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을 쓴 여자분은 저와 나이가 비슷한 사람 같아요.
글을 한줄한줄 읽어 갈때마다...
얼굴엔 흐뭇한 웃음이 피어 날겁니다.
진짜로요...
유년시절 함께 한 만화들
■추억 속으로의 여행
얼마 전 만화전문채널 투니버스케이블 TV CH-38에서 송락현 님이 진행하는 스튜디오 붐붐금, 일, 월 방송을 보았다. 애니뮤직 특집으로 진행된 붐붐 편의 마지막 보너스 클립에서 정말 추억이 어려있는 옛날 만화 '짱가'의 오프닝 화면이 눈 앞에 펼쳐졌다. 내 어릴 적 기억으로 남아있는 짱가는 브라운 컬러였던 것 같은데, 이번에 보니까 청동빛과 머리 부분에 붉은 빛이 도는 단순한 디자인의 로봇이어서 무척 새삼스러웠다. 아마도 당시 텔레비전이 흑백이었거나, 아동용 딱지로 나온 그림의 컬러가 무채색 빛으로 그려진 것이 기억에 남았었던 모양이다.
■ 70년대 나 어릴 적 유년시절
요즘 초등학생들은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모르지만, 옛날 나 어렸을 적 70년대 후반의 학교주변은 그래도 사람 사는 재미가 물씬 풍기는 여러 가지 풍경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관악구 신림본동에서 살았던 나는 전교생이 7,000명이었던 신림 국민학교에 다녔다. 지금 가보면 운동장이 손바닥만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당시 어린 나에게 학교 운동장은 무척이나 커보였고, 비 오는 날 짖궂은 남학생이 앞에 가는 여학생의 등 속으로 죽은 쥐를 넣고 도망가는 것을 목격한 끔찍한 기억 때문에 신림 국민학교에 대한 인상은 그다지 좋지 못한 편이다.
하지만 학교 주변은 늘 호기심의 대상이었고, 방과 후에 곧장 집으로 돌아오라는 엄마의 말이 전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골목골목마다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들이 널려 있었다. 가장 신기했던 것은 색색으로 염색한 밀가루 반죽으로 갖가지 동물이며, 꽃이며, 인형들을 즉석에서 만들어 주는 아저씨였다. 지금은 중국 박람회 혹은 중국 기인열전에서나 볼 수 있을 듯한 아저씨들의 놀라운 손재주는 어린 내 넋을 빼앗아 가기에 충분했다. '알라딘의 램프'라는 신기한 약품도 있었다. 마치 바세린같이 미끌미끌하고 윤기가 흐르는 약품을 바른 종이조각을 당시 몇 십원을 주고 샀던 것 같은데, 그 약품 부분을 손가락으로 살살 문지르면 정말 알라딘이 램프에서 튀어나올 때 뿜어나오는 연기 같은 것이 손가락 사이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이었다.
■ 난 불량식품이 좋다네!
그리고 문방구엔 웬 불량식품이 그리도 많은지, 이름은 기억이 안나지만 무지개 색색으로 고운 물을 들인 젤리 비슷한 것을 한입 가득 넣고 질겅거리던 기억도 새롭다. 지금도 여전히 대학가와 학교 주변에 진을 치고 있는 뽑기는 당시의 빼놓을 수 없는 명물이었다. 1원 짜리 동전이 통용되던 때라 뽑기 값이 10원이었는데 1원이 모자랐던 나는 아주머니 몰래 9원의 동전을 땡강거리며 돈 통에 집어넣고 가슴 콩닥거리며 뽑기를 얻어먹기도 했었다. 뽑기 하나에 생명이라도 건 듯이 손을 달달달 떨어가며 조심스럽게 문양을 오려내는데 모퉁이 부분을 떼어내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결국 침을 살살 묻혀 가며 요령껏 오려냈는데, 인심 사나운 아주머니가 침 바른 것은 무효라며 매몰차게 쫓아내서 어린 마음에 얼마나 한이 됐던지... 지금 신촌 연대앞 거리에서 500원부터 1,000원까지 받는 뽑기에선 왠지 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크고 두꺼운 모양새도 그렇고, 비닐 팩안에 덩그마니 들어앉아 있는 뽑기가 왠지 우주복을 입은 촌닭 같아서 보기에 애처롭기까지 하다.
