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본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 (윤미애 역)에는 이렇게 번역되어 있다.
<너무 늦게 도착함>
교정에 있는 시계는 나의 불찰 때문에 망가진 것처럼 보였다. 그 시계는 ‘너무 늦었음’이라는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지나쳐 간 교실 문들에서는 은밀한 충고의 속삭임이 복도로 흘러나왔다. 그 문 뒤에 있는 선생님들과 학생들은 한패처럼 느껴졌다. 또는 모두 침묵을 지켰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소리나지 않게 나는 문의 손잡이를 만졌다. 해는 내가 서 있는 발밑을 빛으로 적시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나의 청순한 날을 더럽히면서 문을 열었다. 아무도 나를 눈치 채는 것 같지 않았다. 악마가 페터 슐레밀의 그림자를 넘겨주지 않은 것처럼, 수업이 시작될 때 선생님도 내게 내 이름을 넘겨주지 않았다. 내 차례는 더이상 오지 않았다. 나는 수업 종소리가 들릴때까지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렇다고 내게 어떠한 축복도 없었다.“ (국역 58쪽)
그런데, 이 고심한 흔적이 역력한 번역이 이야기해주지 못하는, 혹은 잘못 이야기해주는 것들이 벤야민의 독일어 글 속에는 담겨져 있다.
Zu spät gekommen
Die Uhr im Schulhof sah beschädigt aus durch meine Schuld. Sie stand auf "zu spät". Und auf den Flur drang aus den Klassentüren, die ich streifte, Murmeln von geheimer Beratung. Lehrer und Schüler dahinter waren Freund. Oder alles schwieg still, als erwarte man einen. Unhörbar rührte ich die Klinke an. Die Sonne tränkte den Flecken, wo ich stand. So schändete ich meinen grünen Tag und öffnete. Niemand schien mich zu kennen. Wie der Teufel den Schatten des Peter Schlemihl, hatte der Lehrer mir meinen Namen bei Beginn der Stude einbehalten. Ich sollte nicht mehr an die Reihe kommen. Leise schaffte ich mit bis Glockenschlag. Aber es war kein Segen dabei.
이 짧은 글에 농축시켜 놓은, 한번 쯤 학교에 지각을 해 본 사람의 가슴을 짜릿하게 울리는 것들을 어떻게 이야기 할 것인가. 학교에 지각했을때, 그때를 떠올리면서 한번 이렇게 풀이해보자.
모두 학교에, 교실에 들어가 있어서 교정은 조용하다. 그렇게 많은 학생과 선생들이 왁자 찌껄하던 학교 가는 길, 운동장, 복도에는 이제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그곳을 너무 늦었다는 조급함을 가지고 뛰어 지나간다. 교정에 있는 시계는 이미 수업 시간이 지났음을 알려준다. 수업 시작 시간이 '지났다'는 것이 확실한 이상, 그 시계가 몇시 몇분을 가리키고 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 시계가 내게 알려주는 것은 다만 내가 '너무 늦었다'는, '지각했다'는 것 뿐이다. 그 시계는 내 잘못 Schuld 때문에 고장나서, 그렇게 '너무 늦었다'라는 것만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긴 복도에 연해있는 내 교실 문 앞에 서서 망설인다. 어떻게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갈 것인가. 문안에서는 마치 비밀스러운 회의라도 열리는 듯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문 뒤에서 선생님과 다른 학생들은 함께 '너무 늦게 온' 나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 비밀스러운 회의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거기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어쩌면 그들은 지각한 내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리며 숨을 죽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소리가 들리지 않게 문 손잡이를 돌린다. 그 순간 날 향해 내리쬐던 햇빛은 내 죄로 인해 생겨난 얼룩과 오점 Flecken이 더 확실하게 드러나 보이게 했다. 그렇게, 그 누구에게도 감출 수 없게 나는 내 청순한 날을 더럽히고 schaendete - 마치 청순한 처녀를 범하듯 - 교실 문을 열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나를 선생과 학생들은 마치 알지 못하는 사람처럼 쳐다본다. 출석을 부를 때 선생님은 내 이름을, 페터 슐레밀의 그림자를 악마 - 신비한 노인 - 가 땅에서 떼어내 돌돌말아 챙겨넣듯이, 챙겨서 가지고 있었다. 그는 내 이름을 돌려주지 않았다. 그는 내가 지각을 했다고 기록한다. 그 댓가로 나는 내 자리에 가서 앉지 못하고 다른 곳에 서서 1교시 수업이 끝날때까지 있어야 했다. 나는 숨을 죽이며 조용히 수업 종이 울릴 때까지 Glockenschlag 죄인처럼 서 있었다. 하지만 종이 울리고 나서도 내 죄를 사해주는 축복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첫댓글 독일어로 읽는다고 하여도 한 문장을 읽고 한참을 생각하지 않는 이상 김남시님처럼 읽을 수는 없겠지요.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를 생각합니다. 참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조급하고, 불안하게 지각을 해보았던 기억을, 벤야민의 이 글이 떠올리게 해 주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의 글들은 그 자신의 회상이면서 동시에, 독자의 회상의 매개체이기도 하는 셈이지요.
벤야민의 짧은 에피소드가 본래의 뜻으로 다시 살아 숨쉬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 시간이 제 경험과는 무관하지 않은 유배의 시간을 떠올리게 하네요. 늦음은 언제나 너무 늦은 것일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벤야민이 위 글을 쓸때의 삶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너무 늦음 Zu Spaet'이라는 저 단어는, 그가 지나간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되돌이킬 수 없는 unwiederbringlich', 그래서 짜맞출수 있는 조각 Scherbe 이 아니라 그럴수 없는 파편 Truemmer 으로 존재하는 과거의 이미지와 관련되어 있을 것입니다. 수업종이 울릴 때까지 서 있었건만 결국 얻을 수 없었던 축복처럼요. 그렇게 지나가 버린것은 '섬광처럼' 휙하고 지나가는 그림 Bild 으로만 회상될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