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잭슨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왠만큼 문명의 혜택을 보고 있는 사람이라면
마이클 잭슨을 모를 수는 없겠죠. 오늘은 그런 Michael Jackson에 대해서 살펴 보도록 하죠.
어릴적부터 그는 활동을 하지만 그가 음악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차지하게 된 것은
그의 본격적인 신화가 시작한 80년대부터이겠죠. 그런 만큼 어릴적의 활동은 생략하기로 하겠습니다.
그룹활동을 하다가 변성기를 맞으며 음악계를 잠시 떠난 마이클은 그를 데뷔때부터 아껴 주던
가수 다이애나 로스와 천재 프로듀서 퀸시 존스에 힘입어 음악활동을 재계하게 됩니다.
퀸시 존스가 프로듀스한 그의 첫번째 솔로앨범 <Off the wall>이 1979년 나와 화제속에 히트합니다.
하지만 마이클의 신화가 정작 시작된건 82년말에 나온 앨범 <Thriller>이겠죠.
81년 휴가차 간 런던의 비틀즈의 멤버 폴 메카트니의 작업실에서 작곡법을 전수받고
퀸시 존스의 프로듀스로 제작된 <Thriller>는 84년까지 팝 차트를 초토화시키는데요.
총 9곡이 수록되있는 이 앨범은 유명한 기타리스트 에드워드 벤 헤일런가 전주를 맡은 'Billie jean'과
그룹 토토의 데이빗 페이치,스티브 루카서,제프 포카로가 연주를 맡은 'Beat it'을 비롯
'Thriller'가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기록했고 이 곡들을 포함 폴 메카트니와의 공동작
'The girl is mine'등 한 앨범에서 총 7곡이 히트하는 대기록을 남깁니다.
또 이 앨범은 미국에서는 37주 일본에서는 65주동안 랭크 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50만장이 팔렸으며
전세계적으로 당시 3000천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했죠. 지금까지는 총 520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기록하며 기네스에 오르기도 했죠.
84년 그래미까지 휩쓸며 마이클은 부,인기,명예를 한꺼번에 소유하며 어수선한 팝계를 통일하게 됩니다
85년에는 라이오넬 리치와 공동으로 Live Aid공연을 위한 곡이었던
<We are the world>를 발표해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도 하는데요.
이곡은 부르스 스프링스턴, 휴이 루이스 앤더 뉴스, 티나 터너, 케니 로저스, 포인터 시스터스,
시카고등 정상급 가수들이 무려 45명이나 참여해 'We are the world'를 열창하며 빅히트를 기록합니다.
Live Aid까지 성공리에 마친 그는 87년 앨범 <Bad>를 내놓는데요.
역시 4주만에 'I just can't stop loving you'가 정상을 밟고 'Bad', 'The way you make me feel'을
히트시키며 3000만장의 판매량을 기록, 80년대 최고의 팝가수의 대열에 오릅니다.
전작들의 히트보다는 항상 더 히트를 처야한다는 고심과 부담을 안고 출시한
92년 앨범 <Dangerous>은 데인져러스 열풍을 몰며 2500만장의 음반 판매고를 올렸고,
'Dangerous', 'Remember the time', 'Will you there'히트합니다.
특히 이 앨범에서는 마이클 잭슨은 전세계인의 메시지를 담은 곡이기도 한
'Black or white'을 발표해서 인종차별을 뛰어 넘어 전세계인의 하나를 노래를 불러 호평을 받습니다.
이런 색깔은 같은 앨범 곡인 'Heal the world'에서도 잘 나타나 있죠.
그런 그는 역사적인 히트곡 모음집 격인 'History'앨범을 95년에 발표하는데요.
이 앨범에 대한 마이클의 애착이 대단했다고 전해지는 앨범이기도 합니다.
믹싱작업만 2억이 들어 갔고 엄청난 프로듀싱 자본금이 투자된 이 앨범은
새로운 싱글 'Scream', 'You are not alone'이 수록되 히트하지만 스크림이
마이클의 앨범 첫싱글은 빌보드 1위라는 항등식을 깨면서 부진해 충격을 주기도 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마이클의 아동 성추행사건이 한 몫을 하지만요.
그러면서도 이 앨범을 1500만장씩이나 팔았다는 것은 얼마나 그의 영향력이
아직도 대단한 가를 알 수 있는 것이겠죠.
마이클 잭슨은 한마디로 '80년대의 성격을 대변하는 가수'로 말할 수 있는데요.
그 80년대의 성격이라는 것은 몇가지로 말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번째는 그가 80년대 보수주의 상징물이었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존 레논이 80년에 어이없이 무너지고 영국에서도 펑크가 80년대를 넘으며 사그라들면서
80년대는 미국은 레이거 노믹스가 영국은 대처리즘이 지배하는 보수주의 이념의 시대였습니다.
여기에 앞장을 선 가수가 바로 마이클 잭슨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분명한 록 스타였지만 록의 도전,저항을 노래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의 테마는 여자, 춤, 음악에의 열정등이었죠.
