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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속에서 응시한 타자들
- 최재언의 시집 『오래된 인연』에 대한 소고
이구한(문학평론가)
1. 관계란 무엇인가?
관계란 무엇인가? 관계란 여러 대상들이 서로 연결되는 구
체적인 양상을 말한다. 시인의 시를 읽는 것은 대상과의 관계
를 읽는 것이고 대상에 대한 시인의 인식세계를 읽는 것이다.
관계란 시간과 공간상에 나타난 지평을 통해 드러나게 된다.
이러한 관계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뿐아니라 자연과의 관계
도 있으며, 일상의 사물과도 관계가 있다. 또한 생태계와의 관
계, 그리고 죽음과의 관계도 있다.
관계란 상호 우호적인 면도 있지만 불편한 점도 있으며 때
로는 상처를 주기도 한다. 이는 상호간의 자의성에서 발생한
다. 개인의 성질이나 시각 차이 때문에 발생하기도 하지만 환
경이나 사회적인 거리 때문에 발생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만
나고 헤어지는 관계에서 우호적인 관계를 성숙시키기 위해서
는 쌍방 간에 노력이 필요하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 강남이란 중국
의 양쯔강 아래 지역을 의미하는 강남이다. 가을에 제비가 강
남으로 날아간다고 할 때의 그 강남이다. 이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남에게 이끌려 남이 하는 대로 덩달아 함께 행동함
을 뜻하기도 하지만 친구는 그만큼 좋은 사이라는 뜻이다. 친
구란 나와 가장 가까운 사이이고 항상 정감을 나누는 관계이
기 때문에 자신의 이기적인 견해를 포기하고 친구의 의견이나
행동에 동참할 수 있는 사이인 것이다. 그러나 오늘 날 그런
친구가 있을까? 과연 있기나 한 것인가?
나의 실존이 나 자신의 실존이라 할지라도 세계에의 존재인
실존이기에 그것은 항상 넓게는 세계와 떼려야 땔 수 없는 것
이다. 이러한 관계는 시인의 경험과 대상을 접한 이미지들을
통해 나타난다.
관계는 비록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뿐 아니라 자연에도 적용
된다. 우리가 길을 가다가 무심코 바라본 꽃이 아무 의미 없는
꽃일 수 있지만 시인의 감정과 정서가 어우러질 때 독특한 형
태나 색감으로 다가올 수 있다. 시인의 시선을 통해 새롭게 변
형되고 새로운 이미지로 탄생할 수 있다.
최재언 시인의 시집 『오래된 인연』에는 대부분 일상적인 생
활을 통해 얻은 사유들로 이루어졌다. 그런 면에서 그는 리얼
리티를 존중하며 현실에 밀착된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는 편
이다. 허무맹랑한 공상이 아니라 실제 오감을 통해 얻은 지각
이 작용하는 편이다. 시인의 현실인식이 돋보이는 이유가 시
인의 시선이 사람이나 사물이 있는 현장에 있기 때문이다.
모리스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 Ponty. 프. 1908~1961)는
말한다. “나의 의미는 나의 밖에 있다”
2. 사람들과의 관계
사회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은 만나고 헤어진다. 한 번 만나
면 우연이겠지만 두 번 세 번 만나면 인연이 된다. 인연이 되
었다가도 때로는 헤어지기도 한다. 시집 표제시이기도 한 「오
래된 인연」은 사람과의 관계를 알려준다. 먼저 표제시 「오래된
인연」을 살펴보자.
바람이 불지 않는다
언제 적에 통화했는지
오래된 전화번호
그 핸드폰 역사가 무지 궁금하다
중학교 때 친한 친구였는데
축구를 한다고 서울로 전학을 한 뒤
이따금 TV에서 축구경기를 볼 때마다
그 친구 떠올라
그래서 걸어볼까 하다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도 있어
어쩌면 받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고
받지 않으면 내가 편치 않을 것 같다
바람이 불어도
생사가 아니, 통화는 가능하기나 할까
망설이다가 결국 걸어 본 전화기 너머로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번호”라는
삭막한 목소리
지워내야 할 아주 오래된 인연인 것을
- 「오래된 인연」 전문
“바람이 불지 않는다” “언제 적에 통화했는지 오래된 전화
번호”가 궁금하다. 이는 바람이 불지 않으니까 궁금한 것이
다. 그래서 전화를 걸까 생각한다. “생사가 아니, 통하는 가능
하기나 할까” 이는 바람이 불어도 통화 가능한지 궁금한 일이
다. 화자는 바람이 불지 않아도 궁금하고, 바람이 불어도 궁
금하다.
