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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재영의 원격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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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_02학기 자유교양대학 대학글쓰기 제5주차 댓글과제
허재영 추천 0 조회 263 24.10.04 12:59 댓글 39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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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첫댓글 위 글의 내용을 간략히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현재 대학생들은 수능에서 발휘할 수 있는 역량의 차이를 꼭 그 사람이 발휘할 수 있는 모든 역량으로 취급하고, 높은 곳에 있는 학생들이 자신을 멸시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기보다, 스스로 자신보다 더 낮은 곳에 있는 학생들을 멸시하는, 일명 부당한 사회구조의 피해자 이지만 동시에 가해자로서 그런 사회구조를 유지하는 데에 일조하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는 것. 평등주의가 강한 한국 사회에서 이중적 평등주의를 엿 볼 수 있는 부분이라는 것.
    나는 이 글이 말하는 것에 대하여 동의할 수 없다. 우선, 나는 학창시절 친구들과 모두 대학을 들어갔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어떤 친구도 비슷한 수준이나 비슷한 전공의 대학을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을 밝혀두겠다. 각기 수준과 전공이 각양각색인 대학을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들과 대화를 나눌 때에 있어서 오히려 누군가가 으래 말하는 등급이 낮아도 들어갈 수 있는 대학의 시스템에서도 배울 점이 결코 없지 않다는 것 또한 느낀다. 그리고 만나서 공부할 때도 등급이 낮은 친구가 높은 친구에게 가르쳐주는 상황 또한 나온다. 낮은 곳에 있다고 멸시하는 태도 또한 보통의

  • 사람에겐 없는 것이다.
    또, 불합리한 시스템을 문제시 할 눈이 없다? 절대 아니다. 학창시절, 모두 수능을 욕했지 본인보다 공부를 못한다고 멸시하진 않았다. 우리는 그것을 문제 시 할 눈이 분명 있다. 그렇다고 수능이라는 체제를 한번에 바꿀 수 있는 능력은 없다. 아니, 목소리를 낼 힘 조차 없다. 아무리 힘을 써도 학생의 위치에서는 문제 제기를 할 시간조차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문제 제기를 아무리 해도 바뀔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럴 시간에 한문제라도 더 풀어서 뒤처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정작 대학생들이 이러한 차별을 행하고 있다는 객관적 자료나 지표도 없다. 물론 차별을 행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존재할 것이다. 그런데, 그 차별을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더 “낮은” 곳에 있는 학생들을 멸시한다? 차별을 조장하려는 사람은 몇몇 봤지만 실제로는 차별 조장하지 말고 글 내리라는 것만 몇 번을 본 지 모르겠다.
    그러므로, 이 글은 한계점이 존재하는 글이다. 차별을 필연적으로 조장하는 시스템의 문제가 잘못된 것이지 우리는 결코 차별에 찬성한 적도, 원한 적도 없다. 눈이 없는 것이 아니라 힘이 없는 것이고, 차별을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 오히려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 24.10.06 16:14

    군주가 신의를 지키는 것은 칭송받을 일이지만 위업을 이룬 군주들은 신의를 지키지 않고 기만책에 뛰어난 자들이다. 그들은 신의를 지키는 군주들에 맞서 승리했다. 싸움에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법으로 하는 것과 힘으로 하는 것이다. 군주는 상황에 따라 양자를 혼용할 수 있어야한다. 한쪽이 부족하면 보위를 오래 유지할 수 없다. 군주는 여우와 사자를 모방해 함정에 빠지지 않고 늑대를 물리칠 수 있어야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기에 군주도 약속에 구속되어서는 안된다. 그래서 군주는 간계를 잘 감춰야하고 기만자이자 위선자가 되어야 한다. 군주는 선한 품성을 가진 것 처럼 가장해야 한다. 국가를 보전하기 위해서는 필요에 따라서는 악행도 저지를 수 있어야 한다. 일반 백성들은 군주의 행동에 대해 결과만 갖고 판단하기 때문에 보국이 최우선 과제여야한다. 백성이 군주에게 의지해 하나가 되면 경험을 통해 군주의 참 모습을 아는 소수가 현명하더라고 고립된다.

