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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17동기회 산악회의 백두대간 팀 멤버인 구명회,김명용,김영길부부,임종수부부의 6사람이 3/28~4/5간의 9일 동안 네팔의 히말라야에 트레킹을 다녀 온 여행기입니다. 함께 트레킹에 참가한 17산악회의 岳友들께 정말 고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1.출발의 계기와 출발전야
17동기회 사무실에서 2차 과메기 파티가 벌어지던 지난 2월 3일, 파티에 참석하여 맛있는 과메기와 포도주에 취하여 기분이 도도해 져 있는 필자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전에 일본의 북 알프스와 대만의 옥산 트레킹 여행 갈 때 이용하였던 등산전문여행 T사 사장으로부터의 전화였다.
“반가운 소식이 있어 전화 드렸습니다.”
“무슨 소식인가요?”
“지난 연말에도 히말라야 트레킹에 관하여 문의 하셨었지요? 그 때는 항공편이 여의치 못하여 못가셨는데 이번에 대한항공에서 네팔에 직항 전세기를 보내기로 하였습니다. 전세기를 이용한 트레킹은 저희 T사가 주관이 되어 진행하기로 되었습니다. 전세기를 이용하는 것이라 편리하고 요금도 종전보다 저렴하게 가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면서 트레킹 코스별 요금과 일정을 이야기해 주는 것이었다.
함께 과메기 파티에 참석하였던 17산악회의 구명회 총무,박정수,김영길 김명용 등에게 이야기하니 “그것 잘 되었다. 한 번 추진해 보자”하고 이야기가 되었다. 일정은 8박9일의 일정을 택하기로 하였다. 3월28일 출발, 4월5일 귀국일정이므로 3월 25일과 4월8일의 백두대간 산행일정 중간에 다녀오게 되어 백두대간 산행에 한 번도 빠지지 않는다는 점도 감안되었다.
백두대간 산행하면서 쌓은 실력을 이번에 해외에 가서 한 번 발휘해보자는 것이다.
이렇게 물꼬를 터놓고 나는 원래 예정되었던 대로 2/16~2/28 간에 인도여행을 다녀왔다. 돌아 와 보니 함께하기로 이야기하던 사람들 중에 임한석대장과 박정수 교수가 사정으로 빠지고 구명회 총무, 김명용, 김영길 부부, 임종수부부의 6사람이 최종 참가자가 되어 있었다. 코스는 안나푸르나 푼힐 코스로 하기로 하였다.
여행사에 예약을 하고 진행하는 도중에 대한항공의 사정으로 네팔 직항 편이 취소되었다. 그러나 여행사로부터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다른 항공편을 이용하여 동일비용으로 예정대로 출발하겠다는 확정통보를 받고 우리도 기왕 시작한 일이니 직항편이 아니더라도 히말라야 트레킹을 떠나기로 의견을 모았다.
히말라야 트레킹 출발이 확정된 후 우리는 설레는 나날을 보냈다. 여행사에서 보내 준 일정표에 붙어있는 준비물 리스트를 보며 장비를 점검하고 산행 중에 먹을 행동식을 준비하는 일은 큰 즐거움이었다. 김명용 군이 가장 많은 투자를 하여 오리털 파커도 새로 사고 윈드 스토퍼도 유명브랜드제품으로 새로 장만하였다.
뿐만 아니라 하체의 근력을 기르기 위하여 백두대간 산행에 빠짐없이 참가하는 외에 스테퍼 운동을 열심히 하였다고 한다.
2. 네팔을 향하여
드디어 출발일인 3월 28일. 08:30에 홍콩으로 떠나는 대한항공을 타기 위하여 우리들은 새벽6시30분에 인천공항에 모였다.
이번 안나푸르나 푼힐 코스 트레킹 참가자는 우리 6명을 포함 모두 20명이다. 비행기 탑승수속을 하며 알게 된 것인데 우리 일행은 5~60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1934년생 남자도 있고 30대 중반의 처녀들도 있다. 우리처럼 히말라야 트레킹을 처음 하는 이가 대부분이지만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이미 다녀 온 사람도 있고 킬리만자로를 등정한 베테랑도 있었다.
08:40에 우리를 태운 대한항공의 KE603편 B747-400기가 거대한 몸체를 떨며 인천공항을 이륙, 홍콩으로 향하였다. 비행기는 3시간 36분만인 12시26분에 홍콩의 첵랍콕 공항에 도착하였다. 한국과 1시간의 시차가 있는 홍콩시간으로는 11시 26분이다. 이곳에서 Royal Nepal Airline으로 갈아타야 하는 것이다.
인천공항에서 화물로 부친 우리들의 짐은 바로 네팔항공으로 환적 되므로 우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비행기에서 내려 환승구역에서 Transit수속을 밟았다. 수속을 마치고 보딩 패스를 받은 우리는 공항내의 중국식당에서 푸짐한 점심을 먹었다. 메뉴는 우리가 선택했지만 음식값은 여행사 부담. 돼지고기 볶음요리가 딸린 볶음밥이 푸짐하고 맛도 좋았다. 맥주 한잔의 반주도 곁들였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공항면세점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16:10에 홍콩 공항을 출발하는 Royal Nepal Airline에 몸을 싣고 네팔로 향하였다. 네팔항공의 비행기는 별로 타 본 기억이 없는 B-757기종이다. 비행시간 4시간 40분 만에 네팔의 수도인 카트만두의 공항에 도착하였다. 한국과 3시간 15분의 시차가 있는 네팔 표준시간으로는 오후 5시35분이다.
카트만두 국제공항은 작은 공항이다. 입국심사에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려 지루하게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였다.
짐을 찾아 버스에 싣고 카트만두 시내로 향하였다. 상가들이 문을 닫기 시작하는 시간이고 직장인들이 퇴근하는 시간대라 시내의 도로는 복잡하였다. 교통체증도 체증이지만, 별로 공기가 깨끗하지 못한 서울에서 온 우리들의 후각에도 카트만두의 공기는 정말 탁하고 매연냄새가 심하였다. 카트만두 지역은 분지라서 고물 자동차들이 내뿜는 매연이 빠져나가지 못하여 그렇단다. 어서 카트만두를 벗어나 산속으로 달려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였다.
