에 10년후를 장담할수 없지만 아버님 고향에 돌아갈수 있는
그날까지 건강관리 잘해야 될것 같습니다
늘 번쩍이는 아이디어를 주시는 가을이오면님께 감사드리며
통일되어 우리땅을 밟고 백두산에 오를 그날까지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
@그산 그산님도
제가 쪽집게라는 건 눈치 채셨구만~~^^
@가을이오면 제가 조금 둔하기는 하지만
항상 댓글을 주시기에
내재된 뜻이 이제는 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