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혼과 영의 분별(1)/ 사람의 영을 모르면 영적인 사람이 될 수 없다.
성경 말씀은 사람은 영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그분을 접촉(친교, 교통)케 하기 위하여 우리 사람의 영을 창조하셨음을 분명히 계시한다. 요한복음 3장 6절에서 주 예수님은 “그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헬라어 원문에는 이 구절에 두 영이 있다. 첫 번째의 영은 그 영(the Spirit)으로, 이것은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이다.
그러나 두 번째 영(spirit)은 무엇인가? 이 구절에 있는 두 번째 영은 우리 사람의 영이다. 우리 사람의 영은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난 것이다. 우리는 거듭날 필요가 있다. 거듭남은 우리가 좋고 나쁜 것에 달린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하나님의 생명이 필요하다. 만일 우리에게 죄가 없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거듭남이 필요하다.
타락하기 전에 아담은 매우 온전했고 순수하며 깨끗했다. 그와 같은 온전하고 순수하며 깨끗한 원래의 사람도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하기 위하여 거듭날 필요가 있었다. 아담은 어떻게 하나님의 생명을 취할 수 있었겠는가? 그것은 생명나무를 그 안으로 받아들임에 의해서만 가능하다(창2:9).
만일 생명나무의 생명이 아담 안으로 들어갔다면 그는 거듭났을 것이다. 곧 그는 또 다른 생명인 하나님의 생명을 얻었을 것이다. 거듭난다는 것은 단순히 또 다른 생명을 얻는 것을 의미한다. 아담은 온전하고, 순수하고, 깨끗하고, 선하고, 변한 것이 없고, 손상되지 않았고, 부패한 것이 없고, 망가진 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여전히 하나님의 생명이 필요했다는 말이다. 아담은 처음에 한 생명만을 가지고 있었으나, 만일 하나님의 생명을 영접했었더라면 두 생명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곧 또 다른 생명이 아담 안에 더해졌을 것이다. 이것이 다시 태어남이다. 이것이 곧 중생(重生)이다.
엄밀히 말해서 거듭나는 것은 우리의 타락과 관계가 없다. 타락 전의 아담과 같이, 우리가 참되고, 온전하고, 순수하고, 깨끗하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으로 들어올 때 우리는 거듭나게 된다. 성경 말씀은 우리가 거듭나기 전에 사람의 생명을 가지고 있었음을 말한다. 이것이 혼 생명(혼)이다.
이 사람의 생명은 혼 안에 있다. 성경에서 이것은 혼의 생명이라고 불린다. 신약성경에서는 가끔 이 생명을 혼이라는 단어로 사용한다. 따라서 많은 경우 혼이라는 단어를 생명, 또는 목숨으로 번역하는 이유이다(마16:25; 눅9:24). 헬라어 원본에서 생명에 대한 이 단어를 프쉬케(psuche), 또는 혼, 혼 생명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우리는 또 다른 종류의 생명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곧 생물학적인 생명이다. 이것은 몸의 생명이며, 헬라어 원본에는 비오스(bios)로 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생물학(biology)이라는 단어의 어원이다. 비오스는 몸 안에 있다. 우리가 육체적으로 죽었을 때, 이것은 혼 안에 있는 생명이 죽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육체적인, 곧 물질적인 생명인 비오스가 죽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혼 안에 혼의 생명을 가지고 있고, 몸 안에는 육체적인 생명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이 육체적으로 죽었을 때, 그는 육체적, 물질적 생명이 죽은 것이다. 곧 이것은 그 사람의 비오스(bios)가 죽은 것으로, 그의 프쉬케(psuche), 곧 그의 혼의 생명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구원받기 전에 우리는 우리의 영 안에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우리의 영은 단지 하나의 기관일 뿐이었다. 우리가 주 예수를 영접했을 때 그분은 우리의 생명이 되기 위하여 우리의 영 안으로 들어오셨다. 우리의 영 안에서 우리는 또 다른 생명인 신성한 생명을 갖는것이다. 헬라어 신약성경에는 이 생명은 조에(zoe)라고 하며, 조에는 우리의 영 안에 있다.
