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스무아흐레째다.
비가 오지 않은 마른 장마에다가
찌는 듯한 햇살만 신나는 올여름은
살아 있는 것들을 모두 찜통에 넣고
푹푹 삶으려는 듯 해도 너무한 더위였다.
집집마다 창문 꼭꼭 닫고
에어컨에 선풍기에 더위를 식히기에
모든 작전을 동원했다.
전기요금 폭탄이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나
우선 사람 부터 살고 봐야지~
하는 마음이 더 강했다.
버스를 타고 가면 목적지가 다가오는 게 싫었다.
시원한 게 천국 같은 버스에서
숨막히는 열기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게
못견디게 싫었다.
계속 기운도 떨어지고 입맛도 없고 해서
시큼한 열무냉면으로 점심을 해결하기도 했다.
우리 은희는 집이 바깥보다 더 더운데도
신랑이 에어컨 바람을 싫어해서 켜지 못하고
극장이나 마트 등 에어컨 빵빵한 곳을 찾아
밖으로만 돌았다고 했다.
열대야 때문에 잠 못 드는 밤이 길어질수록
견디다 보면 언젠가 더위도 한풀 꺾일 거라는
희망 때문에 우리는 견디며 산다.
거기에 향우회에서 해마다 여름산행으로 하는
천마산 팔현계곡 물놀이산행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
동생들과 가평 물의 나라 계곡으로
여름사냥 갔다온지 얼마되지 않았음에도
마음이 설레면서 기다려졌다.
산행날 아침, 여전히 아침부터 찐다.
땡볕에 살이 탈까봐
썬그림도 듬뿍 바르고 나서려는데
은희는 벌써 거의 다 도착해간다고 했다. 이런~
아홉시 반까지인데 여덟시 반에 도착하면 어쩌라는겨~
분명 밤을 꼬박 새고 잠 자야 할 시간에
김치전, 부추전 부치고 했을 거다.
고맙게도 신랑이 외곽도로를 쌩쌩 달려
군자역까지 데려다줘서 시원하고 편안하고 갔다.
해동선배네 악동들인 기정선배, 재원선배 옥렬선배,
반가운 얼굴들을 보니 그냥 좋아서
악수하고 사진 찍고 버스에 오르니
여자는 은희와 내가 제일 연장자다.
흑~ 이러면 안 되는데 아직은 청춘인데...
다행이 금옥이랑 숙자랑
그 친구들이 있어서 덜 외롭다.
회장님도 더워서인지 참석을 못하고
제일 웃어른이지만
눈높이는 늘 우리와 맞추며
어디에서도 흉허물이 없는
용진선배님이 자리에 앉아 계셔서 반가웠다.
기헌선배님도 반갑고 또 뒷자리를 가득 채우며
언제 어디를 가든 전용좌석인 듯
오랜만에 봐서 더 반가운 시학이 동생과
희두, 병덕이동생 등 그 멤버들이
참새떼처럼 쫄래기 앉아 있다.
정호동생 옆에 앉은 종현이는 담배 끊은 얼굴에
살이 쪄서 완전 보름달이다.
반대로 늘 두 가지 일하느라 힘든 기룡인
핸섬한 얼굴에 바지가 두 주먹이 들어가고도 남아서
끈으로 허리춤을 질끈 동여매었다.
늘 혼자였던 금옥이곁에 오늘은
태희동생이 지켜주고 숙자곁엔
늘 상욱이 동생이 든든하게 받쳐준다.
혼자여서 더 외로운 사룡이 동생은
자기 동기들은 다 죽었다고 하란다.
내심 받춰주지 않는 동기에 대한
서운함을 표현하는 거겠지.
다른 친구들 이름은 기억을 못해
일일이 말해줄 수 없지만
모두 보면 알만한 반가운 얼굴들이다.
모두 스무남 명, 예전과는 다르게
인원이 그리 많지 않아서 왜 그런가 했더니
계곡으로 바로 오는 친구들이 많단다.
올해도 우리의 산행 인원 마지노선은
50여 명 정도라고 보면 맞을 것 같다.
목적지인 천마산 팔현계곡 산마루가든까지는
한 시간여가 걸린다고 했다.
