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맥은 본래 깊숙이 흐르고 있어서 우물을 파는 사람의 삽질과 땅 속의 물줄기를 일치시키기란 그렇게 쉽지 않다. 그래도 교사는 ‘우리들의 수맥은 어디에 있는가?’를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우물을 파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 삽질은 대개 헛 삽질에 그치고, 돌보지도 그리고 생각하지도 않은 엉뚱한 곳에서 느닷없이 터져 나오는 물줄기에 온 몸을 적시며 그들은, 나는 감동하고 기뻐하고 보람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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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근무지는 바닷가 학교였다.
바닷가 가난한 마을의 아이들은 영원히 잊지 못할 나의 첫사랑들이었다. 그 아이들과 이 년을 함께 지내다 헤어지던 날 운동장 사열대에서 그들에게 이별의 인사를 이렇게 했다.
새벽 첫기차를 타면 마음이 설레는 이유는 기차가 처음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첫눈이 기다리는 손님처럼 반가운 이유는 처음 눈이 내리기 때문입니다. 첫사랑이 가슴 속에 문신처럼 새겨져서 지워지지 않는 이유는 사랑을 처음 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나의 첫사랑입니다.
바닷가 아이들을 남겨두고 공주로 전근을 했을 때, 그곳 아이들은 첫근무지의 병윤이나 기환이처럼 순박하지도 않았고, 병순이나 규욱이처럼 영리하지도 않았다. 나는 첫사랑을 잊지 못해 상사병에 걸려 있었다. 교실에서도 날마다 서해 바다 쪽을 바라보며 바닷가 모래알 같은 이름들을 끄집어내고 있었다. 그 무렵 교실 복도에서 담배를 피우다 재수없이(?) 걸린 유식이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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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유식이와 그렇게 처음 만나던 날, 이미 다른 선생님들에게 벌어두었던 매질로 멍이 채 가시지도 않은 그 아이의 종아리를 나는 피가 맺힐 때까지 다시 쳤다. 교칙에 따라 처벌을 받아야 마땅했으나 유식이는 담배 피우다 걸린 그 건으로는 벌을 받지 않아도 되었다. 내가 그를 얼마나 심하게 다루었던지, 그 현장에 있었던 선생님 중에서는 강유식을 징계하자는 말을 먼저 끄집어내는 선생님이 아무도 없었다. 그날 이후 나는 그 일을 다시는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유식이는 이런저런 말로 꾸짖기보다는 아무 대꾸조차 없었던 내가 오히려 더 두려웠을 지도 몰랐다. 마치 폭풍 전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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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식이 아버지는 이발사였다. 하루는 그에게서 만났으면 하는 연락이 왔다. 그리고 술잔을 권하면서 아들이 자신과 같은 부류의 직업을 가지는 것이 싫으니 선생님께서 좀 도와주시라는 말씀을 했다. 유식이는 아버지 몰래 색소폰을 배우다가 들킨 모양이었다. 다소곳이 머리를 숙인 채 아무 말씀을 아니하시고 남편의 눈치를 살피면서 삼겹살만 굽고 계시는 태도로 보아 어머니는 유식이가 색소폰을 불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던 듯했다. 선생님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아버지의 희망사항이 어렵사리 밝혀지고 나자 나는 그만 가슴이 답답해졌다. 유식이는 공부라는 놈과는 그전부터 벌써 담을 쌓고 살아가는 인생이었다.
우리는 색소폰을 계속 하는 방법에 대해 연구를 했다. 결과는 성적이 지금 여기서 조금이라도 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충분히 가능한 방법이었다. 더 이상 떨어지거나 할 것도 없는 성적이었으므로.
아버지에게는 ‘학습동기유발’과 같은 어려운 말을 써 가면서 색소폰을 계속 배우게 하는 것이 유식이가 성적을 올리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날 이후 유식이는 계속 색소폰을 불었다. 색소폰을 불기 위해 생전 처음 시험공부라는 것도 시작했다. 유식이 아버지는 은혜를 갚을 길이 없다고, 마치 유식이가 선생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들떠서 인사를 했지만, 그럴수록 내 마음은 답답해지기만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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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 유식이는 가출을 했다. 유식이 어머니는 무전기 소리처럼 다급하고 짧은 목소리로 타전을 해왔다.
“나갔어요, 유식이가. 집 나갔어요, 우리 유식이가.”
유식이 어머니는 똑 같은 소리를 반복하고 있었다. 나는 유식이와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 집으로 전화나 대애충 몇 통 했다. 그리고 나서 약간 걱정스런 표정과 좀 침울한 음성을 섞어서 유식이 어머니를 위로했다. 돌아올 때까지 한 번 기다려보자는 뻔한 말로. 그때 유식이 어머니 앞에 놓인 제과점 테이블 위의 팥빙수는 저 혼자 녹아내리고 있었다.
며칠 후 유식이는 제 발로 돌아왔다. 강원도 속초 바닷가에서 놀다가 돈이 떨어지자 별 수 없이 스물스물 기어들어온 것이었다. 나는 그 아이에게 집을 나간 이유는 묻지 않았다. 팥빙수 한 그릇을 다 비울 때까지 우리는 서로 아무 말이 없었다. 헤어지면서 제과점 자동문 앞에서 유식이는 꾸벅 인사를 했다. 나는 그때야 비로소 그에게 그날 제 어머니의 모습을 전해주었다. 네 어머니는 여기서 그 팥빙수를 차마 드시지 못했노라고. 팥빙수 한 그릇이 전부다 녹을 때까지 눈물만 흘리시더라고.
