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로리언 - 29. 쓰러지는 레오날드와 여인들의 체중증가
민서우
- 29.
레오날드의 멀미는 금방 그쳤다. 다행히도 저녁으로 먹었던 샌드위치가 역행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헛구역질이 전부였지만 같이 마차를 타고 온 셋을 긴장시키기에는 충분했다. 다만 윌과 리유는 각자의 머리로 뾰족바위로 가는 길에 일어난 기이한 현상을, 현실적으로 해명해보기 위해 머리를 쓰느라 레오날드는 안중에도 없었다. 은근한 무관심 속에 레오날드는 눈을 껌벅이며 비틀거렸다.
‘하늘이 빙빙 돈다, 어지러워. 속도 울렁거리고. 미치겠다. 하긴. 내가 멀미를 하는 게 어디 한 두 번인가.’
<달의 정원> 을 지나 가이넥스 대륙으로 오는 배 위에서도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른다. 이틀을 침상에서 지냈다. 그 때에 비하면 오늘은 좀 나은 편이기는 한지만 어지러운 건 어쩔 수가 없나보다.
“어우.”
멀미 때문에 얼굴 하얗게 변한 레오날드는 결국 작은 신음소리를 내며 쓰러졌고, 즉각 고양이의 모습으로 변했다.
“레오 선배!”
원래는 윌이 레오날드를 부를 때 쓰는 별명인데 그걸 카즈마도 그걸 따라서 같이 쓰고 있다. 먼저 들어가서 교신을 잠시 했던 마리엔은 놀라서 다시 뛰어오고, 윌과 리유 역시 정신없이 가던 중에 카즈마의 부름에 다시 돌아왔다.
“레오날드.”
“눈이 이상해. 빙글빙글 돌고 있어.”
레오날드가 멀미 때문에 쓰러진 걸 이제 알게 된 윌과 리유의 말에 오버가 섞여 있다.
“양호실로 데리고 가자.”
유미의 말에 윌이 얼른 고양이로 변한 레오날드를 품에 안고 본관을 향해 뛰었다. 뒤를 일행이 급히 이었다. 레오날드의 상태를 보던 양호 교사는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멀미구나. 속이 무척 요동을 치고 있네. 식은땀도 조금 나고. 일어나면 약 먹이고 기숙사로 보낼게. 복잡하니까 다들 올라가렴.”
“그럼 부탁드릴게요-!”
라는 인사와 함께 마리엔과 유미가 먼저 양호실을 나가고 뒤를 카즈마와 리유가 따랐다. 양호 선생은 남은 윌에게 물었다,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윌, 왜 남았어?”
“얘 깨면 데려가려고요. 부축을 도와주고 싶어서요.”
하지만 윌의 그 작은 소망은 금방 깨진다.
“윌! 왜 안 나와?”
맨 마지막으로 문 닫으며 나갔던 리유가 문을 열고 고개만 내밀었다. 윌은 하는 수 없이 인사를 하며 양호실을 나와야 했다.
‘쳇. 도와주려고 했더니. 망했네.’
먼저 양호실을 나온 마리엔과 유미는 얼른 자신들의 방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같은 방의 두 캐츠는 아직 안 돌아왔다. 문을 꼭 닫고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조심하며 유미가 발을 동동 굴렀다. 아까 양호실에서 그냥 나오지 않은 게 가장 큰 충격적이었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얼굴이 약간 그을린 것처럼 보이는 유미의 얼굴이 살짝 붉은 색을 띄었다.
“어떻게 해~~ 그렇게나 돌아다녔는데 아직 2키로그루(=2kg)가 쪄 있어!”
“밥을 그렇게 많이 먹는 것도 아닌데?”
마리엔의 대꾸였다.
윌의 기준에서 보면 그렇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식당 아주머니들이 워낙 손이 커서, 밥을 퍼주는 량이 거의 2인분이며 다들 그 량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아까 샌드위치도 모두가 하나로 만족하지 않았었다.
아무리 기숙사가 3층에 있고 본관 교실 역시 3층에 있어서, 계단 수시로 오르락내리락 해도 소용이 없는 모양이다. 유미는 침대에 털썩 앉으며 한숨을 쉬었다.
“어휴. 윌은 그렇게 먹는데도 별로 티가 안 나.”
