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세 특집] 시리아! : '홍명보 치욕의 날', 누구의 책임인가
글 : 울노
어젯밤 우연히 TV를 켰더니 <홍명보 호의 한국 대 시리아 평가전> 중계방송이 흘러나왔습니다. 순간 저는 온몸에 전율을 느끼면서 굳어져버렸습니다.
"시리아? 정녕 그 시리아가 맞단 말인가?"
심지어 저는 제가 '시리아'라는 국명을 착각한 것이 아닌가 되짚어보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불과 며칠 전 훌라에서 48명의 어린이를 포함한 108명을 학살한 그 시리아 정권의 대표팀이었습니다. 그들은 21세기 최대의 전범으로 기록될 예정인 바샤르 알 아사드(Bashar al-Assad)가 파견한 시리아 국가대표 축구팀이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10개국은 시리아 정권의 만행을 규탄하기 위해 자국에 있던 시리아 대사관들을 추방시켜버렸습니다. 한국에는 추방할만한 시리아 대사관이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으니 추방할 일은 없었겠지요. 그렇지만, 국제사회가 대사관도 추방하는 판에, 지난 5년간 "국격"이 최고조에 달했다는 한국은 바로 그 전범 정권의 대표팀을 초청하여 우리나라 국가대표팀과 평가전을 갖도록 한 것입니다.
저는 한참 동안 TV 중계를 지켜보았습니다. 혹시라도 관중들 중 누군가 이러한 문제에 대한 어떤 항의표시라도 하고 있는지 말이죠. 하지만 수도권의 변두리인 화성에서 열린 경기에 그렇게도 많은 관중들이 몰려왔지만, 그들의 눈에는 그저 승리에 대한 열망과 일그러진 애국심만 가득할 따름이었습니다.
새벽부터 글 작업을 하면서도, 어젯밤의 한국-시리아 평가전 장면이 계속해서 뇌리를 스쳐갔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언론들이 과연 이 문제에 대해 어떤 보도나 논평을 했는가 찾아보았지만, 정말로 온라인 상에서 아직까지 이 문제를 지적한 한국 언론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이 점이 저에게는 더욱 더 충격적인 일입니다. 대부분의 언론은 어제의 승리를 분석하고 있을 따름이었습니다.
만의 하나 한국어권에서 어느 누구 하나 이 문제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면, 우리 '크메르의 세계'라도 나서서 짚고 넘어가야 할 판이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더 많은 조사를 해보았습니다.
그러다 드디어 이 문제를 다룬 컬럼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정교한 문체와 집약적인 글의 전개를 보면서, 저는 이 글을 쓴 저자가 보통의 인물은 아닐 것이라 생각하고, 이 글이 원래 게시되어 있을 매체를 역추적해들어가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더욱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어로 쓰여진 이 글의 저자가 바로 영국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저는 해당 컬럼을 작성한 존 듀어든(John Duerden) 씨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그의 글을 소개합니다. 한국인들의 보다 품격있고 보편화된 세계관 형성을 추구하는 '크메르의 세계'는 인류의 양심과 이성에 관해 깊이 있는 통찰을 보여준 존 듀어든 씨에게 감사드립니다. [크세]
* 존 듀어든은 누구인가:
- 런던 정경대학(London School of Economics) 역사학과 졸업
- 영국의 축구 칼럼니스트, 프리랜서 기자
- New York Times, 가디언, AP 통신, 축구 잡지 포포투의 기자
- 네이트에 축구 칼럼인 《듀어든의 탑 코너》를 게재 中
- 2001년부터 한국에 거주
보다 상세한 정보는 '여기'를 클릭하라. |
(보도) <듀어든의 탑 코너> 2012-6-7
[듀어든 칼럼] 홍명보호, 시리아와의 친선전 하지 말았어야

사람들은 스포츠와 정치가 혼합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을 하고 나도 그 뜻에 동의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스포츠와 정치가 밀접한 관련을 맺을 때도 많다. 때로는 이 두 분야를 따로 떼어서 말하기가 어렵기도 하다. 지금 유로 2012를 앞둔 상황에서도 우크라이나가 티모셴코 전 총리를 탄압한 사실을 때문에 보이콧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유럽 내 다수의 정치지도자들은 우크라이나에서 열리는 경기에 참석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인들은 전 세계의 큰 스포츠 이벤트에 모습을 드러내고 싶어 한다. 과거 우리도 대한축구협회의 수장이 대통령에 도전하기 위해 노력했던 모습을 본 기억이 있다. 축구는 세계적이고 화려한 스포츠인 까닭에 정치인들이 좋아하는 요소가 많다.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 같다.
