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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殉敎者
김은국(金恩國)이 지은 장편소설.
내용
김은국(金恩國)이 지은 장편소설. 원제명은 ‘The Martyred’(George Braziier Inc., N.Y.C., 1964)이다. 영문으로 된 이 소설은 1965년 장왕록(張旺祿)이 한국어로 번역하여 삼중당(三中堂)에서 간행하였다.
이어 1990년 저자 자신이 한국어판 <순교자>를 을유문화사에서 간행하였다.
대학 강사를 지낸 이 대위는 육군특무대로 평양에 파견되어, 육군본부 파견대 정보국장 장 대령의 휘하에서 근무한다.
그러다가 6·25 당시 12명의 목사가 평양에서 순교한 사실을 조사하게 된다. 차차 조사 과정에서 순교자들의 신앙과 순교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캐어 들어간다.
이와는 달리 장 대령은 공산당에게 희생당한 12명의 순교자를 애국적인 관점에서 추모식을 크게 거행하여 평양의 신도들과 시민들에게 자유민주주의의 우월성과 정신적 승리를 알려주려고 하는 국가주의적 견지를 보인다.
그런데, 애초에 14명의 목사가 체포되어 12명은 순교하였으나 신 목사와 한 목사는 생존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이 대위는 이 두 생존자를 찾아 순교자들의 최후의 모습과 그 신앙의 진실성을 확인하는데 마음을 기울인다. 여기서 이 대위는 진실을 추구하는 진지한 자세와 냉철한 지성의 소유자로 형상화되고 있다.
이 대위의 친구인 해병대 장교 박 대위는 그 아버지가 지나치게 신앙에 충실한 독선적 광신자였으므로 인간미가 결여된 병적인 인물로 보고 사실상 두 부자는 의절한 상태로 서로 떨어져 지낸 사실이 알려진다. 박 대위는 12명의 순교자 속에 그의 아버지가 들어있음을 듣고도 오히려 존경심보다는 광신적인 신자들이 으례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중에 신 목사의 편지에 박 목사가 아들을 지극히 사랑한 사실과 자신이 추구하는 신앙의 궁극적 의미와 아들이 전공하는 역사학이 특수 사건에서 보편적 진실을 탐구할 때 봉착될 인류의 종말문제와 이념적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음을 말한 사실이 밝혀진다.
그리고 최후로 공산당원에 의하여 처형되면서 “기도할 수 없어”라고 말한 데서 그 아버지의 인간적인 고뇌가 담김을 깨닫고 박 대위는 순교한 아버지와 정신적 화해를 이룬다.
한편, 박 목사의 신앙심에 감동하고 따르던 젊은 한 목사는 마지막 처형장에서 박 목사가 기도를 거부한 사실에 충격을 받고 정신이상자가 되어 사형은 면하였으나 폐인이 된다.
신 목사의 생존에 관하여는 배신자라는 많은 의혹 속에 신도들의 집단항의를 받지만 12명의 처형을 목격한 공산군 정 소좌가 체포되고, 그의 실토에서 목사들이 비굴하게 죽었으나 오직 신 목사만이 당당하게 공산당원에게 저항하여 오히려 죽음을 면하였다는 진상이 밝혀진다.
여기에서 신 목사의 인간적인 성숙성과 신앙인으로서의 겸허한 자세가 절제 있고 지적인 문장으로 잘 묘사되어 있다. 특히, 중공군의 개입에 의하여 극심한 고난에 처한 피난민 신도들에 대한 헌신적인 노력의 과정과 이 대위와 장 대령의 권고를 물리치고 서울로 피난가지 않고 병든 몸을 이끌고 절망에 빠진 노약자들을 보살핌으로써 그의 고결한 인간애의 정신이 번져나게 하였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가장 주목되는 인물은 신 목사이다. 그는 극심한 절망과 고통에도 오히려 패배하지 않고 신앙의 의미를 깨닫고 실천하며 신앙적 교리의 요구와 현세적·역사적 필연성의 요구에 충실하는 삶의 자세를 보여준다.
군의관 민 소령에게서도 중공군의 개입으로 평양이 텅빈 상태에서 후퇴하다가 중지하고 중환자를 위하여 야전병원으로 복귀하는 감동스러운 직분의식과 그 인간주의의 고결한 사상적 실천을 보게 된다.
이 대위는 신이 침묵하는 시대의 지성인으로서 인간주의를 수호하는 지식인상으로 제시되고, 신 목사는 역시 신이 침묵하는 시대에 고통과 절망의 역사적 현장에 서서 신의 섭리로써 인간답게 살아갈 지혜를 구하는 숭고한 교역자상으로 나타나 있다.