화자는 이 두 경우를 마치 바람이 불지 않는 경우와 바람이
부는 경우라고 두 인식체계로 비유한다. 바람이 불지 않는 것
은 운동이 정지된 상태로서 부재의 안부를 묻는 것이고, 바람
이 부는 것은 외부 압력에 의해 존재의 생사여부를 묻는 것이
다. 인식의 대상은 바람의 운동과 바람의 압력에 의해 각자의
시간으로 끌어올린 인식체계로 인식된다. 인식은 화자의 감각
에 의해 의식에 내재되는 것들의 구성작용이다.
현대는 핸드폰으로 소통하는 세상이다. 핸드폰이 사람이다.
화자는 핸드폰 너머로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전화 번호”라는
삭막한 소리를 듣는다. 소리의 결과로 인해 오래된 인연을 지
워내야 할 것으로 여긴다. 만남과 이별의 사이에서 하나의 관
계는 사라지지만 사라지는 아쉬움을 토로한다.
전화를 거는 자와 받는 자의 입장은 다르다. 이제 상대방에
서 걸어온 전화에 대해 살펴보자.
저온 창고를 설치하라는 말
낮은 금리로 대출을 해준다는 말
임플런트에도 보험이 된다는 전화
끝까지 다 들어주고 싶도록 야들야들한 목소리다
동창이라는 문자가 오고
미세먼지와 산불을 조심하라는 문자도
우리 지역에 코로나 감염이 몇 명인지
바쁜 일상인 나에게 날마다 보고를 해준다
인연을 다한 사람과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이름은 그대로인데
한때 가까이 지내며 소중했던 이름들이
지금은 바람따라 구름 여행 중이다
그 잊혀가는 이름보다 먼저
누군가의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내 이름을 위해
지금, 너스레라도 떨어야 할까
- 「잊혀가는 이름에게」 전문
“저온창고를 설치하라는 말/ 낮은 금리로 대출해준다는 말/
임플런트에도 보험이 된다는 전화” 모두 친절하고 고마운 전
화들이다. “동창이라는 문자” “미세먼지와 산불을 조심하라는
문자” “우리 지역에 코로나 감염이 몇 명인지” 날마다 나에게
보고를 한다. 휴대전화는 집 안과 집 밖의 분리를 해체한다.
사적공간과 공적공간의 경계를 해체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 공동체를 위해 필요한 정보든 필요하지 않은 정보든 전
달되고 접수를 강요한다.
하지만 소식이 끊긴 사람도 있다. “한때 가까이 지내며 소중
했던 이름들이/ 지금은 바람 따라 구름 여행 중이다”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세상살이다.
먼저 전화가 오기 전에 누군가의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나의 이름을 위하여 너스레라도 떨어야 오래 기억에 남을 것
인가? 자문해본다.
만남과 이별의 사이에서 시인은 친밀했던 타자들의 기억 속
에 이름이 지워지지 않기 위해 존재를 증명하고자 한다. 시인
은 사회적 관계에서 오는 인정認定에 관심을 기울인다.
앞에 「오래된 이름」이 지워진 이름에 대한 아픔이라면, 뒤의
「잊혀가는 이름에게」는 지워지지 않을 이름에 대한 사유이다.
이름은 대상을 인지하는 기억의 기표이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가족이다. 시 「동
반자」를 통해서 가족에 대한 사유를 따라가 보자.
해가 뜨면 하루 세끼 밥걱정
날마다 밥만 먹고 사는 줄 알았는데
어느 날부터
하나둘 늘어나는 약봉지
달이 가고 일년 삼백육십오일
속 깊은 이야기 다 들어주더니
어느 날부터 속병까지 생긴
당신에게 영원한 타자
- 「동반자」 전문
아내는 “해가 뜨면 하루 세끼 밥걱정”을 한다. “달이 가고 일
년 삼백육십오일” 아내는 “속 깊은 이야기 다 들어 준다” 나 때
문에 속병까지 생겼으니 나는 병 원인 제공자이다. 밥만 먹고
사는 줄 알았는데 “어느 날부터/ 하나둘 늘어난 약봉지”를 본
다. 내 속 깊은 이야기에 시달려 속병까지 생긴 것이다. 이게
남편과 아내의 관계이다.
