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를 보는 또 다른 시각](15)임대 아파트의 그늘
"왜 우리집은 임대아파트인가요" 일반-임대 구분…
가난이 부끄러운 아이들
2007년 09월 03일 (월) 이일균 기자 iglee@idomin.com
2005년 11월28일자 중앙일보에는 '임대아파트에 사는 게 창피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주거환경의 차이가 아이들에게 주는 영향'이라는 주제로 서울의 A임대아파트와 바로 옆 B일반아파트의 생활을 조사한 내용이었다. 18평 이하 1000가구의 A나 22평 이상 2000여 가구인 B의 어린이들 모두 C초등학교에 다닌다는 사실이 제시됐다.
이 학교의 한 교사는 "아이들은 서로 일반과 임대라 부르며 경계를 짓는다. 이런 구분은 임대아파트 아이들에게 상처가 된다"며 "일반의 학부모들이 임대 아이들에게 거부감을 보일 때도 많다"고 증언했다. 다음은 A아파트 주민의 말. "시내버스 안내방송이 'A임대아파트 정류장입니다'라고 나오면 여기 중고생들은 일부러 다음 정거장까지 가서 내린다."
그들간의 경계는 없다. 그러나 생길 수도 있다. 창원 남양동 개나리 3차 4차 아파트.
교류차단 노골화…'의도적 섞기 정책' 한계
◇임대 많아질수록 표면화하는 갈등
임대아파트와 일반아파트라는 구분. 주로 무주택가구와 저소득계층을 위한 임대아파트의 규모가 커질수록 인근 일반분양 아파트 주민과 갈등을 빚는 경향이 강해진다. 특히 아이들이 함께 노는 공간이나 다니는 학교, 학원을 의도적으로 분리시켜 교류를 막으려는 현상이 대도시에서는 노골적으로 나타난다. 임대아파트의 규모가 일반분양에 비해 미미한 경남에서도 이런 현상의 실마리는 이미 나타났다.
2000년 이후 분양된 진주의 한 아파트단지에는 일부 임대아파트가 섞여 있다. 이곳에 분양을 받아 입주한 박모(42) 씨는 일반과 임대아파트 주민들 간에 소소하게 벌어지는 일을 이렇게 설명했다. "분위기가 많이 달라요. 아무래도 임대 쪽은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노는 시간이 훨씬 길죠. 그만큼 맞벌이 부부가 많으니까요. 그래서 가까이 있는 일반 입주민들은 소음문제를 제기해요. 드러내놓고 말은 안 하지만 자기 집 애들이 거기서 놀까 걱정도 하고…."
창원시는 오히려 임대아파트가 줄어드는 양상이다. 2000년 이후 일반분양으로 전환되는 곳이 많아지면서 지금은 임대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대방동 성원 임대아파트 7동을 시작으로 대원동 성원임대, 대방동 성원기증아파트 등이 차례로 분양형으로 전환됐다.
남아있는 곳은 남양동 개나리3차와 양곡동 성원임대아파트 정도다. 특히 개나리3차 아파트는 상남동이나 대방동, 성주동 등 도시개발 과정에서 본거지를 잃어버린 이주민들이 주로 살고 있다. 경계를 짓지 않은 채 일반분양인 인근 개나리4차와 자연스레 연결돼 있다.
4단지 주민의 말도 단지의 형태와 분위기가 비슷했다. "3단지는 연령대가 좀 더 높고, 애들은 더 적지예. 뭐, 특별히 교류하지도 않지만 별문제도 없어예. 애들 초등학교도 거의 같고. 분위기가 다른 건 3·4차 보다 바로 옆에 성원이나 대동처럼 큰 데하고 다르지예. 이사 간 사람들이 여기만큼 이웃 간에 정이 없다 카데예."
◇특히 상처 큰 임대아파트 아이들
그러나 불모산을 넘어 김해시 장유면으로 가면 문제가 달라진다. 아파트가구 수만 해도 4만 호를 넘긴 전형적인 아파트도시인 장유. 이곳에는 임대아파트만 해도 부영임대 1∼19차와 주공 국민임대 11단지와 14단지 등 모두 1만3000가구를 넘는다. 그만큼 일반과 임대아파트 주민 사이에 발생하는 현상도 다양하다. 주공국민임대 11단지인 월산장유마을 입주민인 최모(43) 씨는 단적인 현상을 초등학교의 분위기에 비유했다.
"주변에 초등학교가 세 곳 있어요. 하나는 임대단지 안에 있어서 대부분 임대아파트 아이들이 다니죠. 나머지 둘은 임대와 일반 아이들 비율이 조금 달라요. 그런데 일반 아이들이 많은 학교는 그만큼 학부모들 입김이 센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그 학교와 아무 상관이 없는 저도 알고 있을 정도니…. 당연히 임대 쪽 학부모들은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죠."
인터뷰 처음에는 "임대든 분양이든 단지가 구분돼 있기 때문에 별문제 없다"던 그도 점점 더 생각이 많아지는 듯했다. "애가 초등학교 3학년인데 딸애라 더 신경이 쓰이네요."
정부의 주택정책은 무주택 서민을 위한 주택공급의 확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일반과 임대형 공동주택 주민들 간의 갈등이나 그 사이에서 아동이 받을 영향 같은 문제에 힘이 미치지 않는다. 임대아파트의 건축도 대규모로 독립된 단지의 형태와 1000가구 이상 일반아파트를 지을 때 일정비율 이상의 임대아파트 건축을 의무화하는 방법이 병행된다. 둘 다 2008년에 착공될 예정인 마산시 가포·현동 국민임대주택이나 창원시 봉림지구 국민임대주택 등이 앞의 예가 된다.
이후 임대와 일반의 배치 측면에서 마련돼야 할 바람직한 정책의 방향은 뭘까. 인제대 디자인학부 오찬옥 교수는 "공동체나 아이들 교육을 위해 책에서는 다른 계층을 섞어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현실은 점점 더 분리돼 간다"며 "사람들 자체가 그러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또 창원 개나리4차 관리사무소의 관계자는 "한 아파트 안에서도 큰 평수, 작은 평수 사이에 간격이 있는데 심지어 일반과 임대 사이는 더 하지 않겠느냐"며 "의도적으로 뒤섞는 정책은 현실화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이 기획취재는 문화관광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 지원을 받아 이뤄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