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보물 63 (제1801호 - 제1820호)
제1801호 : 대구 보성선원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및 복장유물 (大邱 寶聖禪院 木造釋迦如來三尊坐像 및 腹藏遺物) 2013.4.29 ‘대구 보성선원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및 복장유물(大邱寶聖禪院木造釋迦如來三尊坐像및 腹藏遺物)’은 삼존상과 함께 복장후령통, 조성발원문 등 조성 당시의 원형을 갖추고 있어 이 시기 불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특히 조성발원문을 통해 1647년이라는 정확한 조성시기, 봉안사찰, 조성주체, 제작자 등을 알 수 있기 때문에 17세기 불상연구의 기준이 된다.
제1802호 : 대구 보성선원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복장전적 (大邱 寶聖禪院 木造釋迦如來三尊坐像 腹藏典籍) 대불정여래밀인수증료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 언해 권5(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諺解卷五)는 당나라의 반자밀제(般刺密帝)가 번역하고, 송나라의 계환(戒環)이 해설한 것이며, 경이름을 줄여서 능엄경(楞嚴經)‘으로 약칭하기도 한다. 이 책은 세종 31년(1449) 수양대군이 세종의 명에 따라 번역을 시작하였으나 뒤로 미루어졌다가 혜각존자 신미(信眉) 등 당대 고승 및 학자가 참여하여 10권으로 번역되었다. 본문에는 한글로 토를 달고 방점을 찍었으며, 을해자(乙亥字)를 사용하여 15세기에 간행되었다. 제1803호 : 구리 태조 건원릉 신도비 (九里 太祖 健元陵 神道碑) 2013.7.16 ‘구리 태조 건원릉 신도비(九里太祖健元陵神道碑)’는 1409년(태종 9)에 세운 것이다. 태조 건원릉 신도비는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李成桂, 1335~1408년)의 건국 과정을 비롯하여 생애와 업적 등을 영원히 기리고자 일대기를 짓고 돌에 새겨 세운 비이다. 이 신도비는 이수(螭首), 비신과 귀부(龜趺)가 양호하게 잘 보존되어 있어 조선 초기 왕의 신도비는 물론 여타 신도비의 전형으로 평가된다.
제1804호 : 서울 태종 헌릉 신도비 (서울 太宗 獻陵 神道碑) ‘서울 태종 헌릉 신도비(서울 太宗獻陵神道碑)’는 1422년(세종 4년)에 세운 것이다.
제1805호 : 서울 세종 영릉 신도비 (서울 世宗 英陵 神道碑) ‘서울 세종 영릉 신도비(서울 世宗英陵神道碑)’는 1452년(문종 2)에 세운 것이다.
제1806호 : 합천 해인사 내전수함음소 권490 목판 (陜川 海印寺 內典隨函音疏 卷四百九十 木板) ‘합천 해인사 내전수함음소 권490 목판(陜川海印寺內典隨函音疏卷四百九十木板)’은 1245년(고려 고종 32)에 대장도감에서 판각하여 완성한 경판이다.
제1807호 : 해남 대흥사 천불전 (海南 大興寺 千佛殿) 2013.8.5 천불전은 대흥사 남원(南院)의 중심 불전이다. 큰 대문채와 같이 평범한 단층 5칸 맞배집으로 구조된 가허루의 중앙 문간을 거쳐 천불전 안마당에 들어서면 정면의 높은 장대석 축단 위에 서향하여 자리한 천불전이 마주보이고 왼쪽에는 봉향각이, 오른쪽에는 옛 강원이던 용화당이 마당을 둘러싸고 있어 독립된 공간을 구성하고 있다. 대웅전에 비하여 마당은 크지 않지만 공간에 맞게 각 건물의 규모와 형식을 갖추었고,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팔작집인 천불전은 높은 장대석 축단 위에 자리하고 있어 남원(南院) 공간의 중심건물로서 격식과 품위가 느껴진다.
제1808호 : 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 (南陽州 水鐘寺 八角五層石塔) 수종사 팔각오층석탑은 경기도 남양주 운길산 중턱에 위치한 수종사에 전해오는 조선시대의 석탑이다. 수종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奉先寺)의 말사로 조선 세조 5년(1459)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온다. 석탑은 원래 사찰 동편의 능선 위에 세워져 있었다고 전하며, 이 위치에서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모이는 양수리 지역이 훤히 내려다보여 경관이 우수한 입지를 가지고 있다. 현재는 석조부도, 소형석탑과 함께 대웅전 옆에 옮겨져 있다.
제1809호 : 칠태부인경수연도 (七太夫人慶壽宴圖) 2013.11.13 ‘칠태부인경수연도(七太夫人慶壽宴圖)’는 왕의 명령과 보조를 받아 70세 이상의 모친을 모시고 있는 신하 7명이 1691년 8월 경수연(장수를 축하하고자 베푼 잔치)을 치른 후 기념으로 제작하였던 것을 1745년 이전 어느 시점에 새롭게 제작한 작품이다. 경수연도는 양로(養老)를 중시한 조선시대의 대표적 사가행사도(私家行事圖)의 일종이다.
