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시내에서 북쪽으로 고속도로따라 조금 올라오면 '태인'이라는 지명이 보일 것이다.
호남고속도로를 김제 밑으로 오가거나 지역 근방주민이 아니면 대부분은 모르는 동네다.
하지만 한때 '군청'과 각종 관공서에 제법 규모있는 재래시장까지 있었던 유서 깊은 곳이다.
일제가 1914년 태인을 정읍에 편입하고, 같은 시기 호남선이 태인 바깥으로 부설되면서 쇠락하게 되었는데,
그나마 태인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버스터미널과 피향정 단 둘만이 알려주고 있다.
피향정이야 유적지니까 그렇다쳐도 한낱 버스터미널이 어떻게 알려준다는 것일까?
다소 억지스럽고 유치해 보일수도 있지만 어떻게 생각해보면 일리도 있는 얘기가,
조금은 부족한 밑의 사진과 글 속에 곳곳이 담겨있다.

잔다리목 부근에서 버스타고 약 30분만에 태인에 도착했다.
태인정류소 앞 도로는 주차된 차들로 빽빽히 메워져 있었다.
죽어가는 시골동네나 다름없는 여타 정읍의 면내보단 조금 발달되어 보이지만,
왠만한 수도권 근교 면들과는 별 차이가 없는 수준인 것 같다.

사실 태인에는 이렇다할 버스터미널은 없다.
조그만 주차장과 건물을 마련해놓고 슈퍼에서 표를 파는 정류소일 뿐이다.
아니, 버스정류소라기보단 '휴게소'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정읍 동부권으로 가는 대부분의 버스가 태인을 드나들고,
정읍-전주간을 오가는 완행 시외버스도 들어오기에 왕래하는 사람은 제법 많다.
이전에도 태인을 두 번 오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버스를 기다리는 승객과 주차된 버스가 항상 대기하고 있었던걸로 기억한다.

단순한 정류소라고는 하지만 무려 승차장까지 갖추고 있다.
비록 세월의 비바람에 깎이고 깎여 조금은 울퉁불퉁할지 몰라도 나름 버스를 탈 맛이 나게끔 해주는 것 같다.
물이 고인 웅덩이에 여기저기 붙은 껌딱지가 오히려 묘하게 정이 간다고나 할까.

건물 중앙엔 버스표를 파는 매표소가 있는데 시내, 시외 모두 종이표를 일일이 찢어서 주신다.
내부는 슈퍼마켓인데다 워낙 공간이 좁아 사진을 차마 찍지는 못했지만,
기본적으로 갖출건 다 갖추고 있다. 외부만 봐도 대충 감이 잡히실 것이라 생각한다.

'슈퍼마켓' 한 가운데엔 버스시각을 알려주는 시간표가 걸려있다.
정읍-전주간을 오가는 직행버스가 대략 90분 간격으로 운행되고,
이 외에도 정읍시내와 태인 주변지역으로 가는 노선이 운행을 하고 있다.
한낱 '면'에 불과함에도 이 곳을 거치지 않으면 주변지역으로 나가기 힘들만큼 도로교통을 완벽히 주름잡고 있다.
터미널에서 5분이면 대한민국 제2의 간선인 '호남고속도로'에도 들어갈 수 있으니,
왠지 예사롭지 않은 동네라는 생각이 얼핏 들게 된다.

조금 뜬금없는 얘기일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정읍은 '정읍군 + 태인군 + 고부군' 세 지역이 합쳐진 가짜 정읍이다.
일제가 자신들의 행정편의를 위해 태인과 고부를 강제로 없애고 정읍으로 통합시켰는데,
이 중 고부는 중심지 기능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나마 호남대로에 있던 태인조차도 호남선 건설로 인해 중심지 기능을 신태인에 넘겨버렸다.
그 후 호남지역 대부분이 산업화에 소외되면서 지금은 신태인조차도 영락없는 시골로 전락하고 말았는데,
그보다 상황이 심각한 태인, 고부는 어떠하리.

그나마 태인이 '나도 한때 군청이 있던 중심지였소'라고 알려주는 유일한 흔적이 바로 피향정이다.
신라 시절부터 내려왔다고 전해지는 유서 깊은 정자로,
깜깜한 밤을 조금이라도 훤히 밝혀주는 반딧불같은 존재다.
조선말~일제시절 근대화를 거치면서 연못의 2/3이상이 묻히고 말았지만,
여전히 연못의 규모는 상당히 크며 단 하나뿐인 정자도 웅장한 모습을 내비치고 있다.
옆에는 규모있는 읍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석들도 수없이 꽂혀져 있다.
지금은 지역 주민만 알법한 조그만 동네에 불과하지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절대 무시할 수가 없는 웅장하고 화려한 동네였다는 사실...
아마 통합이 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었더라면 태인터미널의 존재는 어찌되었을지.
혹여나 호남선이 이쪽으로만 왔었더라도 태인터미널의 존재는 또 어찌되었을지.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 하지만 괜한 가정을 하게끔 만드는 공간인 것 같다.
첫댓글 사실 고부와 태인이 조선말 동학농민전쟁때 중심이 되었던 곳이고, 동학농민군은 일본군이 처음으로 조선민중에게 '공식적인 무력행사'를 가했던 곳이죠. 그리고 일본의 본격적인 군사개입을 부른셈이고 그로인해 청일전쟁까지 발생하게 된 것이고요, 그리고 1914년 일제가 여러 군현을 합치며 현재와 같은 행정구역을 만든셈인데 그때 태인과 고부가 희생양이 된 것 같습니다. 자신들에게 항거했던 고장에 대한 흔적을 지우려는..항상 이곳을 떠올릴때마다 가슴아프게 느껴지는 부분이지요. 잃어버린 역사와 고장의 흔적을 맥시멈님의 여행기를 통해 잘 느끼고 갑니다.
태인은 그나마 최소한의 마을 유지라도 하는반면 고부는 아예 이름조차 지워진 시골동네가 되었더군요.. 현재의 모습을 보면 가슴 한구석이 찡합니다.
만약에 3개군이 통합되지않고 태인면내에 호남선이 개통되었다면 지금의 정읍대신 시이름이 태인으로 지도상에 그려졌을텐데.....
늘 수고해 주셔서 유익한 자료 봅니다. 감사드리며... 잘 보고 갑니다.
소중한 댓글 고맙습니다. ^^
좋은자료 잘보고 갑니다 /내내 건승하세요
늘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