  • 24.10.06 16:14

    군주론은 군주가 갖추어야 하는 덕목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권위주의적 관점으로 이야기 합니다. 집필 시점에서는 책에 서술된 내용인 군주주의가 보편화된 개념이였기에 그 당시 정치지도자가 큰 무리 없이 받아들이고 응용할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하지만 현대는 민주주의로 한 명의 지도자가 아닌 다수의 동의와 사회적으로 일관된 보편성을 기반하여 국가가 운영되기 때문에 현재의 관점에서 정책 결정자들을 포함한 다수의 지도자에 응용하기에는 힘든 내용이 많습니다. 저자는 군주가 선하다 말하는 모든 덕목을 따를 수 없기에 그런 척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람은 완벽 할 수 없다는 저자의 관점은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군주는 전승과 보국을 최우선 과제로 여겨 백성들이 자신의 편을 들어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의견이 고립되게 해야 한다고 합니다. 정치 지도자라면 이것을 우선시 해야하는 것은 맞지만 현재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의 의견을 묵살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 24.10.07 02:57

    글쓴이는 인간의 본성이 약하고 악하기 때문에 이러한 본성과 공격성을 순화시키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은 필연적이라고 본다. 따라서 거짓말을 하는 것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더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 글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예시로 들었던 영화 '라이어 라이어'의 경우 거짓말이 없을 경우 가져올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내용으로 좋은 근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거짓말은 어떤 경우도 허용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칸트에 관한 내용을 설명한 것은 글쓴이의 주장과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인간의 본성과 공격성을 숨기기 위해 하는 거짓말은 필연적이라는 글쓴이의 생각에 동의한다. 하지만 거짓말에 대한 인식이 너무 관대해지면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저자의 거짓말에 관한 논점은 여러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현대사회에서 중요하고 유의미한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 24.10.07 11:28

    연습문제 1 요약
    이 글은 대학 서열 나누기를 구체적인 예시로 들어 한국 사회의 이중적 평등주의에 대해 비판한다. 높은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은 자신들보다 낮다고 여겨지는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을 무시하고, 그 무시당한 학생들은 또 더 낮은 대학의 학생들을 무시한다. 강한 자에겐 약한 태도를 보이고 약한 자에게만 강해지는 강약약강의 태도가 적용된다. 다만 이 강하고 약한 것의 기준이 ‘능력‘이고, 그렇기 때문에 정당화될 뿐만 아니라 이러한 태도가 옳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구조 속에서 사회는 평등주의를 주장하지만, 사실 사람들은 자신보다 높은 사람들과는 평등해지고 싶어하고 자신보다 낮은 사람들과는 평등해지고 싶지 않아하는 모순적인 경향을 가진다. 이러한 태도를 유지한다면 우린 평생 이런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고칠 수 없을 것이라고 이 글은 이야기하고 있다.

  • 24.10.07 19:10

    필자는 사회의 갑질,을질 등 먹이사슬 관계에서 가장 배제되어 있어야 할 대학생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대학 서열 중독증에 대해서 고발한다.그들은 단 하루만 시행되는 수능을 통해 그 사람의 모든 능력을 판단하려 하고 그것을 서열화하여 자신보다 낮은 서열에 있는 사람이 자신과 같은 대우를 받으려 하는 순간 민감하게 반응한다.그리고 이러한 정신 상태는 곧 사회의 갑을관계,비정규직 차별 등으로 이어진다.여기서 저자는 미국의 능력주의 사례를 들어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준다.부모의 경제력과 학벌이 자식의 학벌에 영향을 주고 이것이 세대를 거치면서 점차 세습으로 번지며 사회의 한 부분이 된다는 것이다.하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우리 사회의 모순이다. 자신보다 아래에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에 대한 차별은 관대하지만 반대로 그러한 판단에서 발생하는 자신에 대한 차별에는 불평등을 외친다는 것이다.즉 차별이라는 구조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며 그 차별을 싫어하는 모순에 빠진다는 것이다.이러한 사회에 대해 필자는 글의 마무리와 함께 "우리가 행하는 차별에 주목하는 동안 세상은 차별로서 더욱 결속되어지는게 아닐까?" 라는 질문을 던진다.