카트만두 시내에 들어서서 네팔 왕궁 문 앞 근처 한식집에서 저녁식사를 하였다.(카트만두 시내에는 한국음식점이 14개나 있다고 한다.) 삼겹살 구이를 메인으로 갖은 밑반찬이 곁 들여진 한식메뉴는 훌륭하였다. 거기에 맥주와 소주가 반주로 제공되었다. 술이 한 순배 돌고 난 뒤, 가이드의 사회로 트레킹 참가자들의 자기소개가 있었다.
우리 17동기회 일행은 백두대간 종주 산행을 함께 하고 있는 등산동료임을 자랑스레 밝혔다. 우리 트레킹 팀의 최 연장자인 P교수가 김영길 동문의 고등학교 6년 선배임이 밝혀져 팀의 좌장을 선배로 둔 김영길 동문의 어깨가 으쓱해지고 술이 더 들어감에 따라 그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어디 가나 권력은 좋은 것!.
회식 후 9시 30분 오늘 밤 우리가 묵을 Hyatt호텔에 도착하였다.(지금 한국시간은 12시 45분 한 밤중이다.) 호텔시설은 만족할 만 하다. 방을 배정받고 나니 호텔보이들이 우리들의 짐을 방으로 배달해 준다. 내일은 드디어 히말라야 속으로 들어간다는 벅찬 감동을 안고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3.히말라야의 품속으로
이튿날 아침 6시에 일어나 호텔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우리가 오르게 될 안나푸르나가 있는 포카라로 가기 위하여 다시 카트만두 공항으로 나갔다. 하루 밤새 우리의 코가 카트만두의 매연에 익숙해 졌는지 어제보다는 매연으로 인한 괴로움이 덜하다.
9시35분 포카라 행 비행기에 올랐다. 카트만두에서 포카라로 가는 비행기는 30인승의 프로펠러 경비행기이다. 비행기를 타기 전에 오른쪽 좌석에 앉으면 히말라야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비행기에 타고 보니 복도의 오른쪽에 두개씩, 왼쪽에 한 개씩의 좌석이 배치되어 있다. 아내를 오른 쪽 창가에 앉게 하고 나는 그 옆에 앉았다. 비행기가 고도를 잡고 서쪽을 향해 날아 카트만두상공을 벗어나고 좀 더 가니 드디어 히말라야의 연봉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아! 저것이 세계의 지붕이라는 히말라야산맥이로구나!”하고 감탄하면서 디카를 비행기 창에 대고 셔터를 눌러 본다. 만년설을 이고 있는 백색의 히말라야의 모습은 비록 비행기에서 보는 것이지만 장관이다.
비행기는 30분 만인 10시 05분에 포카라 공항에 안착하였다. 공항 앞에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승차하였다. 여행사의 직원들이 짐을 찾아 버스 지붕위에 싣고 나자 버스는 바로 출발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안나푸르나의 품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10:50에 ACA Tourist Check Point라는 곳에 버스가 정차한다. ACA란 Annapurna Conservation Area의 약자이며, 안나푸르나지역에 들어가는 관광객이나 Trekker(트레킹을 하는 사람)는 모두 이곳에 들려 신고를 하고 소정의 입산료를 내야한다. 입산료는 2,000루피(미화로 약 30$)이다. 입산료를 내면 개인별로 사진이 붙은 입산허가증을 발급해 준다.
입산료를 내고 나서 한 30분을 더 달리니 제법 산속 같은 분위기가 난다. 창밖으로 보이는 산기슭에는 계단식 농경지가 조성되어 있고 공동수도의 빨래터에서 빨래하는 아낙네들의 모습이 정겹다. 길은 점점 경사가 가팔라지고 강원도 미시령 고개 길 같은 나선형의 도로가 이어진다.
12시 20분. 트레킹의 起點마을인 나야폴에 도착하였다. 포카라는 해발고도가 820m이고 이 곳 나야폴은 1,070m라고 한다. 나야폴에서 이번 트레킹코스의 최고지점인 푼힐 전망대(3,200m)까지는 2,130m를 올라 가야하는 것이다. 수많은 포터들이 우리들의 짐을 날라주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우리들은 무거울만한 짐은 전부 “카고 백”에 집어넣어 포터에게 맡긴 뒤, 스틱만 꺼내들고 물과 간식을 넣은 작은 배낭하나 달랑 메고 걷기 시작한다.
“아 이제 안나푸르나의 트레킹을 시작 하는구나!” 감회가 새삼스럽다. 진부령에서 백두대간 산행을 처음 시작할 때 못지않은 감동에 젖는다.
나야폴에서 시작된 트레킹코스는 대부분 마을길로 이어져 있다. 경사도 별로 없이 가볍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길이다. 마을구경하는 것이 재미있다. 지나가는 우리를 보고 “나마스테”하고 인사하는 눈빛이 맑은 어린아이들. 우리나라의 개나 닭들과 똑같은 모습의 닭과 개들. 길바닥에 싸놓은 소나 당나귀의 똥. 이런 모습들이 낯설지가 않고 정겹게 느껴진다.
나마스테(namaste)는 원래 산스크리트어로 “나의 영혼은 당신의 영혼을 존경합니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그런데 인도와 네팔에서 사람들은 나마스테를 일상의 인사말로 쓴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안녕하십니까”하는 의미로 또는 “감사합니다”라는 의미로도 광범하게 쓰인다. 양손을 가슴 앞에 합장하고 “나마스테”라고 하면 아주 정중한 인사가 되는 것이다.
트레킹 시작한지 30분쯤 되어 “비레탄티”라고 하는 마을에 도착하니 Moonlight레스토랑에서 선두가 휴식을 하고 있다가 일행을 세운다.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갈 것이라고 한다.
