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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시 |
2010년 7월 13일 화요일 19 :00-21:00 |
장 소 |
법원앞 - (제일은행 건물 3층 (법무법인 신성) - 박영주 변호사 사무실 |
토 론 책 |
시네 필 다이어리//정여울 지음// 자음과 모음 |
토론방식 |
자유토론식 |
기 타 |
* 정회원 및 관심있는 분들 많이 오세요. 환영합니다.
* 주차는 유료---법원 주변에 유료주차장 즐비 무료---제일은행 뒷길 도로에 개구리 주차 (마음이 좀 불편)
(지하철 3호선 거제역 8번 출구에서 3분거리 ---제일은행 건물 3층 (법무법인 신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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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언어’를 영화로 이해한다.
“사진 읽기를 통해 세계의 울퉁불퉁한 상처를 열정적인 철학의 언어로 해독했던” 롤랑 바르트가 상처 가득한 사랑을 그린 「색, 계」를 본다면 어떻게 해석할까?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개념으로 「순수의 시대」를 다시 보다면? 책에서는 이러한 질문을 풀어나가고 있다. 또한 조지프 켐벨, 수잔 손택, 질 들뢰즈, 프리드리히 니체, 카를 융, 가스통 바슐라르를, 이 시대의 영화「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굿 윌 헌팅」, 「시간을 달리는 소녀」, 「쇼생크 탈출」,「뷰티풀 마인드」, 「원령공주」 속으로 초대한다.
사람마다의 기호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에게 영화는 향유거리로써 즐거운 것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철학은 다소 따분하고 딱딱한, 우리와는 거리가 먼 존재로 치부되곤한다. 이 『시네필 다이어리』는 즐거워하거나 슬퍼하면서 본 이 시대 영화들을 철학자와 함께 보면 어떨까 하는 상상에서 나온 책으로 철학을 좀더 재미있고 쉽게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영화에 담겨 있는 희로애락이 우리의 삶과 닮아 있기에 우리는 영화를 통해 우리의 삶을 돌아본다. 저자는 이런 점에서 영화는 철학과 닮은 것임을 지적하며 현재 철학자의 목소리와 언어를 빌려 영화 다시 보기를 이 책에서 감행하고 있다. 제목의 '시네필(cinephile)’이란 곧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cinephile)’, ‘영화(cinema)와 철학(philosophy)의 만남’을 가리킨다.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같은 영화를 봤다는 이유만으로 ‘친구’가 된 것 같은 느낌이 좋다. 영화는 그렇게 전혀 다른 우리를 느슨하지만 따스하게 엮어준다. 좋은 영화는 스크린 위에서 상영될 때보다 마음속에서 오랫동안 상영될 때 더욱 빛을 발한다. 이 책을 쓰며 나는 오랜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속에서 매번 새로운 빛깔로 상영되는 영화의 힘을 감지했다. 아련하게 멀어져가는 영화의 기억을 생생한 감동으로 되살려준 멘토, 그것은 바로 ‘철학’의 메시지였다
1. 풍크툼, 세계와 나는 ‘상처의 틈새’로만 만난다
-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와 「색, 계」
2. 너를 찾으러 가는 길 끝에서 ‘나’를 발견하다
- 조지프 캠벨(joseph Campbell)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3. 편집되는 고통, 유통되는 슬픔을 넘어
- 수잔 손택(Susan Sontag)과 「굿 윌 헌팅」
4. 시간을 잴 수 없는 시간의 무한 탈주
- 질 들뢰즈(Gilles Deleuze)와 「시간을 달리는 소녀」
5. 지상에서 영원으로, 초인의 오디세이
-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 Nietzsche)와 「쇼생크 탈출」
6. 아비투스, 일상이 창조하는 미시적 권력의 지형도
-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와 「순수의 시대」
7. 내 안의 메피스토펠레스와 사랑에 빠지다
