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수필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준비와 수필을 쓰기 위한 준비
와 의미, 그리고 어떻게 써야 좋은 글인가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먼저 좋은 문장, 명문장을 많이 읽어야 하는 일이다. 명문장을 선택하는
길 또한 스스로 안목을 키워야 한다. 결국 많이 읽고 경험하는 것이 첫째
조건이 된다(다독多讀). 다음으로는 조그마한 얘깃거리밖에 안 되는 소재일
지라도, 신변 잡담의 차원을 넘어 그것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과 생각하는
것이 인간적일 때, 수필은 비로소 문학의 차원으로 들어오게 되는데 이는
이웃과의 사랑·고뇌·연민·시대적 우수(憂愁) 또는 비분(悲憤) 등 많은
사색을 거친 후에 가능하게 된다.(다상량 多商量) 마지막으로 실제로 짓는
연습을 많이 할 일이다.(다작 多作)
좋은 수필이란 어떤 것인가. 좋은 수필이 되자면 몇 가지 규범이 따르는데
, 무엇보다도 문장이 솔직하고 소박해서 진솔성(眞率性)이 있어야 한다. 사
물을 나타내는 말에는 오직 그것에 맞는 말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진실을
나타낸다는 뜻이며 솔직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이 수필의 본질이다
.
문장은 아름답게 꾸미려고 할수록 진실과 멀어진다. 꾸미는 글은 좋은 글
이 될 수 없다. 수필의 문학성을 한마디로 말할 수는 없으나, 본질론으로
말해 본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소설이나 동화는 허구(虛構)이고, 시는
심상(心象)의 형상화라고 한다면, 수필이 지니는 문학성은 개인의 인격적
고백성에 있다.
이와 같이 수필의 문학성은 1차적으로 개인의 인격적 고백성으로 독자를
감동시키는 데 있으나 그것은 내용과 함께 문장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작자
의 사상과 감정이 내부에서 걸러지고 삭혀져서, 잘 익은 술처럼 향기를 내
야 한다. 흔히 수필의 문학성을 서정성에 두고 있으나, 지적(知的)이거나
논리적인 것으로 인간의 문제가 담고서 공감을 주는 것이면 이것 또한 수필
의 문학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작자의 인품 또는 생각의 깊이가
잘 드러나야 한다.
여기에 인품과 함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작가의 문장력이라고
하겠다. 여기서 '문장력'이라는 말은 구상까지도 포함하는 넓은 의미로 사
용된다고 이해를 해야 한다. 자신의 체험과 사색을 들로 나타낼 수 있는 표
현의 능력을 통틀어서 문장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규범에 맞고 품위 있으면
서도 독자의 미적 심금에 와 닿는 문장이 좋은 문장이다. 함축성과 간결성
또한 수필가에게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수필은 여운이 백미인 문학의 한 분야라고 생각해도 된다. 그 수필에서의
여운은 짧은 것보다는 길면 길수록 좋은 것이다. 수필을 읽고 나서 마음속
에 잔잔한 물결이 일면서 오랫동안 가슴울림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해보자.
문학의 정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여운이 길게 할 수 있는 자질
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우수한 수필가가 될 것이다. 결론을 단
정적으로 내리는 글은 결코 좋은 글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수필이 가져야 할 것이 바로 교훈적이라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
과 직선적인 표현은 피해야 한다는 점이라 하겠다. 수필에서 삶의 교훈을
얻는 것은 어느 것보다도 보배로운 일이며 인생의 아름다운 경험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이 없는 수필은 그저 낙서에 불과하다고까지 폄
하시킬 수 있다. 작가가 목소리를 높여서 설교를 꾀해도 좋은 수필이 되지
못하는 것이 다반사라는 것은 기정 사실이다. 반대로 이러한 설교조의 수필
이 성공을 하는 경우는 아주 특수한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수필에 있어서 비판 정신은 글을 돋보이게 할 수가 있다. 그러나 비판은
공정해야 하며 자기 자신의 분수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교훈의 경우에 있
어서도 그렇지만, 비판도 직선적이기보다는 간접적인 것이 수필에 어울린다
.(1983년 한국 수필가 협회 개최 세미나에서 김태길 교수가 발표한 내용정
리.)
