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2역대기 24,17-25 마태오 6,24-34
"내일 걱정은 내일에“
우리를 가로 막고 있는 것들 중에서 부정적인 생각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사람은 생각하기 나름’이라고요. 하나를 놓고 한 사람은 긍정적인데 비해 한 사람은
부정적인 경우가 있지만 그 결과의 차이는 엄청 큰 것입니다.
마침 현대 건설의 회장을 맡았던 고 정주영과 박정희 대통령과의 일화에서긍정(肯定)의 힘이
얼마나 놀랍고 세계적인 현대건설의 위치를 만들었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2011.01.20 ‘매일 경제 명사 초청 강의’에서 유승렬 SK주식회사 대표이사가 했던 인용 이야기입니다.
1975년 여름 어느 날, 박정희 대통령이 현대건설의 정주영 회장을 청와대로 급히 불렀다.
"달러를 벌어들일 좋은 기회가 왔는데 일을 못하겠다는 작자들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 중동에
다녀 오십시오. 만약 정사장도 안 된다고 하면 나도 포기(抛棄)하지요.”
정주영 회장이 물었다. “무슨 얘기입니까?” "1973년도 석유파동으로 지금 중동국가들은 달러를
주체하지 못 하는데그 돈으로 여러 가지 사회 인프라를 건설하고 싶은데, 너무 더운 나라라
선뜻 일하러 가는 나라가 없는 모양입니다.
우리나라에 일할 의사를 타진해 왔습니다. 관리들을 보냈더니, 2주 만에 돌아와서 하는 얘기가
너무 더워서 낮에는 일을 할 수 없고, 건설공사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이 없어
공사를 할 수 없는 나라라는 겁니다.”
"그래요, 오늘 당장 떠나겠습니다.”
정주영 회장은 5일 만에 다시 청와대에 들어가 박정희 대통령을 만났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하늘이 우리나라를 돕는 것 같습니다.”
박 대통령이 대꾸했다.
“무슨 얘기요?”
“중동은 이 세상에서 건설공사 하기에 제일 좋은 지역입니다.”
“뭐요!”
“또 뭐요?”
“건설에 필요한 모래, 자갈이 현장에 있으니 자재 조달이 쉽고요”
“물은?”
“그거야 어디서 실어오면 되고요.”
“50도나 되는 더위는?”
"천막을 치고 낮에는 자고 밤에 일하면 되고요.“
박 대통령은 부저를 눌러 비서실장을 불렀다.
"임자, 현대건설이 중동에 나가는 데 정부가 지원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도와줘!”
정 회장 말대로 한국 사람들은 낮에는 자고, 밤에는 횃불을 들고 일을 했다.
세계가 놀랐다.
달러가 부족했던 그 시절, 30만 명의 일꾼들이 중동으로 몰려나갔고 보잉
747 특별기편으로 달러를 싣고 들어왔다.
사막의 횃불은 긍정(肯定)의 횃불이다. 긍정(肯定)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든다.
긍정(肯定)은 천하를 얻고, 부정은 깡통을 찬다.
또 우리가 많이 들어 왔던 명언이 있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 아무리 좋은
여건이라도 스스로 노력하고 개척하지 않으면 하느님께서도 달리 어떻게 하실 수 없다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와 연결시킬 수 있는 말이 ‘진인사대천명 盡人事待天命’라는 고어가 있습니다.
사람이 할 일을 다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라는 뜻이지요.
하느님께서는 천지를 만들어 인간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러하신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얼마나 좋은 것을 만들어 주셨어요?
사람에게 좋은 것이 이 세상에 다 널려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마련해 주신 하느님을
전적으로 믿는다면 그 사람은 많은 것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하느님을 믿고 아무 걱정을 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마태 6,25)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하늘의 새도 먹여 살리시고 들에 핀 나리꽃도 꾸며주시는 사실을 들어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전적으로 하느님께 의지하며 살아갈 수만 있다면 쓸 데 없는 걱정을 안해도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걱정하지 마라.”(마태 6,31)
그래서 사람은 이 좋은 세상에서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버리고 전적으로 하느님 뜻에 맡기며
사는 것이 바로 행복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부정적으로 또 의심을 갖고 사는 사람은 주님께서도 표현하셨지만 믿음이
약한 사람입니다.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우리는 사실 부정적으로 살아갈 이유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긍정적인 것보다는
부정적인 생각에 휘말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겨자씨만한 하느님께 대한 신앙만 가지고 있다면 좋은 것으로
변화시켜 주시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천진한 어린이처럼 하느님 앞에서 모든 것을 맡기며 기쁘게 지냅시다.
