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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대륙’으로 불리는 그린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섬이다. 한반도 10배 크기인 216만㎢의 면적 중 80% 이상이 얼음으로 뒤덮여 있다. 하지만 이 땅이 에너지·자원·항로 등에서 지구의 마지막 기회로 여겨지며 세계 각국의 관심을 끌어 모은다.
‘눈(雪)부신’ 제7대륙 지구 반대편을 향한 손짓
그린란드 일루리사트에서 전통마을 일리마나크로 가는 뱃길. 적막한 바다 위에서 마주치는 고깃배는 오랜 벗처럼 친근하게 느껴진다.
그린란드 내 셋째로 큰 도시인 일루리사트에서는 5월 들어 백야가 시작됐다. 동쪽에서 뜬 해가 서쪽으로 지지 않고 하루 종일 머리 위에 떠 있다.
그린란드 수도 누크의 한 교회 앞에 세워진 한스 에게드 동상. 루터파 목사인 에게드는 1728년 지금의 누크 자리에 고트호프란 도시를 세워 이누이트들의 개종 활동을 펼쳤다.
그린란드의 ‘원주인’은 대부분 이누이트(Inuit)라 불리는 에스키모인들이다.
에스키모는 ‘날고기를 먹는 사람들’이라는 뜻의 서양식 표현으로 이곳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말이다.
이누이트는 인간이라는 의미다.
그 옛날 시베리아를 비롯한 중앙아시아로부터 넘어온 이누이트의 선조는 우리와 닮은
몽골 인종이다.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알래스카·캐나다·덴마크 등에서 이주해온 서양 사람들과
자연스레 섞였다.
그래서인지 그린란드 사람들의 눈빛은 독특하다.
빙산의 푸른빛을 닮기도 하고 한국인의 검은빛을 닮기도 했다.
가장 먼저 그린란드에 이주해 그린란드 이누이트 문명을 연 사람들은 캐나다에서
건너온 이누이트들이다.
캐나다와 그린란드 사이 좁은 해협의 얼어붙은 바다를 넘어온 이들은 기원전 2400년
전 이 땅에 처음 발을 내디뎠다.
캐나다에서 넘어온 이누이트 문명은 시기에 따라 몇 개로 나뉜다.
인디펜던스 Ⅰ·Ⅱ, 사과크(Saqqaq), 도셋(Dorset), 툴레(Thule) 등이 각 문명을 구분짓는
말이다.
기원전 500년 전부터 번성했던 도셋문화일 때 겨울사냥의 임시거처인 이글루가,
서기 900년경 툴레문화 때 고래사냥에 용이한 카약과 한층 정교해진 작살 등이 만들어졌다.
그린란드의 전통적 교통수단인 개썰매도 툴레문화의 산물이다.
툴레문화를 전파한 이누이트가 지금 그린란드인의 직계조상이다.
위쪽에서 이누이트의 툴레문화가 내려올 무렵, 남쪽에는 유럽문명이 상륙했다.
그린란드에 첫발을 내디딘 이들은 바이킹이다.
아이슬란드로 이주해 살던 바이킹 중 군비요른 울프손이 뱃길을 잘못 들었다 그린란드를
발견했다.
울프손 이후 스나에비요른 갈티, 붉은 털 에릭으로 유명한 에리쿠 프로발드손 등이
그린란드를 찾았다.
특히 에릭은 982년 추종자들과 배 25척을 끌고 그린란드로 왔다.
마침 그린란드에 중세 온난기가 찾아왔다. 땅에서 풀이 돋아 양을 키울 수 있었고,
작물 재배도 가능했다.
그러나 15세기 유럽에 닥친 소(小)빙하기 때 이들은 허무한 종말을 맞는다.
종말과 관련해서 전염병설, 기후설 등 설들만 분분할 뿐 정확히 밝혀진 것은 없다.
그린란드에 다시 손길을 뻗친 유럽인은 1700년대 초 루터파 목사인 한스 에게드.
에게드는 노르웨이에 전도하러 갔다가 그린란드 바이킹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들의
개종을 위해 그린란드로 넘어갔다.
하지만 바이킹의 흔적만 남아 있을 뿐 아무도 없었다.
에게드는 대신 이누이트들을 대상으로 선교 활동을 폈다.
1728년에는 지금의 수도인 누크 자리에 고트호프란 도시를 세워 개종활동을 벌였다.