점심메뉴는 “달밧따꺼리”라는 네팔음식인데 밥과 녹두죽, 커리로 요리한 돼지고기 등을 쟁반에 담아주는데 보기보다 맛있다. 우리의 트레킹대장인 윤 팀장이 반주로 맥주 몇 병을 사 준다. 팀장이 사 준 맥주만 가지고도 갈증해소와 반주로 충분하던데 17회의 알아주는 주당인 김명용과 김영길은 도저히 부족한지 맥주를 추가로 시켜 마신다.
점심식사 끝내고 30분 정도 휴식을 취한 뒤(오늘 이후로도 식후 30분간 휴식하고 걷기 시작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 다시 걷기 시작하였다. 걷기 시작하며 보니 우리 팀의 네팔인 주방장인 “락파”씨가 살아있는 “토종닭” 4마리가 들어 있는 망태를 메고 부지런히 앞서간다. 오늘 저녁 우리들에게 닭도리탕을 해줄 닭이라고 한다. 그걸 보고 아내는 “꺅” 비명을 지른다.
점심때 추가로 맥주를 시켜 마시고 얼큰해 진 김명용과 김영길군이 점점 걷는 속도가 느려지며 뒤로 처진다. 다음 휴게소에서 기다리다가 그들 두 사람이 오는 것을 본 구명회 총무가 베낭을 메고 일어서면서 “야! 17산악회 망신은 너희들 둘이 다 시키고 있잖아”하고 볼멘소리를 한다. 백두대간 산행하며 항상 선두에 서서 내 달리던 “브레이크 없는” 구총무가 트레킹팀장보다 앞서 가면 절대 안된다는 엄명에 꼼짝 못하고 팀장의 뒤를 따라가자니 얼마나 괴로울까?
16:45 오늘의 숙박예정지인 팅게퉁가(1,540m)의 Chandra Guest House에 도착하였다. 일정표상 시간보다 30분 빨리 도착하였다. 늦는다고 구총무의 핀잔을 받은 김명용, 김영길 동문도 곧 이어 도착하였다. 맥주기운에 힘 안들이고 왔노라고 기염이다.
방을 배정받고 짐을 인수받아 마른 옷으로 갈아입었다. 해발 1,500m가 넘는 산위라서 해가 지니 금방 서늘해진다. 조리담당 포터들이 방마다 다니면서 따끈한 “쨔이”(홍차에 우유를 탄 것)를 한 잔씩 나누어 준다. 맛있고 몸이 더워지는 느낌이다.
우리가 묵는 Chandra Guest House는 3층 목조건물이다. 2인1실의 방에는 목조침대가 2개씩 놓여 있다. 백열등도 한 개 달려 있고 창에는 빨간색 커튼이 있고 방바닥에는 조악하나마 초록색 카펫도 깔려 있다. 목조침대 위에는 별로 두껍지 않은 매트리스가 있고 그 위에는 하얀 커버가 덮여 있다. 침대와 침대사이에는 작은 목조 탁자하나가 놓여있다.
이번 여행 참가자들을 위해 T여행사가 새로 맞춘 오리털 침낭을 하나 씩 나누어 준다. 침대위에 푹신푹신한 침낭을 얹어 놓으니 아늑한 침대가 부럽지 않다. 거기다가 자다가 추울까봐 1리터짜리 물병에 끓인 물을 담아 넣으니 일본의 난방방식인 유담프가 되어 침낭 안이 따뜻해진다.
그러나 방과 방사이의 방음은 형편없어 옆방, 윗방에서 소곤소곤 이야기하는 소리는 물론 지퍼 올리고 내리는 소리까지 다 들린다.
잠자리 준비를 끝낸 우리17산우들은 게스트 하우스 중앙의 안마당에 모였다. 구총무가 맥주를 산다. 구내매점에서 맥주를 파는데 네팔 화폐만 받는다. 1인당 미화 10$씩을 갹출하여 트레킹 팀장에게서 환전하여 2,800루피나 되는 공동자금이 마련되었다. 맥주 1병에 160루피이다. 여기서도 자금관리는 구총무의 몫이다.
맥주를 마시던 구총무가 맥주 갖고는 안 되겠다며 방에 가더니 등산용 술병에 담긴 위스키를 갖고 오고, 분위기가 술 먹는 분위기로 되는 것을 눈치 챈 김영길은 페트병에 담긴 소주를 갖고 나오고 김명용은 부인이 정성스레 싸준 토속안주(대구포,오징어젖,장떡)를 갖고 나와 거창한 술 파티가 벌어졌다.
오늘이 트레킹 첫 날 밤인데 이 사람들이 이렇게 술을 먹어도 되는 건가 걱정되어 트레킹 팀장을 불러 왔더니, 오늘 밤까지는 마셔도 된다며 자기도 한 잔 마시고 일어선다. 내일 고도 상으로는 1,200m를 올라가지만 길이 좋아 걱정할 것이 없다는 이야기.
술을 마시던 구총무가 자기는 지금 술 마신 것으로 저녁을 대신하고 지금부터 방에 들어 가 잘 테니까 나중에 저녁 먹으라고 깨우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저녁 7시 취침, 새벽 3시 기상”이라는 괴상한 수면시간대를 갖고 살고 있는 우리 구총무에게 이곳의 7시는 서울의 10시15분으로 정상 취침시간을 3시간 이상 지났으니 얼마나 괴로우랴. 더구나 어제는 서울시간으로 12시가 넘어 잤으니 그 괴로움을 이해하고 먼저 자러가는 것을 용서하여 주기로 한다.
7시에 일정표상에 “취사식”이라고 이름 지어진 저녁식사가 시작되었다. 아까 낮에 나야폴에서 산채로 잡혀 올라 온 토종닭이 닭도리탕이 되어 식탁에 올랐다. 감자를 곁들여 얼큰하게 익힌 도리탕은 맛이 그만이다. 밑반찬인 가지나물, 알맞게 익은 배추김치와 총각김치도 아주 맛있다. 양배추 찜과 된장찌개는 닭요리 못 먹겠다고 선언한 내 아내를 위해 조리장이 특별히 배려하여 만든 것이라고 한다. 식후에는 누룽밥과 숭늉도 나누어 준다. 맛있는 반찬에 참이슬 소주도 준다. 산중의 식사가 이런 정도이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술만 마시고 잠자는 구총무가 불쌍하다.
