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9]오늘 아침 ‘나홀로 밥상’ 쑥국 쑥국
오늘 아침 식탁을 찍었다. 이웃집 형수가 한 바가지 주신 쑥으로 쑥국을 끓였다. 봄이 왔음을 실감한다. 지난 주에는 늙은 아버지가 밭두럭에서 냉이를 캐와 냉이국을 끓여드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그뿐. 내가 지은 해품벼 쌀에다 작년 수확한 수수를 넣은 수수밥이다. 이웃마을 친구의 부인이 고맙게도 단풍깻잎김치를 주셨다. 이거야말로 진짜로 고마운 일. 이 ‘웬수’를 어떻게 갚을까 생각중이다. 어머니의 전매특허나 다름없었던 ‘단풍깻잎김치’이기에 어머니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아침이다. 뒷마당에 세워둔 참나무에서 표고버섯, 그중에서도 백화고를 몇 개 따와 잘라 꽃소금을 뿌린 참기름에 찍어먹는 맛이라니! 어디 그뿐인가? 여수에서 아직도 현역인 친구가 돌산갓김치를 한 상자 보내왔다. 알싸한 맛이 죽인다. 지난주 아내가 겉절이와 얼갈이배추김치, 그리고 꽈리꼬치볶음과 콩나물무침을 해놓고 올라갔다.
식탁 위에는 새벽 공복에 아버지와 함께 타마시는 경옥고(500g) 한 병이 놓여 있다. 엊그제 임실의 오지奧地, 운암면 선거리에 사는 친구가 직접 만든 거라며 선물을 했다. 3000여평에 지황을 심었는데, 내친 김에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상품화하기까지는 너무 번거러워, 아는 사람들에게 선물하는데, 특별히 사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1병에 5만원씩 팔기도 한다(시중에서 1kg 20만원). 원래 지황, 인삼, 꿀, 복령 등 4가지 재료로 만드는데, 자신은 구기자를 더 추가, 만드는 데만 1주일이 걸린다한다. 보통 정성이 아닐 수 없다. 후식으로 딸기와 사과도 있다. 그제, 사촌동생이 불쑥 온다기에, 내딴에 정성을 들여 점심을 차렸는데, 그때 사온 것이다. 이것 또한 고마운 일이다. 설에 숙부 성묘를 못했는데, 군산 출장중 들렀다고 하지만, 그래도 못난 큰집 형을 보고자 들른 동생이 기특하다.
어제는 중노동을 했다. 늙은 감나무 15그루 아래 퇴비를 반 푸대씩 뿌린 후, 논에 나가 600평에 비료 6푸대를 살포했다. 오후에 꾀복쟁이 친구가 로타리를 쳐준다기에 오전에 서두른 작업이다. 인근 밭에서 로타리를 치고 있는 인척 아재를 불러 국도변에 있는 한식뷔페집에서 점심을 사드리다(착한 일). 오후 2시, 전주에서 친구가 뒷밭 20여 두럭에 비닐을 쳐준다고 내려왔다. 혼자 하면 이틀해도 어려운 검정비닐 씌우는 작업을, 농촌일 빠끔이인 친구가 적극적으로 삽질을 하니 2시간 반만에 끝이 났다. ‘일머리’가 있지 않으면 몸도, 마음도 고달픈 게 농촌일이다. 이 친구는 동갑인데, 귀향하여 사귀었다. 초등학교조차 우리보다 3년이나 늦게 나온 가방끈 짧은 친구이건만, 사람 사는 이치는 대학 아니라 박사들보다 더 훤하다. 세상에나, 이날 평생 비행기를 한번 타보지 못했다고 한다. 당연히 여권도 없다. 운전면허증도 없고, 교통수단은 오직 오토바이다. 그래서 불운하다 말할 것인가? 그러나, 꼭 그렇지는 않은 것같다. 그까짓, 비행기 한번 안타봤다고, 해외여행 한번 안해봤다고 불행할 일은 아니지 않겠는가. 그 친구도 나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비타민이다. 나는 급하기만 하면 SOS를 친다. 그는 내가 도저히 못할 일을 “간단히” 시원스럽게 해치운다. 그래서 별명이 “간단이”다. 호를 “하정河庭”이라고 지어줬는데, ‘하’는 ‘새우 하蝦’자도 된다. 새우잡이를 가르쳐준 이 친구는 정원 가꾸는데도 일가견이 있어 그렇게 지은 것이다. 우리 사이에 일당 10만원 주기도 뭐하고 하여 거한 저녁을 산다며 갈비살 3인분(1인분 17000원)을 시켰다. 고마워하는 친구에게 전문가 고액 일당에 비하면 싸게 먹히는 게 아니냐며 서로 웃었다.