이후 400여 년간 유럽의 여러 나라가 고래기름을 구하기 위해 그린란드를 찾았고,
덴마크의 식민지배가 이어지며 수많은 혼혈인이 태어났다.
그 과정에서 순수 혈통의 이누이트는 사라져갔다.
그린란드에서는 동서양의 분위기가 함께 묻어나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제는 그린란드 이누이트가 아닌 그린란더라는 말이 더 자연스러워졌다.
누크 시내의 이누이트 역사문화박물관 한편에는 미라가 전시돼 있다. 미라는 5000년 전쯤 살았던 사람으로 추정되지만 시신이 거의 썩지 않고 잘 보존돼 있다.
한반도의 10배에 이르는 광활한 땅에 인구는 5만5847명(2015년 그린란드 정부 공식
통계)이 산다.
주민들의 88%는 이누이트 혹은 이누이트-덴마크계 혼혈이고 12%는 유럽계다.
언어는 그린란드어·덴마크어·영어를 쓴다.
종교는 덴마크 루터복음교(기독교)가 대부분이다.
국토의 80% 이상이 눈과 얼음으로 덮여 있다.
땅은 대부분 북극권 안에 포함돼 있다.
도시와 도시가 선이 아닌 점으로 연결돼 있다.
교통수단은 항공편이 사실상 유일하다.
항공편조차 이용할 수 없는 곳에서는 개썰매가 교통수단으로 유용하다.
그린란드를 뒤덮은 얼음의 두께는 평균 1500m, 최고 3000m가 넘는다.
만일 그린란드의 얼음층이 전부 녹는다면 지구 해수면이 7m 이상 높아져 해안에
자리한 세계 주요 대도시의 3분의 2가 물에 잠길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그린란드는 전통과 현대가 혼재한다.
과거에는 이누이트들이 가족단위로 살았기에 이들을 통치할 기구가 존재할 수 없었고,
중심도시 같은 집단거주지도 없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부터 전통적 삶을 포기하는 이누이트가 생기면서 시장 경제와 임금
노동을 바탕으로 하는 도시들이 탄생했다.
그린란드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있는 스위니 요한센(26) 씨는 “전통문화는 관광적인
측면에서는 의미가 있을지 몰라도 기능적 측면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린란드가 언젠가는 덴마크로부터 완전히 독립해야 하고, 그러려면 경제적 자립이
우선”이라고 소신을 밝힌 요한센 씨는 7월 10~16일 KMI 주최 ‘제2회 북극아카데미’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다.
행사에는 북극권 원주민 대학생 12명을 포함한 외국 대학생 20명과 한국 대학생 10명이
참가한다.
그는 “대학 졸업 후 더 큰 세상을 경험하고 싶다”고 말했다.
누크 시내 번화가에 거의 매일 서는 전통장터에서 5000~1만원짜리 액세서리를 파는
크리스티나 루드비그센(26·여) 씨.
그는 기본교육(지역에 따라 9~10년제로 한국의 초등학교+중·고등학교)을 받은 뒤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루드비그센 씨의 아버지는 고기 잡는 일을 한다.
“노점상을 시작한 지는 3~4년쯤 됐어요. 작은 액세서리는 재료를 사다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직접 만들기도 하고 화장용 속눈썹 같은 것들은 다른 곳에서 떼오기도 합니다.
그린란드 사람들이 잘살게 되는 것은 좋지만 전통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원치 않아요.”
이 같은 현대와 전통의 혼재 속에서 자살률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은 그린란드
정부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다.
가족부 장관 출신으로 2008년부터 누크시 행정을 맡고 있는 아시 시장은 “전체 인구
5만6000명 중 1주일에 1명꼴로 자살이 발생한다.
가족 중에 누군가 죽으면 따라 죽으려는 경향이 있다”면서 “알코올 소비는 20년 전과
비교하면 절반가량으로 줄어들었지만 자살률은 좀처럼 낮아지지 않고 있다.
주위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린란드의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인구 1000명당 1명꼴이다.
또 전체 인구의 4분의 1이 1번 이상 자살 시도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가난·우울증·알코올중독·백야로 인한 불면증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누크 시내 곳곳에는 자살 방지 포스터가 붙어 있다.
“누구도 혼자가 아닙니다. 어둠에 빠져 있지 마세요. 전화하세요. 통화료는 무료입니다.”
그린란드는 북극권 개발의 무한한 잠재적 가치 때문에 주목받는다.