한잔 술에 기분이 도도해 진 우리 팀 최연장자 P교수가 별안간 일어나더니 너무 기분이 좋아 그냥 있을 수가 없다며 한 곡조 뽑는다. 노래 한곡 구성지게 부르고 나더니 P고 6년 후배인 김영길을 지명하며 한 곡조 부르라고 한다. 김군이 “찔레 꽃 남쪽 나라...”로 화답한다. 모두들 박수로 장단 맞추며 합창을 하니 완전히 니나노 분위기가 되어 버렸다.
내일의 산행도 걱정이 되고 아무리 산중이라지만 이 게스트 하우스에 묵는 사람이 우리 팀만이 아닐 텐데 이렇게 떠들어도 되는가 싶어 트레킹 팀장을 불러 물으니 우리 외에는 손님이 없으니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30번 이상 히말라야 트레킹을 다녔다는 팀장의 이야기를 믿을 수밖에. 그러고 보니 우리 팀 외의 유일한 숙박객인 네덜란드 인 부부도 우리 뒤쪽 테이블에 앉아 재미있는 듯이 우리들의 노는 양을 바라보고 있었고, 현지인 가이드 예닐곱 명도 우리 뒤에 서서 함께 박수치며 구경하고 있었다.
9시에 오락회를 산회한 뒤 양치질하고 발 닦고 푸근한 침낭 속으로 파고들었다. 침낭 안은 아늑하고 따뜻하다. 이렇게 히말라야에서의 첫날밤이 지나간다.
4.트레킹 제2일째(3월30일)
밤에 화장실 다녀오다가 하늘을 보았다. 히말라야 산속에서 한 밤중에 바라보는 별들은 정말로 황홀하다.
5시30분에 일어났다. 세수하고 짐정리하고 있는데(포터가 지고 갈 짐과 우리가 메고 갈 배낭의 짐을 정리해 놓으면 포터들이 와서 갖고 간다.) 조리 팀 사람들이 와서 “짜이”한잔씩 따라 준다. 새벽의 따끈한 “짜이” 한 잔이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이렇게 아침저녁으로 “짜이”를 마시다가 중독 되는 것 아닌가 모르겠다.
7시. 예의 “취사식” 아침식사. 미역국에 두 가지 김치, 콩자반, 참나물, 김, 계란 프라이로 된 반찬이 곁들인다. 히말라야 산속에서 먹기 때문에 맛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 요리를 잘했다. 네팔 인들이 어떻게 한국음식 만드는 법을 배웠는지 정말 불가사의하다.
7시50분. 아침식사를 마치고 커피도 한 잔씩 마시면서 잠시 쉰 뒤, 어제의 피로가 말끔히 가신 상쾌한 기분으로 트레킹 길을 나선다. 발걸음도 가볍다.
이곳에서의 트레킹 길은 재미없는 돌 계단길이다. 등산하는 사람들은 돌계단을 싫어한다. 돌계단 길을 1시간 정도 오르니 Annapurna View Guest-house에 이른다. 이곳에서 보니 푸른 산봉우리 사이로 하얀 설산의 머리가 보인다. 멋있다. 저 여인의 가슴과 하체까지 보려면 얼마나 먼 길을 힘들여 가야하는지?
수줍은 듯 보이는 설산의 머리를 배경으로 사진 몇 장 찍고 다시 걷는다. 길가에 바나나 꽃이 크게 피어있는 것을 보았다. 흔히들 네팔하면 눈 덮인 산을 생각하게 되고 그에 따른 연상 작용으로 네팔은 추운나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네팔은 인도의 바로 위쪽 북위 28도에 위치하고 있는 아열대지방의 나라이다. 그러니까 야생 바나나가 이 계절에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바나나 꽃보다도 더 흔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피어 있는 것은 “랄리그라소”라고 하는 네팔의 나라꽃이다. 꽃의 생김새는 동백꽃 비슷한데 동백보다 더 예쁘고 탐스럽다. 이 꽃나무는 아주 큰 교목인데 수령이 100년도 더 됨직한 고목나무에서 피어 있는 것도 보았다. 꽃이 많이 피어 있는 나무는 나무 전체의 색깔이 붉게 보일 정도로 소담스럽게 피어있다. 3월 하순부터 4월 상순까지의 사이에 핀다는 이 꽃을 본 것만으로도 히말라야에 온 보람이 느껴질 정도이다.
게스트하우스를 떠나 3시간 10분 만인 11시에 반탄티(Banthanti)에 도착하였다. 후미가 도착하기를 기다려 11시 30분에 점심식사가 제공된다. 역시 취사식이다. 메뉴는 라면과 밥이다. 라면을 싫어하는 사람은 밥을 먹으라는 것인데 밥반찬은 김치와 노각(늙은 오이)무침이다. 나는 라면을 두 그릇이나 먹었고 아내는 노각무침에 밥을 비벼 맛있게 먹었다. 후식으로 귤과 커피를 준다. 끝내주는 식사보급이다.
우리들의 식사를 마련해 주는 취사 팀이 재미있다. 이들의 일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닌데 항상 웃고 노래하며 일한다. 이들은 우리들에게 식사를 준비해 주고 우리가 다 먹은 뒤에 자신들도 식사를 하고 나서 얼른 설거지를 해서 취사도구와 음식자재를 등에 걸머지는 큰 대바구니에 넣고 먼저 떠난다.(이들에게 식후 30분의 휴식 같은 사치는 없다.) 그리고는 휭 하니 우리들보다 앞서 다음 로지에 가서 식사준비를 해 놓고 우리를 기다리는 것이다. 이런 그들이 우리가 밥을 더 달라면 웃으며 밥을 더 덜어 주고 국을 달라면 역시 웃으며 퍼 준다. 차를 줄 때도 그렇고 빈 그릇을 가져 갈 때에도 “Finish?"하며 웃는다. 설거지 할 때에는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짐을 지고 걸어가면서도 노래를 부른다. 명랑한 민족인가보다.
