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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기간 내내 일찍 일어나 주변을 산책하는 버릇은 오래된 습관이다. 숙소에서 가까운 공소가 있어 아침 기도를 하려고 다가 갔다. 동쪽 마을 건너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성전에 들어가려 문을 밀자 끔 적도 안 했다. 다시 가만히, 그래도 마찬가지다. 아직 문을 열어 놓지 않은 것이다. 성전 마당을 산책하다 다시 가보니 그제서야 문이 열려 입 당한 후 묵상과 기도의 시간을 갖었다. 기도의 내용은 대부분 순례와 걸음 여행에 관련된 내용들이다.
그리고 조용히 나와 용수 성지 마당을 곳곳이 다니며 산책을 즐겼다.
산책을 하면서 기념관으로 들어가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유해가 모셔진 유해 공경 실에서 무릎을 끓고 기도를 드렸다. 기도를 마친 후 옥상으로 올라 가 동이 트는 새벽 해안선을 마주 보며 아름다운 풍경에 빠져 들었다. 그리고 라파엘호 주변 연못을 내려다 보다 성모님 모습이 크로즈업 되어 내려가 살펴 보았다.
소나무 새순이 자라는 모습이 성모님을 뵙고 사람들이 환호하는 모습을 닮은듯하여 함께 찍은 후 다시 성모님 등 뒤에 서서 성모님의 시선을 보았더니 당신의 아드님이 계신 성전이 바로 성모님 시선의 끝이었다.
무슨 의미일까? 하는 생각을 추후 정리해 보기로 하였다. 아침 성지를 순례하면서 성모님과 관련된 화두가 생긴 것이다.
성전에서 묵상과 기도 중 데레사 총무님과 한운문, 황치애 자매님이 들어 오셨었다. 기도를 끝내고 나오신 후 함께 동행하며 아침 풍경을 스마트폰에 담기 시작 하였다.
그러다 갯바위 부근을 찾아 해국(海菊)을 보고 다른 야생화를 보면서 신비로운 생명이 빛을 보게 된다. 오묘한 영롱한 빛이 담긴 야생화를 통하여 빛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게 된 것이다. 파도가 잠든 해안선! 고요와 함께 아름다운 해무가 몽한적으로 다가 왔다. 지독한 풍랑으로 파도의 크기는 악산처럼 높고 거칠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라파엘호, 당시 강풍 앞의 등잔불처럼 위태로운 신세였을 것이다. 배는 거의 반파의 신세, 결국 승선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기도밖에 없었을 것이다. 지속적인 기도 안에서 기적은 일어났다.
하늘에 별이 뜬 것이다. 바다의 별이 라파엘호의 운명을 지속시키고 승선자 모두는 성모님의 자비심과 하느님의 가호 안에서 간신히 제주 용수 앞 바다 갯바위에 도착한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첫사제 안드레아 신부는 고국에서 첫 미사를 집전하게 된다. 그러나 잠시 후 이곳이 육지의 목적지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서둘러 배를 수리 후 다시 닺을 세우고 배를 북쪽으로 띄운다. 그리고 도착한 금강하구 강경 나바위~~~
산책 후 숙소로 돌아와 분위기를 살피니 모든 것이 편안하게 생동감있게 움직이고 있었다. 3층에 계신 수녀님들과 만나 인사를 나눈 후 식당으로 가 조반을 챙겼다. 평상 시에는 아침을 안먹고 지내왔는데 여행중에는 거르지 않고 먹는 편이다. 여행중 가장 중요한 요소는 동료들과 종적 힁적 소통이며 다음에는 음식과, 잠 자리와 컨디션이다. 소통과 컨디션만 제대로 이뤄진다면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쾌적한 컨디션은 잘 먹고 잘 자고 잘 소통하면 최상을 유지할 수 있다. 오늘은 A팀이 서울로 귀경하는 날이다. 참 아쉽다. 함께하였으면 함께 오고 함께 돌아 간다면 좋으련만 직장문제로 조기에 귀경해야 함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이별은 슬프다. 귀경팀은 짐을 전부 빠트리지 말고 차에 실토록 조치한 후 성 이시돌 성지를 향해 출발하였다.