아내의 고통과 분노에 대한 내적인 경험을 나는 전부 알 수
없다. 아내의 고통과 슬픔은 내 몸과 의식이 분화되기 이전에
나타나는 세계의 변양들이기 때문이다. 아내의 아픔과 슬픔은
아내와 나 사이에 정확하게 동일한 의미를 갖지 않는다. 그래
서 아내에게 나는 영원한 타자이다. 아내에게 그것들은 체험
되는 상황들이고, 나에 대해 그것들은 재현된 상황들이다.
모리스 메를로 퐁티는 상호주체성으로서 ‘익명적인 실존’이
라는 개념을 표현한다. 나는 타인에게로 스며들어 있고 타인
들 역시 나에게 스며들어 있다. “마치 몸의 부위들이 서로 유
일한 하나의 체계를 이루듯이 나의 몸과 타인들의 몸이 유일
한 하나의 체계를 이루는 가운데 그것을 관통하는 익명적인
실존이 성립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내는 나와 하나의 체계를 이루며, 메를로 퐁티가 언급한
말과 행동에 영향을 받는 ‘익명적인 실존’이다.
또한 어머니는 자식들을 기다린다. “내일은 우리의 설날인
데// 밤 깊어서라도 오는 기척이 있을까/ 어머니는 눈 내리는
마당에 귀를 세우고// 안 오는 건지, 못 오는 건지/ 하염없는
기다림에/ 기침 소리가 잦아들지 않는다”(「섣달그믐날」) 이게 어
머니와 자식의 관계이다.
“유년기를 피아노와 함께 자란 딸아이는/ 어느새 새 가정을
꾸리고/ 그 피아노는 집안 한구석의 장식물이 되었다/ 딸의
안부가 끊긴 지 오래된 날/ 어느 골목을 지나다가/ 들려오는
피아노 연주에/ 문득, 그 꿈이 날아가지 않았으면”(「피아노」) 하
는 바램은 아버지로서 딸아이에 대한 기대감이다.
이제 가족관계 외에 이웃에 대한 관계를 따라가 보자. “파란
하늘이 내려다보는 날/ 살랑이는 바람이 살짝 던지고 갔는지/
어느새 추석이 몇 발 다가오고 있다// 이번 추석에는/ 새콤하
게 눈 치켜뜨고 있는 대추 몇 알이라도/ 잊혀가는 이웃에게 건
네야겠다”.(「이번 추석에는」) 화자는 이웃에 대한 관심을 넓히고
자 한다.
“지금 내 아내도 딸아이랑 미장원에 갈 때/ 2층 이모랑 같
이 다녀오자고 한다/ 가끔, 엄마 친구들을 보고 와서는/ 유난
히도 이모들이 많다고 자랑하는 딸아이”(「딸아이이 이모들」)를 본
다. 엄마 친구는 이모다. 아니 엄마 또래는 다 이모다. 이게 요
즈음 엄마들이 갖는 이웃과의 관계이다.
결국 인생은 삼각형이나 사각형이 아니고 동그라미임을 직
관한다. “내 몸에 상처가 나지 않을 동그라미에/ 따뜻함으로
포근함으로// 하루를 무사하게 넘기는 석양 노을 같은 것// 너
와 나의 관계가/ 삼각형이나 사각형보다는/ 손을 잡고 함께
뒹구는/ 인생의 그 동그라미”(「내 인생의 동그라미」)를 갈구한다.
삼각형이나 사각형은 몸에 상처를 주는 관계이며, 동그라미는
상호 교감을 이루는 관계이다.
최재언 시인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타자들을 응시하며,
그 정감의 관계를 넓혀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3. 자연과의 관계
자연은 또 하나의 시적 대상이다. 자연에는 계절이 있고 시
간이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서정시는 자연으로부터의 사
유가 지배적이다. 사랑과 이별, 삶과 죽음은 자연과 함께 생
성되고 자연과 더불어 성숙하고 자연과 함께 소멸하기 때문이
다. 특히 계절을 통해 느끼는 정서는 그 폭이 매우 다양하게
전율되고, 크게 진동하기도 한다.
봄비! “봄비”라는 단어만 들어도 서정의 감촉이 촉촉하게 젖
어온다. 봄에 비가 합성되어 젊음의 서정을 물 흐르게 한다.