A. 글쓰기 준비
1. 주제의 설정
가주제-참주제
포괄적-구체적
1) 막연한 주제 : 무엇에 대해 쓸 것인가 생각한다.
2) 주제의 정리 : 막연하게 정해진 주제와 관련되는 일들을 정리해 본다.
3) 범위의 한정 : 가장 자신 있게 쓸 수 있고 관심이 있는 주제로 한정한
다.
4) 주제의 결정 : 자신의 견해를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주제로 결정한
다.
예제 : 내가 감명 깊게 읽은 책 구체화
2. 소재의 선택과 정리
1) 선택 방법
① 정해진 주제에 따라 필요한 소재를 찾는 것-논문, 논설 등 에세이류
② 글쓰는 데 필요하리라는 전제 아래 여러 소재를 수집해 두는 것- 미셀
러니류, 단상 노트
2) 소재 선택기준
① 정해진 주제를 뒷받침 할 수 있는 것
② 내용이 확실한 소재
③ 다양하고 풍부한 소재
④ 다른 사람들이 흥미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것
3) 소재의 정리
① 내용이 서로 관련되는 것, 동일한 관점에 의한 것을 서로 묶는다.(종합
의 원리)
② 글의 주제와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것과 부수적인 것을 구분해 둔다.(분
리의 원리)
③ 모든 소재들을 글의 전체적인 구상에 따라 대강의 순서를 정해 배열해
야 한다.(배열의 원리)
④ 자신의 능력으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자료인지, 주제에 부합하는 것
인지 확인해야 한다.(확인의 원리)
3. 구성의 방법
구성이란, 내용을 요소별로 가려 하나의 유기적 통일체가 되도록 작품을
조직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생각을, 주제를 효과적으로 드
러내기 위해 요소별 내용을 체계 있게 배열하는 것이다. 소재를 다룰 때 어
디서부터 시작해서 어떤 모양으로 만들어 내는가, 또는 쓰고자 하는 요소별
내용의 배열을 어떤 순서로 하는가이다. 생각을 얽는 다는 뜻으로 구상(構
想)이라고 하기도 한다.
일반적인 구성 방식은 다음과 같다.
1) 전개적 구성 : 가장 일반적인 방법
① 시간의 흐름에 따라
② 공간의 질서에 따라
③ 상념의 순서에 따라 : 회상 등
2) 종합적 구성 : 논리적 구성으로 내용 전개의 논리성을 중시
① 단계식 구성:
3단 구성 서 본 결
4단 구성 도입 발전 전환 정리
5단 구성 관심끌기 문제제기 문제해결 증명 행동(결심)촉구
② 포괄식 구성
③ 열거식 구성
④ 점층식 구성
⑤ 인과적 구성 ②∼⑤까지는 일부를 구성하는 방식이다.
4. 개요의 작성 : 목차와 실질적인 내용이 드러남
실제 작성한 레포드와 관련해서
제목 :
주제문:
개요:
<---을 읽고 수필적 특성을 중심으로 감상하시오.>
읽은 책
책을 읽게 된 동기
다른 사람의 의견 소개
책을 쓴 사람
책 가운데 감상대상으로 삼는 대목(작품 한 편)
감명 깊었던 이유
수필적인 특성
수필론 수업과의 관련성
5. 제목 달기
6. 인용문제
7. 참고문헌
B. 실제 연습 몇 대목
1) 수필의 문학적 성립에 관해
작가가 개인적으로 보고 듣고 체험한 것에, 생각과 느낌(감상)을 붙이는
일이다. 이 부분이 수필의 주제가 된다. 작가가 보고 듣고 체험한 것만을
쓴다면 그것은 단순한 보고문에 지나지 않고, 또 감상쪽으로만 치우친다면
현장감 없는, 삶의 실체성이 없는 공허한 관념에 흐르기 쉽다.
느낌(감상)이란 작자의 개성에 따라 나타나는 것이나 삶에 대한 철학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어떻게 드러나느냐에 따라 수필의 질의 갈림길이 된다.
