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의 형식은 대체로 정형화되어 있는 듯하다. 대부분의 추리물은 어떤 형태로든 형사가 등장을 하고 그들이 사건을 하나하나 추리를 해나간다. 그 속에서 반전이 드러나고 몰랐던 사실들이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기 마련이다.
그러나 심리스릴러는 범인을 추적하는 것이 독자의 몫이다. 말하자면 추리물에서 형사가 이런 것도 알아냈구나 하고 감탄하는 대신 심리스릴러물에서는 범인의 흔적을 직접 찾아내고 범인과 관계없는 또 다른 유사 흔적들을 어떻게 제외해야 하며 퍼즐을 맞추어가는 재미가 있다.
B.A 페리스의 『테라피스트』는 그런 점에서 심리스릴러물의 백미가 아닌가 싶다. 소설은 형사가 아니라 젊은 여자가 과거 자기 집에서 일어났던 살인 사건 주변에 있음직한 사실들의 편린을 하나씩 퍼즐 맞추듯이 맞추며 사건의 실체에 차츰 접근해 간다.
그런 속에서 반전이 있고, 마침내는 그 반전은 그야말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어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한다. 말하자면 나가도 너무 나간 것 같다는 말인데 이걸 다른 말로 하면 그저 허를 찔렸다고 할 것이다.
소설은 두 트랙으로 전개된다. 하나는 몇 개의 장 앞에 두어 장씩 넣어든 <과거>라는 별도의 장이었다. 그곳에서는 ‘나’나는 인물이 여성 고객을 상대로 심리 상담을 하는 과정이 조금씩 소개되고 있다. <과거>라는 이 별도의 장은 범인이 누구인지를 명확히 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엘리스는 고향 할리스를 벗어나 레오를 따라 런던의 부유한 주택단지로 이사를 왔서 동거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 집이 수년전 살인사건이 일어난 집이었고 피해자는 니나라고 했다. 엘리스는 레오가 이 사실을 사전에 알리지 않았음에 분개해서 고향으로 다시 내려갈 결심을 한다.
그런데 살해당한 니나는 교통사고로 죽은 엘리스의 언니 이름과 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그 집이 끔찍하게 싫기는 했지만 니나라는 이름에 묘하게 이끌리며 사건 속으로 조금씩 발을 들여놓았다. 그녀가 그러면 그럴수록 그의 새 이웃들은 자신과 거리를 두려한다는 것을 느꼈다.
경찰에서는 살인은 죽은 피해자의 남편이 저지른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고 그 남편은 자살을 함으로써 사건을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단지 내의 이웃들은 그의 남편이 범인은 아닐 것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각자 죽은 니나와의 친분 관계에 따라 그들에 대한 평가가 조금씩 달랐다. 그러다보니 엘리스는 혹시 그렇다면 범인이 이 단지 안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며 한 사람씩 나름대로 이상한 점을 찾으려 애쓴다.
그럴 즈음 처음 집들이를 할 때 불청객으로 들어왔다 사라진 사내에 대해 엘리스는 궁금해 했고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내려 애쓴다. 그러던 중 그가 집으로 방문을 했다. 사설탐정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니나의 살인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고 했다.
사건과 관련하여 몇 번 만나면서 그가 매우 듬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웃들의 조그마한 일조차도 혹시 살인 사건을 풀어내는 열쇠가 되지 않을까 싶어 그 토머스라는 사설탐정과 의논을 했다.
남자 친구인 레오와는 다시 결합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이가 벌어졌다. 엘리스가 혼자 고향으로 돌아가도 레오는 그 집에서 살 것이라고 했다. 그가 그 집에서 살 것을 고집하는 것은 뭔가 그 집과 관련이 있는 비밀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엘리스는 레오의 과거를 캐게 되었고, 그가 치명적인 전과자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 또한 엘리스를 속인 것이므로 도무지 그와의 관계를 회복할 수 없게 되었다. 엘리스는 단지 내의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하나씩 의문을 제기하며 나름대로 추리를 해나갔다.
마리아의 남편인 팀은 심리치료사가 되고 싶어 했으며 니나가 그를 도왔다는 사실로 인해 한동안 그를 의심하기도 했고, 바로 옆집의 윌이 두 집 사이의 정원 담에 난 구멍을 통해 아무도 모르게 자기 집을 드나들 수 있다는 것도 의심을 하기에 충분했다.
그로다보니 적어도 단지 내의 모든 사람들이 다 의문투성이 같았다. 한밤중에 곤히 잠든 침실을 누군가가 들여다보고 있다는 생각에 몸서리를 첬고, 어느 날은 창틀에 장미가 놓여 있기도 하고, 냉장고에는 삼페인이 놓여 있기도 했다.