12시 30분에 반탄티를 떠났다. 반탄티 이후의 트레킹 길은 이제까지의 길보다 더 완만하고 돌계단 길도 별로 없어 걷기 편안하다. 계곡 가까운 곳에 길이 나있어 맑은 물이 가득한 소(沼)와 열대우림을 지나기 때문에 숲에 피어있는 꽃들과 함께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15:20에 고레파니에 도착. 이곳은 높이가 2,750m인 곳으로 우리가 오르게 될 가장 높은 지점인 푼힐 전망대(3,210m)에 가기 위한 베이스캠프 같은 곳이다. 오늘은 이곳에서 자고 내일 새벽에 푼힐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이곳 로지 마을은 제법 커서 호텔이라고 이름 붙인 게스트하우스도 있고 마을 가운데 길에는 쇼핑거리도 있다. 우리가 묵는 로지에도 24시간 더운 물이 나오고 서양식 변기가 있는 화장실도 있다고 밖에 써 붙여 놓았다.
저녁나절이 되니 고도가 2,750m인 이곳의 기온이 갑자기 떨어지면서 추워진다. 1층 식당 한 가운데에 겉에 흙을 싸 바른 난로가 있다. 나무를 때는 난로인데 겉에 흙을 바른 것은 쇠로 된 난로의 열기가 쉽게 식지 않게 하려는 지혜인 듯하다. 난로에 장작불을 지피니 식당 안에 훈기가 돌아 살 것 같다.
저녁 6시에 식사를 하고 7시10분에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 새벽 일찍 푼힐 전망대까지 가야하므로 일찍 자야한다는 트레킹 대장의 지시에 따름이다. 그러나 방의 방음효율이 형편없어 옆방에서의 옷 벗는 소리가 들릴 정도인데 아래층 로비에서 현지인 여자들의 수다소리가 요란하여 쉽게 잠이 들지 못하였다. 참다못한 누군가가 내려가서 그들을 조용하게 한 후에야 잠이 들었다.
5.푼힐 전망대(3,210m)
새벽 3시30분에 방문을 두드리며 일어나라고 하는 소리에 잠이 깨었다. 시끄러운 속에서도 잠이 들었었나보다. 방한복을 단단히 입고 머리에 헤드랜턴을 달고 모두들 모였다. 현지인 가이드가 선두에 서서 출발하였다. 우리 부부와 구총무, 김영길씨 부인 유수자씨가 선두에 섰다. 푼힐 전망대까지는 1시간 30분 걸릴 것이라고 한다. 현지인 선두가이드는 내가 보기에 답답할 정도로 천천히 걷는다.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고소증을 염려하기 때문인 듯하다. 그런데도 뒤에 있는 트레킹 팀장은 “빗따리”(네팔어로 천천히의 뜻)“빗따리”하고 소리친다. 그러니 선두에 서 있는 우리가 걷는 것이 전혀 힘들지가 않다. 어두워서 랜턴 불빛에 비치는 길 바닥 외에는 볼 것도 없다. 트레킹 길은 한참을 가기까지 넓적한 돌을 깔아 잘 정비해 놓은 길이다.
얼마쯤 올라가니 넓은 공터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좀 쉬어 간다고 한다. 그렇게 천천히 왔는데도 그 사이에 선두와 후미는 많이 간격이 벌어져 있었다. 후미까지 다들 도착하자 가이드가 이곳에서 하늘을 한 번 보라고 한다. 일제히 헤드랜턴을 껐다. 하늘의 별들이 너무도 아름답다. 북두칠성이 그토록 가까이 보일 수 없고 은하수는 또 얼마나 아름답게 보이는지? “별들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리는 듯하다”고 하는 것은 이런 때에 쓰는 표현인가보다.
다시 출발하여 5시30분에 푼힐 전망대에 도착하였다. 3,000m 이상의 높은 산에 등정한 경험이 없어 은근히 고소증을 염려하던 구명회 총무와 악수를 하고 3,200m고지의 무사등정을 축하하였다. 김명용과 김영길도 곧 이어 무사히 도착하여 그들과도 무사등정을 축하하는 의식을 가졌다.
정상에는 전망탑이 세워져 있다. 조금이라도 높은 곳에 올라 잘 보라는 뜻인가? 많은 나라에서 온 트렉커들이 해뜨기를 기다리고 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주위의 히말라야의 연봉들이 어슴푸레 보일 뿐 산의 모습은 제대로 볼 수 없다. 일출시간이 점차 가까워지면서 아름다운 연봉의 자태가 조금씩 들어난다. 조급한 사람들은 부족한 노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산 모습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댄다.
드디어 해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푼힐 전망대에서의 볼거리는 떠오르는 태양이 아니라 솟아오르는 태양의 빛을 받아 빛나는 반대편 쪽의 산을 보는 것이다. 제일 먼저 우리 눈에 띄는 것은 해 뜨는 방향의 반대편 즉 푼힐 전망대의 서쪽에 있는 다울라기리 봉(8,167m)이다. 태양이 점차 높이 떠오름에 따라 정상 부위부터 창백한 백색에서 주광색으로 변해가는 다울라기리 봉의 모습은 정말 장관이다. 트레킹 팀장이 푼힐 전망대에 오르면 올라갈 때까지의 고생을 충분히 보상해 줄 만한 경치를 보여 줄 것이라던 말이 맞는 것 같다. 다울라기리는 세계에서 7번째로 높은 산이다. 해가 점차 높이 떠오르자 다울라기리 동쪽에 있는 안나푸르나의설산군들도 햇빛을 받아 황홀한 모습으로 변해간다. 안나푸르나 주봉(8,091m), 안나푸르나 남봉(7,219m),히운출리(7,426m),마차푸차레(6,993m)의 거봉들이 햇빛을 받아 몸을 감싸고 있던 어둠의 베일을 벗어 던지고 반짝 반짝 빛나기 시작한다. 전율할 만큼 놀라운 정경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일행 중 유일한 “사진예술가”인 김명용군은 저토록 아름다운 광경을 다 담을 수 없는 디카의 한계를 한탄하면서도 다만 한 두 컷의 작품이라도 건져보겠다고 열심히 앵글을 잡고 셔터를 눌러댄다.
