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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조광조를 영수로 하는 당대 사림세력은 대부분 젊은이로서, 현실을 무시하고 이상을 실현하기에만 급급했다. 그 결과 너무도 그 수단이 과격하고 급진적이었으며, 또 자기네들과 뜻이 서로 맞지 않는 훈척 세력인 남곤이나 심정 등을 소인이라 지목하여 그들과의 사이에 알력과 반목이 일어났다. 1519년 조광조 등은 마침내 자기들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중대한 작업에 착수하였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개혁에 걸림돌이 되는 세력의 제거였다. 이른바 위훈 삭제운동으로 알려진 것으로, 중종반정의 공신 중 공신 작호가 부당하게 부여된 자 76명에 대하여 그 공훈을 삭제할 것을 주장한 것이다. 조광조 등의 이러한 주장은 당시 권력의 핵심에 있던 공신세력들을 직접적으로 겨냥한 것이었다. 공신세력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목을 겨누는 대단히 위험천만한 사안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결국 공신세력들의 반격을 받아 화를 당하게 되니, 이것이 기묘사화라 불리는 사건이다.
기묘사화와 관련해서는 사건의 전개 과정에 이른바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는 술수가 활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지동(地動), 즉 지진이 자주 발생하였는데 이를 국왕이 근심함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때 조광조와 반대 측에 있던 남곤과 심정 등은 권세 있는 신하가 나라 일을 제 마음대로 하고 장차 모반을 일으키려 하기 때문에, 그 징조로 지진이 발생하였다고 중종에게 간언하였다. 여기서 권세 있는 신하가 다름 아닌 조광조였다. 그리고 남곤 등은 그 뒤 연거푸 말을 지어 퍼뜨리기를 민심이 점차 조광조에게로 돌아간다 하고, 또 대궐 후원에 있는 나뭇가지 잎에다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고 꿀로 글을 써서 그것을 벌레가 파먹게 한 다음, 천연적으로 생긴 양 꾸미어 궁인으로 하여금 왕에게 고하도록 하였다.
‘走肖’는 즉 ‘趙’자의 파획(破劃)이니 이는 조씨가 왕이 된다는 뜻을 암시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광조 및 사림세력을 발탁했던 중종 역시 마음을 돌리게 되고, 이를 간파한 남곤∙심정∙홍경주 등은 밤중에 갑자기 대궐로 들어가 신무문에 이르러 왕에게 조광조의 무리가 모반하려 한다고 아뢰었다. 이 사건으로 조광조 이하 여러 사람을 일단 하옥되었다가, 모두 먼 곳으로 귀양 보내졌다. 그리고 얼마 뒤에 남곤∙심정 등의 주청으로 이들 조광조 이하 70여 명을 모두 사약으로 죽였다. 이때에 죽은 사람들을 가리켜 기묘명현(己卯名賢)이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