공주의 그 학교에서는 이러하고 저러한 사정으로 일 년만에 근무를 마치게 되었다. 다음 근무지인 논산으로 이사하던 날 유식이는 소고기 한 칼을 신문지에 싸들고 집으로 찾아왔다. 잔칫집 손님처럼 북적거리는 짐 때문에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잠시 엉거주춤 서 있다가 우리는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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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으로 근무지를 옮긴 후 나는 행복했다. 예전의 학교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 꽃이 피고 지는 정원, 밝은 표정의 아름다운 여학생, 따뜻하고 친절한 서무과 여직원, 수세식 변소, 그리고 여학생들과 함께 드리는 금요일의 미사. 공주를 잊었다. 유식이도 잊었다. 유식이는 가끔 전화나 편지로 안부를 물어왔지만, 다른 아이들의 편지나 다른 아이들의 전화 목소리와 함께 책상 서랍 속이나 기억의 저편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낙엽이 두 번 지고, 눈이 내리고, 그리고 어느 봄날. 불쑥 유식이가 우리 집에 나타났다. 제주도 고층 빌딩에서 네온사인 불빛을 붙이는 일을 하면서 한 번도 나를 잊은 적이 없었다는 유식이는 첫 월급으로 준비한 넥타이핀을 얼굴을 붉히며 내 무릎 밑으로 밀어 넣었다.
나는 언제까지 내가 돌보지도 않은 곳에서 제 스스로 터져 나오는 물줄기에 내 온 몸을 적셔야 하는가. 우물을 파는 나의 삽질은 언제쯤 수맥과 일치할 것인가. 나는 그날 좀 부끄러웠다.
*
바람꽃
바람 많은 제주도
칠 층 건물에 풍선처럼 매달려
이미 너를 잊은 선생을 너는 잊지 못해
간판을 달면서 까무러칠 때마다
하느님 대신 내 이름을 불렀다지만
꽃물이 맺힐 때까지 종아리 친 일밖에
내가 준 건 달랑 성적표 한 장
가끔, 바다 속으로 깔려있는 케이블을 타고
안부를 묻는 네 전화 목소리가 들릴 때에도
천리 물길 속을 걸어온 너의 마음이라고
한 번도 생각한 적 없었는데
첫 월급을 받은 날
고생고생 살아가는 부모님보다 더 먼저
토요일이면 관촉사 벚꽃구경이나 하는
편하게 사는 선생을 찾아 왔구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내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이제는 하느님 대신 너의 이름을 부르마
그런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학교 뒤뜰의 목련 꽃잎을 흩어놓고 가는
저 바람에 실어서
칠 층 건물에서 풍선처럼 흔들릴
유식아, 너에게로 날려 보낸다
*
한 달 후 유식이는 간판을 달다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선물로 준 넥타이핀을 한 번 달아보기도 전에 그 아이는 서둘러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때까지도 교무실 책상 위에서 그 넥타이핀은 빛나고 있었는데.
일급정교사교육을 받던, 햇살이 가장 뜨거웠던 어느 날, 그물을 빠져나온 물고기처럼, 나는 공주교원연수원을 나섰다. 그리고 유식이의 뼛가루가 뿌려진 곰나루에 술을 부었다. 여름 하늘 아래 금강은 아무 말 없이 답답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선생님의 별뜻없는 한마디말이나 행동이 누구에겐 대단히 인상깊은 기억이 되듯이, 매년.. 선생님을 만나는 학생등 중에 또다른, 많은 유식이가 있을 거예요... 유식이처럼 표현하지 못하고 가슴에 남은 추억들과 기억으로 가끔 여고시절로 젖어드는 수많은 어머님?^^ 들도 있을 거라고 봅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셔요... *^________________^*
늦었지만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유식이를는공부하기 싫어하는 저의 학창시절과 비교해 봤습니다. 선생님들이란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직업입니다. 무쪼록 돌보지않은곳에서 스스로 터져나오는 물줄기가 되어서는 않될걸로 압니다. 진정한 스승으로 오늘도 열심히 주어진 삶을 영위해야지요. 글이 너무 가슴에 ....
첫댓글 고맙습니다.......... 마음이 아프면서도 따뜻해집니다.
돌보지않은곳에서 스스로 터져나오는 물줄기... 그러시겠지 했지만, 또 이렇게 꺼내놓으신 마음- 참 고맙습니다..마음깊은 공유, 아프고따듯하고 위로받은마음이예요. 받은 사랑- 잘 뿌리겠습니다.. 어디선가 터져나오면 고마움그지없을듯-
선생님의 별뜻없는 한마디말이나 행동이 누구에겐 대단히 인상깊은 기억이 되듯이, 매년.. 선생님을 만나는 학생등 중에 또다른, 많은 유식이가 있을 거예요... 유식이처럼 표현하지 못하고 가슴에 남은 추억들과 기억으로 가끔 여고시절로 젖어드는 수많은 어머님?^^ 들도 있을 거라고 봅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셔요... *^________________^*
늦었지만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유식이를는공부하기 싫어하는 저의 학창시절과 비교해 봤습니다. 선생님들이란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직업입니다. 무쪼록 돌보지않은곳에서 스스로 터져나오는 물줄기가 되어서는 않될걸로 압니다. 진정한 스승으로 오늘도 열심히 주어진 삶을 영위해야지요. 글이 너무 가슴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