운동하잖니. 합기도로도 모자라서 검도까지 하잖니. 마리엔은 덤덤히 받아쳤다. 유미에 비해 2배 가깝게 체중이 올랐는데도 그리 놀라지 않는 눈치다.
“너도 안 나. 나도 안 나겠지만.”
“근데 마리엔, 넌 어떻게 나왔어?”
“……으흠.”
마리엔은 고개를 슥 돌리며 헛기침을 했다. 유미는 눈을 계속 껌벅이며 궁금증을 토해냈다. 마리엔은 한참이나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4.”
“4? 4키로나? 세상에.”
유미의 얼굴이 다시 연흑색으로 돌아왔다. 붉은 기운이 사라진 것이다. 반면 마리엔의 적당히 하얀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먹는 량도 같고 움직이는 것도 똑같은데 왜 마리엔은 유미의 체중 증가의 2배일까.
이유는 보폭에 있었다. 유미의 걷는 속도가 마리엔보다 약 2배 정도 빠르다. 윌과 리유는 유미의 속도와 비슷하므로, 마리엔은 아까 1시에 뾰족바위로 가는 동안 여러 방면으로 용을 썼다 할 수 있겠다.
유미는 손으로 턱을 괴고 볼에 바람을 넣으며 맞은편의 마리엔에게 묻는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 체중 감량이 가능할까?”
“일단 지금처럼 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어. 움직이는데도 찌니까.”
“그렇다 해도 계단을 오르내리는 게 있으니까 너무 무리하는 것도 안 좋을 거라고 봐. 근데 마리엔 넌 별 반응이 없네? 체중이 증가해도 상관없어?”
“응. 난 말랐다는 말을 많이 듣거든.”
마리엔의 말에 유미는 ‘하긴….’ 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의 광대뼈가 안 보이는 게 다행일 정도로 마리엔은 꽤나 마른 편이다. 유미는 평균 체중이고 리유와 레오날드는 조금 마른 편. 윌과 카즈마는 통통한 편에 속한다.
“마리엔, 키 몇이야?”
“나? 160에 몸무게 44. 유미 넌?”
“난 165에 60.”
“평균적이네.”
“어째서?”
마리엔의 말에 유미는 도리어 반문했다. 마리엔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느라 시선을 오른쪽 위로 올렸다가, 다시 유미를 보며 말했다.
“표준 체중을 구하는 공식 같은 게 있어. 키에서 100을 뺀 후에 다시 0.9를 곱하는 거야.”
마리엔의 말에 유미는 잠시 머리를 굴렸다. 그녀는 눈을 감고 계산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165에서 100을 빼면 65, 다시 0.9를 곱한단 말이지.’
잠시 후 그녀는 눈을 떴다.
“58.5가 나와.”
그리고 살짝 고개를 숙여서 마리엔을 보니 그녀는 PT를 들고 있다. 이미 표준 체중에 대한 계산을 끝낸 후다. 순간 유미는 그대로 굳어졌다. 왜 PT를 생각하지 못 했을까!!
“음. 유미 넌 58.5가 표준 체중이니까 통통한 편인 거고, 난 표준 체중이 54니까 미달인 거야.”
“아하. 그럼 난 운동을 좀 해야 하는 거네? 맞지?”
유미의 말에 마리엔은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체중이야 어찌됐든 상관없다는 태도다.
조금 쪘다고 난리 치는 유미, 체중이 더 늘었는데도 덤덤한 마리엔. 그녀들의 반응은 참으로 대조적이었다.
한편.
다다다다다다다다다닥. 다다다다다다다다닥. 방 안을 유난히 크게 울리는 노트북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며, 윌과 리유는 카즈마만을 보고 있다. 탁, 탁, 키보드 중 하나만을 세 번 정도 두드리던 카즈마는 이내 노트북 화면을 윌과 리유가 볼 수 있게 빙글 돌리며 말했다.
“나왔어요.”
“응.”
챙겨온 조각들을 PT의 카메라로 촬영해서 노트북으로 전송한 뒤 다시 상세히 분석하는 게 걸린 시간 약 5분. 윌과 리유는 거의 동시에 노트북을 바라봤다. 입을 꾹 다문 둘은 결과를 보며 추리를 하기에 바쁘다. 그러던 중 윌이 물었다.
“그러니까 사내들을 죽인 건 바람이라는 얘기야?”
“괴수가 아니고?”
