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시작(詩作)의 눌변(訥辯) 되도록 하지
않으려 한다 시를 적는 마음 바탕 너무 비좁기 때문이다
헛헛한 세상 어찌 살다 보니 만물객체(萬物客體) 모두에게
선과(善果)보다는 과실(過失) 많이 맺다 보니 할 말 없음이다
그래도 농아(聾啞)된 마음으로 살기보단 닫힌 마음 소아(小兒)의
사고(思考)로 살기보단 미친년 널뛰기라도 해야겠기에
동살 새벽부터 이슬 젖는 오밤중까지 무딘 언어(言語)의 칼날
갈아 보는 것이다
수류운공(水流雲空) 깃털보다 가벼운 존재 그래도 무언가
기호(記號) 하나쯤은 지니고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시를 적는다
만일 내가 등 따숩고 풍덩한 여유로움으로 세상 보는 눈 가졌다면
애시당초 시란 것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가난한 자 복 있다는 말은 그가 영혼의 마른 샘 끊임없이
파내려 간다는 뜻일게다 배고픈 돼지의 심정으로라도 결핍(缺乏)하는
자유 한껏 누리기 위해 난 시작(詩作)을 하고 있다
나 죽어 거두어갈 성한 내장(內臟) 하나 없어 살아있을 적 보시(布施)
하는 마음으로 고단한 영혼과 지친 삶들에게 따스한 사랑의 메시지
던져주고 싶은 것이다 그것이 도로(徒勞)에 그치고 염병할 놈 육갑(六甲)
떤다 손가락질 하더라도
나의 시 쓰기는 주제와 소재 불문(不問)한다 우리 사는 세상
더 없이 넓고 깊은 다양함이 지천인 까닭이다 그러나 신변잡기적인
쇄말주의(쇄末主義, trivialism)을 경계한다 또한 과대포장의
부러 지어 울음우는 뻐꾸기의 탁란(託卵)하는 게으름이나
꾸민 목소리를 경계한다 대갈일성(大喝一聲)으로 호연지기(浩然之氣)
키울만한 그릇 못되거늘 그래도 삶의 곰삭은 젓갈 냄새 풍길 수
있는 오지 항아리 하나쯤은 가지고 싶은 것이다
난 외롭지 않다 그 점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복이 많은 놈이다
어디엘 가도 주위에는 따스한 손 내밀어주는 이들 뿐이었다
생래(生來)적인 고독이나 외로움은 이런 상황에서 그저 눈녹듯
스러지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아니 소인의 마음이다
필명(筆名)으로 사용하는 소인(素人)은 일반명사다 어떤 일에
비전문적이거나 숙련되지 못한 아둔패기를 이름이다
난 소인(素人)이 좋다 죽기까지 들씌운 미망(迷妄)의 그늘 걷어내지
못할 바에야 소인으로 남겠다는 것이다
난 부끄러운 게 많은 놈이다 살아 있다는 것이 부끄럽고 먹고
싼다는 게 큰 호사(豪奢)다 그래서 술 먹는다 사는 게 부끄러워
취하곤 한다 식구들에게 이웃들에게 들킬까봐 숨어서 시 적는다
새참으로 먹는 라면 줄기 하나에 목매지 않는 세상 오기 바라면서
얼굴 붉히며 국물 마신다 난 모자란 놈이다 그 많은 사랑 다 퍼주도록
사랑 한 줄기 담아두질 않았으니 지나온 사람들에게 여인들에게
부끄러워 함부로 사랑 노래하지 않는다
함부로 사랑 기대하지 않는다
거친 삶 속에서 문득문득 자면서도 위로받는 것은 무한히 펼쳐진
자연(自然)과 따스한 사람들이 꾸려가는 세상이다
살아 숨쉰다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로 난 그들에게 위안과 격려의 축복
넘치도록 받고 있다 물론 죽어간 것들과 사라진 것들 선인(先人)들의
뜨거운 입김에도 감사한다 내가 굶주린 영혼으로도 두 발 딛고
설 수 있게 해준 의지(意志)의 토대(土臺)이기 때문이다
나는 모든 생명(세계)의 주제는 사랑이라고 믿는다 십일(十日) 지나면
시들어버리는 꽃의 유한(有限)한 아름다움에 빠져들 수 있는 것도
사랑의 피안(彼岸)에 선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미움 증오 탐욕......
그러나 궁극적인 현상(現象)에 내포화(內包化)된 사랑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공동선(共同善)을 향한 평화(平和)의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학교를 짓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이다
내가 육두문자(肉頭文字)를 즐겨(?) 쓰는 것도 물화(物化)된 허상의
세계 뛰어넘기 위한 몸부림이다 너무 지나친 자기변명일까
나는 타고난 역마직성(驛馬直星)으로 자갈길만 골라 걸어왔다
나이 들어 식솔(食率) 딸리고 보니 그들에게까지 전가(轉嫁)된 듯
싶어 미안하다 앞으로도 얼마나 먼길 돌아가야 당도할 곳인지는 몰라도
난 그저 나의 길 갈 뿐이다 나의 목소리로 노래할 뿐이다
봉화 땅에 탈방이는 살림 푼지도 오 년째다 내게 위안과 사랑
일깨워주는 이 땅에서 이 곳의 아름다움과 부끄러움에 대해 맘껏
노래하고 싶다 그 노랫소리 조금씩 퍼져나가 이웃마을에게도 잔잔한
울림으로 전해져 아픈 생채기 보듬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치유(治癒)의
메시지 되는데 일조(一助)할 수 있다면 더한 욕심이 없겠다
우리 사는 세상 환한 표정들 어둠의 그늘 지워낼 때까지
*반시(反始)의 기호(記號) 날려보내는 거다
첫댓글오늘, 소인님의 '허튼소리'와 명시감상실의 '첫눈' 두 글 만으로도 마음도 배도 가득해지는 것 같습니다. 두 분 선생님 감사합니다! 시인은 배고파야 한다고 김수영 시인이 그랬나요? '앞으로도 얼마나 먼 길 돌아가야 당도할 곳인지는 몰라도...'누구에게나 삶은 돌아가는 먼 길인 듯 싶습니다...^^*
첫댓글 오늘, 소인님의 '허튼소리'와 명시감상실의 '첫눈' 두 글 만으로도 마음도 배도 가득해지는 것 같습니다. 두 분 선생님 감사합니다! 시인은 배고파야 한다고 김수영 시인이 그랬나요? '앞으로도 얼마나 먼 길 돌아가야 당도할 곳인지는 몰라도...'누구에게나 삶은 돌아가는 먼 길인 듯 싶습니다...^^*
소인님의 푸근한 웃음과 함께 시작에 대한 열정과 진지함을 항상 배우고 삽니다.
봉화땅이 소인님과 궁합이 맞는듯 하군요. 소탈한 소인님의 노래, 산새들의 노래 처럼 꾸밈이 없어 좋아요.
회장님, 어젠 잘 들어가셨습니까? 모처럼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자운영님, 모임을 위해 애쓰시는 모습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잘 들어가셨지요? 최선배님, 가끔은 뵙고 싶은데 제가 워낙 팔불출이라서요^^. 언제 쓴소주 한 잔 올리지요...
봉화에서 뿌리를 내리시고 봉화문학을 사랑하는 소인님이 계시기에 든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