이 작품은 위난의 역사적 상황에서 인간주의의 구현을 이야기로 펼쳐 보인 작품으로서 진지한 도덕적 책임을 추구한 걸작이라고 평가된다. 이른바 상황에 투신하는 도덕적 결단을 형상화한 주제가 보편적 진실의 감동으로 창조되었다.
참고문헌>1확장영역 접기
「순교자론(殉敎者論)」(이철범, 『문학춘추』, 1964.6.)
https://naver.me/FzQjBRmr
"난 평생 신을 찾아 헤매었소." "그러나 내가 찾아낸 것은 고통받는 인간... 무정한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 뿐이었소.
"날 좀 도와주시오... 불쌍한 내 교인들... 전쟁과 굶주림과 추위와 질병, 그리고 삶의 피곤에 시달리는 이들을 내가 사랑할 수 있게 도와주시오. 그리고 삶의 피곤에 시달리는 이들을 내가 사랑
할 수 있게 도와주시오. 고난이 그들의 희망과 믿음을 움켜쥐고 그들을 절망의 바다로 떠내려 보내고 있소.
우린 그들에게 빛을 보여주어야 해요.
영광과 환영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고 하나님의 영원한 왕국에서 마침내 승리를 거둘 것이라는 확신을 주어야 합니다."
주인공 이 대위가 신 목사에게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묻자, 그에 대한 신 목사의 답변 중에서
김은국 작가의 소설 〈순교자〉는 작가가 6.25
를 직접 참여한 것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1950년, 서울대 생이었던 김은국 작가는 해병대 사관후보생으로써 훈련을 받고, 1952년에는 한국군 육군에 입대했다. 이후, 전쟁 막바지에는 미군 제2군단 제7사단 사령관인 트루도 소장의 부관으로 근무했다., 그 때의 인연을 바탕으로, 1955년 트루도 소장의 추천을 받고 미국을 건너가 공부하고 결혼을 하며 재외동포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1964년에 집필한 〈순교자〉는 한국계 미국 작가론 최초로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른 책이기도 하다.
〈순교자>가 당시 미국에서 각광받은 이유는, 비교적 짧은 기간 내에 6.25 전쟁을 잘 그려낸 것도 있겠지만, 전쟁이라는 배경을 통하여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과 믿음의 본질에 대해 무척 잘 전달했기 때문이다. 간단히 줄거리의 핵심을 적자면, 한국군이 북진을 하게 되면서 평양에 파견된 주인공 이 대위와 상관인 장대령은 북한 공산당에 의해서 14명의 목사들중에서 12명이 처형되고, 2명의 목사만이 살아서 돌아온 사건에 대해 접한다. 특이한 건 두 명 중 한 명인 한 목사는 완전히 미쳐 버렸고,그나마 신 목사만이 온전하게 살아돌아온 사실이다.그런데 신 목사는 이 사건에 대해 그 어떤 자기 변명도 결코 하지 않고 침묵했다.
이 대위와 상관인 장 대령은 신 목사가 살아돌아온 이유가 북한군의 끄나풀 역할을 했기에 저런 침묵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한국군 포로로 잡히게 된 14명의 목사를 직접 고문했었던 정 소좌에 의해 밝혀진 진실은 예상과 완전히 달랐다. 실상은 12명의 처형된 사람들은 엉엉 울면서 목숨을 구걸하고, 서로를 헐뜯으며 비굴하게 죽었으나 신 목사만은 정 소좌의 얼굴에 침을 뱉었을 정도로 끝까지 가장 강렬하게 저항하였고, 그런 신 목사가 아까워서 정신이상자인 한 목사를 제외하고, 신목사를 일부러 살려둔 것이었다.
그런데 더욱이 놀라운 건 이후 장면에서 신 목사가 장 대령에게 요청하여 평양 목사들과 교인들을 모으고 앞에서 한 말이다.
"이 죄인들아! 이 약한 자들아! 그대들은 순교자들이 받은 고난을 함께 나누고 싶지 않단 말인가? 그대들은 그들이 흘린 피를 맛보지 아니하고 그들이 외친 고난의 신음을 듣지 아니하고, 그들의 뼈가 부러지는 소리를 듣지 않겠단말인가? 그대들은 순교자들의 목소리를, 그들의 마지막 기도를 들을 수도 없고 듣지도 않겠단 말인가! 그대들은 그들의 무거운 희생의 짐을, 그대들을 위한 희생의 짐을 나눠 질 수 없단 말인가?"