- 카를 융(Carl Gustav Jung)과 「뷰티풀 마인드」
8. 창조적 몽상은 너와 나의 ‘다름’에서 시작된다
-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와 「원령공주」
“우리는 살아가다가 전혀 예상치 못한 ‘타인의 삶’이라는 돌부리에 걸려 수없이 넘어진다. 하지만 흉터만 남는 것은 아니다. 그 상처로 인해 우리는 그전까지 보이지 않던 삶의 다채로운 풍경과 맞닥뜨리곤 한다.”---풍크툼, 세계와 나는 ‘상처의 틈새’로만 만난다? 중에서
“영화의 러닝타임은 두 시간 안팎이지만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영화가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상영되기 시작한다. 오랫동안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끊임없이 새로운 물음표를 던지는 영화들.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평생 ‘1인분의 삶’밖에 살 수 없는 인간이 ‘타인의 삶 속으로 스며들어 가는, 아주 제한적이지만 여전히 소중한 메시지의 통로가 아닐까.”---편집되는 고통, 유통되는 슬픔을 넘어? 중에서
“〈원령공주〉에서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려낸 숲의 수호신 시시신은 아마도 바슐라르적 몽상의 힘이 다다를 수 있는 상상력의 극단일 것이다. 생명력으로 충만하던 원령공주의 숲에 밤이 깃드는 시간, (……) 몽상의 세포가 깨어나는 시간, 대지와 휴식의 몽상이 시작되는 순간이다.”---「창조적 몽상은 너와 나의 ‘다름’에서 시작된다」 중에서
철학과 영화, 삶을 리모델링하는 인생의 쉼표
사람에 따라 취향의 차이는 있겠지만, 영화는 우리에게 즐거운 것이다. 영화에 담겨 있는 희로애락은 우리의 삶과 닮아 있다. 영화를 통해 우리는 일상의 삶을 보기도 하고 이루지 못한 꿈을 꾸기도 한다. 『시네필 다이어리』는 즐거워하거나 슬퍼하면서 본 이 시대 영화들을 철학자와 함께 보면 어떨까 하는 상상에서 나온 책이다.
2004년 『문학동네』에 「암흑의 핵심을 포복하는 시시포스의 암소―방현석론」을 발표하며 등단한 이래 다양한 매체를 통해 드라마, 영화 등의 문화비평을 하고 있는 문학평론가 정여울은 우리가 사랑한 철학자와 영화의 만남을 주선하는 메신저가 되고 싶어 한다. 2009년 7월부터 알라딘 창작블로그에 연재된 글들을 모아 만든 이 책은 처음부터 단행본으로 만들어지기 위해 기획된 저자의 첫 책이기도 하다.
“사진 읽기를 통해 세계의 울퉁불퉁한 상처를 열정적인 철학의 언어로 해독했던” 롤랑 바르트는 상처 가득한 사랑을 그린 「색, 계」를 어떻게 볼까?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개념으로 「순수의 시대」를 다시 보다면? 『시네필 다이어리』는 현대철학자의 목소리와 언어를 빌려 영화 다시 보기를 감행한다. ‘시네필(cinephile)’이란 곧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cinephile)’, ‘영화(cinema)와 철학(philosophy)의 만남’을 가리킨다.
새로운 영화를 보는 듯한 즐거움
이 책은 우리가 사랑하는 철학자 롤랑 바르트, 조지프 켐벨, 수잔 손택, 질 들뢰즈, 프리드리히 니체, 피에르 부르디외, 카를 융, 가스통 바슐라르를, 이 시대의 영화 「색, 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굿 윌 헌팅」, 「시간을 달리는 소녀」, 「쇼생크 탈출」, 「순수의 시대」, 「뷰티풀 마인드」, 「원령공주」 속으로 초대한다. 이 영화들의 공통점은 사람들이 많이 본 영화라는 것이다. 『시네필 다이어리』의 장르 크로스가 더욱 특별한 이유는 영화를 이야기하는 저자의 표현력에 있다. 저자 정여울이 묘사하고 표현하는 영화 이야기는 독자로 하여금 마치 새로운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먼저, 영화 속에서 언어(대사)로 등장하지 않는 문장을 읽는 재미가 있다. 예를 들면, 「쇼생크 탈출」에서 주인공 앤디가 도서관을 만드는 과정을 묘사한 부분이다. “그는 잃어버린 영토를 찾는 정복자나 탐험가가 아니라 ‘지도에도...철학과 영화, 삶을 리모델링하는 인생의 쉼표
사람에 따라 취향의 차이는 있겠지만, 영화는 우리에게 즐거운 것이다. 영화에 담겨 있는 희로애락은 우리의 삶과 닮아 있다. 영화를 통해 우리는 일상의 삶을 보기도 하고 이루지 못한 꿈을 꾸기도 한다. 『시네필 다이어리』는 즐거워하거나 슬퍼하면서 본 이 시대 영화들을 철학자와 함께 보면 어떨까 하는 상상에서 나온 책이다.
