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이다. 살아 있음의 증거들은 여기저기 흔하게 널려 있다. 웃고 울고, 눈에 띄는 모든 것을 바라보며 소리치고, 떠들어 대며 서로 친분을 나누기도 토닥거리기도 때론 몸싸움까지 불사하며 감정을 나누기도 한다. 사소한 행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하루하루 똑같은 일상이지만, 똑같지 만은 않은 오늘, 나는 새삼스럽다. 정지되어 있는 듯 재미없다 느끼는 일상에서 “아! 난 살아있구나. 행복하구나. 이리도 멋진 하루를 보내고 있다니!” 가슴에 두 손을 올려 지그시 누르며 눈을 감아본다.
언젠가 “난 서른 살 까지만 살고 싶어. 불같이 뜨겁게 살다가 어느 날 조용히 죽었으면 좋겠어. 매 순간순간 내게 다가오는 삶에 순응하며 해보고 싶은 건 반드시 하다가 정말 아무도 모르게 이 세상 미련 없이 떠나고 싶어.” 혼자 되뇌었던 기억이 있다. 한창 꽃 같은 스무 살, 이제 막 물오르기 시작한 여자 아이가 했던 생각이라곤 상상할 수 없었던 이야기. 하지만, 욕심이란 얼마나 무서운가를 살면서 깨닫곤 스무 살 그때의 나를 비웃었었다. 지금은 매 초 매 분 다퉈대듯 흘러가는 시간에 안타까워 안달할 때가 많다. 말하는 순간에도 흘러가는 시간에 목마르다. 어떻게 하면 나에게 더 의미 있는 하루가 될까? 고민한다.
‘너도 내 나이가 돼 봐라.’ 이 말이 얼마나 무서운 교훈이었는지 어린 그때는 몰랐었다. 평생을 가난에 허덕이며 아등바등 살아가는 사람들의 풍경은 구질구질, 버리고 싶고 기억에서 지워내고 벗어나고 싶은 아픔이었었다. 가난은 일가친척에게서 무시와 냉대를 낳았고, 가난은 그 무시와 냉대 속에서 살아야 하기에 비굴함도 잉태하게 만들었었다.
남편은 자존심 때문에 목소리는 유독 컸고 술을 먹었으며 그 술에 넘어가 가족의 소중함보다는 신세한탄이란 어리석음 속에 시간을 낭비하였으며, 아내는 자존심도 버리고 품 팔러, 쌀 동냥하러 이른 아침 대문을 나섰었다. 그래서였는지 무척 욕심이 많았던 난 뭐든 잘 해내려고 애를 썼다. 놀 때도, 공부할 때도, 일할 때도 성의를 다했다. 특히 먹을 것 앞에선 조금이라도 더 먹으려 손놀림과 씹는 운동을 빨리 했다. 용돈 벌 일이 생기면 꽤 부리지 않고 주어진 할당 채우려 용을 썼다.
뽕 따기 - 까맣게 익은 오디 따 먹는 재미를 더한 - , 밭 골 매기 - 그러다 지렁이나 굼벵이라도 나오면 얼마나 기겁했던지 - , 담배 잎 따서 나르기 - 날은 무덥고 끈적끈적 찐득한 게 묻어나 땟국까지 흐르게 했던 - , 꼴 베기 - 숫돌에 낫을 스윽 갈아 이슬이 채 마르지 않은 논둑이나 밭둑에 엉거주춤 앉아 꼴을 베다 보면 얇고 여린 풀잎에 손을 베기도 스르륵 풀숲 사이를 은밀하게 움직이는 무언가에 기겁하기도 하며 - , 고추 따기 - 유독 작고 붉게 물이 든 고추가 손에 잡히면 고추밭 가에 앉아 농땡이 치는 막내 남동생을 놀리기도, 독 오른 뱀이 똬리를 틀고 고춧대나 밭골에 있으면 비명 지르며 뛰쳐나갔다 눈치 살피며 다시 포대자루 들고 들어가 반들반들 윤나는 붉은 고추를 따 넣으며 혹 또 나올지 모를 뱀을 경계하던 일 - , 솔걸 모으기 - 갈퀴로 득득 산등을 긁어주면 산은 나무들의 잔재들을 품고 있다 겨울을 따습게 해 줄 솔을 우리에게 주었지. 한 움큼, 한 움큼이 한 무더기로 모아질 때 마대자루에 최대한 많이 꽉꽉 발로 눌러 담아 자루의 입구를 당겨 맨 후 빵빵하게 배부른 그 몸체를 굴리며 놀기도, 등에 지거나 머리에 이고 가다 힘들면 그 위에 앉아 쉬기도 했지. - , 상수리 모으기 - 용돈 벌이 중 가장 많은 돈을 벌게 해줬었다. 거의 비슷한 체중을 갖고 있던 도치를 들고 참나무의 몸을 힘껏 때려대면 우수수 딱 딱 데굴데굴 여기저기 상수리가 떨어져 구르면 정신없이 주워 모아 머리에 이고 시장 쌀집에 팔아 용돈을 썼었다. 그 무게로 인해 머리 밑이 아파 앓기도 했었는데. - , 그 외 등등 말로 다 풀어낼 수 없는 기억이 많다. 무언가 하는 순간엔 그것이 최대의 목표인 것처럼. 그것이 생의 마지막인 것처럼, 열성을 모아 해냈었다.