안나푸르나(Annapurna)는 풍요를 상징하는 힌두교 여신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에베레스트 산군과 함께 히말라야산맥의 두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눈 덮인 백색의 산들이 완전히 햇빛에 노출될 때까지 변화하는 산의 모습을 천천히 음미한 다음 하산하기 시작하였다. 올라 갈 때에는 어두워서 안 보였던 푼힐 등산로의 모습을 제대로 감상하며 내려온다. 푼힐 아래쪽 능선에는 유난히 네팔의 나라꽃인 랄리구라소 나무가 많고 꽃도 탐스럽게 피어있다. 산록이 랄리구라소의 꽃으로 붉게 물들어 있어 철쭉이 한창일 때의 우리나라 소백산 같은 모습이다. 아내는 화훼에 조예가 깊은 유수자씨와 길가 여기저기에 피어있는 들꽃을 감상하느라고 여념이 없다.
하산 도중 선두그룹에 섞여 내려오던 아내가 사고를 당하였다. 아내를 뒤 따라 오던 이스라엘 청년이 들고 있던 지팡이용 나무막대기를 떨어뜨렸는데 그것이 하필이면 아내가 작년에 오토바이 사고로 수술 받은 발목근처에 명중한 것이다. 자지러지는 비명소리와 함께 아내가 쓰러지고 사람들이 놀라 모여들었다. 근처에 있던 우리 트레킹 팀 멤버들이 스프레이 소염제를 뿌려 주고, 연고로 된 소염제도 발라주고, 환약으로 된 구급약을 먹이고 해서 겨우 일어났다. 순간적인 통증은 심했지만 다행히도 골절이나 근육 손상 같은 큰 부상은 아니고 단순한 타박상이라 내려오면서 많이 나았다.
고레파니의 로지에 돌아와 아침식사를 하고 8:40에 로지를 출발하였다. 다시 트레킹의 시작이다. 이제부터는 2,900m대의 능선을 따라 하산하면서 푼힐 전망대에서 보았던 산들을 다른 각도에서 보면서 내려가게 될 것이다.
가파른 언덕을 내려갔다가 역시 가파른 언덕을 다시 올라가니 이곳이 데우랄리(2,990m)이다. 이곳에서는 푼힐 전망대가 저만큼 건너다보인다. 이곳은 푼힐 만큼은 시야가 넓지 않으나 그래도 좌측에 다울라기리, 중앙에 안나푸르나 남봉, 우측에 마차푸차레가 나란히 보이는 모습이 장관이다.
11:00 데우랄리 휴게소를 거쳐,12:20에 반탄티에 도착하여 점심식사를 하였다. 수제비가 준비되어 있었다. 맛있었다. 13:30에 반탄티를 출발하여 14:50에 타다파니(2,680m)에 도착하였다. 반탄티를 출발할 때 앞으로 3시간은 걸어야 할 것이라고 팀장이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1시간 30분 만에 도착하였다. 우리들이 빨리 걸었다는 것이 아니고 오늘 새벽부터 걸은 것을 감안하여 당초 일정을 그렇게 짧게 잡은 것인 듯하다. 자주 늦게 도착하여 구총무의 애를 태우던 양김씨도 오늘은 일찍 도착하였다. “여유 있게 걷는 것이 좋은 것이여!”하며.
배정된 방에 가보니 이미 포터들이 짐을 방에 들여 놓았다.우리들의 트레킹을 도와주는 사람들이 여럿 있는 중에 가장 고생하는 것은 포터들이 아닌가 싶다. 총지휘자로서 일정을 관리 조정하고 모든 일의 최종결정을 하는 것은 한국에서 우리들과 함께 온 트레킹팀장이다. 그를 보좌하며 우리를 도와주는 사람들로서는 현지 가이드와 주방 팀 그리고 포터들이다.
현지가이드는 5~6명이 있는데 그들 중에도 대장이 있다. 대장가이드는 항상 선두에 서서 길을 안내하고 트레킹의 페이스를 조정한다. 대장이외의 가이드는 중간 중간에 위치하여 길을 안내하는 한 편 힘들어하는 트레커의 짐을 들어 준다든지 하면서 우리를 도와준다. 푼힐 전망대에서 내려오다가 부상을 당한 내 아내에게는 트레킹 팀장의 지시로 한명의 가이드가 전속 helper로 지정되어 그 이후로는 아내의 배낭을 지고 따라 왔다.
가이드와 주방 팀 외의 도우미가 포터들이다. 포터들은 트레킹 도우미 중에서 가장 힘든 일을 하면서도 대우는 제일 낮은 것 같다. 그것은 가이드는 가이드 허가증을 갖고 있거나 받을 예정인 사람들이고, 주방 팀도 나름대로 음식조리 등의 기능을 갖고 있지만 포터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는 단순한 육체노동자로 인식되기 때문인 듯하다.
기술이 필요 없다고는 하지만 그들이 짐을 나르는 모습을 보면 대견하기도 하고 딱하기 그지없기도 하다. 그들은 대부분 맨발에 슬리퍼 같은 신발(어떤 사람은 목욕실용 신발을 신고 있기도 하다)을 신고 청바지 또는 반바지를 입고 있다. 그들은 한 사람이 우리들의 카고 백 두개씩 지고 다니는데 카고 백 한 개의 무게는 최소 15kg이다. 좀 무거운 것은 20kg이나 된다. 포터들은 3~40kg의 짐을 지게나 다른 장비도 없이 머리와 등을 이용하여 메고 다닌다. 짐을 등에 지고 짐을 묶은 끈을 머리에 걸어 머리와 등에 무게를 분산시켜 운반하는 것이다.
고어텍스 신발에 기능성 옷을 입고 가벼운 배낭하나 달랑 메고서도 힘들어 헉헉대는 우리들과 무거운 짐을 지고 슬리퍼 신고 가볍게 달려가는 그들의 모습을 비교하면 괜히 울적해 진다.