비오스(bios)는 우리의 몸 안에 있는 육체적인 생명이다. 프쉬케(psuche)는 혼 안에 있는 사람의 생명이다. 신성한 생명을 뜻하는 조에(zoe)는 우리 영 안에 있다. 이 신성한 생명은 창조되지 않은 하나님의 생명, 곧 하나님 자신이다. 이 신성한 생명이 바로 우리의 생명이 되기 위하여 우리 영 안으로 들어오는 그리스도 자신이요 하나님 자신이다.
이제 우리는 세 종류의 생명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생물학적인 생명과 혼적인 생명과 신성한 영적인 생명을 가지고 있다. 신성한 생명인 조에(zoe)가 바로 그 영(the Spirit)이다. 우리의 영은 하나님이 우리의 영 안에 생명으로 들어오심으로 말미암아 태어났다. “그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다”(요한3,6). 이제 하나님의 생명은 우리 영 안에 있다.
우리의 영은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의 영 안으로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태어났다. 이 출생은 우리의 타락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아담이 타락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는 여전히 이렇게 출생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아담에게는 여전히 하나님께서 그의 안에 생명으로 들어오시는 것이 필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하나님을 표현할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으로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거듭나야 한다. 이 생명이 우리의 영 안으로 들어올 때 우리의 영은 태어난다. 이제 우리의 영 안에는 신성한 생명이 있다. 이 생명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세 가지 생명 중에서 어떤 생명을 살아야 하는가?
이것이 바로 오늘 내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다. 우리는 혼적인 생명에 의해 생활하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이제 영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영 안에 있는 신성한 생명에 의해 살아야 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영을 알지 못한다면 신성한 생명을 살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우리의 영을 알아야만 한다.
하나님의 이 생명은 우리의 영 안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가 전깃불을 켜려면 스위치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마찬가지로 신성한 생명은 우리의 영 안에 있기 때문에,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영의 스윗치를 올리는 것이다. 딤후4:22절에는 “주님께서 그대의 영과 함께 계시기를 빕니다”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곳으로 갈 필요가 없다. 우리는 우리의 영으로 가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생각 안에 머물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혼 안의 생각 안에 있는데 너무 익숙해져 왔으므로, 우리의 영이 무엇인지 잘 알지도 못하며, 심지어 배운 적도 없다! 영적인 사람이 되고 싶은 갈망이 있는 당신은 이 얼마나 가련한 일인가?
이것을 돕기 위하여 ‘영적 성장과 영적인 사람에 대한 연구’를 쓰고 있는 것이다. 나에게는 필독서라고 생각되므로 추천하는 바이다. 오늘날의 문제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이 계신 우리의 영으로 돌이키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는가? “주님께서 그대의 영과 함께 계시기를 빕니다.” 바로 우리의 영 안에 살아 계신다!
마28:20절에는 주 예수님께서 “이 시대가 끝날 때까지 우리와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신다. 이 말씀은 성경 가운데 있는 가장 위대한 약속들 중의 하나이다. 그러면 그분은 어디에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가? 그분은 우리의 영 안에 함께 계신다. 우리가 소유한 하나님의 생명은 바로 우리의 영 안에 있는 하나님 자신이다.
이것은 성육신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하신 후의 하나님 자신이다. 바로 이 하나님이 오늘 우리의 영 안에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해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의 효능을 가지고 우리 안으로 들어오셨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이들은 반드시 우리의 영으로 돌이켜야 한다.
우리는 영 안에서 강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하나님, 그리스도, 신성한 생명을 가지고 있는 곳은 바로 우리의 영 안이기 때문에 영 안에서 누리고 행함이 필요하다. 혼적인 생명과 생물학적인 생명은 이차적인 것이다. 우리는 모두 우리 사람의 영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영이 더욱 강해져야만 한다.