제1810호 : 황리현명 청동북 (黃利縣銘 靑銅金鼓) ‘황리현명 청동북’은 고려 선종 2년인 1085년 황리현(黃利縣, 현 경기도 여주)의 호장(戶長)이자 무산계(武散階) 정9품 인용부위(仁勇副尉)인 민씨(閔氏) 등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황리현과 가까운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에서 발견된 것으로 전한다. 제1811호 :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보살좌상 및 복장유물 (平昌 上院寺 木造文殊菩薩坐像 및 腹藏遺物) 2014.1.20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보살좌상 및 복장유물(平昌上院寺木造文殊菩薩坐像및 腹藏遺物)’은 조선 1661년(현종 2)의 조성연대와 문수보살좌상임을 밝히는 발원문과 함께 많은 복장유물을 동반하고 있는 중요한 보살상이다. 이외에도 발원문을 통해 같은 해 전라남도 강진의 무위사 지장보살상을 조성한 회감(懷鑒)과 여러 명의 조각승이 함께 참여하여 조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제1812호 :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보살좌상 복장전적 (平昌 上院寺 木造文殊菩薩坐像 腹藏典籍)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보살좌상 복장전적(平昌上院寺木造文殊菩薩坐像腹藏典籍)’은 ‘백지묵서금강반야바라밀경(白紙墨書金剛般若波羅蜜經)’과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권6’ 이다.
제1813호 : 대구 용연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및 복장유물 (大邱 龍淵寺 木造阿彌陀如來三尊坐像 및 腹藏遺物) ‘대구 용연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및 복장유물(大邱龍淵寺木造阿彌陀如來三尊坐像및 腹藏遺物)’은 복장 후령통을 비롯하여 조성발원문, 복장전적 등 조성 당시의 원형을 갖추고 있어 불교조각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판단된다. 조성발원문을 통해 1655년이라는 정확한 조성시기, 봉안사찰, 조성주체, 제작자 등을 알 수 있기 때문에 17세기 불상연구의 기준작이 된다. 또한 1762년의 중수개금기(重修改金記)까지 포함하고 있어 불상의 중수개금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이다.
제1814호 : 대구 운흥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大邱 雲興寺 木造阿彌陀如來三尊坐像 ‘대구 운흥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大邱雲興寺木造阿彌陀如來三尊坐像)’은 복장 후령통을 비롯하여 조성발원문 등 조성 당시의 원형을 갖추고 있어 불교조각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판단된다.
제1815호 : 홍가신 청난공신 교서 및 관련 고문서 (洪可臣 淸難功臣 敎書 및 關聯 古文書) ‘홍가신 청난공신 교서 및 관련 고문서(洪可臣淸難功臣敎書및 關聯古文書)’는 조선 중기의 문신 문장공 홍가신(文壯公洪可臣, 1541~1615년)의 청난일등 공신(淸難一等功臣) 관련 문서가 중심을 이룬다. 그를 청난 1등 공신으로 책봉한 공신교서를 중심으로 3대를 추증하는 문서들 가운데 부모를 추증한 문서 및 사망 이후 홍가신을 추증한 문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816호 : 창녕 관룡사 대웅전 관음보살 벽화 (昌寧 觀龍寺 大雄殿 觀音菩薩壁畵) 2014.3.11 ‘창녕 관룡사 대웅전 관음보살 벽화(昌寧觀龍寺大雄殿觀音菩薩壁畵)’는 보타락가산(補陀落迦山)에서 설법하는 관음보살(觀音菩薩)을 선재동재(善財童子)가 방문하여 법을 청하는 장면을 그린 것으로, 벽면 전체에 관음보살을 채워 크게 부각시켜 그렸다. 여러 차례 중수를 거치면서 보채(補彩)가 이루어졌지만 좌우로 넓게 퍼진 보관과 영락장식, 옅은 수묵으로 그린 기암괴석과 대나무 표현, 버들가지가 꽂힌 정병의 모습, 유희좌(遊戱座)로 단정하게 앉은 보살의 자세 등에서 조선후기 18세기 불화의 특징을 잘 볼 수 있다. ![]()
(淸道 雲門寺 大雄寶殿 觀音菩薩・達摩大師 壁畵) ‘청도 운문사 대웅보전 관음보살 달마대사 벽화(淸道雲門寺大雄寶殿觀音菩薩達摩大師壁畵)’는 거대한 흙벽의 화면에 높고 험준한 바위산을 배경으로 온화하고 화려한 관음보살과 호방하고 대담한 달마대사를 조화롭게 그렸다. 한 화면에 관음과 달마를 나란히 표현한 벽화의 유일한 사례로, 가지산문(迦智山門)의 전통을 잇는 선찰 운문사의 성격을 잘 대변해 준다. ![]()
제1818호 : 서울 보타사 금동보살좌상 (서울 普陀寺 金銅菩薩坐像) ‘서울 보타사 금동보살좌상(서울 普陀寺金銅菩薩坐像)’은 왼쪽 다리는 아래로 내려 바닥을 딛고 오른쪽 다리의 무릎을 세워 앉는 유희좌(遊戱座)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유희좌는 중국 북송대부터 유행하여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후기에 유행하기 시작하여 조선 초기까지 이어졌다. ![]()
제1819호 : 서울 봉은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서울 奉恩寺 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 ‘서울 봉은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서울 奉恩寺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은 조선 후기 1651년 조각승 승일(勝一)이 수(首)조각승으로 9명의 보조 조각승들을 이끌고 제작한 상이다. 1765년의 개금발원문(改金發願文)을 통해 1689년에 화재로 본존 석가상은 소실되어 새로 조성했음을 알 수 있다. ![]()
제1820호 : 서울 옥천암 마애보살좌상 (서울 玉泉庵 磨崖菩薩坐像) 2014.3.11 ‘서울 옥천암 마애보살좌상(서울 玉泉庵磨崖坐像)’은 5미터가 넘는 대형의 마애상으로 상 전면이 흰색 호분이 칠해져 있어 일반적으로 ‘보도각 백불(普渡閣白佛)’ 또는 ‘백의관음(白衣觀音)으로 불렸다. 이 마애보살좌상에 관해서 성현(成俔, 1439-1504년)의 『용재총화(慵�齋叢話)』에 정확히 기록하고 있는 것이 확인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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