옷 갈아입고 짐정리를 끝낼 즈음 트레킹 팀장이 간식파티가 있으니 앞마당으로 모이라고 한다. 이곳 타다파니는 안나푸르나의 5대 View-Point중의 하나로서 게스트하우스 앞마당에서 마차푸차레의 아름다운 모습이 잘 보이는 곳이라는데 지금은 구름에 가려 잘 안 보이고 구름위로 정상부분만 조금 보일 뿐이다.
마차푸차레는 네팔어로 물고기 꼬리(Fish Tail)라는 의미인데 네팔 인들이 그들의 聖山으로 여기는 산으로서 네팔인들은 물고기 꼬리 모습을 한 마차푸차레가 높이는 6,933m밖에 안되지만 그들에게 풍요를 가져다주는 신성한 산이라고 생각하여 정부에서도 등반허가를 절대 내어 주지 않기 때문에 전인미답의 산이라고 한다. 오래 전에 일본인 등반대가 몰래 이 산에 오르려다가 등반대원 전부가 산행 중 사망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간식파티란 술 파티이다. 최고령자인 P교수가 좌장으로서, 또 본인이 생각보다 트레킹을 잘 하고 있음을 자축하는 의미에서 맥주를 쏘기로 하였단다. 안주는 골뱅이무침, 오징어구이, 닭똥집 구이에 오이와 당근이다. 아주 한국적인 안주이다. 술은 맥주와 참이슬 소주이다. 오늘 트레킹을 무사히 마쳐 모두들 기분이 좋다.
술 파티가 어지간히 무르익자 식당에 저녁식사가 준비되어 있다고 한다. 저녁메뉴는 닭백숙이다.
19:40에 취침하였다.
6. 하산
아침에는 어제 저녁보다 구름이 많이 걷혀 마차푸차레의 모습이 좀 더 잘 보인다. 그러나 푼힐 전망대에서 보았던 마차푸차레의 아름다운 모습의 전경은 볼 수가 없어 아쉬웠다.
08:00에 타다파니를 출발하여 하산 길로 들어선다. 이제부터 고도를 낮추며 내려가는 것이다. 타다파니에서 내려가는 길은 열대우림속의 부드러운 흙길로서 돌계단도 없고 아주 걷기 편하며 기분 좋은 길이다. 함께 걷는 아내와 유수자씨의 입에서 절로 노래가 흘러나온다.
그러나 간드렁(1,939m)을 지나 모디콜라 계곡의 Kyumi(1,330m)로 떨어지는 코스는 급경사의 돌계단 길로서 사람 죽이는 길이다 이 길은 중간 중간의 산간마을을 연결하는 길인데 간혹 남의 집 앞마당을 통과하기도 하고 이들 마을의 생활필수품을 운반하는 당나귀의 행렬을 만나기도 한다.
Kyumi에서 잔치국수로 점심을 먹고 13:20에 다시 출발한다. 강을 건너 이번에는 간드렁을 마주 보는 맞은 편 능선의 란드렁까지 가파른 길을 올라간다. 당초의 숙박예정은 Tolka라는 마을이었는데 팀장이 란드렁에서 자고 가기로 계획을 바꾸었다고 한다.
그런데 좀 있다가 이러한 계획변경이 참으로 현명한 조치였음을 알게 된다. 우리가 란드렁 가까이 다가 갈 무렵부터 비가 내린다. 잠시 휴게소에서 비를 피하고 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하고 생각하는데 현지 가이드가 이곳은 비가 오기 시작하면 쉽게 그치지 않고 계속 내리니 서둘러 로지까지 가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우리 일행이 모두 숙소에 도착한 15:00무렵에는 비가 폭우로 변하였고 천둥 번개까지 친다. Tolka까지 1시간을 더 갔더라면 우리 모두는 물에 빠진 생쥐가 되었을 것이다. 모두들 팀장의 현명한 판단을 환호하며 칭찬하였다.
이번 트레킹 팀 20명중 우리 17회 식구는 6명, 전체의 30%를 차지하는 최대의 그룹이다. 혼자 온 사람도 맥주를 사는데 우리 17회 멤버가 얻어먹기만 할 수 없지 않은가? 우리도 한 번 쏘자.그러자면 오늘이 적당하니 오늘 저녁에 단행하자. 이렇게 일사천리로 의논이 되어 오늘 아침 일찍 팀장에게 제안을 해 놓았다. 17:00에 맥주파티가 시작되었다. 조리 팀에서는 염소의 염통과 간을 구워서 안주로 내 놓았다. 오늘 여행사에서 염소 두 마리를 잡았다고 한다. 한 마리는 트레킹 팀이 먹을 것이고 또 한 마리는 트레킹 도우미(가이드, 포터 등)들에게 제공할 것이라고 한다. 두 마리의 염소내장 중 엑기스인 간과 염통을 맥주파티를 위해 내 놓은 것이다.(네팔사람들은 동물의 내장은 안 먹는다고 한다.)
생전 처음 먹어 보는 염소의 간과 염통구이는 맛이 좋았다. 오늘이 산중에서의 마지막 밤이어서 그런지 이야기들도 많고 술도 많이들 마시는 것 같았다.
18:00에 저녁식사가 날라져 왔다. 산중이라 염소 바베큐를 할 수가 없어 고기를 푹 삶았다는데 고기가 연하고 적당히 간이 되어 맛있게 먹었다. 고기 좋아하는 김명용군이 환호하며 제일 많이 먹었음은 물론이다.
식사가 끝난 후에도 골수 주당들은 계속 남아 남은 술을 다 마셨다. 술이 세지 못한 나는 적당히 빠져나와(그래도 나는 이미 대취하였다.) 잠자리에 누어 바로 잠이 들었다.