온종일, 하루 24시간, 잠잘 때마저도 우리는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름으로”(롬10:12-13), “끊임없이 기도함으로”(살전5:17), “성령의 불을 끄지 않으므로”(살전5:19), 우리 자신을 이 살아 역사하시는 분에게로 돌이켜야 한다. 만일 당신이 이를 행한다면 당신은 하나님의 부요함과 달콤함과 새로움과 능력과 권위까지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우리 사람의 영을 알아야 한다! 살전5:23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을 온전하고 흠 없이 지켜 주시기 빕니다”라고 정확하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지 않는가? 이 말씀은 사람이 세 부분, 곧 영과 혼과 몸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지적한다.
가장 깊은 속 부분인 영은 내적 기관이며, 하나님에 대한 지각을 가지고 있으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접촉할 수 있다(요4:24; 롬1:9). 혼은 바로 우리의 자아(마16:26; 눅9:25과 비교), 곧 우리의 영과 몸 사이에 있는 중간 부분이며, 자의식이 있으므로 우리가 개성을 갖는다. 우리의 외적 부분인 몸은 밖의 기관이며, 세상에 대한 지각이 있으므로 우리가 물질세계를 접촉할 수 있다.
몸은 혼을 둘러싸고 있으며, 혼은 영을 둘러싸는 그릇이다. 사람의 영 안에는 그 영이신 하나님께서 거하시고, 혼 안에는 자아가 있으며, 몸 안에는 물질적인 감각이 있다. 하나님은 먼저 거듭남(요3:5-6)을 통하여 우리의 영을 소유(점령)하심으로써 우리를 거룩하게 하신다. 죄로 인하여 타락한 몸을 육신 또는 육체라고 부른다.
그다음에 생명 주시는 영이신 하나님 자신을 우리의 영 안에서 혼 안으로 확산시켜 혼을 적시고 변화시킴으로써(롬12:2), 우리를 거룩하게 하신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영과 혼을 통해 우리의 죽을 몸을 살리시고(롬8:11, 13), 그분의 생명 능력으로 몸을 변형시킴으로써(빌3:21), 우리를 거룩하게 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완전히 거룩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의 영과 혼과 몸을 온전하게 보존하신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몸은 망쳐졌고, 혼은 오염되었으며, 영은 죽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을 믿음으로 법리적 구속(객관적인 구원)을 얻고, 내 영 안에 계신 성령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냄으로써 내 성질, 기질, 또는 나쁜 습관들(무의식)을 변화시켜 유기적인 구원(주관적인 구원)을 이룰 수 있다.
객관적 구원과 주관적 구원을 합하여 이것을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이라고 말하며, 우리의 온 존재는 구원받고 완전하고도 온전하게 된다. 우리의 완전한 구원을 위해 하나님은 모든 죽음의 요소에서부터 우리의 영을 보존하시고(히9:14), 타고난 것과 낡은 것 안에 머무르지 않도록 우리의 혼을 보존하시며(마16:24-26), 죄 때문에 더렵혀지지 않도록 우리의 몸을 보존하신다(살전4:4).
하나님께서 이렇게 보존하시고 거룩하게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성숙하게 될 때까지 거룩한 생활을 유지하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주님의 파루시아, 곧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그분을 만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영적인 사람이 되기 위한 출발점이 바로 사람의 영이다. 우리가 거듭난 곳이 이곳이고,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도 이곳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 안에서 진실함으로 예배해야 합니다.”(요4:24)라고 말한다. 여기서 영 안은 성령 안이 아닌 바로 우리 사람의 영 안이다. 우리는 거듭난 사람의 영 안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을 섬기며 서로서로 친교를 나누며 생명의 성장을 갖는다. 교회 생활이란 바로 사람의 영 안에 있는 생활이다. 만일 당신이 영 안에 있지 않다면 진정한 교회 생활은 물론 영적인 사람이 될 수가 없다.
당신이 영으로 돌이킬 때 당신은 나와 하나이며, 나는 당신과 하나이다. 우리가 교회 생활에 대하여 아무리 많은 말을 한다고 할지라도, 영으로 돌이키지 않는 한, 우리는 여전히 교회생활 안에 있지 않다. 우리가 영으로 돌이킬 때만이, 우리는 교회 생활 안에 있으며, 우리는 하나이며, 곧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 것이다.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