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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악에서 구하소서/ 마태복음 6:13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https://www.youtube.com/watch?v=pnbeQ5N7jpc&t=19s
오늘은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 아홉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의 내용은 악에서 구원 받기 위한 기도입니다.
악에서 구해달라는 기도는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면서 하는 기도입니다. 우리 스스로 악에서 빠져 나올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합니다.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연약함과 주님의 강함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강함을 구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지 않는데 이런 사람은 교만한 사람입니다. 제가 농담으로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망치로 머리 한 대 맞으면 바보 된다고 말했는데 사실이 그렇습니다. 아무리 대단한 사람도 하나님께서 총명을 거두시면 바보 정도가 아니라 짐승 같이 됩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입니다.
다니엘서 4장에 보면 한 번은 느부갓네살 왕이 꿈에서 땅의 중앙에 있는 한 나무를 보았습니다. 그 나무가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그 높이는 하늘에 닿을 정도로 커졌습니다. 그 나무가 얼마나 큰지 땅 끝에서도 보였습니다. 그 나무의 잎사귀는 아름답고 그 열매는 많았습니다. 들짐승이 그 그늘에 피하고 새들도 그 가지에 깃들이고 모든 사람이 먹을 만큼 많은 열매가 열렸습니다. 이 나무는 느부갓네살의 영광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순찰자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그 나무를 벨 것이며, 그루터기는 남겨 두는데, 그 나무의 마음이 짐승의 마음을 받아 일곱 때를 지낼 것이라고 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그 당시로서는 세계 최강국을 이룬 대단한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툭 치시니 미쳐버린 것입니다. 짐승처럼 된 것입니다.
꿈에서 말씀하신 기한이 차니 왕이 다시 정신이 돌아오고 왕권이 회복됩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니 교만하던 느부갓네살이 겸손해져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단 4:37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은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경배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라” 우리는 그 사건을 통해서 사람이 대단한 것 같아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늘 겸손하게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가 악에 빠져 있는 것은 마치 태평양 한 가운데 빠진 것과 같습니다. 태평양 한 가운데서는 누구도 스스로의 힘으로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올림픽 수영 5관왕도 불가능합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가능합니다. 우리도 스스로의 힘으로는 악에서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자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빠져나올 수 없으니 우리에게는 구세주를 보내주신 것입니다.
오늘의 내용은 악에서 구원해 달라는 기도가 어떤 기도인지 나누겠습니다.
1. 죄악에서 벗어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원죄를 가지고 태어났으며 스스로 범한 자범죄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리므로 사람 안에는 죄악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5장에 보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문제로 예수님을 공격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진정으로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 속에 있는 죄악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마 15:18-20입니다.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19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20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러면서 사람은 한편으로는 선을 행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사람 안에는 선과 악이 공존합니다. 우리가 갈등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내 안에서 또 다른 나와 싸우는 것입니다.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 악을 행하는 내가 있기 때문에 선을 원하는 나와 싸우는 것입니다.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악한 것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는 선한 일을 하는 동안에도 속에서는 수많은 불순한 동기가 숨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욕심과 싸우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런 싸움을 하며 살아갔습니다.
로마서 7장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의 내적인 싸움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그는 선을 원하지만 도리어 악을 행한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자기 안에 악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롬 7:21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강단의 컵 안에 물이 들어 있으니 제가 컵을 뒤집으면 물이 쏟아질 것입니다. 만약 컵에 콜라가 들어 있다면 제가 컵을 뒤집으면 콜라가 쏟아질 것입니다. 왜 선을 행하고 싶어 하는 바울 안에서 악이 나왔을까요? 그 이유는 바울 안에 선과 악이 공존하는데 악이 더 강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다윗을 칭송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는 최고의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는 특별한 영성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시를 쓰면 그것이 성경이 되었습니다. 그가 악기를 연주하면 귀신이 떠날 만큼 영적인 파워가 있었습니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자기를 죽이려고 하던 사울 왕을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죽이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밧세바 사건에서 다윗은 그냥 간음죄를 지은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인간이 저렇게 악할 수 있나, 저 사람이 다윗이 맞나 할 정도로 악을 행했습니다. 다윗은 밧세바와 간음을 하고 그 사실을 숨기려고 자신의 충신 우리야를 청부살해 하였습니다. 다윗 같이 훌륭한 사람 속에도 그런 악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가 얼마나 악한지 인식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진실한 마음으로 “악에서 구하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는 인간으로서 날마다 악에게 빠지지 않도록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죄를 이길 수 없습니다. 바울의 탄식을 들어보세요. 롬 7:24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바울은 자기 속에서 올라오는 죄악을 이겨보려고 했으나 번번이 패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음을 알고 탄식한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자기 속에서 올라오는 죄악과 싸울 때 주님의 말씀대로 마음은 원이지만 육신이 약함을 경험하고 있지 않습니까?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우리의 약함을 아시고 죄악을 이길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는 마치 태평양 한 가운데 빠진 사람을 지나가던 배가 구조해주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악에서 건져주시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이 방법들은 하나이면서 둘입니다. 튜브를 로프에 묶어서 물에 빠진 사람에게 던져주는 것과 같습니다. 튜브와 로프는 하나이면서 둘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벗어나는 하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공로입니다. 엡 1:7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을 받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흘리신 보혈의 능력으로 죄와 죄책을 이기게 됩니다.