두 가지 요소가 어떻게 드러나는가를 예문으로 보자.
[예문 1] 서오릉(西五陵)
① 어제는 모처럼 벼르던 가족 나들이를 했다. 만원 버스로 30분, 처음으
로 서오릉엘 갔다. ② 서울의 중심부에서 멀지 않은 곳이지만, 놀랄 만큼
울창한 산림이 마음속 깊이까지 시원하게 해준다.
① 세검정 골짜기나 관악산에 가본 일이 있으나, ② 언제나 발 들여놓을
틈도 없어 짜증이 앞서곤 했다. 그런데 서오릉은 워낙 넓어서인가, 북적거
리지 않아 하루의 휴식처로는 안성마춤이다.
① 아내는 가지고 간 음식을 펴놓고, 수도 장치가 된 곳에서 물을 떠왔다.
② 별다른 음식이 아닌데도 자연 속에 나와 먹는 맛이, 집에서 먹는 것과
는 다른 맛이다. 숲 속이 싱그럽고 신록의 향기 속 공기가 맑은 탓일 것
이다.
예문 속의 ①의 부분은 작자가 직접 체험한 것을 나타낸 것이고, ②의 부
분은 작자의 느낌이나 생각을 나타낸 부분이다.
작자에 따라 생각(사상)하는 바가 다르게 나타나나, 수필은 이것에 의해
좌우되며, 작자의 인격적인 것이 드러난다. 묘사나 표현을 잘 한다 해도,
생각의 깊이가 없을 땐 좋은 글이 되지 않는다. 앞의 예문이 만일 다음과
같이 되었다고 했을 때를 생각해 보자.
[예문 2] 서오릉(西五陵)
어제는 모처럼 벼르던 가족 나들이를 했다. 서울의 근교는 거의 가보지 않
은 곳이 없어, 가족 회의 끝에 서오릉으로 향했다. 우리들은 시원한 숲 속
그늘 한 군데를 차지했다. 돗자리를 깔고 누워 책을 펴들었다가 잠이 들었
다. 깨어났을 때는 이미 12시가 지나 아내는 점심 준비를 했다. 집에서와
같이, 특별한 것이 아니고 보통으로 싸온 것들이었다.
점심을 마치고 아이들과 잔디밭에서 공을 찼다. 여기저기서 점심을 마친
가족 동반의 행락객들이 자리를 깔고 쉬고 있었다.
오후가 되어 사람들이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4시쯤 되어 우리도 자리를
챙겨 돌아올 준비를 했다. 그때 마침 직장 친구 가족들이 저쪽에서 돌아나
왔다. 그들도 우리처럼 하루를 교외에서 지낸 셈이다. 모처럼의 하루를 교
외에서 지내고 돌아왔다.
문장 자체로는 흠이 없다. 독자로 하여금 밖에서 지낸 일을 잘 알 수 있게
쓴 점은, 섣부른 생각을 붙인 것보다 오히려 선명하다. 하지만 작자의 느
낌이나 생각은 한 군데도 들어가 있지 않아 생동감이 없다.
2) 서두 쓰기에 관해
서두는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의 한 부분이다. 동기부터 쓸 수도 있고 결론
부터 말할 수도 있다. 대상을 순서대로 시작할 수도 있고 중심부분에서 시
작할 수도 있다. 수필은 서두의 제시 방법에 따라 작품의 성공이 좌우된다
.
제시 방법이란 표현 방법을 뜻한다. 말하자면 신선미가 없이 진부한 설명
표현이거나, 걸러지지 않은 감정의 표출이거나, 독자에게 강박감을 주거나
하는 따위다. 서두는 차분한 말로 정적 분위기를 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서두의 표현에는 몇 가지 유의할 점이 있다.
① 불분명한 인상을 주지 않는 일이다. 이를테면 첫 구절 시작이 지시 대
명사인 '그'니 '어느'로 시작되는 경우다.
② 1인칭 대명사인 '나'로 시작하는 경우다. 특별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서
두에 붙는 '나'는 군더더기일 경우가 있다. 수필은 문장 주체가 이미 '나'
이다.