2004년 『문학동네』에 「암흑의 핵심을 포복하는 시시포스의 암소―방현석론」을 발표하며 등단한 이래 다양한 매체를 통해 드라마, 영화 등의 문화비평을 하고 있는 문학평론가 정여울은 우리가 사랑한 철학자와 영화의 만남을 주선하는 메신저가 되고 싶어 한다. 2009년 7월부터 알라딘 창작블로그에 연재된 글들을 모아 만든 이 책은 처음부터 단행본으로 만들어지기 위해 기획된 저자의 첫 책이기도 하다.
“사진 읽기를 통해 세계의 울퉁불퉁한 상처를 열정적인 철학의 언어로 해독했던” 롤랑 바르트는 상처 가득한 사랑을 그린 「색, 계」를 어떻게 볼까?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개념으로 「순수의 시대」를 다시 보다면? 『시네필 다이어리』는 현대철학자의 목소리와 언어를 빌려 영화 다시 보기를 감행한다. ‘시네필(cinephile)’이란 곧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cinephile)’, ‘영화(cinema)와 철학(philosophy)의 만남’을 가리킨다.
새로운 영화를 보는 듯한 즐거움
이 책은 우리가 사랑하는 철학자 롤랑 바르트, 조지프 켐벨, 수잔 손택, 질 들뢰즈, 프리드리히 니체, 피에르 부르디외, 카를 융, 가스통 바슐라르를, 이 시대의 영화 「색, 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굿 윌 헌팅」, 「시간을 달리는 소녀」, 「쇼생크 탈출」, 「순수의 시대」, 「뷰티풀 마인드」, 「원령공주」 속으로 초대한다. 이 영화들의 공통점은 사람들이 많이 본 영화라는 것이다. 『시네필 다이어리』의 장르 크로스가 더욱 특별한 이유는 영화를 이야기하는 저자의 표현력에 있다. 저자 정여울이 묘사하고 표현하는 영화 이야기는 독자로 하여금 마치 새로운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먼저, 영화 속에서 언어(대사)로 등장하지 않는 문장을 읽는 재미가 있다. 예를 들면, 「쇼생크 탈출」에서 주인공 앤디가 도서관을 만드는 과정을 묘사한 부분이다. “그는 잃어버린 영토를 찾는 정복자나 탐험가가 아니라 ‘지도에도 없는 영토’를 만들어내 놓고 마치 그곳이 오래전부터 거기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한다. 그로 인해 ‘리더스 다이제스트’와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빼고는 별로 자랑할 것이 없던 쇼생크 감옥 도서관은 총천연색 문화의 향기가 넘실대는 멋진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또한 영화 속 악당 노튼 소장의 표정으로만 표현되는 생각을, “이미 앤디를 자신의 ‘충직한 개’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믿었던 노튼 소장은 앤디의 석방이 곧 자신의 종말이라고 생각한다”라는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다.
『시네필 다이어리』에는 또한 예상치 못한 것을 깨닫는 즐거움이 있다. 영화 「순수의 시대」를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개념을 통해 보면 영화 속에서 섬세하게 표현된 여러 ‘장치’들을 새로운 것인 양 읽어낼 수 있다. 아비투스란 ‘권력기반의 사회질서가 생산하고 경험하는 일상의 공간’을 뜻한다. 메이를 중심으로 하는 ‘그들만의 세계’, 주인공 뉴랜드마저도 그런 ‘아비투스’에 갇혀 있었음을 깨닫는 순간, 뉴랜드가 엘렌과의 사랑을 선택하지 못한 이유도 명백히 드러나는 것이다.