■ 70년대 거리 풍경
무쇠팔, 무쇠다리 마징가 Z와 쇠돌이, 그리고 쇠돌이의 여자친구 애리의 로봇 아프로디테, 그 유명한 아수라 백작 등등... 개성있는 캐릭터와 유쾌한 주제가가 조화되어 어릴 적 로봇 만화의 추억을 깊게 새겨주고 있는 마징가 Z!
또 하나 기억나는 것은, 길가마다 세워져 있는 묵직한 달구지에 소와 말 등의 가축이 매어져 있는 풍경이었다. 당시70년대 신림동은 시내라기 보다는 변두리에 가까웠는지, 길 거리에 웬 소달구지, 말달구지가 그렇게도 많았을까? 용달차 대용으로 쓰였던 것 같은데, 푸르르 고개를 젖히며 시도 때도 없이 울어제끼는 말들 때문에 놀라서 쏜살같이 도망가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정말 정글을 헤쳐나가듯 어린 눈엔 산더미 같아 보이기만 하던 소똥, 말똥을 피하느라 얼마나 조심을 했던지... 그 거리의 동네 양복점에서는 마치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거인을 찾기라도 하듯 도저히 우리 나라 남자들을 위한 바지라고는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길이가 긴 바지를 걸어놓고는 '이 옷이 맞으면 공짜!'라는 판촉문구와 함께 손님들을 모으고 있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 내 어릴 적 만화들
학교에서 우리 집까지 가려면 시장을 지나야 했는데, 시끌벅적 요란한 시장 입구에 커다랗게 걸려있는 극장 간판은 늘 어린 나의 종종 발걸음을 붙들어 매놓곤 했다. 500원이면 동시상영을 볼 수 있었는데도 주머니엔 늘 1원 짜리와 10원 짜리 동전 몇 개만 딸랑거려서 게시판에 걸려있는 그림만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다리가 저려올 때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곤 했다. 뉘엿뉘엿 해가 기우는 거리를 총총 걸어가면서 머리 속에 극장간판에서 본 영화 그림들을 떠올리며 히죽히죽 웃곤 하던 기억들... 극장이라는 곳은 어른들과 함께가 아니면 못들어가는 곳으로만 여겼던 터라 어린이날과 같은 특별한 날에 엄마 손 붙들고 극장구경을 갔던 기억이 난다.
여기서 잠깐!
너무나도 유명한 태권 V 시리즈! 태권 소년 훈이와 영희, 그리고 깡통 로보트 철이, 금발의 미소녀 인조인간 메리의 우정과 사랑, 음모와 배신이 얽혀있는 태권 V 시리즈는 그 유명한 주제가와 함께 당시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준 애니메이션 이었다. 한국 애니의 자존심을 그나마 지켜주고 있는 것이 바로 로버트 태권V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 때는 동네 조그만 극장은 거의 안 간 편이었고, 엄마 따라 광화문에 있는 세종문화회관이나 어린이 대공원 후문에 있는 어린이 회관으로 가곤 했는데, 그 때 본 만화들이 그 유명한 '로버트 태권 V'시리즈, 똘이장군 시리즈 '간첩잡는 똘이장군, 암행어사 똘이, 백만 년 똘이 등등, 전자인간 337. 은하함대 지구호 같은 것들이었다. 웅웅 거리는 스피커 소리 때문에 대사가 귀에 잘 들어오진 않았지만, 커다란 대형 화면 적어도 당시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위로 나의 영웅 '로버트 태권 V'가 하늘을 나는 모습을 보며 가슴 두근거리던 그 감동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달려라 달려, 로보트야, 날아라, 날아, 태권 V~ 정의로 뭉친 주먹 로버트 태권, 용감하고 씩씩한 우리의 친구...'