하늘에는 먹구름도 없었다
갑작스레 비가 포동포동하게
모처럼 살찐 비가 온다
비를 맛본 지 너무 오래라서 반가운데도
내 낯짝을 건드리고는
숨바꼭질하자는 건지 어디로 숨어버렸다
그래 다음 것들도 계속
내 볼기짝에 다가와 입맞춤하고는
어디론가 숨어버리는데
잠깐인 줄 알았더니 계속 장난질이다
그러는 사이
목마른 대지에는 먼지가 사라지고
내 옷자락에도
어느새 축축한 물이 흘러내렸다
가믄 내 가슴을 설레게 하는 봄비
어디론가 달려가고 싶은 한나절
- 「봄비」 전문
봄비, “갑작스레 비가 포동포동하게/ 모처럼 살찐 비가 온
다” 비를 포동포동하게 살찐 것으로 비유한다. 비를 대하는 화
자의 태도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접근한다. 그것도 포동포동하
다고 인지한다. 마치 비가 아기 살처럼 포동포동한 느낌이 난
다. “낯짝을 건드리고” “내 볼기짝에 다가와 입맞춤하고는/ 어
디론가 숨어버렸는가 했더니 계속 장난질이다”. 봄비를 아기
로 여기는 시인의 감성은 인간과 자연과의 합일 정신이 내재
되어 있다. 봄비와 한나절 장난치고 노는 모습에서 보는 이로
하여금 즐거움을 유발하게 한다. 가물던 내 가슴을 설레게 하
는 봄비는 사람을 춤추게 하고 어디론가 달려가게 하는 동력
이 된다.
이 시는 화자와 봄비와의 관계이다. 제 삼자가 전연 개입하
지 않은 상태에서 자연인 봄비와의 순수한 교감이다. 봄비를
의인화하여 숨바꼭질하듯 상호주체성으로 끌어올린다.
사람과 자연과의 관계는 변하는 계절이 관계가 깊다. 감꽃
향기가 그윽한 계절이다. 감꽃을 꿰매던 유년의 시절이 떠오
른다. 계절도 변하고 지금은 부재의 자리에 추억만 남았다. 화
자는 사라져간 시간과 존재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감꽃 향기가 그윽한 날에는
미완의 애정 영화 한 편이 시작된다
하얗도록 말간 피부에
단발머리가 유달리 예쁘던 순정이에게
감꽃 목걸이라도 걸어주면
좋아하는 마음 전해질지 몰라
불개미 물려가며 감꽃 꿰매던 유년의 시절
또래랑 누나랑 형의 놀림에도
마냥 가슴이 뛰고 얼굴 달아오르던 풋내기
먼 산에 뻐꾸기 울음이 들릴 때
서울로 간 그녀의 사연도
떨어진 감꽃처럼 하나둘 사라지고
장독대 위에 눈 빼꼼한 감꽃은
목걸이 언제 만들 거냐고 투정을 부리는 듯
바람에 흔들리는데
따사로운 여름이 오고
감꽃 질 무렵이면
이루지 못한 영화 한 편이 살포시 떠오른다
- 「감꽃 목걸이」 전문
화자는 유년시절 순정이를 좋아했던 기억을 되새겨본다.
“불개미 물려가며 감꽃 꿰매던 유년의 시절/ 또래랑 누나랑 형
의 놀림에도 가슴이 뛰고 얼굴이 달아오르던” 시절이 있었지
만, 뻐꾸기 울음이 들릴 때 순정이는 서울로 갔다. 장독대 위
에 눈 빼꼼한 감꽃은 바람에 흔들리는데 “감꽃 질 무렵이면/
이루지 못한 영화 한 편이 떠오른다.”
화자는 감꽃이 피는 계절에 감나무 앞에 서 있다. 화자와 감
나무의 관계는 곧 순정이와의 관계로 번진다. 이렇게 자연도
사물도 개인사적인 사연이 엉켜있다. 일상적인 사물이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은 현재 화자 앞에 있는 사물이나 상황에 의해
변형으로 나타난다.
나의 신체가 있고, 외적 세계에 이미지가 있고, 나의 신체
가 주변의 사물들에 가한 변양들이 있다. 외적 이미지들은 내
신체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운동을 전달한다. 내 신체를 둘
러싸고 있는 사물들은 신체의 가능적 작용이나 잠재적 행동을
반영한다. 이때 물질에 대한 지각이 발생한다.