또 하나는 성령님의 능력입니다. 롬 8:2입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우리 안에 오신 성령님은 먼저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켜주십니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예수님의 공로를 믿게 하셔서 죄 사함을 받게 해주시고 또 죄와 싸워 이길 수 있는 힘과 능력도 주십니다.
예수님의 보혈과 성령의 능력은 신앙의 가장 기본입니다. 아무리 영성이 깊어져도 반드시 붙잡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없이 하는 신앙생활은 다 가짜입니다. 자동차운전을 50년 했어도 시동을 걸지 않고는 운전할 수 없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성령의 능력이 없이는 신앙생활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저는 늘 예수님의 보혈과 성령의 능력을 강조합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쓸 때 그는 이미 모든 부분에서 고차원적인 수준에 있었습니다. 신학적으로는 이미 기독교 신학의 뼈대를 세웠습니다. 로마서가 그것입니다. 영적으로는 3층천까지 가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보고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죄를 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붙잡고 성령의 능력을 의지했던 것입니다.
주기도에서 “악에서 구하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 내 속에 죄악이 있습니다. 제가 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의지하고 살게 하시고 성령의 도우심 속에서 죄를 이기게 하소서”라는 기도입니다.
2. 마귀의 역사로부터 벗어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악이라는 헬라어 ‘πονηρός’(포네로스)는 남성명사와 중성명사로 쓰입니다. 중성 명사가 되면 ‘악한 행위’가 되고, 남성명사가 되면 ‘악한 자’가 됩니다. 악한 행동과 악한 행동을 일으키는 존재를 분리시킬 수 없다는 의미에서 존 칼빈은 이 두 가지 모두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므로 “악에서 구하소서”라는 기도는 악에서 구해 달라는 것과 악한 사탄으로부터 구해달라는 기도인 것입니다.
세계적인 석학 C.S. 루이스 박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열 명이 술좌석에서 웃고 떠들고 있다면 그때 웃음소리는 열 한명이 웃는 소리일 것이다. 바로 열한 번째 목소리는 마귀의 것이다. 만약 누군가 걱정하고 두려워한다면 그 뒤에서 마귀는 팔짱을 끼고 흡족한 미소를 띠고 있을 것이다” 그는 인간의 배후에 역사하는 영적인 존재를 인정한 것입니다.
사탄은 악한자이며 우리가 싸워야 할 대적입니다. 엡 6:12입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우리의 대적은 마귀와 마귀를 따르는 귀신들입니다. 이 세상에는 사탄이 활동하지 않는 영역이 없습니다.
사탄은 다양한 곳에서 진을 치고 사람들에게 악을 조장하고, 컨트롤 랍니다. 사탄은 전능하지는 않지만 상당한 능력을 가지고 악을 온 세상에 퍼뜨립니다. 정부 조직 안에서 혹은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활약하는 악의 세력이 있고, 세상의 문화 안에서 악을 전염시키는 사탄의 활동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실체를 바로 보고, 그런 악의 존재로부터 우리를 구해달라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뉴질랜드에는 음료수의 이름 중에 ‘디몬(악마)’이 있습니다. 또 전국적인 피자매장은 ‘헬(지옥) 피자’랍니다. 그곳의 피자 이름들은 끔찍할 정도로 선정적이고 폭력적이랍니다. 미국은 실제로 사탄교회가 있습니다. 사탄은 이 마지막 때에 자신의 정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사탄은 파괴적이며 악한 세상에서 기세등등합니다. 만만하게 보면 안 됩니다. 세상 안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탄의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긴장감을 가지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너무도 오랫동안 다양한 영역과 조직 속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탄의 영, 관계를 타락시키고 우리 삶을 비극으로 몰고 가는 마귀의 세력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이해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마귀는 다양한 영역에서 역사를 합니다. 때로는 우리의 눈에 좋게 보이는 것도, 신기하게 보이는 것도 마귀가 역사해서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출애굽기 7장을 보면 애굽의 바로 앞에서 모세가 지팡이를 던져 뱀이 되게 하자 두 마술사도 같은 능력을 행했습니다. 그때 모세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역사하셨고, 두 마술사의 배후에는 마귀가 역사한 것입니다.
