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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역사학도의 시사토론 글방 원문보기 글쓴이: 역사학도
1980년 5월 19일부터 무장한 시민군의 맹렬한 교도소 습격과 도청 공격을 맨몸으로 막아내던 계엄군이 5월 21일 오후에 광주 외곽으로 부득히 철수하여야 했던 것은 시민군 장갑차 부대의 공격을 더 이상 맨몸으로 막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국 전쟁 때 국군이 장갑차를 부대를 편성하는데 3년 이상이 걸렸다. 한국 전쟁이 끝난 후 미군으로부터 장갑차를 인수받은 후에야 국군에 장갑차가 생겼으며, 장갑차 운전병을 양성하여야 했다. 그런데 시민군은 사흘 만에 기관총과 수류탄과 다이너마이트는 물론 장갑차로 무장하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겠는가? 심지어 공수부대원들도 다룰 줄 모르는 것이 장갑차 운전이다. 최근에 이광재 의원 등 노무현 측근이 러시아 유전사업에 손댔다가 떼인 나라돈이 대략 박정희 대통령이 포항제철을 건설한 돈이요, 전두환 전 대통령이 50년간 연해주를 한국이 사용하게 하는 대형농장 프로젝트 비용인 듯하다. 사실 전두환 비자금이라는 것은 없었다. 5공화국 시절 여당은 정치자금 창구를 단일화하였으며, 대통령 직속 기관에서 관리한 정치 자금을 여당과 야당에 고르게 분배하다가 나머지는 노태우 대통령을 통해 김영삼씨에게 그대로 인계해 주었다. 그리고, 연해주 대형농장 프로젝트 예산을 남겨두었던 이유는 이러하다. 전두환 대통령이 1988년 퇴임할 무렵 한반도 자정학적 상황은 크게 바뀌었다. '88올림픽 성공은 러시아와의 경제 협력의 길을 열어놓았다. 그리고 한국은 일본보다 한발 먼저 구소련의 광활한 시작을 석권한 국가가 되었다. 러시아의 무궁무진한 지하 자원 때문에 러시아와 한국 사이의 경제 협력의 길은 무궁무진하였다. 그 중 하나가 영세적 식량 수입국 한국을 막강한 농산물 수출국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연해주 농장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백담사 유배 후에야 그 프로잭트는 추진될 수 있었으며, 거의 완성 단계에서 문민 독재자 김영삼씨의 여론 조작에 의해 비자금 누명을 쓰고 말았다. 박정희 대통령과 전두환 대통령의 특징이 대국민 약속을 하나도 빠짐없이 정확하게 지키는 것이었다면 김대중과 노무현의 허황된 약속은 오히려 문제들을 일으켜 왔다는 사실이다. 김대중 집권 초기에 철의 실크로드를 하도 요란하게 광고하여 국민들이 속았는데, 북한군의 남침 통로를 열어준 것밖에 없다. 왜 주한미군이 전방에서 철수하였는가? 반미촛불시위도 그 이유 중 하나이지만 김대중이 북한군 남침 통로를 열어주는데, 그 어느 나라가 자국 국민을 북한군 총알받이로 한국 전방에서 근무하게 하겠는가? 노무현 정부도 유전사업 공약을 하였는데, 그 결과는 박정희 대통령이 포항제철을 지을 비용을, 그리고 전두환 전 대통령이 연해주를 한국이 50년간 대형 농장으로 사용하게 하기 위하여 필요했던 자금을 허공에 날려버린 것인 듯하다. 왜 김대중 정부가 천문학적 공적 자금을 허공에 날리고도 책임자가 없는가? 왜 노무현 정부는 거액의 나라돈을 허공에 날리고도 책임자가 없이 서로 책임을 남에게 떠맡기기에 바쁜가? 여기에 김대중과 노무현이 민주주의 행정을 모르는 문제가 있으며, 이들의 책임 전가 논리는 1988년 광주청문회 때 노무현이 전두환 전 대통령 얼굴에 명패를 던졌을 때 이미 시작된 것이었다. 박정희 대통령과 전두환 대통령의 민주 행정에서는 실무자의 소관과 책임자의 소재가 명확하다. 그러나 김대중과 노무현의 5.18 논리에는 그런 것이 없다. 사실, "전두환 광주학살" 유언비어는 광주사태 주동자 윤상원이 전두환이란 이름을 처음 들어본 날 그의 이름을 이용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후에 "전두환 광주학살" 픽션 소설은 지금 이광재가 그렇게 하듯이 모든 책임을 남에게 떠넘기기 위해 씌어졌다. 광주사태에 대하여 말하려면 1980년 5월 18일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5시 40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먼저 살펴 보아야 한다.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5시 40분까지 시민군이(그들은 폭도보다 시민군이란 명칭을 선호함) 돌과 화염볍으로 광주 파출서들을 파괴하며 순경들을 붙잡아 가서 묶어 놓고 때렸다. 도망가는 순경 집에까지 쫓아갔기에 경찰이 모두 광주 외곽으로 피하였다. 근무지가 광주인 경찰이 광주 외곽에 가서 숨어 있어야 했던 것이다. 미처 피하지 못한 순경들은 얼마나 매를 맞았는지 그 다음날부터 한 명 한 명 죽어갔다. 