어제의 농사일(비닐 같이 씌워준 친구, 로타리를 쳐주는 친구)과 오늘 아침 식탁의 밥상을 생각하니, 내가 한 일은 쑥국 한 그릇 끓여 아버지와 ‘봄맛’을 본 것밖에 없다. 기본 밑반찬은 아내가, 단풍깻잎김치는 친구의 부인이, 후식인 딸기와 사과는 사촌동생이, 보약같은 경옥고는 지황을 재배한 친구의 수제품이다.
또한 오전에 '옥수수 논' 귀퉁이에 덜 벗겨진 검정비닐을 제거하고 오니, 우체국 택배가 2개 와있다. 박카스 상자를 열어보니, 안양에서 약국 운영하는 분이 보낸 ‘구내염’ 치료약이다. 이름이 생소하고 뜬금없는 물건이어서 아내에게 물어보니, 작은 처형의 손아랫동서인데, 아내가 별 뜻없이 구내염 얘기를 했더니 보낸 선물이라 한다.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손편지까지 들어있다. 감동이다.
또 하나는 두 권의 책인데, 하나는 대학교수인 후배의 야심찬 저서로 제목이 『청년논어』이다. 교양학부에서 <논어와 21세기>라는 과목을 가르치는데, 몇 년간에 걸친 ‘강의 결정판’이다. ‘논어로 열어가는 마음 푸른 청년의 삶과 비전’이라는 부제 속에 저자의 의미가 다 들어있는 듯하다. 이 땅의 ‘마음 푸른 청년’들의 삶과 비전을, 불멸의 고전인 <논어> 속에서 찾고자, 나름 고군분투하며 애쓴 결과물이기에 더욱 값지다. 곧장 카톡을 날렸다. “기억해줘서 고맙고, 책 선물은 더 고맙고. 애썼수다. 더욱 정진하시길” 대학 교직원을 하면서도 부단히 공부를 해 교수로 환골탈태한, 입지전적(?)인 친구이다. 어쩌면 대한민국 모든 교직원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일 수도 있겠다.
두 번째 책은 시전문 계간지 『시현실』 (2023년 봄호, 통권 91호)이다. 발행인인 시인 원탁희는 고교 친구이다. 1999년 잡지를 창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펴내고 있는데, 그의 집념과 열정이 대단하다. 게다가 <박인환 문학상>를 개인이 제정하여, 지금까지 수상을 해오고 있으니, 경이로운 지경이다.
내가 전생前生에 나라를 구했을까? 4년째 이런저런 선물들이 답지하는 것은, 도회지 생활 40년을 잘 살았기 때문일까? 아버지는 "니 덕분에 조선팔도 별 희한하고 맛난 음식들을 다 먹어본다"고 말씀하셨다. 어쨌거나, 나라는 넘을 기억하고, 전화하고, 방문하거나 선물을 한 수많은(?) 친구들과 지인 그리고 선후배들이 모두 고맙고 또 고맙다. 이까짓 내가 뭐라고? 혼자여도 '1'도 외롭지 않다. 점심에도 쑥국을 허벌나게 먹을 것이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