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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의 포구이야기 - 22. 망덕포구
아버지는 왼쪽에서, 아들은 오른쪽에서 그물을 당겼다. 파닥이는 전어의 은빛 비늘이 불빛에 반짝이며 바다로 사라졌다. 어창에 전어가 가득해질 무렵 불빛이 약해졌다. 백운산 꼭대기에 뭉게구름이 어둠을 밀어내며 하늘로 올라오자 갈매기가 어부부자를 반겼다.
“엣다. 너도 한 마리 먹어라.”
그물질이 끝날 무렵이면 아버지는 전어 몇 마리를 갈매기에게 주었다. 벌써 포구로 돌아가는 배들도 보였다.
어부는 전어 잡고 식객은 포구 찾고
망덕은 김(金)을 많이 생산했던 포구였다. 지금은 그 갯벌을 막아 공장을 짓고 쇠(金)를 만들고 있다. ‘김’이 ‘쇠’로 변하는 사이 섬은 뭍이 되고 갯벌은 사라졌다. 누가 저곳에 제철공장이 들어설 것이라는 것을 알았겠는가. 갯벌은 없어졌지만 그나마 전어와 재첩이 있어 섬진강 포구는 풍성하다.
전어는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 많다. 한강 하류의 소래와 강화일대, 금강하류의 비응도 일대, 섬진강 하류 망덕 일대, 낙동강 하류 등이 그곳이다. 하지만 오롯이 강과 바다가 통하는 곳은 섬진강과 한강뿐이다. 모두 물길이 막혔다. 영양염류가 풍부하고 수초와 갯벌들이 발달한 이곳은 산란을 위해 물고기들이 많이 찾는다.
전어가 알을 낳고 살이 통통하게 오르는 가을철에 어부들은 전어를 잡고 식객들은 포구를 찾는다. 지리산을 끼고 도는 섬진강의 대표적인 물고기로는 깨끗한 곳에서만 산다는 은어를 꼽지만 하구에는 은빛처럼 빛나는 전어가 있다. 가을이면 전국의 전어가 망덕포구 전어로 둔갑하는 이유다.
시간은 광양제철 입주 전후로 나뉘어
망덕포구 외망리 어민들은 작은 배로 전어를 잡아 생활한다. 대형 어탐기로 전어를 쫓아다니는 것이 아니다. 어둠이 물러나기도 전인 새벽에 마을 앞 배알도 인근에 나가 전어를 잡고 날이 밝으면 서둘러 돌아온다. 옛날에는 양조망이라 해서 두 척의 배로 노를 저어 전어를 에워싸서 잡았다. 망덕포구 맞은편에는 선소라는 마을이 있다. 두 마을 사이에 있는 방조제에는 당시 전어를 잡았던 작은 배가 전시되어 있다.
“제철이 들어오기 전에는 황금어장이여, 노다지가 따로 없었어.”
더위를 피해 나무 그늘 아래에 모여 있던 노인들에게 전어이야기를 꺼내자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한 마디씩 했다. 이곳 사람들에게 기억의 경계는 제철이다. 그들의 시간은 광양제철이 들어오고 난 전과 후만 있을 뿐이다.
제철은 갯벌을 매립해 지었기 때문에 갯일을 하며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당시에는 바다에서 고기가 흥청망청 나왔지만 시세는 없었다. 고기잡이보다는 김양식이 중요했다. 겨울철에는 김을 하고, 봄철에는 실뱀장어를 잡으면 됐다. 여름철에는 장어를 잡으면 되고 가을철에는 전어를 잡으면 됐다.
하지만 지금은 장어와 김양식은 사라졌다. 남은 것은 전어뿐이다. 부부가 전어잡이를 하는 통에 가을철이 되면 망덕포구 개들도 울고 돼지들도 운다. 때에 맞춰 밥을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전어회에 묵은지 그리고 소주 한 잔
망덕포구에서 금호도와 태인도 그리고 지심도 일대는 모두 김양식을 했던 곳이다. 특히 태인도에는 최초의 김양식 시식지로 알려져 있다. 이를 기념하는 비가 세워져 있으며 사당도 있다. 전하는 이야기로는 광양에서 진상된 김을 먹어본 임금이 맛이 좋아 이름을 물어보자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가져왔을 뿐 이름을 모른다고 하자 ‘김’이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전한다.
삼천포나 남해에서는 벌써 크고 작은 전어축제들이 시작되었다. 머지않아 전어의 본향인 망덕포구에도 가을의 전설이 시작될 것이다. 포구 구석구석을 살피며 몇 차례를 배회하다 ‘묵은지와 전어’라고 적힌 식당 앞에 차를 멈췄다.
그러니까 5년 전쯤 되었을까. 거제도를 여행하다 외포의 선창에서 전어회를 묵은지에 싸 먹었던 기억 때문이었다. 소주에 전어회와 묵은지 그리고 집된장이 전부였다. 가장 맛있는 전어였다. 그 맛을 망덕포구에서 다시 느꼈다.
작년 이른 가을 새벽녘 전어배를 탔었다. 배알도를 오가며 전어를 잡다 갈매기에게 전어를 주었던 어부가 썰어준 전어맛을 잊을 수 없다. 그 새벽에 먹었던 소주 한 잔과 전어맛, 그 맛을 올 가을에도 느끼고 싶다.
전남발전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