감꽃 이미지는 장독대 뒤 감나무에 핀 감꽃이라는 화자의
외재적으로 실재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따라서 화자는 유
물론적 실재론에서 사물을 바라보고 기억을 끄집어낸다.
들뢰즈식으로 표현하자면 물질은 무한한 이미지로서 잠재
성을 지닌 다양체이다. 이러한 무수한 이미지들에서 지각은
어떻게 작용하는가?
앙리 베르그손(프. Henri Bergson. 1859~1941)에게 지각작용은
무수한 이미지들 중의 뺄셈작용이다. 물질에 대한 표상은 “일
반적으로는 우리의 기능들에 관련되지 않는 것을 배제한 결과
로 생겨난다”
즉 감나무에는 감나무가 있고, 위로 뻗은 나무줄기가 있고
수많은 잎들이 있고, 수많은 잎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겠지
만 화자의 지각은 감나무에 있는 나뭇가지도 빼고 잎들도 빼
고 모든 것을 빼고 오로지 감꽃만 보인다. 화자의 지각은 화
자의 욕구와 관련된 감꽃만
자의 욕구와 관련된 감꽃만 보이고, 감꽃이 목걸이 된 것만
보인다.
「감꽃 목걸이」는 감나무의 감꽃이라는 자연과 관계가 있지
만 순정이를 떠올린 순간 사람의 관계로 전이가 이루어진 작
품이다.
화자는 계절과 관련하여 “피지 않는 꽃 어디 있을까마는/ 한
순간 꽃 피우고 지는 의연함/ 꽃 잔치 한창인 산과 들/ 내 인
생에 봄날도 그렇게 오려나”(「꽃잔치」)하고 봄날을 관조하기도
하고 내 생의 봄날을 기대하기도 한다.
자연과 관계한 소재로는 계절 외에 새들이 있다. 특히 화자
가 냇가에서 만난 왜가리를 통해 응시한 것은 무엇일까?
냇물이 넘치는 날에도
눈이 내리는 날에도
냇가를 찾아오던 왜가리 한 마리
물속에 먹이를 찾다가
부리를 접으며 동작을 멈추더니
다리 하나를 접는다
물속을 들여보다가 무엇이 캥겼는지
흐르는 구름을 보다가
먼 산에 시선을 집중하며
왜가리는 시 쓰기에 몰입하고 있다
- 「시를 쓰는 왜가리」 전문
냇가에 왜가리가 찾아왔다. 냇가는 왜가리의 놀이터이며 삶
의 현장이다. “물속에서 먹이를 찾다가/ 부리를 접으며 동작을
멈추더니/ 다리 하나를 접는” 왜가리에게 화자는 시선이 꽂힌
다. 물속을 들여다보다가 무엇이 캥겼는지 흐르는 구름을 보
던 왜가리, 먼 산에 시선을 집중하는 왜가리가 관망하는 순간
을 화자는 “시 쓰기에 몰입하고 있다”고 상상해본다.
시인도 아마 왜가리처럼 삶의 현장에서 무엇에 캥겨 구름을
보기도 하며, 먼 산을 보며, 시상에 잠긴 적이 있는 듯하다. 왜
가리를 통해 자기와 동질성을 만나게 된다. 화자는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도 타자를 응시하며, 타자와 화합을 이룬다.
4. 일상의 사물들과의 관계
화자는 자연에 관한 사유에서 일상적인 사물에 대한 사유로
접어든다. 일상적인 사물 가운데 물질에 대한 사유로 깊어진
다. 그중에는 생활용품인 비누에 대한 사유가 있다. 최재언에
게 비누는 어떤 존재인가? 비누의 속성은 닳아지는 것이다. 소
멸성에 있다. 소멸성인 비누와 가족관계를 연결하여 상상한다.