세계 제일의 마술사라고 불리 우는 ‘크리스 엔젤’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공중에서 빌딩 사이를 날아다니고, 빈 전구에 불을 켜기도 하고, 바늘을 삼키고 몸에서 바늘을 빼 내기도 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눈속임이라고 하여 믿지 않지만 저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봅니다. 그는 공공연히 “나는 이 일을 위해 악마와 거래를 하였고 악마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배후에는 마귀가 역사합니다. 이런 것이 신기하지만 결국은 그를 지옥으로 끌고 가는 마귀의 역사이고, 기적 같은 일들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는 것입니다. 유명한 가수들 가운데 마귀에게 자기의 영혼을 팔아서 히트곡을 내게 되었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마귀가 역사하는 핵심적 이유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사람들이 믿음을 떠나게 하는 것입니다. 계 13장에 보면 사람들이 666 짐승의 표를 받기 전에 바다와 땅에서 두 짐승이 나옵니다. 그들이 하는 일은 사람들이 믿음을 버리게 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악에서 구하소서.”라는 기도는 “마귀에게서 지켜 주소서.”라는 기도이며, “마귀를 이길 수 있는 은혜를 주소서”라는 기도입니다.
3. 병을 치료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헬라어 악은 ‘병든’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에서 구하소서.”라는 기도는 병든 상태에서 구원해 달라는 기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내가 건강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베푸신 은혜 가운데 하나가 건강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 3/2의 시간을 치유 사역에 사용하실 정도로 우리가 건강하기를 원하십니다.
이사야 53장에는 주님이 초림 때에 당하실 고난을 예언했습니다. 사 53:5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 말씀에서는 주님의 고난이 주는 은혜를 세 가지로 말씀합니다. 하나는 허물과 죄악의 문제 해결입니다. 또 하나는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의 건강입니다. 주님이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질병으로부터 나음을 입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저는 주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병 고침의 믿음을 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많은 신자들이 이론적으로는 병 고침의 은혜를 알고 있지만 병 고침의 믿음은 없습니다. 전에 청량리에 아주 훌륭한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목회도 잘하셨고 교단장도 지내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께서는 신유의 믿음은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았으면 됐지, 병을 고치려면 병원에 가야지.’라고 생각하는 분이였습니다. 하루는 그 교회 권사님 한 분이 며느리를 데리고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우리 며느리가 죽어가요. 어서 기도해 주세요.” 목사님이 보니 며느리가 서 있는데 발자국마다 피가 묻어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신 목사님께서 권사님께 호통을 쳤습니다. “권사님, 며느리를 죽이려고 작정하셨어요? 병원으로 가야지, 왜 이리로 오셨어요? 내가 의사예요?”, “목사님,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손이라도 한 번 얹어 주세요.”, “내가 손 얹는다고 낫나요? 병원에 가야 낫지요.”, “그래도 손 한 번 얹어 주세요.” 그러자 목사님께서 권사님께 그 고집 때문에 며느리를 죽이겠다며 막 혼을 내셨습니다. 그때 목사님의 대학생 딸이 방문을 열고 나오더니 말했습니다. “아빠, 아빠가 정말 목사님이세요? 손 얹고 기도한 후 병원에 보내시면 될 것 아니에요? 아빠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는 목사님이 맞으세요?”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막 16:17,18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이것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목사나 선교사에게만 주신 약속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프면 병원에도 가야 하지만 그 전에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목사님은 “아빠, 정말 목사님 맞으세요?”라는 딸의 말이 마치 하나님의 음성처럼 들렸습니다. 그래서 피를 흘리고 있는 며느리에게 달려가서 머리에 손을 얹고 “아버지, 이 딸의 생명을 구원해 주시옵소서. 피를 멈추어 주시옵소서.”하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마치자 피가 멈추었습니다. 기도할 때 권사님 며느리의 병이 깨끗이 나은 것입니다. 우리는 믿는다고 하지만 믿음이 없거나 믿음이 너무 약합니다. 주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신유의 믿음, 병고침의 믿음을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악에서 구하소서.”라는 기도는 “병을 고쳐주소서.”라는 기도입니다.