'The girl is mine', 'Billie jean', 'Beat it'등의 곡이 그것을 증명하는 노래들일 것입니다.
어떤 시사주간지는 84년에 "엘비스, 비틀즈, 밥 딜런이 관능적으로 정치적으로 제도권에 도전했다면
마이클은 '제도권 인물'로 레이건의 보수파와 완벽히 조화하고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죠.
그런 정부 또한 마이클을 모범적인 흑인으로 여겨 'Thriller'가 음주운전자를 계도하는
노래로 채택되 성과를 올렸을때도 다른 가수와는 달리 훈장을 수여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두번째는 마이클의 음악은 팝역사에서 80년대를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사운드라는 것입니다.
80년대 사운드의 특징은 뭐니뭐니해도 듣기 편하고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사운드로 말할 수 있는데요.
이것 역시 보수적인 시대의 산물이라면 산물이겠죠.
이 시대에는 록 또한 타락하며 록커들도 정체성없이 돈벌어들이기, 자기 욕심채우기에 바빴으니까요.
이런 80년대의 사운드를 바로 마이클 잭슨은 대표한다고 할 수 있겠죠.
마이클의 음악은 처음들어도 귀에 척 달라 붙는 그런 대중적인 사운드니까요.
물론 저의 얘기는 그렇다고 그의 음악이 상업적, 저급한 음악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의 음악이 80년대를 대표했다고는 해도 계속 들려지는 것은 80년대를 대표함과 동시에
그만의 신비스로운 곡의 구조와 그의 독창적인 보컬에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겠죠.
그렇게 80년대 보수주의를 대표하다보니 마이클에게도 적들이 생겨나게 되는데요.
바로 '색깔론'이에요. 그는 흑이었지만 흑인 특유의 '정신'이 담긴 소울 음악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의 음악은 너무나 백인적이었습니다. 노랫말에도 소울 뮤직에 나타나는
흑인의 자부심이나 랩 뮤직이 갖는 사회성이 배제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이클은 당시 랩 진영의 가수들로부터 "백인이 못돼서 안달하는 소수 지배층 흑인의 똘마니"라
는 모욕을 들었고 흑인의 소울을 고집하는 리듬 앤 블루스 가수들은 그를 "소울매매상"이라고 깔봤죠.
하지만 이것은 흑인들이 자신들의 길과 같은 길을 걷지 않는 마이클애 대한 속좁은 비난인 듯 싶습니다
마이클의 컨셉은 세대,계층,인종,국가를 초월한 것이었죠. 이것은 실로 범우주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따라서 그에게 흑인의 소울을 강요한다는 것은 아예 음악적 노선을 바꾸라고 하는 것과도 할 수 있겠죠
그런 그의 컨셉은 'Black or white'와 같은 좋은 곡들에서 여실히 보여진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동료, 후배 뮤지션들에게도 영향을 미쳐서 라이오넬 리치, 티나 터너, 프린스, 포인트 시스터스,
휘트니 휴스턴같은 흑인이지만 흑인의 정신을 찾아볼 수 없는 가수들의 등장에 한 몫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마이클 잭슨의 업적은 팝시장의 활성화와
80년 MTV개국에 맞춘 '눈으로 느끼는 음악'의 주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80년 펑크의 폐허와 신디사이저 열풍의 시대에 홀로 서서 레코드 업계를 활황시킬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흑인 음악에 국한되지 않은 음악적 특성에 기인한다고 봐야겠죠.
41조의 매출실적을 기록해 전성기로 언급된 78년(디스코 열풍)이래 내리막었던
레코드 업계에 마이클 잭슨이 자신감을 불어 넣었던 것입니다.
만약 그가 흑인 음악에 치중했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소득이었던 거죠.
또하나는 음악사에 10대 사건에 들어가는 뮤직비디오 전문채널 MTV의 개국에 따른
음악에 대한 소비자들의 문화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는 것이죠.
물론 마이클 자신 또한 MTV에 최대 수혜자임은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이전의 단순히 듣고 따라 부르던 것에서 보면서 듣고 몸으로 따라하는 음악으로 전환된 것입니다.
이것을 마이클 잭슨이 해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정리를 하면 마이클 잭슨은 한 시대를 장악한 팝 우상들 가운데 유일한 흑인일 것입니다.
<Thriller>열풍은 비틀즈와 엘비스의 열풍을 능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마이클 매니아는 뮤직 비디오와 MTV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이클 잭슨의 뛰어난 곡실력과 춤, 특이한 보컬이 만들어낸 산물입니다.
그는 당대 젊은이들로 하여금 록커들과(특히 펑크 뮤지션)같이 무대뽀하게 사회와 주변환경에
비판적 사고를 내세우기 보다는 노래를 부르면서 춤을 추게 만들어 젊음을 젊은이답게
발산하도록 하는데 기여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마이클 잭슨의 정체이었고, 그것이 80년대 팝 음악의 이미지였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