귀에서 맴 도는 맑은 음성의 소년이 부르던 태권 V의 주제가는 영원한 어릴 적 향수로 남아 아련한 감흥을 돋구어 낸다.
훈이와 영희! 너무나 한국적인 캐릭터와 태권 무술로 악당들과 싸우던 태권 소년, 소녀의 모습을 보고 마치 이웃집 언니, 오빠의 영웅담을 읽어나가는 듯한 기분으로 손에 땀 까지 쥐어가며 열심히 응원했던 그 어릴 적 순수를 지금도 느낄 수 있다면...!
여기서 잠깐!
똘이장군 시리즈는 암행어사 똘이, 백만년 똘이, 간첩잡는 똘이장군 등의 여러 시리즈를 탄생시키며 시대와 장소는 다르지만 한국인의 얼이 살아있는 주인공이 악당들과 맞서 싸운다는 이야기를 주 내용으로 스토리 전개가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간첩잡는 똘이 장군에서는 김일성 수령을 돼지로 표현하고 있어 당시 냉각기에 있었던 남북관계와 반공의식을 엿볼 수 있다.
지금처럼 캐릭터 산업이 발달하지 못했던 그 때는 좋아하는 만화 주인공들의 사진을 얻으려면 무조건 남자애들이 가지고 노는 동그란 종이 딱지를 사야 했다. 한 장에 한 30매 정도의 그림이 인쇄된 그 종이딱지를 사다가 한 살 위의 연년생 언니랑 동네친구들을 모아놓고 인형놀이를 하곤 했다. 가장 좋아했던 주인공은 독수리 5형제와 '캐산'의 주인공이었다. 요괴인간 벤, 베라, 베로 지금은 얼굴이 하나도 생각이 안난다도 있었고, 해치, 사파이어 왕자 같은 것도 있었다. 지금은 종이인형 같은 것을 보기가 힘들지만, 당시엔 종이인형이 여자애들 사이에서 얼마나 큰 인기를 얻었던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새로운 종이인형 시리즈가 나오면 문방구로 줄달음쳐 달려가 주머니를 털어 종이인형 세트를 사곤 했다. '요술공주 샐리'나 '인어공주 나나' 같은 것은 빨리 사지 않으면 구하기가 힘들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종이인형은 옷을 오리기가 너무 어려웠는데, 특히 레이스가 많은 드레스 옷을 오릴 때는 정말 정신집중이 필요했다. 나는 성미가 급한 편이라 레이스의 고운 선을 몽땅 무시하고 둥글둥글하게 오리곤 했지만, 정말 손재주가 좋은 애들은 머리카락 한 가닥까지도 다 살려서 정말 끝내주게 오리곤 했다. 인형에게 옷을 입힐 수 있는 부분이 옷의 어깨 부분에 삐쭉 솟아있는데 가위질을 잘못해서 그 부분을 오리게 되면 그 사람은 완전 역적 취급을 당했다. 무슨 큰 잘못이라도 낸 것인양 구박을 받아야 했던 것이다. 그냥 풀로 붙이면 되는 것을...
■ 원더우먼 마론인형에 밤 새는 줄 모르고...
지금은 미국의 바비 인형이 어린 여자아이들의 동심을 지배하고 있지만, 당시에도 예외가 아니어서 미국의 마론 인형이 단연 인기였다. 사실 모두다 마론 인형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극히 소수의 여자아이들만이 마론 인형을 가지고 놀았는데, 그 때 우리 집이 그렇게 부유한 편이 아니었는데도 나는 원더우먼 마론 인형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딸을 끔찍이나 아끼는 부모님께서 무리해서(?) 장만한 사랑의 선물이었을 것이다.