여기에 시민군에 납치된 순경들의 생명을 구하가 위해 광주경찰서장과 광주시장과 전남도지사가 광주향토사단에 시위 진압을 요청하지 않을 수 없었던 상황이 있었던 것이다. 광주향토사단의 지휘권은 광주 사람 정웅 소장에게 있었으며 타 지휘관이 관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정웅 소장이 군번으로는 당시 장성들 중에서 최고참에 속하였기 때문에 이희성 계엄사령관도 합부로 관여할 수 없었던 것이 정웅 소장의 지휘권이었다. 상황 판단, 시위 진압 시간, 진압의 강도 등은 정웅 소장의 판단에 일임된 문제였다. 따라서, 순경 살인이나 무기 탈취 등의 책임은 일차적으로 시민군에게 물어야 할 일이요, 진압 방법에 대한 책임은 일차적으로 정웅 소장에게 물어야 할 일이었다. 그럼에도, 당시 서울대 3학년 유언비어 제조기들과 광주 시민군은 서로 죽이 맞아 "전두환 광주학살" 픽션 소설을 써왔다. 한홍구 등 픽션소설가들은 "신군부"라는 말을 무슨 요술방망이처럼 사용하였다. 실제에 있어 이희성 계엄사령관이나 황영시 부계엄사령관이나 광주사람 정웅 소장은 하나회 회원도 아니었으며, 한홍구와 운동권이 말하는 신군부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들이 픽션 소설을 쓸 때는 "이희성 계엄사령관이나 황영시 부계엄사령관"을 신군부에 포함시킨다. 그리고 여기서 온갖 논리적 미끄러짐과 비약이 시작된다. 본래 광주사태는 내무부 산하 치안본부 소관이요, 육본은 치안본부 요청에 따라 행동하였기에 보안사와는 아무 관련 없었던 일이요, 전두환은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처음에는 모르고 있었던 일이 광주사태였다. 시민군이 5월 18일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5시 40분까지 광주 파출서들을 파괴하고 경관들에게 폭행을 가하였으면,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 무기와 실탄을 탈취하고, 교도소를 습격하였으며, 방송국과 세무소 등에 방화하였으며, 마침내 도청을 점령하였으면, 그리고 5월 18일 매맞은 경관들 중 나중 사망자가 생겨 전체 광주사태 희생자 중 삼분의 일은 군경이라면 시민군 편에서도 책임져야 할 문제는 있다. 그러나 왜 전두환 혼자 모든 책임을 뒤집어 쓰는가? 바로 여기에 광주시민을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전두환의 마음이 있다. 사실에 있어서 전두환은 애국심의 화신이었다. 그는 사단장 시절에 구보 훈련 때 사병들 선두에서 뛰던 투 스타였다. 다른 부대같으면 장교는커녕 병장도 열외될 구보 훈련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선두에서 달리는 것이 그의 리더십이었다. 그리고 그는 상경하애 정신이 강하였다. 대통령 시해 공범의 의혹을 받던 정승화 참모총장 수사를 군부가 원하였을 때 그가 12.12 사태 이전까지 하지 않았던 것도 그의 상경하애 정신 때문이었다. 그리고, 5.18 관계자들이 그와 직책상 아무런 관계도 없었지만 모든 누명을 혼자 뒤집어 쓴 것은 전우애의 표시였으며, 시민군에게 물어야 할 책임을 한번도 따진 일이 없이 조용히 "전두환 광주 학살" 픽션 소설을 받아들인 것은 그가 누구보다도 광주 시민을 사랑하였기 때문이었다.
북한이 본 5.18 광주사태 |
첫댓글 김대중과 좌익 운동권들에게 이용당한 순진한 광주 시민들이 정말 불쌍합니다.....
제가 아는 선생님한테 들은 얘긴데,, 그선생님이 초등학생때 그 시위에 같이 참가했다고 합니다. 그것도 강제로... 그런데 시민군들이 보급품을 얻기 위해서 슈퍼를 약탈하고 다녔다고 그러셨습니다. 어떻게 대학생들이 어린 초등학생들을 시위에 끌어들일수가 있죠? 시민군들은 완전 폭도였다고 생각됩니다.
소중한자료네요. 제가알지못한 내용또한 많군요. 고맙읍니다.^^
정확한 사실입니다.
아~그러세요? 그래도 안준다고 고문하지는 않았지요.누구누구 처럼
진짜입니까????저는 전두환 전대통령을열광적으로 좋아하지도않고 싫어하지도 않고 중립인데....참고로저는20대중반입니다....광주사태는 그래도 잘못된거라 생각하는데...위글이 정말사실입니까?????
플라스틱피리2님의 은사님이 잘 못 알고 계시네요, 광주민주화운동에서는 단 한차례의 약탈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보급품을 제공받았죠, 하지만 선량한 광주시민들이 민주화라는 이름에 속고, 북한공작원에게 또 한차례 속은 것이지요, 가슴이 아플 따름입니다.
특전사(공수부대)는 장갑차 전차도 다를 줄 압니다....ㅎㅎㅎ 게릴라는 전천후 입니다...심지어 열차/선박 교육도 받습니다...서울 지하철 노조 파업하면 지원 나가는 군인이 특전사 입니다....세상 살기 힘드네요...아 옛날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