벌써 네 번째 같은 장소이고
나는 세 번째 가고 있지만
갈 때마다 바삐 사느라 메마른 가슴들에게
산은 나눠줄 게 많은 듯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곧 바닥을 드러낼 것만 같은 오남저수지를 지나
계곡 초입부터 예전과는 다르게
맑은 물이 흐르고 있어
물이 없어 물놀이를 못할 걱정은 덜어도 될 듯했다.
목마른 가뭄 땡볕 속에서도 열매 맺은 것들은
저마다 자기 할 일을 해야된다는 듯
대추며 수수며 깨며 알알이 영글어 가고 있었다.
가든 마당에 버스를 대고 내리니
내년에 총동창회 주관기수인 55회 동생들
모두 선남선녀의 모습으로 14명이나 와 있다.
무일이동생을 비롯해 우리 새들팀
왕경이, 대순이, 언제나 예쁜 재영이동생 등
젊음이 좋긴 좋다.
봄에 안동향우회 체육대회 행사 때
끝까지 남아 빗 속에서도 청소 다하고
사람들 뒷풀이 장소로 실어날랐다고 칭찬이 자자했다.
언제나 구수한 사투리가 일품이면서
볼 때마다 누야~라고 불러주는
도수동생도 오랜만에 와 있다.
곧바로 단체사진을 찍었다.
나중에 사진 보니 참 신기하게도
알록달록한 옷색깔은 모두 좌측으로~
푸른색 옷은 우측으로 서 있어서
누가 보면 일부러 그렇게 시킨 것 같았다.
참석하지도 않았으면서
막걸리를 세 말씩이나 보내온
기중이네 57회 동기들의 고마움을 마음에 새기며
각자 배낭에 막걸리 몇 병씩을 채워넣고 출발이다.
금방이라도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질 듯한 산길에
우리는 알록달록 핀 꽃같이
이제는 제법 눈에 익어 익숙해진 듯
삼삼오오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며 숲으로 들어선다.
저 밑에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를 음악삼아
숲이 들려주는 일 년 동안의 파노라마를
머리 속으로 그리며 걷다보니
처음 왔을 때 그렇게 먼 것 같던 산길이
순식간에 계곡을 드러냈다.
쓰러진 나무도 끝까지 남을 위해
자신을 내어 주는 계곡
초록 이끼를 앉히고 거기에 풀이 자라고
하늘빛을 다 가린 나무들이 내뿜는 피톤치드에
한 달 가까이 폭염에 절여져
시들시들한 몸과 마음이 그냥 붕 뜬다.
작년에 비해 절반도 가지 않았는데
등허리를 타고 내리는 땀방울이
내 몸의 온도를 최적화시켜달라며
후끈 달아올랐다.
산길을 내려가 계곡물을 보자
사람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자석이 되어버렸다.
어차피 물놀이 산행인 것을
굳이 힘들여가며 더 올라가지 말고
그냥 주저앉아 놀잔다.
얼마나 더웠으면 물의 힘이,
보기만 해도 시원한 그 유혹이
씩씩하게 출발했던 발걸음을
꼼짝 못하게 묶어버렸다.
모두 일심동체로 자리가 깔아지고
끼리끼리 싸가지고 온 먹거리들을 내놓는다.
병덕이랑 몇몇은
천마산 정상을 꼭 밟아야 한다며
막걸리로 목도 안 축이고 그냥 출발했다.
산행 때마다 은희가 준비한 홍어와 묵은지는
막걸리와 궁합이 잘 맞아 완전 인기만점이다.
배고프던 차에 부침개로 배를 채우고
막걸리 몇 잔을 마셨더니
얼굴이 불콰해지면서
어느새 눈 앞이 어질어질해진다.
다들 사랑의 술잔이 돌고 이야기꽃이 피고
은희는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
우리 새들팀 처음으로 같이 사진 한번 찍자고 해서
동샐들과 멋지게 포즈 잡고 찍었다.
그러자 55회 동기들 단체사진 찍는데
느닷없이 대순이동생이 옥희도 55회라며
막무가내로 끌고가서 사진 찍히고
나는 얼떨결에 55회가 되어버렸다.
그럼 내년 봄 학교에서 행사할 때
나도 한자리 낑겨주는 겨?
아, 막걸리탓에 벌써 소식이 와서
화장실에 가고 싶다.
시계랑 반지 휴대폰 다 빼놓고
갈아입을 옷도 가져왔겠다
슬슬 위로 올라가 봤다.
