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오랜만에 지인들과 부부동반으로 저녁식사를 같이 했습니다.
낙성대 호암교수회관은 버스와 마을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습니다.
과천 방향으로 가는 버스가 여러 대 지나갔음에도 여전히 사람들이 많이 남았습니다.
남은 사람들이 모두 버스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자들이란 얘기지요.
연세가 좀 있어 보이는 분도 있고 부부로 보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잠시 후 5524번 버스가 왔습니다.
역시나 버스 앞쪽으로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부부 중 남자가 의지를 보였고 나이든 분들도 먼저 올랐습니다.
버스에 올랐을 때는 남은 자리는 없어 보였습니다.
복잡한 앞쪽을 피해서 맨 뒷쪽에서 여유 있게 가자는 생각으로 갔는데, 어라 자리가 하나 남았습니다.
얼른 울각시를 앉혔죠.
잠시 후 울각시가 앞쪽을 가리키며 한 번 보라고 해서 고개를 돌렸습니다.
이런 우라질!(용서하세요.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별 우끼는 녀석을 보게 됐습니다.
부부 중 남자 녀석이 떡하니 앉아 있고 여자가 서 있는 겁니다.
거기다 여자의 옷 입은 모양새가 임부복 같던데 혼자 몸이 아닌 듯 보였거든요.
키도 멀대 같이 큰 녀석이 허우대는 멀쩡해 가지고 지 어깨 높이 정도 밖에 안 오는 여자를 앞에 서 있게 두고 앉아 있고 싶을까요?
여자는 앉고 싶었던지 사당역에서 제 바로 뒷쪽에 자리가 비어서 양보했더니 얼른 앉았고, 다시 다음 정류장에서 남자 옆에 앉은 사람이 내리니까 벌떡 일어나서 남자 옆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리고선 뭐가 좋은지 여자가 남자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서로 살짝 뽀도 하고 남자가 어깨를 안아 주기까지 합니다.
이걸 어떻게 봐야 할까요?
보통은 여자가 완전 토라져서 말은 1도 안 하고 찬 바람 쌔~앵 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여자가 벨도 없는 걸까요?
그냥 그 부부가 사는 법?
하여간 저나 울각시는 이해가 안 되는 별 우끼는 커플떼기였습니다.
울딸은 그런 녀석을 만나면 안 되는데...
남자들~ 적당히 자리 좀 양보하고 삽시다. ~^.^~
♥김밥의 힘♥
공직에 계셨던 아버지가 지방에서 새롭게 개인사업을 하시겠다 선언하신 뒤 가족들을 이끌고 서울을 떠나실 때, 나는 혼자 남아 험난한 자취생활을 시작한다. 그때 중학교 2학년이었다.
혼자 남고 가장 힘들었던 시간은 아무래도 저녁 시간이다. 학교를 파한 뒤 자취방에 와서 방문을 열면 늘 싸늘한 공기가 느껴졌다. 그게 참 싫었다.
그래서 버릇처럼 들어서면서부터 라디오를 크게 켜고 부랴부랴 저녁상을 차리며 나를 바쁘게 했다.
그러나 역시 혼밥을 할 때면 말할 수 없는 외로움이 밥을 삼키는 목에 걸려 날 힘들게 했다.
그리고 자취생 첫해의 가을 소풍을 잊을 수 없다.
매번 어머님이 만들어 주신 김밥을 도시락에 담아 소풍을 준비했던 터라 무척 난감했다.
볶음밥을 만들어 담아갈까 하다가 나는 그냥 가게에 가서 빵과 음료 그리고 과자 몇 개만 챙겨 배낭에 쓸어담는다.
그날 밤은 이불을 덮는 순간까지 우울했다.
매년 설레임 속에 잠들었던 그 소풍의 전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선생님들의 인솔을 받으며 여기저기 역사의 현장을 답사하고 드디어 점심시간이 됐다.
나는 잠깐 주저한다. 뻔뻔히 젓가락만 들고 다니며 친구들이 싸 온 김밥을 나눠 먹자고 할까? 아니면 어디 한적한 곳에 가서 그냥 혼자 빵을 꺼내 먹을까? 뭐 이런 쓰잘대기 없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 순간에는 잠깐 어머니 말씀대로 가족과 함께 지방으로 내려가지 않은 내가 참 한심하다는 생각도 했다.
가까운 친구들이 내 배낭을 잡아끌며 함께 먹자고 하는 순간까지도 나는 마냥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야, 이거 우리 엄마가 김밥 도시락 하나 더 쌌다. 너 자취생인 거 아시잖아. 함께 나눠 먹으라고.''
다른 녀석이 또 도시락 하나를 내밀며 말한다.
''뭐야?... 우리 엄마도 네 김밥 따로 싸 주셨는데.''
잠시 후 또 다른 녀석이 헐레벌떡 달려와 내게 도시락 하나를 더 내민다.
''아이구 늦어서 미안해... 나도 도시락 꺼내 먹다가 어머니가 도시락 하나를 더 챙겨 주신 걸 알았어.''
이날 내가 친구들에게서 받은 김밥 도시락은 모두 네 개였고 그날 나는 하나도 남기지 않고 그 도시락 모두를 깨끗하게 비워냈다.
그날 소풍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다시 이불을 덮고 자리에 누웠을 때 나는 친구들의 우정과 어머니들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그 어느 소풍보다 즐겁고 행복했던 소풍의 기억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후로도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소풍 내내 두세 개의 도시락을 받게 되었고 늘 그것들을 깨끗이 비워냈다.
어쩌면 나는 외롭고 힘든 그 자취생 시절을 그 김밥의 힘으로 잘 버티고 잘 이겨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 시절 친구들의 우정과 어머니들의 사랑에 깊이 감사한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김감독 DP님의 카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