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본취말(捨本取末)
[요약] (捨: 버릴 사. 本: 근본 본. 取: 취할 취. 末: 끝 말)
근본을 버리고 끝을 취한다는 뜻으로,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고 중요하지 않는 것에 집착하고 얽매이는 것.
[출전] 《전국책 제책(齊策)》
[내용] 전국 시대,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의 부인 조위후(趙威后)는 전국 시대의 현명한 왕후였다. 그녀는 혜문왕을 도와 나라를 잘 다스렸으므로, 제왕들 사이에 명망이 높았다.
한번은, 제(齊)나라 왕(王)이 특별히 사신(使臣)에게 국서(國書)를 주어 조위후를 방문하게 하였다. 그런데 조위후는 국서를 뜯지 않고 제나라 사신에게 물었다.
“제나라의 수확은 어떠한가? 백성들은 잘 있는가? 국왕은 잘 계시는가?”
제나라 사신은 이 말에 언잖아 이렇게 말했다.
“저는 저희 국왕의 명을 받들어 귀국을 방문한 사신입니다. 지금 왕후께서는 저에게 수확과 백성을 먼저 물으시고, 저의 군주에 대한 안부는 맨 나중에 물으셨는데, 이것은 귀한 것과 천한 것이 뒤바뀐 것이 아니겠습니까?”
조나라 위후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렇지 않소. 만약 풍년이 들지 않으면 어찌 백성들이 있겠으며, 만약 백성이 없으면 어찌 왕이 있겠소. 옛날의 안부를 묻는 법을 보면 근본을 버리고 지엽적인 것을 물었습니까?”
策11齊四146-01 齊王使使者問趙威后, 書未發, 威后問使者曰: “歲亦無恙耶? 民亦無恙耶? 王亦無恙耶?” 使者不說, 曰: “臣奉使使威后, 今不問王而先問歲與民, 豈先賤而後尊貴者乎?” 威后曰: “不然, 苟無歲, 何以有民? 苟無民, 何以有君? 故有問舍本而問末者耶?”
이하 경남신문 하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사본취말(捨本取末) 글.
1930년대 전후해서 중국에서 양대 화가라면 제백석, 서비홍을 치고, 삼대 화가라 할 때는 장대천을 더 넣는다.
제백석은 어릴 때 가난하여 학교는 다녀 본 적이 없고, 농사일 거들고 목공 노릇 하면서 생활하였다. 천부적인 재능과 어릴 때 자연 속에서 동물과 식물을 직접 보면서 산 것이 그의 그림 그리는 일에 큰 자산이었다. 나중에 중국 제1의 화가로 성장하였다.
서비홍은 중국화의 바탕에다 프랑스 유학을 통하여 서양화의 기법도 가미하였는데, 중국화의 좋은 점은 계승 발전시키고 중국화의 좋지 못한 점이나 부족한 점은 서양화의 기법으로 보완하였다.
장대천은 일본에 유학하여 그림과 염색공예를 배우고, 또 돈황석굴에 들어가서 3년 동안 260폭의 돈황벽화를 임모(臨摸 : 그대로 따라 그리는 것)하였다.
장대천이 세계 여행 도중에 프랑스에서 피카소를 만났다. 피카소는 자기가 그린 화첩을 내어놓았다. 장대천이 그 화첩을 펼쳐 보니, 피카소의 40폭의 작품은 전부 제백석의 작품을 임모한 것이었다. 장대천은 피카소를 만나 보고 두 번 크게 놀랐다. 그때는 제백석이 그리 이름이 나지 않았을 때인데, 제백석을 그렇게 높게 평가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중국 그림을 그렇게 높게 평가하는 것이었다.
장대천 자신도 중국에 없는 것을 서양에서 배워 보겠다는 생각에서 서양을 여행 중이었는데, 이런 말을 들으니 부끄러웠다.
중국은 본래 자존심이 대단한 나라로 서양을 오랑캐 취급하였다. 그러나 1840년 아편전쟁에 패배한 이래로 서양 여러 나라와 전쟁만 했다 하면 패배하였고, 1894년에는 동양의 조그만 섬나라 일본에 참패를 하였다. 그래서 청나라 말기부터 자비감(自卑感 : 자기를 낮추어 보는 마음)이 가득하여 서양을 부러워하면서 배우려는 열기가 대단하였다.
자기 문화를 천시하고 서양을 배우자고 외친 대표적인 문화운동이 1919년의 5·4운동이었다. 중화민국 시기의 대학교수들도 대부분 외국유학파들이 주도권을 잡았다. 이 점을 오늘날에 와서 중국 지식인들은 많이 반성하고 있다.
우리는 중국보다 훨씬 더 심했다. 1910년 일본에게 주권을 빼앗겼고, 영토는 짓밟혔다. 그러나 주권을 잃은 것 못지않게 불행한 점은 일본 사람들의 손에 의해서 우리의 역사가 단절되고 문화가 파괴되었다는 것이다. 일제시대에도 대학이 있고 각종 학교가 있어 교육을 했었지만, 교육 목적은 우리 역사를 왜곡하고 멸시하는 마음이 들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 것이라면 무시하고 천대하였다. 학문이나 문화는 물론이고, 일생생활까지도 우리나라 것은 비과학적이고, 저급한 것으로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예를 들면 우리 조상들은 나무와 흙을 주된 재료로 하여 집을 지었다. 그 속에 살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서양 사람들처럼 높은 빌딩에 살아 보나 하고 부러워하였다. 음식도 우리나라 음식은 곡식과 채소 위주인데, 서양 사람들은 고기를 마음대로 먹는다고 부러워하였다.
그러나 40년 정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우리나라 사람들도 높은 빌딩에서 살고, 고기를 마음대로 먹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 것이 가치를 인정받아 귀하게 여겨지고 있다. 몸에 좋다고, 잘사는 사람들은 아파트를 버리고 황토집, 통나무집을 짓고 있다. 고기를 많이 먹어 각종 생활 습관 병이 유발하자, 이제는 채소를 많이 먹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리 것이 본래 좋았음이 이제야 증명이 되는 것이다. 학문이나 문화도 결국 국가나 민족이 힘이 있어야 인정을 받는 것이다.
자기의 좋은 점은 천시하고 남의 좋지 못한 것을 좋은 것인 양 부러워하다가 본래보다 더 못하게 되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사본취말(捨本取末), 근본을 버리고 끝을 취한다는 뜻으로,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고 중요하지 않는 것에 집착하고 얽매이는 것.
잘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원칙이 서야 되겠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