[예문1] <화해의 그때>
나는 그녀와 헤어진 후 우울한 기분은 떠나질 않는다. 커텐을 한 쪽으로
밀어붙이고 창문을 활짝 열어 놓는다. 그래도 시원함은커녕 끈끈하고 습기,
공기가 가슴을 더욱 무겁게 만든다.
검은 구름이 바로 머리 위에서 몰려 다니는 것을 보니 곧 비가 내릴 것 같
다. 비가 와야 가뭄이 풀릴 터이지만 믿을 수는 없다. 사흘째 연이어 구름
만 떠돈다. 나의 마음이 우울한 것은 날씨탓만은 아니다.
③문장의 수식(꾸미는 것)은 서두에서 더욱 금기 사항이다.
④수필은 서두에서부터 품위를 잃지 말아야 한다.
⑤서두를 의문형의 강조법으로 쓰고 있는 것부터가 시작을 위태롭게 해서
안정감을 잃고 있다.
⑥진부한 말로 시작하지 말아야 한다. 신선미를 잃고 있기 때문이다.
⑦설교조 훈시조의 시작은 차라리 논설문의 성격의 서두를 사용한다.
⑧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대화체로 시작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예문] "오늘 밤엔 꽤 바람이 부네요."
"아, 글세 포장 날아갈까 걱정이라우."
포장마차 끄트머리마다 큰 돌맹이를 갖다 누르며 사람좋게 보이는 주인 아
저씨는 성근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수정] 오늘밤은 바람이 유난하다. 성근 이를 드러내며 포장마차 주인이,
바람에 날아가겠다면서 걱정을 한다. 네 귀에 무거운 돌을 지질러 놓았으나
, 그래도 바람에 못 이겨 펄럭거린다.
3) 소재와 주제의 관련에 관해
일상 속의 모든 것이 수필의 소재가 된다. 그러나 작자의 체험이 특이하면
더욱 좋다고 할 수 있다. 평범한 것이라 해도 남다른 관찰력과 높은 식견
의 인격에 사색이 따르면 좋은 수필이 된다. 특히 수필은 소재에 의한 충
동으로 쓰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쓰는 의미
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즉 쓰고자 하는 중심 사상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
이 곧 주제다. 글에 나타나는 주제는 문체나 형식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아
니고, 다만 작자의 개성적 인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뿐이다. 어떤 형태
로
든 중심 사상이 들어있어야 하고, 이것이 없으면 수필의 가치는 없다.
주제는 같은 대상이라 할 지라도 작자의 시각(인격)에 따라 달라지므로 여
러 가지로 나타난다.군밤장수가 소재가 되었다고 했을 때 군밤장수는 작자
의 시각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① 군밤장수가 있는 것조차 의식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② 그저 있구나 하는 정도일 수 있으며,
③ 군밤을 사면서 그가 살아가는 모습에 관심을 기울여 자신과 비교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④ 단순히 물건을 팔고 사는 관계 이상으로 군밤장수에 대한 사정이나 연
민 같은 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 정신에 바탕을 둔 것과, 타산적·이기적인 상반된 인생관의
글로 나타날 수 있다. 이와 같이 소재와 주제와의 관계는 작자의 시각에
따라 달라진다. 예문을 통해 소재와 주제의 갈림이 어떻게 드러나는가를
보자.
[예문 1] 군밤장수
밤늦게 돌아오는 동네 어귀에 군밤을 파는 아주머니가 있다. 어디에 사는
지는 모르나 어머니와 비슷한 나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지만 좀처럼
사드는 사람이 눈에 띄지 않는다. 어쩌다 사는 사람을 보면 내가 군밤장수
가 되기라도 한 듯 마음이 밝아진다.
아주머니는 오래 전부터 철따라 리어커 장수를 한다. 여름이면 참외, 수박
을 팔고 가을이면 밤을 굽기 시작한다. 가을이 가고 찬바람이 일기 시작하
면 카바이트 등불을 깜박이며 밤늦게까지 행인을 기다리고 있다. 국민학생
아니면 중학생쯤의 딸아이가 번갈아 나와 어머니를 돕는 모습이 보인다.
