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글을 쓸 때마다 그 주인공의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서, 계속 나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문을 쓰듯 써내려 간다. 과연 잘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하는.
경제가 어렵다. 경제가 어렵다는 것은 구체적 통계 수치를 대지 않아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요즈음이다.
시장의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다. 이발소에 가면 이발 손님이 반으로 줄었다고 하고 구두를 닦으러 가면 거기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한다. 외식도 줄고 택시 손님도 줄고. 심지어는 병원 환자도 줄었다고 한다. 죽게 아프지 않으면 참는다는 뜻 같아 안타깝다. 좀더 헐한 것, 좀더 싼 곳을 찾으며 절약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다.
우리가 경제 위기의 공포를 처음으로 진하게 느낀 것이 아마도 IMF 경제체제가 들어섰을 때일 것이다. 나라가 '망한다'고까지 했으니까. 그때의 이야기를 하나 하려고 한다.
서울의 을지로나 청계천 같은 곳에 가면 전문상가 거리가 조성돼 있다. 건축자재만 파는 곳이 있고, 화공약품만 파는 곳이 있다. 줄지어 늘어선 상점들은 손님을 끌거나 확보하기 위하여 가격이나 서비스로 치열한 경쟁을 하기도 하는 곳이다.
IMF 경제위기 때, 그런 전문상가에 드나들던 어떤 중소기업 사장의 이야기를 하겠다.
그 사람은 매우 우직해서 이웃 상점에서 같은 물건을 얼마에 팔건 상관 없이 언제나 한 곳을 정해 놓고 그곳에서만 물건을 구매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단골 손님인데 지독한 단골이어서 돈 몇 푼 때문에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 아니고 죽으나 사나 그 상점에서만 원자재를 샀다는 것이다. 주인의 가격 책정을 의심하지 않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사람들은 시장조사를 해 가면서 싼 곳을 찾아다니는 형편이었다.
그러다가 1997년 IMF 경제위기가 찾아왔는데, 원자재값이 폭등하여 웬만한 공장들이 문을 닫을 지경이었다. 그때도 그 사장은 변함없이 단골로 다니던 상점만을 찾아 원자재 구매에 나섰다. 물론 이웃의 모든 상점들도 차이는 있었지만 턱없이 오른 가격에 원자재를 팔고 있었다. 그 상점 주인은 그 날도 무표정하게 찾아온 그 손님에게 보은을 결심했다. 단골 손님 사장은 경제위기로 뻔히 어려웠지만 '값이 너무 올랐느니, 죽겠다거니, 깎아 달라거니…' 하는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여느 때처럼 물건을 주문했던 것이다. 주문을 마친 사장이 물었다.
"얼마입니까?"
계산기를 두드리던 상점 주인이 대답했다.
"암만입니다!"
사장은 자기의 귀를 의심했다. 물건의 양과 값을 알기 때문에 대충 짐작한 액수가 있었는데 잘못 계산을 한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얼마라고요…?"
"네, 예전 가격으로 드리겠습니다!"
"아니지요, 값이 많이 올랐는데요…."
"사장님께서는 항상 값이 얼마나 올랐는지 묻지 않으셨으니까, 이번에도 제가 드리는 가격대로 그냥 사셔야지요!"
"그래도…."
'아, 이 물건들은 값이 오르기 전에 사 놓았던 것들이라서 저는 손해가 없거든요."
그 후에도 경제 상황이 좋아질 때까지 그 상점 주인은 그 단골 사장에게 아주 낮은 가격으로 원자재를 대주었다고 한다.
신의란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