좋은 일이든 궂은일이든
함께 나누는 것이 가족이다
가족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세면실에서 주인 오기를 기다리는 하얀 비누
누구도 거부하지 않는다
그 비누
자신의 몸이 다 닳을 때까지
가족의 피부와 체온을 나누며
손을 씻고 얼굴을 씻어내는 동안
가족의 일상을 들여다보며
불평없이 형체를 해체하는
너의 본질은
- 「비누에게」 전문
“하얀 비누”라는 표현이 신선하며 이색적인 감도感度로 다가
온다. 하얀 비누가 검은 때를 씻어낸다. 비누의 형질은 철처럼
오래 남아 고철되어 흉상스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위대
하게 사라지는 것이다. “좋은 일이든 궂은일이든/ 함께 나누는
것은 가족이다” 가족의 피부와 체온을 나누며 “형체를 해체하
는/ 네 본질은 무엇인가” 하고 화자는 묻는다. 화자는 자신에
게 건네는 말을 작품에 투영한다. 형체를 해체하면서 기능을
수행하는 네 본질을 묻는 일은 가족 안에서 자신의 본질, 자신
의 역할을 되새겨보는 시간이다. 가족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
하는 비누는 가족 중의 으뜸 가족이다. 화자는 비인격적인 물
질과도 소통하고자 이렇게 마음을 연다. 한 마디 불평도 없는
비누는 성자聖者의 위치에 오른다. 나도 성자가 될 수 있을까?
살다 보면 입지 않는 옷이며 신지 않는 신발들이 있다. 생
의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정리해야 할 때가 있다. 과거에 너무
집착하여 매달리다 보면 새로운 출발을 하는데 장애가 되기도
한다. 시 「새로운 시작을 위해」는 그런 시점에서 출발한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
안 입을 옷이며 신지 않을 신발이며
오래된 것들 미련 없이 버려야 하는데
만지작거리다가 다시 놔두는 것들
옛 추억이 떠오르고
기억에게서 버리지 못하는 오래된 것들을
지금 버리지 못하면 훗날에는
죽은 후에나 가능할 일인데
부는 봄바람에
아직도 설렘이 있어 쉽게 버리지 못하니
바람도 없는 늦가을날
설레지 않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무거운 것에 너무 미련을 두지 않기를
새로운 시작을 위해
- 「새로운 시작을 위해」 전문
네덜란드 출신이며 프랑스 화가인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cogh. 1853~1890)는 “낡은 구두”를 화폭에 그리며 신발에
대한 애착을 표현한 적이 있다. 낡은 구두는 곧 땀 냄새가 스
며있는 현장의 기록이며, 걸어온 길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어
두운 색채로 비참한 주제를 특징으로 선보였다.
화자에게는 옛 추억이 떠오르고 기억에서 버리지 못한 오래
된 것들이 있다. 그것이 헌 옷이든 낡은 신발이든 “기억에서
버리지 못하는 오래된 것”이든 이제 새로울 것이 없는 일상은
내려놓아야 할 때임을 알아차린다.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에스트라공’이 벗겨지지 않는 장화
에 매달린 것처럼 벗겨지지 않으면 장화를 찢어야 할지도 모
른다.
“부는 봄바람에/ 아직도 설렘이 있어 쉽게 버리지 못”할지
라도, “바람도 없는 늦가을날 설레지 않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
는” 마음이 있을지라도, 나를 붙잡고 있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
아야 할 것을 다짐한다. 그 무거운 짐이란 변하지 않는 고정관
념이나 나태함일 수도 있다. 새 포도주를 위해 새로운 부대를
준비해야 한다. 새로운 출발을 위해 가벼운 마음으로 비상해
야 한다.
화자는 대상들과의 관계 속에서 많은 타자를 응시하게 된
다. 그것이 사람이든, 자연이든, 일상적인 사물이든, 물질이든
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사유를 얻기도 한다. 그러
는 와중에 대상과 세계와 동행을 하게 된다.
5. 생태계에 관하여
시집 제5부는 자연 생태계에 관한 소재들이다. 미세먼지에
서부터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높아지는 기후문제와 플라스틱
의 남용으로 인한 오염된 바다 이야기,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
한 사회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재들을 소개한다.
생태계는 농업과 산업화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펑가하고
조절하는 방법이 요구된다. 시인들은 쾌적한 삶, 즐거운 삶을
영위하는데 생태계가 파괴되지 않기를 소망한다.
먼저 청정지역에서 산다는 「반딧불이」부터 살펴보자.
