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럼주를
오민석
때로 럼주를 마실 때가 있다. 나는 체 게바라나 카스트로 혹은 바람둥이 헤밍웨이가 되어 세븐 마일 브리지를 건너
마이애미 비치로 애인을 만나러 간다. 총탄을 무릅쓰고 스페인 내란에 끼어들어 불의의 악마들과 싸우다 지칠 때
럼주로 가슴속에 불을 지르는 일은 얼마나 시적인가. 럼주를 진탕 마시고 일어나 두통과 헛구역질에 시달려 보면
알 것이다. 대충 사는 것의 즐거움. 소주와 막걸리의 평화. 혹은 기껏해야 치맥의 자유. 시가 무기가 되지 않을 때,
사당동 맥도널드에서 햄버거로 해장을 하는 인간을 나는 믿지 않는다. 아바나 거리에서 불법 시가를 팔아보라.
관광객들이 휙 던지고 간 유에스 달러에 훈풍이 불어 멕시코만에 노을이 붉구나. 혁명 광장에 외로운 영웅들이
어디 꽁초나 없을까 불을 찾을 때 럼주를 마신다. 술잔을 빙 두른 소금의 잔해들. 세상의 소금들은 다 어디로 가서
세상은 이리 짤까.
-웹진《공정한 시인의 사회》2023년 11월호
오민석
1990년 《한길문학》 시,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등단.
시집 『굿모닝, 에브리원』 『그리운 명륜여인숙』 『기차는 오늘 밤 멈추어 있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