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의 포대기.
포대기는 부모와 아기와의 연대감을 결속시켜주기도 하며 아기와 밀접한 교감을 통해
안정된 애착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영아기(嬰兒期)에 형성되는 애착관계는 사람관계 속에서 느끼는 기쁨, 행복, 안정감 등
좋은 감정이 형성되는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이는 성인이 되었을 때에도 인간관계에 대한 태도와 성격의 기초가 된다.
영아기에 부모와의 애착관계를 잘 형성하는 것은 발달 단계에서 매우 중요하다.
나의 젊은 시절 친정어머니의 포대기 선물은 외손주 에 대한 사랑이며 축복의 표현 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아기를 포대기에 업고 다니는 젊은 세대가 보이질 않는다.
등에 업힌 아기는 차가운 알루미늄의 사각 공간에 마치 지게에 아이를 지고 가는 듯 한
모습은 안정감은 있어 보이나 아기의 숨결과 체온의 따뜻한 교감은 적어 보인다.
칭얼대는 아기를 등에 업어 재우기도 하고 시장 갈 때와 하루의 일상을 할 때에도 아기와
함께 하면서 눈을 마주보고 젖을 물리던 우리의 시대였다.
영아기(嬰兒期) 부터 엄마의 젖가슴이 아닌 나비와 그림들이 빙글거리는 모빌을 바라보며 고무젖꼭지와
아기 전용침대에서 일찍이 아기들은 독립에 익숙해진다.
어쩌면 시간은 돈이라는 맞벌이 시대가 만들어 낸 능률적이고 합리적인 육아법이다.
어릴 때부터 독일인 들이 자식들에게 자립심을 훈련시키는 방법 중에 어린 아이가 넘어져 피가
흘러도 스스로 일어서도록 책임과 홀로서기를 훈련시킨다.
자신의 정체성에 충실하며 근검절약하는 독일의 국민성은 경제 한파에도 탄탄한 경제 기반으로
정부는 국민의 지지대가 되어 주었다.
중세시대의 고(古)건축들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과 역사를 중시하며 잔혹했던
나치의 비극도 망각 속에 숨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 시대의 역사에서 겸허히 깊은 교훈을 얻는다.
어떻게 키우든 아이들은 성장해 사춘기를 겪으면서 내 품에 있던 자식은 알 수 없는
자기만의 성(城)을 쌓으며 자의식(自意識)은 강해지고 부모와의 친밀감이 조금씩 낯설어 진다.
특히 아들인 경우에는 더욱 말을 아끼며 하루에 고작 “밥줘!” “돈줘!” “문 닫아!“ 라는 말이
대부분이며 툭 던지는 녀석의 짧은 말에 속상해 하는 어매의 기분은 안중에 없다.
그 때부터 자식들로부터 소외감이 시작된다. 노여워하거나 가까이 다가가면 점점 더
반등(反騰)처럼 튀어오른다.
그들만의 불가침(不可侵)의 성(城)을 존중해야 한다.
부모들은 조용히 그들의 성장통(成長痛)을 살피며 기다려야 한다. 군대를 가면 대부분
부모와 소원(疎遠)했던 녀석들이 효자(?)가 되므로...
그리고 부모와의 좋은 관계가 서서히 회복된다.
냉랭했던 녀석은 휴가를 받아 동생을 챙기며 군(軍)에서 받은 봉급으로 어매를 강남
최고의(제 딴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서비스하며 카투사병 으로 근무하는 동안 미군들과의
이질감으로 힘들었던 시간을 재미있게 들려주는 모습에 몰랐던 아들의 새로움을 보게 되었다.
힘들었던 부모의 시대가 젊은 그들에게 감동의 메시지는 아니다. 우직하게 근면 성실함은 식상한
교훈일 뿐, 숨 가쁜 경쟁사회를 살고 있는 그들에겐 끊임없는 창의(創意)를 향(向)한
도전(挑戰) 과 열정(熱情)이 우선이다.
부모가 우주였던 우리의 순진했던 시대는 과거의 역사가 되었다.
우리의 자식들은 독립의 의미를 성숙한 책임감으로 미래를 가꾸며 잘 살아갈 것이다.
시대가 바뀌어 포대기 시절도 가고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 같이 돌아가야 한다.
그들의 문화에 같이 하진 못 해도 최소한 이해 할 수 있도록 귀는 열어두어야 한다.
그들 스스로 느끼도록 관심을 갖고 조금씩 감동을 주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세상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자식을 향(向)한 부모의 해바라기 사랑이다.
가을의 태양아래 타는 듯 한 단풍처럼 원숙하고 깊은 아름다움은 다시금 녹음의 봄을
기다리듯 자연의 순환에 인생을 관조(觀照)하며 미래를 향한 그들의 끊임없는 도전에 박수를 하자.
엄마의 젖가슴이 아니면 어떠랴! 고무젖꼭지가 되어도 그들의 정당성엔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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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근한 포대기의 향수(鄕愁)는 이제 우리시대의 전유물(專有物)이 될것을...
첫댓글 마리님 글 읽으면서 정말 세월의 비정(?)함을 느낍니다. 아기 포대기..............얼마나 정감있는 포대기인데..........지금 젊은 세대들은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행기, 그 보행기에 아이를 처음 앉혔을 때의 그 뿌듯함.......지금 젊은 세대는 아이 허리가 잘못된다고 보행기에도 앉히질 않네요. 헌신적인 부모 사랑도 옛 이야기 같아요. 해바라기 사랑은 앞으로는 없는 듯 합니다.이기주의가 너무 만연된 시대인 것 같아요.
아! 그런 인체공학적인 육아 방법이었군요.
우리세대가 감성의 육아법이었다면 그들은 얼마나 진취적입니까?
잠시 물러나 젊은세대들의 영악함과 합리적인 방법에 박수해야 할것 같습니다.
그들을 믿고 우리는 사랑 합시다.
사랑은 고향입니다.
하늘이 맑고 깊습니다.
시름을 내려놓으면 가을의 수채화가 얼마나 아름다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