아버지는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혹시 없는 것은 아닐까 하면서 지나다녔
다.
나는 무심할 수가 없어 팔리지 않는 모습을 볼 때 가끔 군밤봉지를 사들곤
했다. 고향에서 군밤을 만들어 먹던 일을 회상하면서 하루에 팔리는 양을
묻기도 하였다. 그럴 때마다 밝게 웃으면서 팔릴 때도 있지만 별로 없을
때도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내가 군밤을 사면 두서너 개를 언제나 덤으로
집어주곤 한다. 어렵게 살아도 마음씨 착한 사람들이 그렇듯 보이지 않는
곳에 있어서, 우리들이 살아가는 길은 어두운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집에 돌아와 식구들에게 나누어주고, 자리 속에서 동생과 먹으면서 군밤장
수 아주머니 얘기를 했다. 동생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다. 어머니를 따라
나와 있는 딸아이를, 동생은 자신에게 비교하면서 말했다. 살아가는 길이
제각기 다른 것이라고는 하지만, 고난을 딛고 살아가는 아주머니 가족들의
얼굴엔 어둠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
창문을 흔드는 바람 소리를 들으니 날씨가 또 추워지려는 모양이다. 늦은
밤 귀가를 서두르는 발걸음 소리와 차 소리가 소란스럽다. 자주는 못 팔아
줘도 정직하고 착하게 살아가는 군밤장수 아주머니의 희망을 돋구기 위해
서도, 이따금 나는 군밤봉지를 사들곤 한다.
[예문 2] 군밤장수
냉장고에는 언제나 갖가지 먹을 것이 채워져 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
들이 입맛대로 먹도록 배려를 해야 한다. 사시사철 음료수는 물론, 이른
봄부터 딸기로 시작해서 한 여름의 수박에 이르기까지 고루 갖춰 놓아야
한
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그래도 불평이다. 어쩌다 미처 대놓지 못할 때가 있으
면 참지를 못한다. 그럴 때면 부모로서 자식들에게 불평을 왜 들으랴 싶어
열심히 채워 놓는다. 하지만 그래도 정성이 부족할 때가 있다.
우리집 아이들은 이처럼 군것질을 즐기는데, 지난 가을에는 밤 줍는 모임
에 데리고 나갔다. 남이섬으로 갔지만 거기까지 안 가도 밤은 얼마든지 살
수가 있다. 하지만 맑은 공기 마시며 즐기고자 해서 승용차로 나섰던 것이
다. 돌아올 때는 상당한 분량의 밤을 싣고 왔다. 오던 길로 삶아서 주었더
니 군밤 맛만 못하다고 한다. 이튿날 군밤을 만들어 먹었으나 웬일인지 길
가에서 파는 것과 같지 않았다.
아이들의 불평에 따라 어제는 동네 어귀의 군밤장수로부터 사들고 돌아왔
다. 동창회를 마치고 늦게 돌아오는 길이었다. 큰 봉지를 집어들자 덤으로
두서너 개 넣어주었지만, 내가 몇 개 더 집어넣었다.
동네 어귀의 그 군밤장수는 매우 궁색해 보인다. 지나다니며 몇번 팔아주
었더니 나를 보면 인사를 하지만, 그 인사가 내게는 부담스럽다. 군밤을
팔아달라고 하는 것 같아서이다.
오늘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바나나를 샀다. 며칠 전부터 바나나가 떨어져
있었던 까닭이다. 동네로 들어섰을 때 군밤장수의 시선을 느꼈지만, 못 본
체하고 지나쳐 왔다.
같은 소재를 쓴 글인데도 주제는 각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예
문 1]은 삶의 진실과 인간에 대한 애정과 연민, 자기 성찰이 깔려 가치 있
는 글이 되고 있으나, [예문 2]의 경우는 문장으로서 흠잡을 데가 없어도
한마디로 얕은 글이다. 자신의 행복감에만 도취되어 있고 진실성이라든가
삶에 대한 철학이 없는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물질주의, 이기주의의 극
치를 드러내 자신의 행복만을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