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나우 강쪽의 하늘에서 본 어부의 요새...구글어스...마차시 성당과 왕궁을 지키기 위한 요새이다.
어부의 요새(要塞)는 19세기 말 지어진 건축물로, 도나우 강과 페스트 지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회랑이다. 네오 로마네스크와
네오 고딕 양식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으며, 7개의 고깔 모양을 한 탑이 있는데 이 탑은 헝가리 땅에 처음 정착하여 살기 시작한
마자르의 7개 부족을 상징한다. 19세기 왕궁을 지키는 시민군이었던 어부들이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방어하면서 어부의 요새라
는 이름이 붙었다. 1층은 무료지만 2층은 티켓을 끊고 입장해야 한다고...
어부의 요새쪽 으로 가서 건너편을 바라보는데 아직 날이 어둡지 않아서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이 때의 시간이 8시 언저리로 어부의 요새에 올라가서 구경을 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요금을 내야 하는데 시간이 늦어서인지 티켓
을 확인하는 사람들이 2층으로 올라가는 것을 제지하지 않는다.
죄측의 뽀쪽탑이 어부의 요새이다....마차슈 성당 앞에 있는 기마상은 이슈트반의 기마상이다.
국회의사당에 아직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앞에 보이는 교회의 첨탑은 성 안나 성당이라고...
앞에 보이는 교회의 첨탑은 부다페스트의 개혁교회(Reformed Church)이다
개혁교회...건물이 인상적이다. 구글에서
어부의 요새...2층으로 올라가는데는 줄이 있어서 허락을 맡고 들어가야 하는데 그냥 들어간다.
야경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마차슈(시) 성당 지붕의 아름다운 모자이크
스테인드 글라스의 빛이 햇빛은 아닐 듯...
왕궁쪽 어부의 요새에서 본 반대쪽
아치사이로 본 도나우 강과 국회의사당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건너편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직 국회의사당에는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불빛이 많아지고...
각자 자신들이 좋아 보이는 지점에서 경치도 찍고 자신들의 얼굴을 넣어서 인생 샷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여덟시 반이 되면서 건너편의 국회의사당과 페스트 지역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부다 언덕에도 불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프라하에서 화려한 야경을 기대하였지만 실망하였었는데 이곳의 야경은 실망을 시키지 않는다.
아마도 동유럽에서의 야경은 부다페스트가 으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화려해진다.
어부이 요새에도 불이 들어오고...
마차시 성당에도 불이 들어온다.
이런 사진들을 왜 찍으려 하는지...찍어주기는 하지만
드디어 국회의사당의 불빛이 하려함을 자랑하기 시작한다.
세체니 다리
어부의 요새에서 도나우강을 바라보면 바로 맞은 편에 있는 국회의사당의 야경이 눈에 들어오는데 단연 압권이다.
국회의사당을 지을 때 이곳에서 바라보는 야경을 감안하고 지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는 야경을 부다 언덕에서 도나우강과 페스트쪽을 바라보았는데 강에서 유람선을 타게 되면 부다 왕궁과 어부의 요새 등의 야
경 등 양쪽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부다 언덕과 유람선 둘 중의 하나의 야경을 선택해야 한다면 아마도 유람선에서의 야경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가능
하면 두 군데서 다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조금 더 확대한 국회의사당
어부의 요새도 불빛이 더 화려해지고...
각자 인생샷을 찍는 사람들
유람선 사고가 났던 마르기트 다리..다리 우측 강변에 사고를 기억하기 위한 대한 추모공간이 있다.
마르기타 다리 아래 있는 추모공간
병 같이 생긴 것은 촛불을 켜는 등 같은 것이다.
이슈트반 성당
더 어두워질수록 야경은 더 빛이 난다.
어부의 요새 쪽에서 보면 세체니 다리 위에 있는 마르기트(Margit Bridge)의 페스트쪽 강가에는 한국인을 위한 추모공간이 있는
데 2019년 5월 29일 유람선 허블레아니호가 크루즈 선박과 충돌하여 한국이 25명과 헝가리인 2명이 숨진 사건이다.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어디 쯤에 있다는 것은 알 수 있는데 아마도 그 사고가 없었다면 우리도 유람선을 타고 야경을 보았을 것이
다.
우리가 내려가야 할 길이다.
마차시 성당도 야경이 아름답고...실제로 보면 지붕의 모자이크가 야경 속에 더 아름답다.
내려가기 전에 한 번 더 주변의 사진을 찍어 본다.
버스를 타러 내려간다.
내려 가는 길에 벽에 거꾸로 달아매여 있는 청년을 만나든데... Péter Mansfeld라는 청년으로 미성년자일 때 1956년 부다페스트
혁명에 참여하여 체포되어 수감되었다가 성년이 되면서 처형당했다고 한다.
쳐형 당한 나이가 18세로 날짜를 보면 성년이 된지 11일이 지나서 교수형을 당했다.....반역죄로 처형되었으나 나중에 복권이 되었
다고
버스를 타는 곳으로 내려가고....
국회의사당이 정면으로 보이는 곳으로 이곳도 야경을 보는 곳이이기도 하고 버스를 기다리는 곳이기도 하다.
40여 분의 자유시간 동안 열심히 구경을 하고 열심히 사진을 찍고는 어부의 요새에서 걸어 내려와서 바로 국회의사당 맞은 편에서
국회의사당의 야경을 보고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간다.
정면에서 본 국회의사당...촬영모드를 일몰로 해서 약간 붉게 나온다.
일반 모드로 찍은 사진
때아닌 비가 온다.
버스를 타고 숙소로 간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잠을 자는 호텔.....호텔로 들어온 시간이 9시 40분이다.
어부의 요새에서 본 도나우 강
어부의 요새에서 본 야경
하루 동안에 천년의 역사를 가진 도시를 돌아본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것이지만 세체니 온천을 가보지 못한 것과 치타델라
(Citadella)를 가보지 못한 것이다.
235m의 언덕의 언덕에 있는 치타델라 요새..오스트리아에 의해서 만들어졌고..소련이 이곳에서 헝가리 시민을 향해 발포를 했다
고 한다.
그래서 앞에는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듯...
치타델라(Citadella)는 부다페스트의 겔러트 힐(Gellért Hill) 정상에 위치한 요새로 오스트리아 제국의 사령관인 줄리어스 야콥 폰
하이나우(Julius Jacob von Haynau)가 1851년에 건설했다고 한다. 길이 220m, 폭 60m, 높이 4m의 중앙 뜰을 중심으로 세워진 U
자형 구조물로 60문의 대포를 설치했다고 한다.
1867년 헝가리가 건국되면서 헝가리인들은 성채의 파괴를 하려고 했지만 오스트리아 주둔군이 1897년이 되어서야 떠났고 1900
년에 성벽이 철거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1956년 헝가리 혁명이 일어났을 때 소비에트 군대가 치타델라를 점령하고 혁명 데모대를 향해서 발포를 했다고도 한다.
오늘 아침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출발하여 점심때 쯤 도착하여 몇 시간 동안 부다페스트의 관광을 마쳤는데....
역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아쉬워할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세계 역사의 흐름에 그리 큰 영향을 미친 역사가 아니니....
https://youtu.be/FHmEP6QDea4?si=4STYQNCivEQFK96-...부다페스트유투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