현재는 덴마크령이지만 노르웨이·덴마크·스웨덴 등이 한때 이곳을 지배했다는 이유로
영토 주권을 주장했다.
노르만족 3000여 명이 10~15세기 거주했고, 1721년 노르웨이 탐험대가 식민지를 세운
곳이 현재의 수도 누크다.
1814년 나폴레옹전쟁 이후 그린란드가 덴마크 영토로 편입되고 노르웨이가 스웨덴에
예속되면서 분쟁이 증폭됐다.
1905년 노르웨이가 스웨덴에서 독립한 뒤 노르웨이와 덴마크 간 분쟁으로 비화되기도 했다.
누크 시내의 중심가에는 거의 매일 장이 선다. 우리네 오일장과 비슷한 장터에서 상인과 손님이 물건값을 흥정하고 있다.
올해 5월 들어 누크의 낮 최고기온이 영상 15도를 넘어선 날이 잦아졌다. 한 여자아이가 바짓가랑이를 걷고 바닷물에 발을 담그려 하고 있다.
북극해 연안국의 치열한 영유권 분쟁은 북극해 아래 매장된 엄청난 규모의 유전과 천연가스 때문이다. 여기에 채 탐사가 이뤄지지 않은 막대한 양의 광물자원까지 더하면 경제적 가치는 천문학적으로 늘어난다.
미국 지리학회(USGS)에 따르면 북극해에는 지구상에서 개발되지 않은 원유의 약 13%(900억 배럴), 천연가스의 30%(47조㎥), 액화천연가스의 20%(440억 배럴)가 묻혀 있다. 다른 광물자원은 제외하고 원유·천연가스만 따져도 북극해에 묻힌 자원의 가치는 172조 달러(20경원)에 달하는 셈이다.
북극해 석유 관련 자원의 국가별 비중을 보면 러시아가 단연 선두다. 이 지역 전체 원유 매장량의 41%, 천연가스 매장량의 70%가 러시아 북극지역에 있다. 지금까지 61개 대형 석유·가스 매장지가 발견됐으나 이 가운데 15개는 아직까지 생산단계에 이르지 못한 상태다.
북극 일대에는 금·은·석탄·몰리브덴·아연·다이아몬드·우라늄·니오븀·철·망간·희토류 등도 무궁무진하다. 광물 탐사·개발에 적극적인 러시아가 이미 25개 광산에서 자원을 채취하고 있으나 아직 대부분은 미개발 상태다. 이 밖에도 북극해에서는 명태·대구류·가자미·넙치·대게 등 고급 어종이 풍부해 전 세계 어획량의 5%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북극해 얼음이 녹아 여름철에는 러시아(북동항로), 캐나다(북서항로) 연안을 따라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북극항로가 가능해진 것도 북극의 가치를 더욱 높이고 있다. 북극항로를 이용하면 부산에서 네덜란드 로테르담까지 거리가 기존 2만100㎞에서 1만2700㎞로 37%, 운항일수는 30일에서 20일로 단축된다. 러시아와 캐나다가 최근 북극해 영유권을 강하게 주장하고 나선 것도 이 항로에 대한 지배권을 확실하게 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이 알래스카 지역을 중심으로 영유권을 앞세우지 않고, 대신 인류 보편적 이슈인 지구온난화를 내세워 국제 공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배경에는 북극항로를 특정 국가 영향권이 아닌 국제 공용수로로 만들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중국 해군 함정 5척이 지난해 9월 러시아와 미국 알래스카 사이 베링해에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 것도 그들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한편 경쟁에서 뒤지지 않으려는 속내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2013년 북극 지방의 공동관심사를 논의하는 ‘북극이사회’ 옵서버 자격을 획득, 온난화로 중요성이 커진 이 지역 진출을 모색한다. 일부에서는 이미 표면화한 북극해에서의 러시아와 서방 간의 대립이 군사적 갈등으로 치닫고 이에 따라 미국·캐나다가 새로운 대(對)러시아 제재를 추진할 수도 있는 만큼 신중하고 유연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임진수 부원장은 “한국은 북극항로가 개발됐을 때 우리의 실력을 유감없이 선보일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해야 할 것”이라며 “당장 눈앞의 이익만 좇을 게 아니라 긴 호흡을 갖고 북극권 국가들의 권리를 존중하면서 협력하는 자세를 보인다면 북극권에서 한국의 입지는 더 넓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