폭포수처럼 물이 얕게 내려오고 있어서
발 담그는 척 하고 완전범죄를 저질렀다.
이어서 너도 나도 올라와
몸까지 다 담그고 물싸움을 하며
본격적으로 물놀이가 시작됐다.
아마 내가 제일 재밌게 놀았을 걸.
보니까 사진도 제일 많이 찍히고
몸살까지 다 날 정도였으니 말이다.
여전히 개구쟁이 아니랄까봐
물 속에 빠뜨리려는 철현이한테
너 이러면 우리 신랑한테 이른다고 소리쳤더니
완전 '일러라 찔러라 담배밭에 코찔러라!' 식이다.
귀에 물 들어간다고 소리질렀더니
용진선배님이 ''야야~ 아 놀랜다 그만해라!''
하는 바람에 간신히 물 안 먹고 살아났다. 휴~
도산 가송리에서도 그랬고
물에만 가면 그놈의 빠뜨리려고 하는 통에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늦추면 안 된다.
햇빛도 어쩌지 못하는 이 시원한 물놀이~
서울은 36도의 최고 무더위라는데
그 무더위 누가 다 잡아먹었나?
더위 사냥 확실히 하는 신선놀음에
아주 잠깐인 것 같은 시간이
어느새 점심시간인 두 시를 향해 간다.
서둘러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배낭들을 챙기는 사이
역시 막둥이 55회 동생들은
우리가 앉아 놀은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자연을 아끼는 마음 씀씀이를 베풀며 말끔히 청소했다.
누가 청소 잘 한다고 소문냈냐면서~
그래도 뿌듯하지. 멋진 동생들!
우리 사진쟁이 지원이가 있었으면
임동! 임동! 을 몇 번이나 외치고
또 주먹을 몇 번이나 쥐었다 놓으며
멋진 사진을 많이 찍었을 텐데
이 더위에 다리 수술 받았다니
고생이 많을 것 같다. 얼른 나아야지.
내려오면서 보니 우리가 놀은 자리 보다
더 좋은 자리에서 누군가 놀고 있어 좋겠다~ 했더니
웬걸~ 먼저 내려온 시학이 동생들이잖아.
그 물에 앉아 또 막걸리 한잔을 마시고
은희는 휴대폰 핑계를 대며
그렇게 물에 안 들어가려고 애쓰더니
자기가 먼저 풍덩 들어앉는다.
것봐 시원하지? 하지만 실은 그 역시도
완전범죄를 노리는 고단수였다는 거,
사진 올리면서 이미 자백했다.
계곡에서 올라와 작년 그 자리의 돌탑에
돌멩이 하나 올려놓고 사진을 찍는데
멤버가 바뀌었다.
가든에는 우리가 먹을 오리들이
엉덩이를 드러낸 채 잘 차려져 있고
늦게 연진이 동생이랑 수남이도 와 있고
안동향우회 총무인 정선화씨랑 이면동씨와
그 부인 명희씨도 와 있었다.
늦어도 계곡으로 올라오지 그랬냐고 했더니
가든을 잘 못 찾아 밑에서 한참을 헤맸다고 했다.
함께 먹고 마시며 물놀이 했으면 좋았을 걸.
더운데 참석해줘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사람이 사는 게 뭐 별 거 있나~
늘 똑같은 일상을 살면서 밥만 먹고 살 수 없듯이
더운 날 있으면 선선한 날도 있어
그 날을 기다리며 우리는 이렇듯
계곡을 찾아 하루를 즐기는 거다.
다시 불볕의 세계로 나가 헉헉 거릴지라도
오늘 천마산 팔현계곡에서
네 번째 쌓은 우리 고향사람들과의 끈끈한 정은
두고두고 풀어놓아도 질리지 않게
이바구할 수 있는 추억이 되었을 거라고 믿는다.
오늘 본 사람을 내일 또 볼 수 있다는
보장이 없는 우리 삶에서
우리는 될 수 있으면 기회 닿을 때마다 만나고
또 정담을 나누어야 한다.
돌아보면 한 다리 건너 아재요, 팔촌이니
고향이라는 그 핏줄이 어디갈까?
하루가 순식간에 가버린 즐거운 물놀이 산행,
함께했던 선후배님들 반가웠고
즐거운 자리를 마련하느라 애쓴
우리 산우회장님, 기룡이와 금옥이, 철현이, 은희
모두 고맙니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