  • 24.10.07 21:42

    저자의 논점과 주장은 갑을 관계, 부모의 경제적 배경에 대한 능력주의 사회, 이중적 평등주의와 사회적 차별, 이로 인한 구조적 불평등과 같은 사회 구조의 복합적인 문제를 잘 짚어내고 있으며, 현대 사회에서 차별이 어떻게 정당화되고 재생산되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능력주의의 모순, 세습 자본주의, 이중적 평등주의 등은 우리가 흔히 경험하거나 목격하는 사회적 현실과 잘 맞아떨어지며, 이는 저자의 주장이 타당하다는 점을 강하게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2010년대 중반의 사회가 직면했던 문제들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2010년부터 “갑질”이라는 단어가 크게 부각되었습니다. 이 글은 그 시점의 사회적 현실을 반영하고 있으며 그 당시 한국의 차별의 구조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충분한 타당성을 가지고 있어 신뢰할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 사용하고 있는 표현들은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하나 몇몇 표현들은 조금 논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을질”, “갑질” 같은 표현들은 학문적인 표현보다는 신조어로써 이해하기 힘든 사람들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저는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다룬 이 글의 주장에 동의합니다.

  • 24.10.07 21:42

    아마 이 글을 읽으면서 저도 많이 공감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능력주의에 많이 공감했던 것 같습니다. 경제력이나 배경에 의해 학력이 결정되는 현실에 많이 공감이 되었습니다. 저와 같은 청년 세대가 겪고 있는 사회에 많이 공감되었습니다.
    “대학 서열화”는 긍정적인 면이 조금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의 서열화는 대학들 사이에 경쟁을 촉진 시킬수 있고 학생들이 더 좋은 교육을 받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24.10.07 22:37

    군주가 신의를 지키며 성실히 사는 것은 매우 칭송받을 만한 일로, 모든 사람이 다 아는 일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위업을 이룬 군주들은 간교한 기만책으로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는데 뛰어난 자들이다. 심지어 그들은 신의를 지키려고 노력한 군주들에게 맞서 승리까지 거두었다. 싸움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먼저 첫 번째는 사람에게 합당한 법으로 하는 것, 두번째는 짐승에게 부합하는 힘으로 하는 것이다. 전자만으로는 많은 경우에서 불충분하기 때문에 군자는 양자를 혼용할 줄 알아야 한다. 고대 저술가들은 군주에게 이런 사실을 은유적으로 가르쳤다. 아킬레우스를 위시한 군주들이 양자를 혼용할 줄 아는 반인반수인 케리론에게 맡겨졌고, 그의 훈도 아래서 양육됐다한게 그 예다. 군주는 짐승의 방법 중에서도 여우와 사자를 모방해야 한다.사자는 함정에 잘 빠지고, 여우는 늑대를 이길 수 없다. 그러기에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여우가 되야하고, 늑대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사자가 돼야 한다. 대다수의 사람이 사악해서 군주와 맺은 약속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군주는 백성과 맺은 약속에 구속되면 아니하고, 이런 관계를 잘 윤색해 감춰야 하고, 능숙한 기만자이자 위선자가 돼야 한다. 혹여나

  • 24.10.07 22:37

    군주가 선한 품성을 구비하지 못할지라도 마치 이를 구비한 것처럼 가장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뛰어난 품성을 구비해 행동으로 옮기면 늘 군주에게 해롭지만, 구비한 것처럼 가장하면 오히려 이롭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서는 달리 행동할 자세를 갖추고, 나아가 그리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군주는 가급적 선행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나, 필요에 따라서는 악행을 저지를 수 있어야한다. 백성은 늘 사안의 겉모습과 결과를 보고 감명 받기 때문에 전승과 보국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한다.

