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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까리 꽃을 자세하게 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늘 시기를 놓쳐서 제대로 볼 수 없었는데 운 좋게도 아주까리 꽃이 피어나는 시기에 그를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궁금했는데 작은 암꽃을 들여다보니 립스틱을 짙게 바른 요염한 여인네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응원가로 많이 부르는 <아리랑 목동>에 분명 '아주까리 동백꽃이 제 아무리 고와도~ 동네 방네 생각나는 내 사랑만 하오리까~'했는데, 별로 고와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동백꽃은 곱다면 고운데 아주까리는 영 아니었습니다.
도대체 어느 구석이 곱다고 하는 것일까? 붉은 동백과 붉은 아주까리 꽃의 선홍색 빛이 곱다는 것인가 생각도 해봤지만 얼핏보면 꽃처럼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작아 물방울 안에 쏙 들어가는 암꽃이 고와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노란 수꽃은 더 말할 필요도 없구요.
그런데 <아리랑 목동>에 나오는 표현, 동백과 견줄만한 아주까리의 고운 구석은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번뜩 스치는 생각이 있습니다. 상상이긴 하지만 아마도 틀리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옛 여인네들은 머리단장을 할 때 청포물로 머리를 감았습니다. 그리고 머리기름을 이용해 머리단장을 했습니다. 정갈하게 쪽이 진 머리와 뒷머리의 비녀, 그것이 곱디 고운 여인네의 상징이었던 것입니다.
머리기름으로는 동백, 아주까리, 생강나무, 때죽나무, 쪽동백, 비자나무, 수유등의 기름이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던 머리기름이 바로 아주까리와 동백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동백기름과 아주까리기름은 여인들의 머리단장에는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 중의 하나였던 것이지요.
동백기름이나 아주까리 기름으로 머리단장을 한 고운 여인, 그러나 사랑하는 여인는 그들 보다도 더 곱게 보이기 미련이죠. 이런 생각 끝에 꽃 자체가 고운 것이 아니라, 머리기름으로 사용되어 동백과 아주까리가 동격으로 사용된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릴 적 잘 익은 피마자(아주까리)의 씨앗을 따서 껍질을 벗기면 하얀 속살이 나왔습니다. 그것을 뭉개어 불을 붙이면 기름성분 때문에 '타탁 타닥!' 거리며 푸른 불길이 일곤 했습니다. 그것이 재미있어 몇 차례 불장난을 하다보면 손가락바다 기름끼가 번들번들 했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것은 피마자 이파리입니다. 연한 이파리를 따서 잘 삶아 말렸다가 묵나물로 해먹으면 그 맛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약간은 쌉싸릅한 것 같으면서도 맛이 좋았지요. 많이 먹으면 설사한다고 적게 먹으라고 했지만 아마도 아주까리 이파리 같은 묵나물들로 인해 변비로 고생한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아리랑 목동>의 '아주까리 동백꽃이 제 아무리 고와도~' 그 구절의 의미를 아주까리 꽃을 만난 후에나 알게 되었습니다. 무척이나 고운 줄 알았던 꽃에 조금의 실망은 있었지만 붉은 립스틱 짙게 바른 듯한 붉은 암꽃은 그래도 고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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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시골에서 자라 아주까리를 아주 가까이서 자주 보았건만, 꽃을 본 기억이 전혀 없네요. 순간을 포착하신 멋진 사진!과 재해석! 멋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