도착하여 인증 샷을 기록용으로 남겨 놓고 은총의 동산을 걷기 시작하였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성스럽고 경이로운 풍경이 더욱 더 알차게 마음에 파고 든다. 은총의 동산! 사랑과 자비를 마음껏 육신에 담을 수 있는 동산이 아니던가! 참여자가 돌아가며 복음서를 읽었다. 그리고 다함께 묵상과 기도를 하였다.
이곳의 원래 지명은 삼뫼소 은총의 동산이었다. 세 개의 오름 안에 있는 연못이란 뜻으로 정해졌으나 축성식을 하면서 새미은총의 동산으로 급 변경된다. 지역사회와의 화합을 뜻하기도 하는 이름이지만 SAEMI 표기는 라틴어로서 santus (거룩함), anima(영혼), evangelium(복음), mediator(중계자), image(하느님의 모상)을 뜻하고 있다. 새미 은총의 동산은 주님의 은총과 순례자들의 기도가 마르지 않는 샘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동산이란 의미다.
1. 예수님의 생애 공원 - 예수의 탄생과 수난 전의 이야기가 각종 형상물, 복음서와 함께 스토리가 전개되고
2. 수난을 묵상 하는 십자가의 길이 열려 묵주기도 호반에서 15처로 끝나며
3. 동시에 5000 여 명의 교우들이 모여 미사를 참례 할 수 있는 삼위일체 야외 원형 성당이 펼쳐지고,
4. 묵주기도를 명상과 묵상과 함께 호반을 걸으며 드릴 수 있는 호반 묵주기도처가 편안함을 주고
5. 야외 미사와 함께 성모님과 소통 할 수 있는 성모 동굴과 그 앞 벤치의 쉼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6. 마지막으로 하느님을 만나게 되는 순례자의 길 리버런스 순례자의 길이 있는 곳이 바로 새미 은총의 동산이다.
세계에서 유래를 찾어 볼 수 없는 규모다.
그리고 복음에 담긴 뜻을 다시 헤아리고 의미를 사실화 시킬 목적으로 주제와 일치는 하는 분위기를 연출하며 기록도 남겼다.
은총의 동산이 끝나면 이어서 원형 광장을 마주치게 된다. 십자가 형태의 광장, 이곳은 삼위일체 야외 대성당이다. 약 5000명의 신자들이 모여 야외 미사를 볼 수 있는 장소다. 십자가 형태는 단적으로 신자들이 구현할 삶의 중심이 들어 있다는 생각을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천상과 천하의 연결로서 얻어지는 복음적 깨달음을 삶의 균형으로 삼아나가며 온 누리의 모든 것들과 착함의 배려적 행위로 평화로서 소통한다는 개념을 완성한다는 생각, 은총의 동산의 복음적 기도와 묵상의 시간을 끝낸 후 잠시 대형 삼위일체 야외 대성당 원형 십자가 광장 중앙에 앉아 머물렀다.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십자가의 길,
은총을 정말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예수님의 일생 즉 극적인 장면을 사실화시켜 놓은 십사처의 형상물들 우리 순례단들의 방문에 맞춰 새롭게 금색빛으로 설치되어 있었고 최종 단계는 지금도 설치하는 중이었다. 이런 기분으로 시종일관 기도와 묵상의 시간을 이어갈 수 있었다. 호수의 둘레에 호양목을 심어 묵주로 만들어 놓아 묵주기도를 드릴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묵주 호반을 지나며, 연이어 예수 마리아를 청하였다.