  • 24.10.07 22:42

    @이승주 군주론은 군주가 가져야 할 것들에 대해서 서술한 책이다. 이 내용을 바탕으로 '정치인의 도덕성'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면, 군주론에서는 상황에 따라서 기만과 위선을 섞어가야 백성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현대의 정치인들은 상황에 따라서 기만과 위선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무분별적으로 사용하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지나친 기만과 위선은 오히려 국민들의 신뢰를 떨어뜨리게 한다고 생각한다.

  • 24.10.08 01:34

    신의를 지키며 기만책을 쓰지 않고 성실히 사는 군주는 칭송받지만, 오늘날 위업을 이룬 군주들은 그 반대가 많고, 그들에게 승리를 거뒀다. 싸움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사람에게 합당한 법으로 하는 것과 짐승에게 부합하는 힘으로 하는 것이 있다. 전자만으론 많은 경우 불충분하기에 군주는 후자와 혼용할 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짐승의 방법은 여우와 사자를 모방할 수 있다. 여우는 함정에 빠지지 않고, 사자는 늑대를 물리칠 수 있다. 현명한 군주는 자신에게 불리하거나 지킬 이유가 없는 약속을 지키지 않아야 한다. 이는 대다수의 사악한 사람이 군주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고 군주는 이유를 둘러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눈앞의 이익에 쉽게 동요하기에 이러한 관계를 잘 감추면서 능숙한 기만자이자 위선자가 되어야 한다.
    이렇듯 뛰어난 품성을 지닌 채 행동할 시 군주에게 해롭지만, 그러한 척만 하면 이롭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달리 행동해야 한다. 가급적 선행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 좋으나, 필요에 따라 악행을 저지를 수 있어야 한다.

  • 24.10.08 01:34

    군주는 자신의 말이 선한 품성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사람들은 통상 외양만 보고 판단하고, 군주의 참모습을 볼 수 있는 자는 극소수이다. 게다가 이들은 군주를 지탱하는 대다수의 여론이 군주의 행동의 결과만을 보고 판단하기에 반박할 수도 없다. 이는 군주가 전승과 보국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이유이다.

  • 24.10.08 04:23

    현명한 군주가 행할 수 있는 행위의 범주에 선함과 악함, 모두 존재해야함을 말하고 있다. 행위 자체의 범주가 어느곳에 속하든 그것이 군주로써의 역할을 다하는데에 있어서 도구가 될 수 있다면 사용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한다. 나 또한 본질을 지킴에 있어서 무시받거나 악으로 규정된 일을 하는 것에 대해 크게 회의적이지 않다. 하지만 이 글에서 수단을 가리지 않고 싸운 군주들이 선의를 지키려고 노력한 군주들을 항상 이겼는가, 대다수 사람은 사악하기에 군주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가 등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없다는 것이 아쉽다. 그리고 군주는 사람이 선하다고 평하는 모든 덕목을 모두 따를 수 없다는 사실이 선하다고 평하는 덕목과 그 반대의 행위를 모두 이용해야함을 의미할 순 없다. 이러한 주장은 오직 현명한 군주로써 있기 위한 최선의 선택지가 악행인 상황이며 현명한 군주는 유연해야한다라는 것을 전제할때 유효하다.

  • 24.10.08 04:36

    또, 현명한 군주란 국가의 생존을 우선하고 군주의 역할을 제일 우선시하는 군주임을 전제로 두고 있다. 백성은 결과가 좋은 군주를 칭송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이다. 그러나 백성이 항상 결과가 좋은 군주를 칭송하는 것인가와 현명한 군주라는 것은 백성의 평판에 의해 정의되는 것인가는 의문으로 남아있다.