원주교구 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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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2역대기 24,17-25 마태오 6,24-34
어떻게 하면 걱정없이 살 수 있을까?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어떻게하면 걱정없이 살 수 있을까?
걱정이 떠나지 않는 우리 삶을 생각할 때 이 문제는 행복의 열쇠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생각하면 우리는 즉시 걱정거리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제 생각에 많은 경우 사서 걱정한다는 말이 딱 맞는 말이고
오늘 주님께서도 비슷한 취지에서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하게 하라고 하십니다.
사실 걱정은 내일 것을 앞당겨하는 마음 고생이요,
오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을 괜히 하는 마음 고생이고,
신앙적으로는 믿음이 없기 때문에 하는 쓸데없는 마음 고생입니다.
예를 들어 부모 특히 엄마는 자식이 집을 나설 때부터 걱정합니다.
이때의 걱정은 물론 사랑이지만
다른 경우, 상당수의 걱정은 욕심의 산물이고
그리고 신앙인의 경우는 불신의 결과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걱정하지 않은 성인의 대표가 성녀 클라라입니다.
아시다시피 클라라는 가난 특전을 교황청에 청했습니다.
가난 특전이란 가난 서원을 지키지 않는 특전이 아니라
프란치스코의 정신대로 가난을 살 수 있는 특전이지요.
클라라는 어쩌면 프란치스코의 가난보다도 더 철저한 가난을 살고자 했지요.
프란치스코는 아무 소유없이 그리고 정처없이 가난을 철저히 살고자 했지만
클라라는 남자들처럼 떠돌아다닐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수도원 안에서 살되
외부로부터 고정적이고 안정적인 수입이 없이 그때그때 주어지는 대로
하루하루 살고자 다시 말해서 하루살이를 하고자 했는데
그렇게 살 수 있게 해달라고 청한 것이 가난 특전이지요.
왜냐면 주교들이 그것은 너무 엄격한 가난이고 불가능하다고 자주 클라라에게
완화된 가난을 살라고 사랑과 염려의 압력을 가하기 때문이었지요.
그러나 그럼에도 클라라는 가난을 끝까지 고수하였는데
그것은 자비하신 하느님께 대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하느님을 믿는 것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느님의 능력을 믿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느님의 사랑을 믿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듯 인간 애비도 제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아는데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더 좋은 것을 주실 것이고,
풀과 새에게도 필요한 것을 주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인간에겐
더더욱 필요한 것을 주실 거라는 믿음입니다.
사랑과 자비의 하느님께 대한 이 믿음은 고통과 죽음을 주셔도,
지금은 그것이 악이어도 내일의 내게 좋은 것이고 필요한 것이기에 주신 것이고,
내일의 고통과 죽음도 모레의 내게 좋고 필요한 것이기에 주신 거라고 믿습니다.
그러니 걱정, 곧 앞당겨 하는 마음 고생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일 걱정은 내가 아니라 '내일'이라는 자가 하는 거라지 않습니까?
작은형제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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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2역대기 24,17-25 마태오 6,24-34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대상이 결국 우리를 다스리고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반복되며 귓가에 맴도는 주님의 말씀은
“걱정하지 마라.”입니다. 이 말씀의 근거는 바로 하느님 아버지께서 당신 자녀들을 잘 아시고,
우리를 돌보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곧 세상 만물을 다스리시며 생명의 주인이신 전능하신 분께서
세상 그 무엇보다도 귀하게 여기시는 당신 자녀들의 어려움과 고통, 눈물과 아픔을 잘 알고
계시기에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니, 걱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늘의 우리 아버지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 우리에게 몸소 마련해 주시며 우리를
보살펴 주십니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오직 하느님 우리 아버지에 대한 굳은 믿음입니다.
좋으신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소중한 아드님마저 기꺼이 내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 환호송처럼, 부유하시면서도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부유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부유한 자녀들이고, 하느님께서는
‘임마누엘 주님’으로 우리 가운데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 하느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는 것입니다.
이는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예수님을 더욱 닮아 가고
그분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화답송이며 주님의 종 다윗에게 전해진 시편의 “영원토록 그에게 내 자애를 베풀리니”
(시편 89[88],29)라는 말씀은 하느님 아버지의 귀한 자녀인 우리를 향한 주님의 변함없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참으로 아끼고 사랑하십니다.
날마다 무거운 수고와 힘겨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십자가 위의 예수님께서
오늘도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대구대교구 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참조
가톨릭사랑방 catholics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