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5대왕 문종(1414~1452)은 세종과 소헌왕후의 장남으로 태어나 2년 3개월의 재위기간 왕노릇을
하다 39세의 젊은 나이에 승하하셨다. 평생 부인3 명(현덕왕후 권씨,귀인홍씨,사측양씨)에 자녀를 1남(단종)2녀 두었는데 무덤은 구리시에 있는 동구릉에 두번째 묻힌 현릉(顯陵)이다.
왕세자시절 세자빈 봉씨가 있었는데 그 시절 동성애 사건으로 폐위되고 1437년 현덕왕후 권씨가 세자빈으로 책봉되어 경혜공주와 단종을 낳은 다음날 산후병으로 24세에 죽는다.
세번째 세자빈인 권씨마저 일찍 죽은 후 문종은 더 이상 왕비를 두지 않았다.
여자를 좋아하지 않았는지 28세에 권씨를 잃고 39세에 죽을 때까지 세자빈이나 왕비를 맞아 들이지 않은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루라도 국모인 중전의 자리를 비워둘 수 없다는 것이 당시의 왕실 법도였다는데 그렇게 오랜기간 동안 형식적으로라도 왕비를 맞지 않았다는 것은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다.
세종(1397~1450)이 살아 있었음에도 문종이 배필을 맞지 않았다는 것은 정말 기이한 일로서 임금이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고 십여년을 보냈다는 것이 독특한 경우라서 한번 돌이켜 봤다야.
첫댓글 이거 출처가 어디여.. 봉씨의 동성애 사건은 야사편에 나오던데.. 그 다음은 못 봤는디.. ?
문종은 원래가 몸이 약한데다가 세종이 승하하자 한달여 동안 식음을 전폐하다가 병을 얻어 승하했다고 조선실록에서 읽은거 같은데. 세종이 부스럼이 심해 한 5년여동안 문종이 실제로 왕권을 행사했었지 특히 군권을 아주 이양했었고 또 세조가 군권을 얼마간 행사를 해서 사병을 두었고 결국 단종이 폐위되는 빌미가 되었어 . 문종은 세조를 두려워 했고 단종을 염려 했지. 또한 자신이 일찍 죽을 줄 알고 신숙주에게 어린 단종을 부탁했는데 숙주나물이 되어 부렀고, 실제로 왕들의 건강을 보면 거의 성병(임질 매독)으로 인한 사망이 대부분이고, 그걸고치고자 주사(수은제)를 많이 복용하여 수은 중독으로 거의 단명.
사실 궁중 성문화가 보통 난잡한 거가 아니었지. 야사에서는 특히 궁녀들과 거세된 내시들과 로맨스 및 동성애(?) 등은 정말 성병의 온상이어서 임금들이 성병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었다고 봐야 될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