4. 비정상에서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서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악이라는 말은 ‘나쁜 상태에 있는’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이 나쁜 상태가 바로 정상적인 상태에서 벗어난 비정상적인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몇 년 전 하버드대 교수인 마이클 샌델 교수가 지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이 책 외에도 최근에 정의에 관련한 주제가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사회에 불공평과 불의가 성행하니 정의에 대한 갈망이 커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회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는 다르게 해석하겠지만 성경적 관점에서 이 사회의 문제는 죄와 악의 문제입니다. 악은 다양한 얼굴을 하고 교묘하게 포장되어 드러납니다. 악은 개인으로부터 출발해서 사회, 정치, 조직 안에서도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분명한 것은 악이 있는 곳에는 고통이 있습니다. 인간의 타락 이후 세상에는 악이 가득합니다. 악이 범람할수록 인간 사회의 고통은 더 극심합니다. 세상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전쟁과 테러, 살인과 강간, 폭력과 인신매매, 불공평한 재판, 부정부패, 뇌물, 거짓된 담합, 인종차별과 환경파괴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악이 활동하는 세상은 결코 평안하지 않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의문의 사건들이 끊임없이 일어나 사람들을 비극적으로 몰고 갑니다. 나도 언제 악의 희생자가 될지 모르는 불안함이 있습니다.
악은 세상 가운데에 있습니다. 크든 작든 모든 조직 안에 악이 구조적으로 활동합니다. 마태복음 12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 당시 세대를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하셨습니다. 악하고 음란함이 한 두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문화였습니다. 엡 5:16입니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바울은 그 당시 세상을 악을 피할 수 없는 오염된 세상이라고 지적한 것입니다. 지금은 그 때보다 더합니다. 어디로 가도 피할 수 없을 만큼 우리의 환경과 사회 구조가 오염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시의 사회구조적 악에 의해 결국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평소에는 사이가 좋지 않던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이 악을 도모하기 위해 손을 잡고 조직적으로 공모하는 모습들이 드러났습니다. 가룟 유다가 대제사장으로부터 받은 돈은 어디로부터 온 것입니까? 검은 돈이었습니다. 조직적인 악입니다. 로마의 총독, 빌라도 역시 예수님을 죽일 죄목을 찾지 못했지만 군중의 소요를 두려워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도록 넘겨주었습니다. 종교적, 국가적인 시스템 안에서 악이 작동된 것입니다.
지금 미국은 총기문제가 사회적으로 심각합니다. 잊을만하면 대형사고가 터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앞으로도 억울하게 죽어가겠지만 총기 규제를 할 수가 없습니다. 이 문제는 구조적인 악의 문제, 돈과 권력이 깊이 얽혀있습니다. 남자가 여자라고 우기면 여자로 인정해줘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남자가 자기는 여자라고 우기고 여자 화장실, 여자 탈의실, 여자 목욕탕에도에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지금은 세상의 모든 것을 비판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대통령도 국가의 지도자도 유명인사들도 비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동성애를 비판하면 비판한 사람이 범죄자가 됩니다. 이런 시대가 우리 대한민국에도 찾아오고 있습니다. 금년 4월에 청주지방법원 영동지원은 성기 성형과 고환 제거 등의 성확정 수술을 받지 않은 트랜스 젠더, 몸의 성별은 남성이나 스스로를 여성으로 인식하는 5명에 대해 가족관계등록부에 기재된 성별을 남성에서 여성으로 정정하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국가 권력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회악입니다. 교회는 이런 문제에 침묵할 수 없습니다. 사회적인 악에 대한 우리의 최소한의 의사 표시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번 토요일에는 실버예배를 드리지 않고 반동성애 집회에 참석하려고 합니다. 함께 해주십시오.