그리고 성모님 동산에 모여 정리하는 기도와 묵상의 시간을 갖은 후 교중미사를 참례하기 위하여 삼위일체 성당으로 향하였다. 리모델링관계로 금악성당 즉 글라라 수도원 성당에서의 미사가 멈춰졌었는데 리모델링을 끝내고 다시 금악성당에서 미사가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서둘러 삼위일체 성당으로 총무님께 연락하여 장소 이동을 알렸다. 그리고 금악성당 입구 성 글라라 상 앞에 서서 일행을 기다렸다. 생각 같아서는 버스를 보내 모두 탐승한 후 이동할까 하였지만 우리들의 지금 신분은 분명 순례자들 아닌가! 순례자는 모든 것을 걸으며 사색하고 묵상하며 기도하며 자신을 성찰하고 성찰의 맑음으로 순교성인들의 발자취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발자취~~ 걸어서 느껴야 한다.
한 때는 양모산업으로 호황을 누린 적이 있었다. 담요와 쉐타 제품들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성 이시돌 목장의 수입원이였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값싼 제품이 밀려 와 쇠락의 길을 걷는다. 제주도에서 해녀들을 뺀 여성들을 취업전선으로 이끌었던 양모산업이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유제품 판매사업과 종마사업으로 벌이 들인 전액은 호스피스 병원과 양로시설로 투입되지만 년간 3억 정도의 손실을 입고 있다. 26살의 나이로 한국 땅을 밟은 콜롬반 수도회 소속 임피제이 신부님은 양돈은행을 만들어 가정마다 양돈을 키워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려 하였고 이어서 목축업과 양모사업으로 종마사업으로 시대의 발 맞춰 성 이시돌을 이끌어 오셨다. 지금도 이렇게 말씀하신다. 적자가 발생되지만 제주도민들이 5000원에서 10,000원씩 도와 주실 것이기에 마래가 밝다 하신다.그리고 제주도 난개발에 대하여 우려하신다. 마구잡이로 외국 자본이 들어와 제주도 고유의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하신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이끌어 왔는데 너무 자연환경이 자본의 힘에 의하여 맥 없이 무너진다고 걱정하신다. 우리 스스로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삼위일체 성당에서 부터 걸어 오시는 순례자들, 참 보기가 좋다.
금악성당 광장에 서 계신 열혈한 성 글라라~~ 우리 순례자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하고 기도하였고
금악성당 내부 회랑과 같은 복도에 모셔진 성모님께 인사를 드리며 다시 또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자비를 내려 주옵소서~~^^ 기도 드렸다.
입당하면서 . 제대 중앙을 바라보면서 마주 친 다미아노 십자가! 심오한 찬미심으로 이끌어 주셨다. 평소보다 더 깊게 허리가 굽혀졌다. 뜸을 드리며 서서히 허리를 핀 후 눈울 감은채 양 손을 모으고 속삭였다. 물런 화살기도다. 주님 세베리노외 14명의 순례자가 왔습니다. 당신을 경외하고 사랑하며 믿음의 세상으로 나아가다 순교한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라 걷기 위하여 여기에 왔나이다. 또한 당신께서 창조하신 뜻과 그 안에 가득한 질서의 본 뜻을 성찰하며 믿음으로서 자신의 삶과 공동체의 평화를 얻으려 왔나이다. 부디 이를 허락하여 착함의 본성으로 모두 얻게 하소서 아멘~~^^
금악성당은 봉쇄 수도원인 글라라 수도원이다. 금악 오름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제2회가 운영관리하는 금악성당 방문과 교중미사 참례는 감회가 달랐다.그것은 같은 형제회 소속으로 자부심이라 생각하여도 좋다. 개인적으로 감기 기운으로 터져 나오는 기침이 심해 잠시 피해 복도로 나왔다. 물을 마시고 호홉을 깊게하며 다스리가 다시 입당하여 간신히 미사 참례를 마친 후 수녀님에게 부탁을 드린 후 함께 단체촬영 시간을 갖었다.