리유가 덧붙인다. 노트북에서 분석해서 나온 결과는 그렇다. 카즈마는 화면을 계속 두 형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그것도 그냥 바람이 아니라 엄청나게 강한 칼바람이에요. 날카로운 칼날에 당한 흔적이라고 분석 되요. 깨끗하게 조각난 뒤에, 바람에 쓸려 날려가고 남은 게 그 조각이겠죠. 아니면 정말로 괴수가 나와서 남은 살점들을 먹었을 수도 있고요.”
“하지만 이렇게 작게 부는 미풍으로는 사람을 죽이는 게 불가능해.”
윌의 반발이었다.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아요.”
“무슨 소리야?”
궁금증이 미약하게 반짝이는 리유의 보라색 눈과 마주한 카즈마. 그는 노트북의 화면을 자기 쪽으로 돌리고서 다시 키보드를 두드리며 말했다.
“아주 오래 전에 적힌 역사서가 있어요. 그 책의 언어는 고대 언어라서 그 번역 자료를 본 적이 있어요. 가이넥스 대륙 끝에 뾰족 바위 있잖아요?”
“응.”
“그건 사람들이 신에게 평화를 지켜달라고 빌면서 돌을 하나 둘 쌓았던 건데, 그 쌓인 높이가 지금은 하늘에 닿을락 말락 하고 있죠, 그것도 약 1천 년 전까지라고 해요. 그 후 그 돌산은 뾰족바위라고 불리고 있고, 고대 유물 중 하나로 기억되어 무너트리지 않고 있죠. 하지만 제가 찾아본 바에 의하면 그 뾰족바위는 어느 힘에 의해 지탱되고 있어요.”
윌과 리유는 조용히 카즈마의 말을 듣기만 했다.
“전설에 따르면 그들은 역사의 흔적을 지키는 자, 세계의 흐름을 지배하는 자라고 해요. 그들을 부르는 고대 언어로 이라고 하고, 현재 언어로 해석하면 <지배자> 이지요.”
카즈마는 거기까지 설명하고 잠시 말을 쉬며 옆에 있는 음료를 들고 마셨다. 윌 역시 한 모금 마시고 물었다.
“<펠로리언>? 지배자? 뭘 지배한다는 거야?”
“고대 역사서에 의하면 그들은 <7천왕> 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지배하는 힘으로는 빛, 어둠, 불, 물, 바람, 땅, 공간. 이렇게 일곱이 있대요.”
“잠깐.”
이번에는 리유가 아예 카즈마의 말을 끊었다.
“그럼 네 말은 그 힘을 가진 사람 중의 한 명이 한 짓이라는 얘기야?”
“제가 볼 때는 바람일 것 같아요. 확률은 높죠.”
“그럼 아까 갔던 우리 중에 한 명이겠네?”
윌의 말을 끝으로 방 안은 정적에 휩싸였다. 셋은 가만히 서로를 향한 시선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이어서 셋 다 고개를 저었다. 그런 뒤 윌이 지금 방에 없는 사람에 대해 거론했다.
“레오날드는?”
“캐츠라서 예지력은 갖고 있을 거야. 루비가 간간히 예언을 하나씩 했었으니까. 하지만 지배자라는 건 좀 그런데?”
근데 어쩌자고 얘기가 종족으로까지 건너왔을까.
“유미는 어때, 리유?”
리유의 말을 듣고 윌이 물었다. 하프엘프인 친구는 고개를 저었다.
“윌 선배, 휴머리즈는 뭐 없어요?”
“아이렌트는 뭐 없냐? 우리 휴머리즈는 사람 중의 사람이잖아. 반면 아이렌트는 벚꽃을 섬기는 종족이잖아. 너희야 말로 뭔가가 있을 법 한 분위기가 나는데?”
어느 정도 일리가 있어 보이는 윌의 말이었지만 카즈마는 고개를 저었다. 유미 역시 아니라면 남은 사람은 마리엔 정도인데…….
“하지만 마리엔 선배는 하프 머메이드잖아요. 신안을 갖고 있는데 그것으로는…….”
카즈마는 말을 줄였다. 이미 얼굴이 굳어버린 윌과 리유는 본 뒤다. 그는 침을 꿀꺽 삼키며 두 형을 불렀다.
“선배들.”
“확률은 있어.”
리유의 말에 윌이 고개를 끄덕였다. 카즈마는 안경을 고쳐 쓰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근거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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