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분의 갈채 / 조정 우듬지로 물 올리기 바쁜 근무시간이라 신갈나무 오리나무도 한눈 팔지 않을 때 벌레의 군대, 나뭇잎의 결사대를 조직한다 너도밤나무 충영들아 참나무 충영들아 죽은 소나무의 말굽버섯들아 마법사의 제자들아 껍질을 깨고 나오라 마른 가지마다 새의 혀처럼 켜지는 연둣빛 불꽃들아 오라 숲이 되려고 태어나는 풀 나무 새 꽃의 넘쳐흐르는 힘 북돋우며 정오가 박수를 쳤다 녹색의 장수가 나가신다 으다다다다다 황도(黃道) 0도의 깍듯한 무릎이 지축을 찍는 순간 봄아, 죽기로 이 산을 살려보자!
- 시집 『마법사의 제자들아 껍질을 깨고 나오라』 (이소노미아, 2023.12)
* 조정 시인 1956년 전남 영암 출생 200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이발소 그림처럼』 『그라시재라』 『마법사의 제자들아 껍질을 깨고 나오라』 장편 동화 『 너랑 나랑 평화랑 』 2011년 거창평화인권문학상, 2022년 노작문학상 수상 **************************************************************************************** 좋은 글은 사람을 울리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살아갈 힘을 건네주기도 합니다. 이 중에서 내 글이 가졌으면 하는 것은 ‘위로의 힘’입니다. 물론, 죽음을 극복할 수 있을 정도의 의지와 같은 거대한 힘이면 더 좋겠지만, 저는 내 자신의 능력을 너무나 잘 압니다. 내가 갖고자 하는 것, 내 글과 시를 읽는 사람에게 아주 잠시라도 위로와 안식을 줄 수 있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오늘 소개한 조정 시인의 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위로’는 아닙니다. 위로보다 싸움에 가깝습니다. 다만, 이 싸움은 우리가 생각하는 보통의 싸움과는 다릅니다. 싸움이란 불화를 겪는 두 사람이 벌이는 시비입니다. 싸움은 폭력적이며, 또한 싸움을 벌이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상처를 입게 됩니다. 조정 시인의 시 「춘분의 갈채」는 싸움이기보다 투쟁입니다. 살아남기 위한 투쟁입니다. 황폐한 저 대지 위를 푸름으로 일으켜 세우고자 하는 투쟁의 의지입니다. 특히 ‘봄’은 저 들판을 지지해 주는 계절입니다. 봄은 따뜻한 훈풍을 불어 넣어주고, 때때로 시원한 빗줄기로 대지를 적셔줍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듯, 봄은 ‘긴긴 겨울’을 이겨내고 미래라는 희망을 바라볼 수 있는 들의 지원군입니다. 제 시중에 「허가된 절명, 동부동 홀로코스트」라는 시가 있습니다. 이 시는 제가 용인 시내에서 양지로 가다가 보았던 어느 광경 때문에 쓰였습니다. 용인 시내에서 양지까지는 약 10Km정도의 거리로, 차로는 약 20여분 걸립니다. 보통은 평화로운 전원의 풍경이 펼쳐져 있는데요, 어느 날 산등성이 움푹 파인 것을 보았습니다. 한 달 전 이동할 때만 하더라도 그냥 산이었는데요, 갑자기 그 산등성이 전쟁터처럼 변해버렸습니다. 이 순간 제 속에서는 어떤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르더군요. ‘분노’라는 것일 겁니다. 이 시의 제목 중에 ‘허가된 절명’이라고 쓴 까닭, 관청의 허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합법적’인 폐허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시의 문장에 이렇게 썼습니다. ‘허가된 절명에 죄책감을 떨쳐버립시다. 죄책감은 사치입니다. 교묘한 설득에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처럼 교묘하게 수긍합시다.’라고요. 왜냐하면, 죄책감을 가진 사람은 지금의 자본주의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연을 더 많이 훼손하고, 더 많은 사람의 교묘하게 눈물 흘리게 한 사람만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승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에는 아무런 희망도 없는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회복하려고 노력하는 ‘자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화자는 마지막 문장에서 얘기합니다. ‘봄아, 죽기로 이 산을 살려보자!’라고. 죽기로 자연을 살리기 위해서 봄은 무엇을 필요로 할까요. 바로 시간일 것입니다. 다만, 인간의 잣대로는 가늠할 수 없는 시간. 자연이 빠른 회복을 하지 않는 까닭도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무엇이 소중한지’ 일깨워 주기 위해서. - 시 쓰는 주영헌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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