예수님의 일대기가 그려진 다미아노십자가를 보는 순간, 눈물이 비쳤다. 은사일까? 회한일가? 늘 존경과 경외심으로 바라 보게 되는 고상이다. 철저히 자신을 내려 놓고 사셨던 일생은 인간들의 양면을 보시며 답답하고 괴로웠던 순간이 많으셨지만 이 모든 것을 사랑과 자비심으로 일관하신다. 제대로 따르지 못하는 자괴감이 만든 회한이다.
성당에서 봉쇄 수도원으로 연결되는 안쪽에 모셔진 성글라라 청동상이다. 좀체로 보기 쉽지 않은 청동상, 아씨시 성 다미아노 성당으로 가는 길에 서 있던 청동상과 포르치운쿨라 전체를 관람하고 나오는 길목에 서 있던 사부님의 청동상이 떠올랐다. 사람들의 손 때가 얼마나 탔던지 반질 반 질하던 모습, 성 글라라 청동상이 새삼 그 때 그 시간으로 이끌어 주었다. 마침 수녀님께서 계셔서 3회 회원임을 알리고 촬영허락을 받은 후 촬영한 사진이다. 마침 주변에 계셨던 형제, 자매님들도 모셔 사진을 만들어 드렸다. 금악성당에서 모든 일정을 마치고 성당 밖으로 나왔다.
금악성당 배경으로 별리의 마음을 사진으로 남겨 두었다. 마라도에 포르치운쿨라를 세우신 민성기 요셉 신부님은 어느날 금악오름을 올라 이곳을 내려다 보며 글을 남겼다. 그 전문을 시간이 될 때 읽어 드리거나 게재를 하려고 한다. 기다려 주신다면~~^^ 기다리는 형제들은 댓글란에 의사표시를 해 주신다면 읽어드릴 것이고 게재를 하는 형제가 없으시다면 패스 그냥 패스~~~ 하려고 한다. 성 이시돌 성지에서 많은 시간이 흘렀다. 오후에는 관덕정, 주교관이 있는 중앙성당을 참례하려고 한다. 그리고 시간이되면 절물휴양림을 걷고~~~ 그러나 결과는 시간이 부족하여 점심식사, 관덕정, 중앙성당, 쇼핑타운을 드른 후 덤장으로 자리를 옮겨 식사를 마친 후
중앙성당에서 참례를 마친 후 걸어서 관덕정까지 왔다가 어깨에 매고 다니는 빽을 놓고 온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앗불싸! 돌아서서 뛰었다. 그러나 마음은 요동이 없었다. 다시 성당으로 입당하여 앞 자리로 이동하자 청년들이 모임을 주관하다 들어다 준다.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돌아서 계단을 내려 오는데 체칠리아 자매님과 조우하게 된다. 걱정이 되어서 뒤 따라온 모양이다. 우린 서로 얼굴을 보며 이구동성으로 성당 안에서 발생된 문제라 잘 해결된 것이라고 하며 웃었다. 한편으로 속 마음으로..... 속삭였다. 주님 감사 감 사하나이다. 아멘~~^^
공항에서 이별하였다. 나의 임무를 체칠리아 자매님에게 당부한 후 짐을 내려 주고 손을 들어 배웅하는 것을 끝으로 남은 순례자들은 숙소로 버스를 타고 이동하였다. 이동중에 카톡소리가 들린다. 슬며 시 보자, 비행기 탑승, 우리도 한라산 가고싶당 등등 소식이 전해 오고 있었다. 이 카톡은 김포공항 도착, 집으로 귀가 중 까지 계속 중계되어 이어져 나갔다. 참 좋은 세월이다. 실시간 중계가 가능한 세월이니 좋은데 너무 넘치니 신비감은 사라져 가는 안타가움도 생긴다. 숙소로 돌아 온 일행은 일찍 잠을 청하였다. 내일을 위하여....