철학자의 ‘언어’를 영화로 이해한다.
롤랑바르트의 ‘풍크툼’,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들뢰즈의 ‘시간’, 바슐라르의 ‘몽상’……. 짧지만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단어들이다. 그러나 철학자의 언어는 어렵기만 하다. 철학을 직업으로 삼는 전문철학자가 아니라면, 철학자의 사상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요원한 일일 수밖에 없다. 철학자의 원 텍스트를 읽는 것은 그 사람의 철학을 이해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얼마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할지 알 수 없다.
철학을 이해하는 두번째 방법은, 인간 삶을 닮은 서사 구조에 그 철학자의 개념을 녹여보는 것이다. 우리 삶을 닮은 서사 구조에는 소설, 영화, 연극, 노래가사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 책은 그중에서도 ‘영화’를 통해 철학을 음미해보고자 한다. 그러면서도 철학을 이해하는 첫번째 방법, 철학자의 원 텍스트를 독자가 직접 이해할 수 있도록 인용문을 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풍크툼’은 라틴어로 뾰족한 물체로 인한 상처, 흔적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진의 풍크툼은 평온했던 나의 의식을 찌르는, 나에게 상처를 입히고 자극을 주는 우연하고 돌발적인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풍크툼에 대해 아무리 쉽게 풀어쓴다고 해도, 영화 「색, 계」의 장치아즈가 경험하는 풍크툼의 순간들을 한번 읽어내는 것만 못하다. 마찬가지로 들뢰즈의 ‘시간’ 개념을 시간을 뛰어넘어 다니며 좌충우돌 하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 마코토의 이야기를 엿보며 들뢰즈를 이해할 수도 있고, 「원령공주」의 등장인물들이 꿈꾸는 세계를 통해, 바슐라르의 ‘몽상’이라는 개념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8명의 철학자, 8편의 영화
영화 「색, 계」에서 읽을 수 있는 롤랑 바르트의 언어는 “지독한 상처의 틈새로만 간신히 보이는 세계의 투명한 아름다움”, 이른바 ‘풍크툼’이다. 주인공 장치아즈는 자신이 죽음을 선사해야 하는 대상을 사랑하게 되어 결국 그를 살리고 자신이 죽는다. 암살 대상과 사랑에 빠진 스파이의 이야기는 사실 많지만, 상처와 상실을 통해서 만날 수 있는 ‘풍크툼’을 통해 영화 속 주인공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또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소녀들에 대한 노스탤지어는 ‘자기를 애지중지하느라 돌보지 못한 타인’에 대한 사랑을 환기시킨다”고 말하면서 그의 작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끄집어낸다. 조지프 캠벨의 신화학과 작은 소녀 치히로의 미지의 모험을 통해, 운명을 마주하고 자기 내부의 소명을 발견하는, 영혼의 변신을 꾀하는 우리의 자세를 이야기한다.
「굿 윌 헌팅」을 “타인의 고통에 눈뜨는 소년의 내밀한 고백”으로 읽은 저자는 이 영화를 통해, 타인의 고통을 편집하고 수정하여 유통시키는 현대인의 잔혹성을 비판한 수잔 손택을 불러낸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주인공 마코토가 시간을 뛰어넘으며 깨닫게 되는 진정한 ‘시간’을 들뢰즈가 함께 쫓아가 보거나, 「쇼생크 탈출」에서처럼 밑바닥까지 추락한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니체가 말한 ‘초인’을 발견해내기도 한다.
부르디외가 말하는 ‘자본주의의 아비투스’, ‘처절한 구별짓기의 전투’를 생생하게 그려낸 「순수의 시대」는 어떨까? 영화 속 귀족들의 행태, 그들만의 ‘순수’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뷰티풀 마인드」를 통해 존 내시와 카를 융의 삶을 따라가면서, ‘무의식의 의식화’가 어떻게 나타나며 기능하는지 또한 이해할 수 있다.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 위에서 황폐한 세계를 벗어나려는 꿈의 공간인 「원령공주」를 바슐라르와 함께 읽는 일은 진정한 몽상을 위한 스트레칭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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