기억을 들추다 보니 글을 써가는 손가락은 즐거워지고, 굳어 있던 입매가 스르르 풀리며 미소가 지어진다. 아! 기억이란 정말. 어린 아이가 감당하기에 벅찼던, 당시엔 절실하고 힘겹고 때론 아프기도 했던 게, 들춰지는 지금은 왜 이리 즐거운지. 아직도 꺼내지 못한 기억들이 언제라도 자신을 기억해내라 날 괴롭힐 것 같다. 즐거운 괴롭힘인가? 아니면 아프고 힘든 괴롭힘인가? 아무도 없는 책방 안에서 혼자 웃는 걸 보니 아무래도 건강에 이로울 괴롭힘인가 보다. 그렇다. 정신 건강에 득이 되는 기억. 당시엔 어서 빨리 시간아 흘러라, 나이야 먹어라, 이게 사는 거야? 뭐가 더 나은 삶이야? 그리 살 바에야 차라리 하루를 살더라도 하고 싶은 거 다 하며 살다 죽어버리지. 기를 쓰고 노력해도 안 되는데 될 대로 그냥 살아버려? 때론 포기하고 싶기도 했던 어린 나이. 그러나 말로는 잔인했어도 절대 포기할 수 없었던 ‘나’라는 인격체. 외롭다는 걸 실감하며 세상 한 구석에서 어떻게든 존재의 의미를 찾고자 고군분투했던 아이에서 여자가 되기까지의 시간들이 보인다. 어설픈 여자가 보인다. 그 어설픔에 독을 품고, 그 독에 중독되어 생이란 눈부신 날들에 한계를 두고 살짝 비켜서서 세상을 바라보아야 했던 아이가 보인다. 생의 경계를 둬야 했던 그때가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있었을까? 어쩌면 누구도 모를 경계와 한계선이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럴 수밖에 없던 여자 아이가 불쌍해서 가끔은 아프지만, 그 시간들이 약이 되어 지금의 내가 있으니 어렸던 나에게 고맙다고, 견뎌줘서, 잘 살아줘서, 고맙다고 등을 두드려주고 싶다.
세월아 흘러라, 흘러가라, 흘러 어서 떠나가라. 얼마나 어리석은 주문이었던가. 이 외수 선생님의 산문집 ‘그대에게 던지는 사랑의 그물’ 중에, ‘세월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쌓여가는 것입니다.’라는 말이 있다. 선생님이 학장님의 그 말을 듣고 졸던 정신이 명료해지고 의식이 뜨였던 것처럼 나 역시 그 구절을 읽고 “아!”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기억 곳곳에, 거울 속에 비친 얼굴에,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가까운 이들을 보면서, 어제와 오늘이 다른 아이들의 영악함 속에서, 서투름과 조급함이 부른 패배감 또는 노력으로 인하여 얻은 만족스런 결과물에 대해서 나 또한 생각한다. 어린 날 모질게 팡! 팡! 찍어 박았던 못이 상처를 내기 위함이 아닌 삶을 버티기 위한 못이요, 더욱 견고히 나를 지켜내기 위한 박음질이었음을. 일부러 한계를 둬야했던 건 그 만큼 더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의 멋진 삶을 살아내고픈 욕심이었음을. 매 순간이 삶의 배반이 아닌 적당한 무게로 기억 속에 마음에 영혼에 내려앉은 세월임을. 잠자는 순간에도 가슴이 오르락내리락 규칙적인 건 살아있음의 표현이요, 꿈속이라도 울고 웃고 때론 쫓기기도 위기감을 느끼기도 한없이 추락하기도 함 또한, 살아있음의 증거들일 것이다. 권태기 또한 살아있기에 느끼는 것. 권태로운 일상에서 소소한 일에 기쁨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오늘, 단 하나라도 기어이 기쁨을 발견해낸다.
(김재미 님의 수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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