린다 카터가 주연한 원더우먼을 지금 케이블 TV에서 재방송을 해주고 있는 걸 봤는데, 모든 것이 다 촌스러워도 원더우먼인 린다 카터만은 지금 봐도 정말 미인이다. 그 예쁜 원더우먼과 똑같이 닮은 마론 인형은 허리에 금줄까지 차고 있어서 정말 원더우먼이 나와 함께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하고 살 정도였다. 정말 질리지도 않는지 매일같이 그 원더우먼을 가지고 별의 별 상황을 다 만들어가면서 무한한 상상력의 세계를 펼쳐 나가곤 했다. 그러다가 내가 원더우먼 인형과 작별을 고한 것은 나의 호기심과 엉뚱함 때문에 일어났다. 인형을 가지고 논 여자애들이라면 한 번쯤 인형의 머리카락을 잘라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물론 한 번 자른 머리가 영영 자라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한 채 마음껏 머리를 잘라버린다. 그것도 서툰 손놀림으로 삐쭉삐쭉 잘라버리는 것이다. 그리고나서 인형을 보면 "으악~" 비명이 나온다. 그렇게 공주님처럼 예뻤던 인형이 불쑤시개로 쑤신 듯한 까치머리를 하고 있는 걸 보면 그동안 내가 언제 인형을 아꼈던가 싶을 정도로 정이 뚜욱~ 떨어지는 것이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자랄 줄 모르는 인형의 머리를 보면서 자책감에 시달리다가 결국은 그 마음이 심통으로 바뀌어 오히려 화를 인형에게 풀어댄다. 사인펜으로 얼굴에 멍자국을 그려넣고, 입가에 피를 뚝뚝 흘리는 것처럼 빨간칠을 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인간의 악한 본성이 되살아난 듯 점점 더 심하게 인형을 다루다가 결국엔 토막살인을 해서 땅 속에 묻어버리기도 했다. 나만 그런 건가? 어린이 여러분들은 따라하지 마셔용~
■ 소리로 듣는 추억의 만화들
지금은 비주얼 영상이 너무나도 발달하여 보는 재미가 없으면 외면할 정도로 시각적 매체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나 어릴 적에는 보는 문화보다는 듣는 문화가 더 발달해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당했다는 뉴스도 텔레비전보다는 라디오를 통해서 더 생새하게 전달받을 정도였으니까~
그래서 그런지 만화영화의 줄거리를 성우들이 녹음한 테이프가 당시 인기품목 중 하나였다.
우리 집에도 '캔디캔디', '로버트 태권 V', '은하함대 지구호' 같은 만화를 녹음한 테이프가 많이 있었다. 방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턱에 두 손을 괴고 녹음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주인공들의 목소리에 빠져들면서 머리 속으로 그 장면을 떠올리며 행복해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비디오가 없던 시대라 어쩌면 비디오는 있었는데,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는지도 모르지요. 녹음 테이프가 돌아가는 테이프 레코더를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버튼만 누르면 주인공들의 모습이 나타나는 장치가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몇 년 후 내가 중학교 에 올라갔을 때 우리 집에 드디어 비디오를 들여놓았던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집집마다 비디오가 흔했던 때는 아니었는데...
■ 추억 저 편에서 찾고 싶은 어릴 적 향수들...
사람이 소망했던 일들이 미래의 어느 순간 눈 앞의 현실로 다가오는 걸 실감했을 때 느끼는 경이감이란...!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만화나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암울하고 어두운 미래가 먼 훗날 그대로 재현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존재한다. 비디오를 들여놓은 뒤부터 라디오와 테이프는 한 쪽 구석으로 밀려나고 따라서 소중히 간직했던 애니메이션 테이프들도 바닥에 나뒹구는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렸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90세 우리 외할머니만이 캔디캔디 테이프를 들으며 좋아하셨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 옛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던 만화 테이프는 아직도 보관을 하고 있다. 상태는 좋지 않지만 별 셋 아저씨들과 정여진 당시 유명한 만화의 주제곡을 도맡아 불렀던 꼬마 여가수이 부른 만화 주제곡들, 생각도 나지 않는 '돌치' '해치' 등의 만화 주제곡들을 들을 때마다 어릴 적 아련한 향수를 느끼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