순례와 걸음 여행 마지막 날
새벽부터 움직였다. 곤하게 잠든 새벽 조용히 샤워를 한 후 숙소를 빠져 나왔다. 그리고 주변 언덕을 천천히 걸었다. 해안선에도 옅은 안개가 퍼져나가고 있었다. 습도가 높고 열기가 다시 오르기 시작하는 해안선을 걸으며 산책을 하다 아침을 순례자들과 챙긴 후 먼저 짐을 챙겨 나온 순례자들과 우리를 위해 봉사 정신으로 도와 준 스테파니아 형제와 구리에서 오신 수녀님 일행과 사진을 찍었다.
차량을 이용하여 성판으로 옮긴 후 등반준비를 하기 시작하였다. 여러가지 조건을 세세하게 점검한 결과 사라 오름이 적당한 걸음 여행이란 판단이 서서 급변경한 것이다. 약 4시간 정도의 소요가 일반적이지만 우리의 형편은 6 시간 이상 잡아야 하는 것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오름이 시작되는 구간 아래에서 쉬도록 배려하며 올랐다. 남풍에서 오는 산바람이 참 근사했다. 진달래 산장으로 가는 길목 삼거리에서 쉬며 후미 팀을 기다려 수습 후 나무 계단으로 달라 붙었다. 경사진 나무 계단 끝에 사라호수가 있고 호수 주변에 설치된 나무테크를 따라 걷다 다시 오르는 계단을 5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사라 전망대가 나온다. 그곳에서 오수를 즐길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했었다.
전망대에 오른 후 전부 신발을 벗고 눕는다. 언제나 바람 잘날 없는 사라오음, 진달래 능선 뒤로 한라산 남벽이 보인다. 여름날 이곳에서 은하수를 잡은 적이 있었다. 그 아름다움은 평생 잊지 못한다.
강한 바람 사이를 비상하는 새의 모습이다. 잔득 움크리고 비상 초기 모습이다. 기류를 탄 후 날개짓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지금은 자연비상의 순간이다. 뒷바람의 영향으로 솟구쳐 오른 후 날개짓을~~~ 그리고 유영의 순간을 맞이하는 것이다.
비로서 창공을 오른 후 날개를 수평으로 펴고 유영 중이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볼 수 있다.
사라 오름의 세죽 즉 조릿대는 유명새를 달리 한다. 광활한 조릿대 밭이 펼쳐지는 곳이 바로 사라 오름이다. 바람이 강한 곳이라 활엽수들은 살아 남지 못한다. 단풍이 드는 가을날 풍경도 좋지만 백설이 난분분하고 쌓이는 날 찾으면 설경에 도취되는 곳이 이곳이다. 한라산 어디를 가나 다 좋지만 설원의 광활함이 설경을 더욱 더 깊고 넓게 가꾸어 스키장 슬로프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강풍에 흔들리는 조릿대를 보며 견디는 모습에서 희망을 본다. 강풍이 휩쓸고 지나가면 눕고 다시 일어서기 시작하며 다시 조릿대 머리를 눕혀 버리는 바람의 장난치는 모습이 참 정겹다. 그럴적 마다 들리는 대 잎 스치는 사그락 소리는 꼭 파도치는 소리와 같아 자꾸 눈이 가고 귀가 열렸다.
시간이 벌써 오후로 접어 들었다. 내려가야 할 시간이다. 내려서기 전에 모이도록 청한 후 사진을 스크랩하고 전망대를 떠났다.