아무도 모르게 이 집을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이라면 윌 밖에 없을 것이다. 그 와중에 레오는 집 열쇠를 윌에게 맡겨놓았다는 말도 했다. 로나 아주머니는 내외는 나이가 지긋하고 동네도 잘 나다니지 않으므로 그녀의 관심 밖이었다.
그리고 살인사건이 일어나던 날 그 노부부가 말다툼하는 것을 들었으며 다음날 올리버가 9시경 귀가한 후 바로 살인이 일어났다고 경찰에 진술했고 이것이 그래도 받아들여졌다. 그런 상황을 로나 아주머니가 엘리스에게 확실히 설명을 해주었다.
추리가 벽에 부딪칠 때 즈음이면 토머스가 새로운 사실을 넌지시 알려주었다. 그러다보니 엘리스와 토머스는 완벽한 한 팀이 되었다. 그가 사건에 매달리는 것은 살해당한 니나의 남편인 올리버의 누나가 자신의 절친인데 너무 간절히 부탁을 한 때문이라고 했다.
올리버의 누나 헬렌은 건강이 악화되어 죽기 전에 진실을 밝히고 싶다고 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리고 어느 날은 헬렌으로부터 감사의 편지가 오기도 했다. 사건을 추리해가다가 니나가 자기가 심리치료사이면서 남자 심리치료사에게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엘리스는 그 실체를 알아내려 안간힘을 쓴다. 그 과정에서 이웃집의 로나 아주머니는 아무도 믿지 말라는 말을 했다. 탐신은 절대 올리버가 살인을 했을 리 없다고 단언했다. 그 점은 마리아나 이브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고향집으로 내려가기 하루 전에 엘리스는 이웃들은 탐신, 이브, 마리아를 점심 식사에 초대했다. 말하자면 송별회인 셈인데 그곳에서도 탐슨과 살인 사건과 관련해서 날선 이야기를 나누었다. 감정이 격해져서 엘리스는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자 토머스가 방문을 했다. 토머스와 이야기를 하는 중에 탐신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즈음에 그들은 팀이 범인이라고 확신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탐신은 올리버에게 누나가 없다고 단언했다. 그가 자기 입으로 외동아들이라고 분명히 말했다는 것이다.
엘리스는 그녀의 말에 전율을 느끼며 슬그머니 레오에게 올리버에게 누나가 있는지 알아봐달라고 문자를 보냈다. 얼마 후 레오가 문자를 보내왔지만 얼른 전화기에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자 토머스가 그녀의 전화를 보고는 ‘올리버는 누나가 없다’고 문자를 보내왔다고 했다.
순간 엘리스의 모든 의심이 한꺼번에 토머스에게로 몰려갔으며 그를 집에 둔 채 바깥으로 달아나 문을 잠그었다. 그가 집안에 있으므로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차례다. 전화를 토머스가 가지고 있었으므로 이웃집 도움을 요청해야 했다.
엘리스는 로나 아주머니 집 문을 두르렸고 안으로 들어섰더니 토머스가 이미 그곳에 와 있었다. 토머스는 이 노부부가 이라크 전쟁에서 사망했다고 했던 바로 그 아들이었다. 살인을 저지르고 다니는 아들이라 아들을 피해 숨어살고 있는데도 용케도 찾아왔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들은 그에게 감금된 채로 살았다고 한다. 그 동안 그들 노부부는 장을 보는 법이 없이 모든 것을 배송을 통해 해결했다. 헬렌이라는 이름의 편지는 아들의 성화에 못이겨 로나 아주머니가 쓴 것이라고 한다.
니나가 살해당하던 날 올리버가 바로 집으로 들어갔다는 점을 증언한 것도 아들의 강요에 의한 것이었다. 토머스라는 이름도 본래의 이름을 바꾼 것이었다. 그의 본래의 이름은 존이었다. 그는 엘리스는 의자에 묶고는 또 다른 살인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엘리스의 과거를 모두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이곳 자기 집 옆으로 이사를 오자 사립탐정이라는 이름으로 접근을 한 것이다. 모든 것은 완벽했다. 그는 가위를 들어 엘리스의 머리카락을 조금씩 잘라갔다.
그리고 마지막 그녀의 숨통을 끊을 즈음 로나 아주머니가 둔기로 그를 내리쳤다. 아들은 죽고 엘리스는 살아난 것이다. 소설은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누가 범인인지 모를 정도로 흥미가 있었다. 읽으면서 계속 내 나름의 추리를 덧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추리소설이나 스릴러물이 모드 그렇듯 제일 마지막에 범인의 진인함이 드러나는 것이므로 이전에 연막처럼 쳐놓은 사건의 얼개나 진행과정이 다소 모호해지기도 한다. 너무 많은 덫을 놓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