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전설 ‘영암’의 프러포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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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산’에서 소원 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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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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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저 : 전남 영암 ‘월출산 도갑사’ 역사의 전설 ‘영암’의 프러포즈 ‘월출산’에서 소원 빌다
▲ 2005년 보물로 지정된 도갑사 오층석탑. ©고은희 기자 | | 태풍 마니가 지나간 자리에 장마의 끈적거림이 스멀거린다. 이럴 때일수록 물소리, 산새소리, 시원한 바람소리가 간절해진다.
“월출산의 많은 기이한 모습을 실컷 들었거니, 그늘지며 개고 추위와 더위가 서로 알맞도다”라고 고려시대 시인 김극기가 예찬한 영암이 불현듯 생각난다. 사실 영암기행은 오래 전부터 기획해 왔던 일이다. 영암하고도 월출산은 ‘호남의 소금강’으로 불릴 만큼 산세가 아름다운 곳이다. 무더위에 지친 여름날, 옛 시절의 향취가 살아있는 영암 고장을 향해 달렸다.
▲ 동ㆍ식물의 낙원지인 영암 ‘월출산’의 도솔사로 들어가는 산문. ©고은희 기자 | |
영암은 울산에서 대략 6~7시간이 걸리는 거리다. 울산에서 부산을 거쳐 곧장 광주를 경유해 나주에서 영암으로 가는데, 길은 좋아도 예닐곱 시간을 도로에 허비해야 한다. 그럼에도 여행마니아들은 고생을 낙으로 삼고 보람으로 느낀다.
▲ 도갑사에서 가장 오래된 국보 제50호 해탈문은 석조기단 위에 세운 소규모의 문. ©고은희 기자 | |
영암에 도착해 고즈넉한 산사 도갑사에 들렀다. 이 도갑사는 월출산에서도 호랑이가 앞발을 들고 포효하는 형상의 산자락 아래 자리 잡고 있다. 사찰 창건은 신라의 고승 도선(道詵)국사가 했고, 이후 여러 고승이 주석하며 깨달음의 참다운 이치를 널리 펼쳐왔다.
이 사찰에는 국보와 보물 등 많은 문화재가 보존돼 있다. 이 절에서 가장 오래된 국보 제50호 해탈문은 석조기단 위에 세운 소규모의 문이다. 중앙 칸은 통로가 되고 좌우 한 칸씩은 사천왕상을 안치하게끔 돼 있다.
▲ 큰 돌의 내부를 파서 물을 담아 쓰거나 곡물을 씻는 데 쓰는 돌그릇인 대형 석조. ©고은희 기자 | |
이 문의 건축양식은 기본적으로 부석사 조사당과 동일한 계통이지만, 공포의 출목이 구조적으로는 이출목이면서 그 형태는 추록으로 된 것 같이 보인다. 여러모로 우리나라에서 유례가 드물어 매우 귀중하게 여기고 있다.
해탈문의 가운데 칸을 통해 절집으로 들어간다. 일주문인 절집의 대문인 이곳에는 사천왕이 모셔있어 절문을 드나드는 중생들을 살피는데, 특이하게도 이곳에는 두 사천왕만 모셔 있고, 나머지 두 사천왕은 성보박물관안에 모셔있다고 전한다.
▲ 영암 출신 수미왕사의 활동과 내력이 기록돼 있는 수미왕사비. ©고은희 기자 | |
도갑사는 해탈문에서 바라볼 때가 가장 아름답다. 중간 칸을 통과해 경내로 들어섰다. 2년 전 쯤 보물로 지정된 오층석탑이 보인다. 탑은 부처의 사리를 봉안한 것으로 불교의 상징적인 예배의 대상이다. 이 탑은 다섯층으로 돌을 깎고 다듬어서 만든 탑이다. 기단과 몸체에 해당하는 탑신, 그리고 탑의 몸체 돌을 덮고 있는 지붕 모양의 옥개석과 탑의 머리 부분을 장식하는 상륜부(탑의 꼭대기 부분)가 남아 있다.
또 대웅전 앞 뜰에 거대한 석조에서는 시원스럽게 물을 흐르고 있다. 이 석조는 큰 돌의 내부를 파서 물을 담아 쓰거나 곡물을 씻는 데 쓰는 돌그릇이다. 300년 된 초대형의 고풍스런 석조는 화강암으로 만든 기다란 네모 모양의 통나무배 모양으로 네 귀의 모서리를 죽였고 거죽의 밑바닥도 반원형으로 돌려 처리했다.
옛날 이무기가 용이 되어 승천했다는 전설이 서려 있는 용수폭포. ©고은희 기자 | |
수미왕사비도 한 몫을 차지한다. 이 비에는 영암 출신 수미왕사의 활동과 내력이 기록돼 있다. 경내를 둘러보다 석조여래좌상이 봉안돼 있는 미륵전을 끼고 돌아 흐르는 계곡에 위치한 용수폭포 앞에 섰다.
이 폭포는 옛날 이무기가 용이 되어 승천했다는 전설이 서려 있다. 그 길이는 명주실 한 꾸러미가 다 들어갈 정도라고 했는데, 지금은 수심이 약 2m정도이고 수폭은 5m로 사시사철 맑은 물이 쏟아져 산사의 정취에 보탬을 준다.
조선시대 시인 김시습은 “남쪽 고을의 한 그림 가운데 산이 있으니, 달은 청천에서 뜨지 않고 이 산간에 오르더라”고 노래했다. 아직 달이 뜨지 않았지만 소원을 말하기 위해 두 손을 모았다. 고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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