물이 한 방울도 없는 사라 호수, 누군 말이 달려도 좋겠다 한다. 오름 중 유일한 호수가 있는 곳인데 아쉽다. 약 7년 째 물 가뭄에 시달리는 곳이 바로 대한민국 요즈음 실정이다. 유엔에서 물 부족 국가라 지정할 만큼 옛날과 같지 않은 곳이 우리 실정이다. 물도 자원 관리처럼 섬세하게 해야 한다. 이렇게 물이 없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는데.... 아쉽다. 그리고 샘이 얼마나 좋아 던가. 오염으로 끊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경악하였다. 전기 차 이외 운행은 금지 시켜 청정 지역으로 환원해야 하고 난 개발을 막아 창조적 질서로 회귀가 우선인 것 같다. 너덜 지대처럼 돌이 많은 곳도 많은 성판 악 길. 그리고 긴 동선 걷기에 참 고역이다. 누군 징검다리 건너가듯 누군 뛰어 넘는 재미를 상상하며 걸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후반부에 가서 치고 달렸다. 왜? 목이 마른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달려 내려와 휴게소로 가 생수를 사들고 다시 등반로 입구로 가 만나는 걸음 여행 팀에게 나눠 주기 시작하였다. 시간이 참 많이 흘렀다. 그래도 사고 없이 완등 해 주신 걸음 여행 대원들에게 감사드린다. 그리고 평화로 이끌어 주신 우리 주께 감사드리고 다음 일정은 모두 포기하기로 하였다. 용두암 부근 식당으로 가 회 덮밥과 전복 죽으로 요기하고 비행기 탑승 시간까지 휴식을 취하기로 하였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 2층, 신발을 벗고 작은 온돌 방처럼 꾸며 놓은 상 침에 앉으니 등이 편하고 다리 또한 아늑해 졌다. 아이스 커피를 마시며 다과를 나누며 달콤한 휴식을 취하였다. 노을이 지는 시간까지 있다가 버스를 타고 공항에 도착하였다. 탑승하기 까지 혼란은~~ 상상 외다. 시설의 부족함에서 오는 혼란, 이런데도 현 주민들은 제 2 공항 시설에 반대하고 있단 다. 이유야 있겠지만 상생해야 하는 입장에서 고찰 되어야 할 것 같다.
어렵사리 오른 비행기 안, 발권을 할 때 여정의 피로를 풀기 위하여 충분한 휴식 공간을 위한 좌석을 준비하려고 앞 자리로 배정을 받아 두었다. 잘한 일이었다. 좌석 공간이 넓으니 편안하였다. 짧은 시간이지만,.... 김포공항에 도착, 김정융 안드레아 형제님께서 손수 나오셔서 박카스를 나눠주셨다. 감사드린 후 함께 한 일행과 이별의 시간을 나눔 하였다. 그리고 혼자 남아 차에 올랐다. 달리는 강변를 보면서 3박 4일간의 순례와 걸음 여행 일정이 스크린 되었다. 아름다운 추억이 될 것이다. 눈을 감은채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세베리노 제대로 최선을 다했는가! 엄정한 질문을 던졌다. 아니요! 왜? 한 계단식 성숙해 나가는 것이 보기 좋을 것 같아서요. 변명이 궁색하다. 최선을 다 하지 못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세세하게 기록으로 남겨 재발을 방지 할 것이다. 다시 돌아 올 곳이 있기에 여행이란 용기를 낼 수 있는 것이다. 돌아 올 곳이 없다면 영원한 유랑이지 여행은 될 수 없다. 유랑자는 순례자와 걸음 여행자가 될순 없다
일상에서 일탈이 아니라 천주의 동산을 거닐다 돌아 온 것이다. 믿음의 증거가 되고 착함으로 평화를 생산할 수 있는 의지와 용기를 얻었다면 다행이다. 평화는 극복의 순간이기도 하다. 무엇으로 극복할 것인가? 그것은 바로 착함이다. 그래서 함축하여 평화와 선이다. 함께 해주신 순례와 창조적 질서를 사랑하시는 형제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함께 한 시간들 안에서 만들어진 평화의 시간들 너무 소중하다는 사실을 고백하며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꾸벅~~^^ 평화와 선! 언제나 어느곳에서나, 다함께.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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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최선을 다하신 리더님!
존경합니다~
감사 함니다.^.
수고 참 많이하셨습니다., 죽울 것 같은 사람 오름의 순간 지나니 행복으로 다가옵니다, 고통의 순간은 늘 견딜 수 있다는 진리를 스스로 체험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