지난주 이탈리아 대표팀의 체사레 프란델리 감독은 이탈리아 당국이 우크라이나에서 열리는 경기에 대한 불참을 결정하면 자신도 그 뜻을 따르겠다는 말까지 했다.
“축구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체사레 프란델리
올해 초 포뮬러원 대회는 바레인을 방문했다. 바레인은 민주주의 운동가들을 여전히 구금하고 있으며 몇몇 대표팀 선수들도 수감되었다가 풀려났다고 전해졌다. 대표팀 선수들의 구금 사건은 바레인의 최종 예선 진출 실패에도 영향을 줬다. 많은 사람들이 민주화 시위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기에 2011년의 레이스는 취소되기도 했다.
이후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많은 국제 언론인들이 바레인에 들어간 까닭에 민주화 시위대가 좀 더 말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한편 시리아에서는 더 심각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며칠 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시리아 정부가 아난 특사의 평화 중재안에 협조하기를 당부한다. 지난주 발생한 훌라 대학살은 시리아를 결코 회복할 수 없는 내전에 빠트릴 수 있다. 우리는 말도 안 되는 잔혹 행위를 바라보기만 하는 방관자의 역할을 하러 그곳에 간 것이 아니다.”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훌라에서 일어난 학살에 역겨움을 느꼈다. 이는 아이들을 포함한 시민들을 조직적으로 살해한 행위였다. 국제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시리아 문제에 관해서는 정확한 통계를 알기도 어렵지만) 최소 108명의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고 그중 49명은 아이들이었다고 한다. 이는 주거지역에 대한 마구잡이 폭격도 아니었다. 몇몇 시체에서는 머리에 입은 총상의 흔적까지 발견됐다.
물론 모든 이야기는 양측의 말을 다 들어봐야 한다. 개인적으로도 서구 언론이 100% 정확하다고 믿지 않는다.
한국에 거주하는 나는 몇몇 서구 언론이 동아시아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편향된 보도를 할 때마다 실망감을 느낀다.
그러나 시리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태는 비교적 분명해 보인다. 그곳에서 자행되는 잔혹한 사건들은 누가 봐도 명백하기에 이 사태를 풀어나가기 위한 최선의 방법에 대한 토론이 나올 수 있다. 어쨌거나 분명한 사실은 정부가 시민들을 야만적으로 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 각국이 시리아 대사들을 추방하는 시기에 시리아 올림픽 대표팀을 한국으로 초청하게 된 것은 좀 불운이라 할 수 있다. 목요일 한국과 시리아의 올림픽 대표팀은 화성에 새롭게 지어진 아름다운 경기장에서 친선 경기를 치른다.
누군가를 비판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저 이 경기 자체가 기획되지 말았어야 한다는 뜻을 말하고 싶다. 축구적으로 봐도 시리아와의 경기가 런던 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 있어 좋은 요소인지 의구심이 든다. 런던에서 만날 상대는 멕시코, 가봉, 스위스인데 시리아가 과연 무엇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역시 이런 생각을 하는 주된 이유는 축구 외적인 문제 때문이다.
지금은 시리아를 대표하는 축구팀을 초청할 시기가 아니라고 보인다. 아마도 그들은 돈까지 받고 한국에서 게임을 뛸 것이다. 이게 만약 공식적인 월드컵 예선이나 올림픽 예선이었다면 내키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하는 일정이었을 것이다.
훌라 학살 이후에 대체팀을 찾는 것이 옳았다는 생각이지만 이제는 너무 늦었다. 그래도 최소한 우리는 이러한 일이 중요한지 아닌지에 대한 토론을 하며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
대표팀 축구와 국제 정치 상황을 굳이 연계시킬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있을 수 있고, 나도 어느 정도는 동의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때로는 축구보다 더 중요한 일들도 있는 법이다. 시리아와 경기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시리아 현지의 잔혹한 상황이 크게 바뀌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것이 인류와 국제 사회를 위한 옳은 방향의 행동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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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홍명보의 치욕보다는 대한축구협회의 치욕이네요.
저도 어제 잠깐 축구 경기를 보았지만
이런 생각을 해보지도 못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