우리가 민감하게 깨어있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사회의 구조적인 악에 참여할 수 있고, 그것이 한 사회의 정의가 되면 우리는 악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악에 동참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조직과 문화, 관행은 어쩔 수 없이 죄에 참여하게 하는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진실하게 말해야 하지만 말하면 안 되는 환경 때문에 침묵하는 동안 나도 공범이 됩니다. 개인은 선해도 조직 자체가 악한 일을 하고 있다면 개인의 선은 의미를 잃습니다. 이런 조직과 잘못된 구조 안에서 사단이 역사할 때 우리가 희생당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세상에서 “우리를 악에서 구하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비정상적인 생활을 하던 사람이 주님을 만나고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온 경우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거라사의 귀신들린 사람입니다. 그는 귀신에게 사로잡혀서 발가벗고 무덤 사이에 거했습니다. 밤낮 소리를 지르고 사람들을 괴롭게 했습니다. 그는 정상에서 한참 벗어나 광인이 되었습니다. 그도 비정상적인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의 힘으로는 벗어날 수가 없었고 그의 가족들과 동네 사람들도 그를 정상적인 상태로 돌려놓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그가 주님을 만났습니다. 주님이 그를 찾으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역사하던 군대귀신을 물리치셨습니다. 그는 정신이 돌아왔고 그동안 벗어나지 못했던 비정상적인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학생이 학교를 가지 않고 공부를 하지 않고 술 담배를 하고 일진노릇을 하는 상태는 정상적인 상태인가 비정상적인 상태인가? 비정상적인 상태입니다. 이 학생이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오는 것은 학교를 가고 공부를 하고 일진노릇 그만두고 술담배도 끊는 것입니다. 이런 자녀가 있다면 부모는 “내 자녀를 악에서 구원하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정상적인 상태였을 때는 서로 사랑했습니다.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중에 살이라” 그런데 마귀가 역사를 하고 죄가 들어오니 정상적인 상태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담은 죄의 책임을 하와에게 돌렸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저 여자 때문에 범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비정상적인 상태로 간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가정이 비정상적인 상태에 놓여 있다면 “주여! 악에서 구원하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사업의 정상적인 상태는 어떤 상태인가요? 건전ㄴ한 사업을 하고 거래처가 열리고, 일거리가 생기고, 일하고 나면 정상적으로 수금이 되고, 그 돈으로 직원들 월급주고, 그 돈으로 가족들 생활하고, 그 돈으로 헌금도 하고, 선교도 하고, 나누고 섬기고, 그 돈으로 사업에 재투자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엄청난 돈을 버는 것은 아니어도 선순환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사업이 비정상적인 상태에 놓여 있다면 “다만 악에서 구원하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정상적인 교회생활은 어떤 것인가요? 믿음이 충만하고, 예배가 기다려지고, 예배를 통해서 새 힘을 얻고, 교회에서 맡겨진 직분과 사역을 행복하게 감당하고, 교회생활을 통해서 얻은 영적인 힘으로 변화된 생활과 관계를 유지해야 하고, 세상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이런 것이 안 되고 비정상적인 상태에 놓여 있다면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주여! 악에서 구원하소서”
생활이 비정상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도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와야 합니다. 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들에게 문제를 냈습니다. 술에 취해 거리에서 큰소리를 지르거나 노래를 부르는 것을 사자성어로 무엇이라고 하는가? 아이들의 답이 제 각각이었습니다 “고음불가”, “이럴수가”, “미친건가” 그런데 한 아이의 답에 모두가 뒤집어졌다. “아빠인가” 이런 아빠도 “주여! 악에서 구원하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엘림힐링센터장 손광호 목사님 이야기입니다. 그분이 은혜 받기 전에는 술을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술중독이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는데 신학교를 갔습니다. 희한하죠. 고등학교 때부터 술을 먹던 사람이 신학교를 갔습니다. 그런데 신학교 1학년 때 술 때문에 퇴학당했습니다. 군대 갔다가 알코올 때문에 조기 제대했습니다. 학교 조기 졸업은 좋은 것이지만 군대 조기 제대는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볼리비아에 이민 갔다가 술 때문에 총기사고 냈고, 정신병원에 7개월 동안 입원했고, 치료 받기 위해서 스스로 수용시설에 총 36번이나 들어갔으나 소용없었습니다. 죽으면 끝이 날까 해서 자살도 시도했으나 생의 마감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는 영혼만 구원 받은 것이 아닙니다. 알콜로부터 구원을 받았습니다. 비정상적인 생활에서 정상적인 생활로 구원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알코올중독이나 마약 중독처럼 심한 것은 아니지만 정상적인 궤도에서 벗어난 생활은 없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여! 악에서 구원하소서”
오늘은 “악에서 구하소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악에서 구해 달라는 기도는 어떤 기도입니까?
1. 죄악에서 벗어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2. 마귀의 역사로부터 벗어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3. 병을 치료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4. 비정상에서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서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감사한 것은 우리 주님은 이 모든 것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