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냇골 통신 98 - 해거름에 / 최병무
이탈한 것들의 사라짐에 대한 쓸쓸한 생각을
종일 하다가 맑은 시 한 편에 위로를 받는다
이기적인 것, 가족적인 것, 사회적인 것,
세계적인 것, 관계적, 가치적, 존재적, 이 모든 것들
절망이 없으면 시인은 반으로 줄어 들었을 거다
오늘 읽은 따듯한 시가 통과한 바로 그 자리
유한한 것에 대한 슬픔은 없다 그리고 나는
작은 그리움을 키우지 않기로 했다
시간 저 편에서 날아온 화살, 원하든 원하지 않든
神은 현존하며 나는 순종한다
허공으로 난 길, 거미줄 같은 씨줄과 날줄 있어
지금 나를 간섭하고 나는 소용없는 시를 쓰며
이탈한 것들의 쓸쓸함에 대하여 오늘
과장된 내 우울을 다스린다
(2010. 9. 4)
쇠냇골 통신 95 - 시인의 이름 / 최병무
이름은 자꾸 불러주어야 고유명사가 된다
오늘 시인의 이름으로는 안 어울리는
그 시인의 이름이 매우 친숙하다
막상 그 분이 이름을 바꾸면 시들이 달아날
것 같다 실명을 몇 분 적어 보려다
내 기특한 뜻이 날아갈 것 같아 그만 두고
존함을 다시 불러본다 그 이름말고
딴 이름을 생각할 수가 없다
나도 가지고 있는 필명을 쓰지 않는 뜻을 알겠다
마침내 나는 이해를 했다
그 시인은 자기의 이름을 이루었고 그 이름은
이제 그 시인의 고유명사가 되었다
문명한 개인주의 나라에서는 고유명사를
대문자로 표기하지 않던가,
그 이름이 창작한 아름다운 시편들... 이름은
실물을 목적한다
열대야를 지나며 그 시인이 사랑한
문자의 바다에 빠졌다
(2010. 8. 22)
*
부득이 이해를 위하여 한 분만 거명한다면,
S 시인님 (부디 오해 없으시길), 존함은
이미 詩的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