한참 자다가 노래하는 소리에 잠이 깨었다. 무슨 일인가하고 아내에게 물으니 트레킹 도우미들이 술을 먹고 노는데 김명용과 김영길씨가 거기 가서 함께 놀고 있는 모양이라고 한다. 풍류남아들이로고! 좀 있으니 파티가 끝났는지 조용해진다. 아마도 포터대장의 지휘로 파티를 끝내고 취침을 하는 듯하다. 그런데 김명용씨가 방을 못 찾고 헤매는 소리가 들린다. 아 아! 로맨틱한 히말라야의 밤이여!
7.귀환
익숙해진 일과에 따라 아침식사와 짐정리를 끝내고 07:45에 란드렁을 출발하였다. 08:40에 Tolka에 도착. 어제 숙소를 이곳에 정하고 여기까지 왔더라면 얼마나 고생했을까 생각하며 Tolka를 통과. 베리카르카를 지나고(09:35)10:50에 Deurali(2,100m)에 도착하여 잠시 쉬고 11:40 Potana(1975m)에 도착. 라면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13:00에 Potana출발.
Potana는 비교적 큰 마을이다. 농경지도 많고 중고등학교도 있는 모양인지 교복 입은 여학생들도 많이 눈에 띈다. 무엇보다도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넓은 길이 마을을 통과하고 있다.(길바닥에 난 자동차 바퀴자국도 보았다.) 한 동안 찻길을 따라가던 트레킹 코스는 찻길을 버리고 급격한 벼랑 같은 돌층계 길로 내려간다.
걷는 속도에 따라 무리가 나뉘어져 독일병정 구총무는 선두로 내빼버렸고 언제부터인가 현지인 가이드대장과 나, 내 아내, 그리고 유수자씨가 한 그룹이 되어 걷고 있었다. 멀리서 천둥 번개 치는 소리가 들려 우리를 불안하게 하더니 14:30경부터는 우리 머리위에서 천둥번개소리가 들리고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우산은 현지인 Helper가 메고 오는 아내의 배낭에 들어 있어 비가와도 속수무책이라 서둘러 걷는 수밖에 없다.
드디어 자동차도로가 보이는 지점에 이르렀다. 자동차가 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 것이 빤히 보이는데도 갈지자로 된 돌층계를 내려가는데 제법시간이 걸리고 무릎도 아파오기 시작한다. 드디어 15:00에 Pedi에 도착하였다. 트레킹이 끝난 것이다.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사람은 구총무를 포함하여 4명뿐이다.
이곳에는 우리가 타고 갈 버스가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고, 우리들의 짐을 지고 온 포터들도 이미 다 도착해서 짐을 버스에 실어 놓고 있었다. Pedi의 호텔 앞에서 후미를 기다리고 있는데 비가 점점 굵어지더니 손톱마디만큼이나 큰 우박으로 변해 쏟아진다.
15:40에 후미도 모두 도착하였다. 우리 트레킹 팀과 그동안 우리를 도와 준 정든 도우미(가이드들,Cook들, 포터들)들에게 수고비를 지불하고 작별인사를 하였다. 푼힐 이후 아내와 유수자씨의 배낭을 메고 온 사람에게는 별도의 사례를 조금 하였다.
17:40에 포카라의 Fewa호수에 있는 Fishtail View Lodge에 도착하였다. 이 로지는 호수 한 가운데 있어 강원도 아우라지에 있는 것 같은 밧줄로 당겨서 움직이는 멍텅구리 배를 타고 건너가야 했다. 비가 쏟아지는 어둠 속에 배정된 방을 찾아 갔다.
19:00에 로지 중앙의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하였다. 네팔식,인도식,중국식이 뒤섞인 부페식 저녁이다. 여행사 부담으로 프랑스 와인도 제공되었다. 우리 6명에게는 2병의 와인이 지급되어 게눈 감추듯 마셨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무사히 마치고, 3,000m이상의 고지를 고소증 없이 주파한 17산악회의 老童들 축하합니다.
오래간만에 호텔 같은 로지에서 더운 물에 샤워도 제대로 하고 푹 잠을 잔 우리는 모닝콜 시간 전에 일어나 로지 주변을 산책하였다. 어제 그토록 험하던 날씨는 활짝 개어 멀리 안나푸르나의 눈 덮인 봉우리들이 깨끗이 보인다.
호수 한 가운데 위치한 로지의 정원도 예쁘고 멀리 보이는 설산이 호수 물에 비치는 풍경은 무어라 표현하기 어렵도록 아름답다. 이 광경이 바로 내가 컴퓨터 책상 앞에 3년 동안 붙여놓고 안나푸르나를 꿈꾸었던 그림엽서에 있는 바로 그 그림이다.
우리 트레킹 팀의 많은 사람들이 이 아름다운 리조트에서 하루 밤만 자고 떠나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애석해 한다. 그러나 우리는 돌아가야 한다. 또 다른 떠남을 준비하기 위하여.....끝
첫댓글 임동문님의 산행기를 읽으니 몇년 전에 같은 곳을 등반했던 때의 감회가 새롭습니다. 17산우회 회원들과 함께 히말라야의 다른 코스를 한번 등반해보고 싶습니다. 꿈은 이루어진다? (노순옥)
동감입니다. 조문제씨와 오찬하시며 한 번 좋은 안 의논해보시지요. 견마지로를 다하겠읍니다. 저는 14일 발칸반도로 여행를 떠나 함께 못합니다. 아쉽습니다
산이 있어 산에 오르고 산이 아름다워 산에 자주 간다. 정복하고 싶어 높은 산에 오른다. 노익장을 과시한 6분에게 축하를 드립니다.
같이 다녀온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입니다.맛있는 요리들을 즐겼다는것이 제일 부럽네요!
축하합니다. 꿈을 이루기 시작하셨군요. 자세히 보여 주시니 저도 함께 한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가져다 주신 염주는 늘 잘 간직하고 있읍니다. 감사합니다.
이젠 17산악회도 해외파가 점점 늘어 나네요. 어쩌다 가고 싶어도 못가는 신세가 되었읍니다. 부럽습니다.
축하한다. 함께 못한것이 유감이네. 떠나기전 경자씨가 감기 몸살로 무리가 않일까? 염려 되었었는데.. 엨얼런트한 정신력에 찬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