  • 24.10.08 04:52

    저자의 주장은 대학생들이 수능 점수와 학벌에 과도하게 집착하면서,
    그 차이를 모든 능력의 차이로 확대하고 있다.
    특히 대학생들이 자신이 속한 서열에 맞춰 타인을 평가하고,
    낮은 서열에 있는 사람들을 멸시하는 현상은 교육의 본질과는 동떨어진 태도이며
    이는 한국 사회가 교육을 통해 공정한 기회를 제공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경제적 배경에 의해 학벌과 기회가 세습된다는 점에서 능력주의의 모순을 드러낸다.
    저자는 대학생들이 이러한 차별을 당하면서도,
    오히려 그것을 합리화하고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을 멸시하는 방식을 선택한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현상은 사회적 약자가 강자에게 당한 차별을 또 다른 약자에게 되풀이하는 구조적 악순환의 단면을 보여준다.
    이는 대학생들이 본인이 받은 인격적 수모를 되갚으려는 심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며, 사회의 불평등을 더욱 강화시킨다.
    즉 '대학 서열 중독증'은 단순한 청년 세대의 문제를 넘어,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불평등 구조를 반영한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소한 차이에 대한 집착'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결국 사회적 차별이 사소한 차이에서 비롯된 것임을 인식하고,

  • 24.10.08 04:51

    따라서 차별에 반대하는 평등주의적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을 하며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불평등 구조에 대한 성찰을 이야기한다

  • 24.10.08 05:42

    이 글은 톰 새디악 감독의 영화 '라이어 라이어'를 통해 거짓말의 본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주인공 플레처는 하루 동안 거짓말을 할 수 없게 되면서 다양한 해프닝을 겪고, 이를 통해 글쓴이는 거짓말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보며, 거짓말이 필수적인 사회적 요소라고 주장한다.
    글쓴이는 거짓말의 존재를 사회적 통제 장치로 보지만, 거짓말이 본인의 책임을 회피하는 식으로 쓰인다면, 그 거짓말의 존재가 오히려 사회적 혼란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다. 또한 인간을 거짓말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 단순하게 생각하는데, 이것에 대해서는 각각의 상황에 대한 정의,판단이나 인간의 복잡한 심리에 대한 이해가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24.10.08 07:50

    군주론에서 위업을 이룬 군주들은 때론 신의를 저버리고 기만책으로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드는 자들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군주는 사자의 힘과 여우의 간계를 고루 갖춰야하며, 자신에게 불리하다면 신의를 지키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군주가 신의를 지키지 않아도 되는 이유로는 대다수 사람이 사악하기에 군주와 맺은 약속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현명한 군주는 항상 이 같이 신의를 저버리는 행동을 위선자, 기만자가 되어 잘 감춰야하고, 실제로 뛰어난 품성을 갖는 것은 오히려 해롭다고 말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군주가 신의를 저버리는 행동을 하더라도 결국 결과로 판단을 하기 때문에 이들은 군주의 위엄을 지탱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 글에서 현명한 군주는 위선자, 기만자라는 내용에는 동의하지만, 대다수 사람이 사악하다는 부분과 실제로 뛰어난 품성을 갖는 것이 해롭다는 부분에선 의문점이 생긴다. 백성이 지켜야하는 군주와의 약속이 무엇인지, 또 군주가 약속을 먼저 어기지는 않았는지에 대한 서술이 부족하다고 생각된다. 다음으로 어째서 실제 뛰어난 품성을 갖는 것이 해롭다고 하는지 궁금하다. 훌륭한 인품을 가졌지만 전승과 보국을 위해 악행을 저지를 수 있는 강단을 가진

  • 24.10.08 07:50

    군주가 가장 이상적인 군주가 아닐까한다.