산속이든 들녘이든
청정한 곳 어디인고
오직 고요와 어두움 그리고 풀벌레 소리
반딧불이 세상이다
해 끝에야 제 세상인 것을
뜨거운 대낮에 어디 가겠나
어둠에서
반짝반짝 작은 불빛으로
우리가 닿지 못한 온 누리에
보름간의 짧은 생애지만
여름밤을 반짝이며 불 밝히던 개똥벌레
그저 맑은 이슬만 먹고 가네
- 「반딧불이」 전문
반딧불이는 딱정벌레목 반딧불이과에 속하는 곤충으로 깨
끗한 하천과 습지에서 산다. 몸 빛깔은 검은색이고 앞가슴 등
판은 오랜지빛이 도는 붉은색이다. 배마디 배면에는 빛을 내
는 기관이 있다. 개똥벌레라고도 하는데, 환경오염으로 인
해 대부분의 서식처가 파괴되어 멸종 위기 상태이다. 성충 때
는 여름철 물가 풀밭에서 사는데 수초에 알을 낳으며 애벌레
는 맑은 물에서 산다. 그래서 개똥벌레가 사는 곳, 개똥벌레
가 날아다니는 곳은 청정지역이다. 전북 무주군 설천면 남대
천 일대가 서식처인데 이곳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
고 있다.
“산속이든 들녘이든/ 청정한 곳이 어디인고” “오직 고요와
어두움 그리고 풀벌레 소리/ 반딧불이 세상이다” 사실, 사람들
의 발자국이 닿지 않는 곳이 청정지역이다. 고요하고 어두운
곳이 청정지역이다. 도심지를 멀리 떠날수록 청정지역이다.
반딧불이 있는 곳이 청정지역이다.
화자는 생태계 파괴가 농약 사용이라고 지적한다. “꿀 꽃
가루 묻혀 오다가 사라지는 벌들/ 농약을 사용하고 자연 개
발로/ 뜻하지 않는 기후 변화로/ 그들을 못살게 하는가 싶다”
(「그 꿀벌들 어디로 갔나」)고 한탄한다.
또한 “만들고 쓰고 버리다 보면/ 훗날에는 물고기보다 플라
스틱이/ 더 많을 거라는데”(「플라스틱과의 결별」)라고 추리하며,
플라스틱이 바다를 쓰레기장으로 오염시키는데 아쉬움을 드
러낸다.
죽을 힘을 다해 여기에 왔단다
그래서인지 온몸은 지치고 멍이 들더라
해양과 내륙을 오가는 기나긴 여정
어렵사리 만삭의 몸을 풀어내고는
나는 너의 먹이가 되는 거지
내가 그랬듯이
붙잡을새 없이
촐랑대며 어디론가 떠날 줄 안다만
눈망울 또렷한 내 아가야
한때는 이 어미도
깻잎 머리에 머리핀을 꽂고 놀다가
어느 순간 엄마 생각 간절하여
한순간도 게으름 없이 위험을 헤쳐 왔단다
무섭고 두려운 건
거스를 수 없는 물의 절벽이고
수많은 포식자를 피해 오는 거였어
그렇더라도 슬기롭게 헤쳐나올 내 아가야
때가 되면 이곳으로 다시 오렴
풀 나무 새 곤충들이 조화를 이루는 곳으로
세상에 이런 곳 없더라
내 고향 고창으로
- 「연어 이야기」 전문
이 시의 화두는 귀천하는 연어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연
어는 연어과의 바닷물고기이다. 일반적으로 민물고기는 민물
에서 살고 바닷고기는 바다에서 사는데 연어는 바다에서 살다
가 귀소본능이 있어 가을에 강 상류로 귀천한다. 낮은 곳에서
높은 상류로 거슬러 귀천하는데 얼마나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걸까, “무섭고 두려운 건/ 거스를 수 없는 물의 절벽이
고/ 수많은 포식자를 피해” 슬기롭게 헤쳐 나와야 한다.
결국 마지막 구절에 이르러 “풀 나무 새 곤충이 조화를 이루
는 곳” 이곳이 내 고향 고창이란다. 화자는 생태계 이야기에서
출발하여 귀향이야기로 전이를 한다. 자식에게 생태계 오염이
안 된 고향으로 귀향하도록 간구하는 내용이다.