신 목사가 평양에 남아 있는 목사들과 수 많은 교인들이 모여 있는 앞에서 한 말 중에서
평양의 모든 목사들과 수많은 교인들이 있는 앞에서 이렇게 외쳤다. "여러분, 내가 죄를 지었소. 우리 순교자들을 배반한 사람은 바로 나요." 라고 말하며 자신이 스스로 유다를 자처하며 12명의 목사들을 공산당에 끝까지 저항한 순교자로 만들었다. 수많은 교인들은 신 목사를 배신자로 낙인찍으며 신 목사를 비난했지만 신 목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은 끝까지 공산당에게 저항하는 상황 속에서도 자신을 용서해 주었다고 말하며, 처형된 12명의 목사들을 찬양하며 수많은 교인들에게 절망하지 말라며 희망을 전달했다.
신 목사의 행동이 경이로운 것은 정소좌의 증언과 신 목사 본인이 12명의 처형된 목사 중 한 명이자 평양 목사들의 우두머리격이었던 박 목사의 아들에게 이야기 한 바에 따르면, 12명의 목사들 중 공산당에 직접적으로 스파이짓을 했던 목사들이 목숨을 구걸하고, 우두머리인 박 목사조차도 "정의롭지 못한 하나님에게 나는 기도하지 않아!" 라고 외치며 화를 내고 희망을 버린 데다, 신 목사와 같이 살아돌아온 한 목사가 자신의 버팀목이었던 박 목사까지 희망을 버린 것에 대한 충격으로 완전히 미쳐보는 모습을 지켜보았음에도 신 목사는 끝까지 저항하고 살아돌아와서는 위와 같은 선택을 한 것
이다.
극 중 표현에 따르면 신 목사는 절망이라는 질병과 싸우고 그 절망을 때려 부수어, 인간을 단순한 겁쟁이로 쪼그라트리지 않게 하기 위해 온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며 최선을 다하고 있던 것이다.
"나는 그들 곁에 있어야 합니다. 아무도 그래줄 사람이 없다면 나만이라도 남아서 하나님이 그들을 돌보고 있고 나를 돌보고 있다고 믿게 만들어야 합니다.
"인간을 사랑하시오 대위. 그들을 사랑해주시오! 용기를 갖고 십자가에 지시오. 절망과 싸우고 인간을 사랑하고 이 유한한 인간을 동정해줄 용기를 가지시오!
<순교자> 속 인상깊은 신 목사의 말 중에서 이 외에도 책 속에서는 아버지 박 목사와, 그 아들인 박 군과의 관계, 이 대위의 복잡미묘한 심경과 장 대령의 이야기 등이 책 속에 담겨 있다. 그리고 후일 평양에서 한국군이 철수하게된 후에도 끝까지 교인들을 지킨 신 목사의 행방은 알 수 없게 된다. 죽었다는 사람도 있고, 어디선가 신 목사를 보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다만 수많은 사람들이 신 목사를 기억하며 십자가의 가호 아래 믿음을 가지며 살아가게 된다.
필자가 생각하는 종교는 스스로가 짊어지고 있는 책임과 의무를 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말로, 정말로 힘든 상황에 닥쳤을 때 좀 더 홀가분하게나마 버틸 수 있도록 희망과 용기를 주는 것이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수없이 많은 뉴스가 하루에도 산더미만큼 쌓이고, SNS를 통해 개인의 메시지 전달력도 빨라지고, 또 그 만큼 우리는 쉽사리 종교라는 것에 대한 확신은 떨어지고 있으며, 신 목사와 같은 종교인을 찾기는 커녕, 사람 그 자체를 점점 더 믿기 어려운 사회로 변해 가는 듯 하다.
다만 <순교자> 책 속에서 자주 인용하는 성경 구절인 욥기의 한 구절을 인용하자면 “자네가 순결하고 정직하다면 지금이라도 그 분께서 자네를 위해 직접 일어나 자네의 의의 자리를 회복시킬 것이네. 자네의 시작은 보잘것없더라도 자네의 나중은 심히 창대하게 될 걸세.” 라고 욥에게 말하였듯 말하였듯 올바른 도덕적 관념과 믿음을 가지고 최선을 다한다면 반드시 보상받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하더라도 의미 있는 삶을 살았다며 스스로를 지탱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나 본인이 타인에게 신 목사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면서 이 책의 서평을 마치도록 하겠다.
