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18일 월요일 부활 제7주간 월요일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29-33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29 말하였다. “이제는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시고 비유는 말씀하지 않으시는군요. 30 저희는 스승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누가 스승님께 물을 필요도 없다는 것을 이제 알았습니다. 이로써 저희는 스승님께서 하느님에게서 나오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3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32 그러나 너희가 나를 혼자 버려두고 저마다 제 갈 곳으로 흩어질 때가 온다. 아니, 이미 왔다. 그러나 나는 혼자가 아니다.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다. 33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어떻게 세상을 이길 수 있나?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이렇다 할 질문도 없고 반응도 없어서 잘 알아듣는지, 아니면 전혀 모르는지 감을 잡을 수 없을 때 선생님은 정말 답답합니다. 세상살이에도 항상 반응을 기대하고 그 반응에 따라서 삶을 사는데 활력과 재미도 있을 수도 있고, 망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반응이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하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분도 상하고 감정도 고조될 수 있으며, 오해도 생길 수 있습니다. 특히 부부나 부자간에나 사제지간에는 그 문제가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하기도 합니다. 항상 같이 살고 함께 하기 때문에 그 반응에 의해서 생활은 크게 리듬을 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이렇게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통해서 성장합니다.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서도 한쪽에서 자극을 주면 상대방의 반응에 의해서 신앙의 크기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신앙에서 반드시 매번 자극을 주어야 반응을 일으켜 신앙이 성숙된다고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신앙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성령의 특은으로 생겨난다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오늘 제자들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교육학에서 말하는 '자극(stimulus) >>> 반응(response)'의 공식은 우리의 세상살이 순간순간에도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매 순간 자극을 주시기도 하고, 또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사랑으로 우리를 당신의 품으로 이끄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의 그 사랑에 반응하지 못하고 아주 무감각하게 마땅한 것으로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현상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이제 철이 들어 주님 앞에서 고백하고 저희도 당신의 사랑 안에서 더욱 성숙하도록 이끌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우리도 이제는 성령을 받았으니 흩어져서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 주님을 증언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다시 간곡하게 말씀하십니다. 당신의 평화를 우리에게 심어주시면서 이제 우리가 나설 때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대로 반응 없이 짝사랑하시는 주님을 멀건이 쳐다보고 있어야 되겠습니까? 주님께 실망하지 않도록 우리가 앞장서야 할 때가 이미 왔고 빨리 흘러가고 있답니다.
'세상을 이기셨다'는 주님의 말씀은 여러 가지로 생각됩니다.
첫째, 세상에 뿌리내리고 있는 악마와 악마의 사주를 받은 부정과 부패와 불의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셨다고 하십니다. 우리도 그들과 한판 싸움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죄의 사슬에서 허덕이지 말고 승리해야 합니다. 죄와 악마의 사슬에서 승리함으로써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야 합니다. 모든 유혹과 악의 근원에서 우리 스스로 과감하게 벗어나야 한답니다.
둘째, 전략적으로도 이기셨습니다. '승 - 승(勝 - 勝)'전략으로 이기셨다는 말씀입니다. '승-패'의 전략도 아니고, 더구나 '패-승'이나 '패-패'의 전략이 아닌 'win - win'의 전략으로 세상도 이롭게 하시고, 당신과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세상을 이겨야 합니다. 그러나 그 전략은 '승 - 승'의 전략이어야 합니다. 비굴하게 누구든지 끌어내리지 않고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길을 택해야 한답니다. 특히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 신자들은 그래야 합니다. 같은 믿음을 가진 우리가 갈라져나간 형제들을 감싸 안는 포용력을 더 키워야 한답니다.
세째, 주님께서 세상을 이기신 방법은 탈출기와 같이 모든 재앙을 뛰어넘는 파스카의 신비를 통해서 부활하심으로써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세상을 이기기 위해서는 주님을 통하고 주님께서 보내주시는 협력자 성령을 통해서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세상에 주시는 시련을 겪고, 극복해야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주님을 통하며,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서 세상을 이길 수 있음을 잘 인식해야 한답니다.
네째, 세상을 이기시는 방법으로 지옥문도 쳐 이기는 교회를 통해서 이기셨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세워주신 교회를 통해서 공동체를 형성하고, 그 공동체 안에 살아 계시는 주님을 통해서 더욱 견고한 신앙을 가지고 세상을 이겨야 한답니다. 개인적인 승리 보다는 공동체의 승리를 더 바라고 계실 것입니다. 개인적인 신심과 신앙생활보다는 공동체의 신앙으로 더욱 성숙된 교회를 건설해야 한답니다.
다섯째, 세상을 이기기 위해서 당신께서 처참하게 돌아가시고, 희생 양이 되시며, 멸시와 조소와 박해를 받으셨습니다. 저희도 세상을 이기기 위해서 저희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헌신하여야 한답니다. 알량한 자존심으로 그 동안 아주 교만하였던 삶을 진정으로 뉘우치고, 당신의 희생과 헌신을 따를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기를 간청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과 우리에게 용기를 북돋우며, 평화로 모든 어려움과 역경을 이기도록 무장시켜 주십니다. 평화와 사랑으로 무장하여 세상을 이기도록 격려해 주십니다. 그리고 성령을 보내 주시어 우리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용기는 싸움터에 나가는 전투적인 크리스천에게 필수 조항입니다. 그런데 용기는 세상의 악과 악마의 권한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도 용기이지만 주님을 두려워하며, 주님께 상처를 드려 상심하실까봐 두려워하는 것도 용기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을 과감히 치료하기 위해서 자신을 헌신하고 희생하려는 정신도 용기입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잘못한 것과 죄 지음을 용서 청하며, 이웃이 잘못했다고 지적하는 것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수용의 정신과 태도도 용기입니다. 이웃을 용서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너그러움과 큰 아량을 갖는 것도 용기입니다. 그리고 하느님 나라의 건설을 위해서,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서 꾸준히 공부하고, 기도하고, 자신을 단련하는 것도 용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