6. 죽음에 관하여
관계는 이승의 끝인 죽음에까지 연접이 된다. 사람들은 죽
음에 직면하게 될 때 불안을 느끼게 된다. 존재의 끝은 과연
무無 상태일까? 불안을 감출 수 없다. 하지만 죽음을 축제처럼
맞이할 수는 없을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니체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가장 훌륭하게
죽는 법에 대해 “자기 삶을 완성시킨 자는 희망에 차 엄숙하게
서약하는 자들에 둘러싸여 승리의 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죽음
을 맞는다”라고 말한다. 자기 삶을 완성시킨자란 무엇을 의미
하는가? 목표와 상속자를 가진 자는 그 목표와 상속자를 위해
가장 적당할 때 죽음을 원한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많은
사람들은 축제준비를 못한 채 죽음에 직면한다.
죽음과 관련된 시 「신 고려장 가던 날」을 통해 화자의 사유
를 따라가 보자
여름 땡볕에 논밭을 일구며
주인과 고락을 함께하던 재산 1호 누렁이
늙고 병이 들어 눈망울만 껌벅이고 있다
땅에 머리를 박고 눈물 글썽이며
뒤돌아서다가 뿔로 떠받다가
우직하도록 거센 힘 어느새 다 빠져버리고
차에 오르는 누렁소를 지켜보던 노인네
병원을 드나들며 5년
집에서 누워 3년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요양원 가자는 자식들 앞에
다시 돌아오지 못할 여행
누렁소처럼 머나먼 길을 나서야 했다
자꾸 뒤돌아보는 골패인 얼굴에
찬비는 하염없이 내리고
- 「신 고려장 가던 날」 전문
여름 땡볕에 논밭을 일구던 누렁이가 늙고 병들어 “차에 오
르는 누렁소를 지켜보던 노인네”는 병원을 드나들며 5년, 집
에 누워 3년을 보내다가 어느 날 요양원으로 가자는 자식의 말
을 듣게 된다. 화자는 요양원으로 가는 길이 신고려장으로 가
는 길이라고 해석한다. 즉 돌아오지 못할 강으로 건너가는 길
이다. “누렁소처럼 머나먼 길을 나서야 했다” 노인은 “자꾸 뒤
돌아보는 골패인 얼굴에/ 찬비는 하염없이 내리고”
화자는 노인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죽음을 유추해본다. 고
려시대 고려장이 있었다는 설화가 있다. 그때의 상황과는 많
이 다르지만 요즘 요양원에 가는 것은 신고려장으로 풀이한
다. 죽음 앞에 대책없이 무너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죽음을 초극하고자 하는 화자의 열망은 시 「선운사 동백꽃」
에서 확인해 보기로 한다.
속절없이 꽃숭어리째
절 마당이 온통 붉은 입술이다
한 생의 절정에
이리도 곱다던가
누워있는 꽃송이 애처로이 바라보니
얼마나 득도했길래
향기를 뿜으며 붉은 웃음인가
내 생의 후반기
너를 만나러 가는 바람이 아니라
너를 만나고 가는 바람처럼*
홀연히 난 떠날 수 있을까
*서정주의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에서 차용
- 「선운사 동백꽃」 전문
“속절없이 꽃숭어리째/ 절 마당이 온통 붉은 입술이다” 절
마당에 온통 붉은 동백꽃이 숭어리 채 떨어져 있다. 붉은 색으
로 도툼한 형태가 붉은 입술로 비유된다. 마치 웃는 입술모양
으로 보인다. 절정에서 떨어지며 향기를 뿜는 태연함도 태연
함이지만 붉은 입술에서 웃는 모습으로 전이된다. “얼마나 득
도했길래/ 향기를 뿜으며 붉은 웃음인가” 득도한 것처럼 초연
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 시는 서정주 시인의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를 차용
한다. 화자는 너를 만나러 가는 바람이 아니라 너를 만나고 가
는 바람으로 변신한다. 꽃송이만 득도한 것이 아니라 화자도
득도의 길에 오른다.
니체의 견해에 의하면 “고독이란 자기 자신을 대면하는 것,
자신에 이르는 통로이다” 외롭다고 군중 속으로 달려가지 않
고 “자기 자신을 응시하고 자기 자신과 관계하는 실존의식을
갖는 것”임을 강조한다. 니체에게 고독은 초극으로 가는 길
이다.
최재언의 시는 현실 세계를 접하고 다양한 타자들을 응시하
면서 타자와 화합하며, 타자와의 동질성을 확인하는 과정임을
알게 된다. 이는 시인이 세상을 득도하는 방법을 터득해 가는
중이리라. 앞으로도 세계와의 화합정신이 더 크게 활성화되기
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