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에서 십분쯤 더 가면 주실마을이 나온다.
위 사진은 주실마을 전경이다.
주실마을에 있는 지훈문학관이다.
중종때 기묘사화로 조광조 일가중 일부가 처가가 있는 이 주실마을로 피난하여 살았다.
자손중 영조때 대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으나 조광조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합격이 취소되었다.
이마을 사람들은 자기들이 가진 땅 오십마지기가 있었는데, 알뜰하게 살아가는 것을 철칙으로 하여 경제적으로는 큰 어려움이 없이 살았다.
오로지 학문연구를 열심히 하여 자기 문집을 남긴이가 이 마을에 62명이나 된다.
개화기 이후 이 마을에서 박사가 수십명 나왔다고 하니, 이 마을은 정말 영양이 자랑할 만한 곳인것 같다.
조지훈의 할아버지는 신문물을 받아 들이는데 적극적이었으며 학원을 설립하고 운영하였다.
그리고 조지훈의 학문은 어릴때부터 그 양과 깊이가 엄청나 27세에 고려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또한 이곳에서 처음 알았는데, 영양이 원래는 영일현에 속해있었는데, 이 마을 사람들이 주도로 영양을 하나의 새로운 행정구역으로 독립시켰다고 한다.
지훈문학관에는 조지훈의 시 '승무'가 영상으로 계속 나오고 있었다.
석보를 지나오는 길에 이문열 문학관이 보였으나 배도 고프고 피곤하여 다음에 오기로 하고 지나쳤다.
어쨌든 우리 고향에는 문인이 많은 것 같다.
위 두사람 외에 '오일도'라는 문인이 또 있다고 한다.
우리 영양의 자랑인 것 같다.
영양 주실마을에 간 김에 가까운 석보로 갔다.
위 사진은 석보중학교이다.
이것도 석보중학교이다.
학교 교정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사진을 찍었다.
석보중학교 교정에서 승희 아빠도 사진을 찍었다.
택전으로 갔다.
옛날 우리집이 있던 자리에 새 집이 들어서 있었다.
우리집과 은주네 집 사이에 있던 길이다.
옛날 우리집이 있던 자리다.
원래 집이 있던 자리에도 새 건물이 들어서 있고
돼지우리가 있던 자리에 작은 건물이 하나 더 들어서 있다.
담장과 살구나무 네그루와 대추나무가 없어지고, 커다란 돌들이 울타리 대신 놓여있다.
큰집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화매에서 영덕 지품으로 넘어가는 길이다.
화매국민학교가 있던 자리이다.
1995년에 폐교 되었다.
학교 운동장에 풀만 무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