영화(1965)
소개
6ㆍ25 당시 국군은 평양을 함락하고 계속 북으로 진격하고 있다. 평양 군국정보부의 이대위(남궁원)는 장대령(장동휘)의 지시에 따라 인민군들에게 피살당한 열명의 목사들을 위한 위령제를 준비한다. 그러기 위해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신 목사(김진규)를 찾아가 피살 당시의 참상을 알아보려고 한다. 그러나 신 목사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다. 신도들은 그런 신 목사를 배신자로 생각하여 유다로 몰아붙이고 규탄 시위를 벌인다. 이러한 혐의는 신 목사 자신의 고백으로 더욱 굳어진다. 그러나 국군에게 잡힌 인민군 정 소좌는 당시 자신이 사살한 열명의 목사들은 죽음 앞에서 목숨을 구걸한 위선적인 목사였고 오직 신 목사만이 대단한 신앙의 소유자라서 죽이지 않았노라고 고백한다. 자신은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아도, 신이 없으면 약해질 수밖에 없는 교인들을 위해서 신의 존재를 설파하는 신 목사는, 중공군들의 침략으로 월남하자는 이 대위의 권고를 물리치고 북한에 남아있는 신도들을 돌본다.
김은국 [Richard E. Kim, 金恩國]
재미교포 작가.
1964년 6·25전쟁을 배경으로
인간의 고난과 구원을 다룬 영문소설
《순교자 The Martyred》를 발표하여
위대한 문학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세계적 작가로 떠올랐으며,
한국계 작가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출생-사망/1932.3.13 ~ 2009.6.23
별칭/리처드 김
국적/미국
활동분야/문학
출생지/함경남도 함흥
주요작품
《순교자》(1965), 《죄 없는 사람》(1968),
《잃어버린 이름 The Lost Names》(1979)
1932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독립운동가
김찬도(金燦道)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고향인 황해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평양고등보통학교를 다니다가 1947년 월남한 뒤 목포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50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에 입학하였으나 6·25전쟁이 발발하여 군에 입대, 통역장교로 5년 가까이 복무하였다.
1954년 육군 보병 중위로 제대한 뒤 이듬해 2월 군 복무중 인연을 맺은 아서 트르더 장군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건너갔다.
1955년부터 1959년까지 버몬트주의 미들배리대학교에서 역사학과 정치학을 공부하였으나 학사학위는 받지 못하였고, 1960년 존스홉킨스대학교에서 문학석사학위를,
1962년 아이오와대학교의 작가워크숍에서
창작석사학위(MFA)를, 1963년 하버드대학교
극동언어 및 문학과에서 문학석사학위를 받았다.
학업 도중인 1960년 덴마크계 미국인 페닐로프 앤 그롤과
결혼하여 아들·딸 두 자녀를 두었고, 1963~1964년 캘리포니아주의 롱비치주립대학교
영문학과 강사에 이어 1964년부터 매사추세츠대학교에서
조교수로 창작 강의를 맡았으며, 뉴욕주의 시러큐스대학교와
캘리포니아주의 샌디에이고주립대학교
등에서 문학을 강의하였다.
1964년 영문소설 《순교자》를 발표하여 데뷔하였는데,
이 작품은 아이오와대학교 작가워크숍의
창작석사학위 청구작품을 개작한 것이다.
6·25전쟁을 배경으로 기독교인의 신앙과 고뇌를 통하여
인간의 고난과 구원을 다룬 이 작품은
도스토옙스키와 알베르 카뮈의 전통을 잇는
위대한 문학이라는 찬사와 함께 세계적 명성을 안겨주었다.
《순교자》는 발표 이후 미국에서 20주 동안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한국어·독일어 등 20여 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한국에서는 1965년
유현목 감독이 영화화하였고, 연극·오페라 등으로도 무대에 올려졌다.
이후 1968년 5·16군사정변을 소재로 한
《죄 없는 사람 The Innocent》,
1970년 일제강점기의 창씨개명을 소재로 한
《잃어버린 이름 The Lost Names》을 발표하여
주목을 끌었으나 데뷔작만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1981년 여름부터 1983년까지 2년간 풀브라이트
교환교수로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서 강의를
하였고, 1980년대 말까지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원고를 집필하며 리포터와 내레이터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1990년대 초 텔레비전 광고에 출연하기도 하였으며, 이후 암으로 투병하면서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2009년 6월 23일 미국 매사추세츠주에서 세상을 떠났다
한국적 상황을 토대로 인간의 고난과 구원,
진리와 위선 등 인류의 보편적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룬 작가로 평가받으며 1967년 한국 출신 작가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또 1930년대 《초당 The Grass Roof》의
작가 강용흘(姜鏞訖)에 이은 2세대 한국계 미국작가로서 한국계 미국문학의 토대를 다지는 데 기여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