  • 24.10.08 08:17

    군주가 신의를 지키며 간교한 기만책을 쓰지 않는 것은 칭송받을 일이다. 그러나 오늘날 위업을 이룬 군주들은 신의를 지키지 않으면서 간교한 기만책으로 승리를 거둔 자들이다. 법과 힘, 군주는 상황에 따라 양쪽을 혼용해야 한다. 후자의 경우, 군주는 여우와 사자를 모방해야 한다. 군주는 백성과 맺은 약속에 구속되어서는 안 되며 불리한 경우 신의를 지켜서는 안 된다. 또한, 군주는 선한 품성을 갖추지 않았어도 신앙심이 깊은 것처럼 보여야 한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달리 행동할 자세를 지녀야 하며, 필요에 따라 악행을 저지를 수 있어야 한다. 또, 군주는 전승과 보국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대다수 백성들은 군주의 행동을 결과만으로 판단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 그 수단은 칭송받을 만한 것으로 평가된다.

  • 24.10.08 08:17

    저자의 관점에 의하면 현명한 군주는 정직하고 신앙심이 깊은 것처럼 보이면서도 언제든 정반대로 행동할 태세를 가져야 한다. 이러한 저자의 주장은 타당하다. 저자는 소제목으로 나누어 군주가 지녀야 할 자세와 덕목을 제시하고, 당시 군주들의 사례를 예시로 들면서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나는 저자가 제시한 내용이 오늘날 ‘정치인의 도덕성’을 이해하는데 기반이 되는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군주가 갖추어야 할 처세술에 대해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품성, 태도적인 측면에 집중되어 서술된 것이 아쉽다. 능력, 제도적 차원의 리더십 등 다른 덕목과 더불어 현대 사회에 근거한 추가적인 새로운 견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24.10.08 09:30

    군주는 자신의 가진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질서와 무력 중 상황에 따라 적절히 사용해야 한다. 군주는 교활한 면모도 가져야 한다. 인간은 직관적인 손익에 쉽게 영향을 받고 생각을 바꾼다. 백성들 또한 그런 특성을 가지고 그렇게 세상이 돌아가는데 군주가 약속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군주는 선을 위하는 것처럼 보여야 하지만 국가를 책임지는 사람으로 국가의 발전을 위해 선에 반하는 행위를 할 수 있다. 백성들은 겉에 보이는 군주의 모습, 나라의 성장과 같은 외부의 것만을 가지고 군주의 능력을 판단한다. 결과적으로 좋다면 그 과정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무엇이 되었든 전승과 보국은 백성들을 군주에게 충성하도록 만들 것이다.
    <군주론>이 집필되었던 시점, 이탈리아는 지금과 같은 통일 국가가 아니라 작은 국가들로 나뉘어 있었다. 중앙집권이 이루어지지 않은 이탈리아는 힘이 약했고 중앙집권 체계를 가진 강력한 국가들의 먹잇감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탈리아는 강력한 힘과 권모술수에

  • 24.10.08 09:31

    능한 지도자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 책은 집필 시점의 사회 문화적 맥락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군주론>에서 필자가 군주는 기만하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백성들의 태도이다. 다수의 백성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군주와의 약속을 저버리고 겉으로 보이는 것을 믿고 판단을 내린다. 덕목을 따르지 않은 다수의 사람이 정치인을 권모술수, 기만자로 만드는 데에 기여하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 현대 정치인의 도덕성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은 떳떳한지 묻고 싶다.

  • 24.10.08 10:00

    아직 갑을관계를 제대로 경험해보지도 못한 대학생들이 단지 학벌을 가지고 서열을 나누며 먹이사슬 관계를 드러낸다. 이러한 이십대들은 ‘수능점수’를 ‘모든 능력’으로 착각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받은 차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보다, 자신 또한 더 낮은 곳에 있는 학생들을 차별한다. 이러한 오늘날 이십대들의 ‘대학 서열 중독증’은 우리 사회에서 갑을관계와 비정규직 차별의 가능성을 더욱 높일 것이다.
    대학마다 입결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것으로 우월함을 느끼며 입결이 더 낮은 학교를 까내릴 권리가 생기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자신의 학교에 자부심을 갖는 것은 좋은 현상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다른 학교를 까내리는 것이 정당화 되는가? 그 누구도 자신보다 성적, 입결 등이 낮다는 이유로 다른 학교를 멸시하며 차별할 자격은 없을 것이다. 비록 자신이 한국 최고 대학인 서울대 학생일지라도, 자신이 한 노력을 다른 학교 학생들도 하였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나 또한 학벌에 대한 집착이 있어 고등학교 시절 내 성적보다 높은 학교를 희망하였고 최대한 높은 학교에 가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다. 그 학교 이하로 간다면 재수를 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 24.10.08 10:07

    하지만 대학에 막상 오니, 학벌에 집착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였다. 자신이 노력하여 온 대학을 남이 까내린다면 그 사람은 대학 밖에 내세울 것이 없는 것이다. 수능성적 하나로 인생이 결정되지 않듯이, 더 높은 대학이라고 미래가 더 밝은 것 또한 아니다. 정작 그러할지라도, 그것을 이유로 남을 까내릴 자격도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회구조의 피해자가 된다하더라도 동시에 가해자가 되면 안된다. 그렇다면 이런 부당한 사회그조는 더욱 심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사회를 경험해보지 못한 이십대들이 이러한 차별을 없애야 ’대학 서열 중독증‘이 점차 사라질 것이고 부당한 사회구조가 개선될 것이다.

  • 24.10.08 11:17

    저자는 막 입시를 끝낸 대학생들에게 와닿는 주제인 대학 서열 중독증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전국의 200여개의 대학들을 일렬종대로 세워놓고 대학 간 서열을 따지는 건 매우 진지하고 심각한 인정 투쟁이자 생존 투쟁이다. 나도 실제로 친구들이 이와 같은 주제로 진지하게 토론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기 때문에 공감이 됐다. 대학생들의 이런 정신 상태는 우리 사회에서 갑을관계와 비정규직 차별이 사라지기는커녕 앞으로 더욱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말해준다. 피해자는 또 가해자가 되어, 이 부당한 사회구조를 유지하는 데에 일조할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관점 중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은, 그가 능력주의를 비판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가 능력은 주로 부모의 경제력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사교육 열풍으로 인해 그런 면이 아예 없다고 볼 순 없지만 그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부모의 지원 없이 순수능력만으로 학력과 학벌을 만들어낸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한다.

  • 24.10.08 11:40

    갑을 관계의 진정한 폐해는 갑질의 되물림이다. 갑질이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곳은 아직 사회적 계급이 정해지지 않은 대학생들이 속한 사회이다. 수능 점수 차이를 기반으로 이른바 갑에 속하는 사람들은 을에 속한 사람들에 갑질을 행사한다. 그러나 이러한 불합리한 대우에도 을은 자신보다 더 낮은 성적의 사람들에게 받은 멸시를 되돌려주며 차별을 합리화한다.
    대학 계급에서 비롯된 차별은 사회적 계급에서의 차별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무한한 갑질의 굴레 속에서 피해자는 가해자가 되어버린다.
    미국의 능력주의 역시 우리나라의 대학 서열 중독증과 같은 양상을 보인다. 이는 미국의 빈부격차를 정당화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며 능력은 부모의 경제력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하며 세습과 특권을 기반으로 차별을 조장한다.
    이러한 세태를 바로잡기 위해선 사소한 차이에 집착하는 사고방식을 바로잡아야한다.

  • 24.10.08 11:40

    이 글은 대학의 서열화라는 시의성있는 주제로 사회의 문화적 맥락을 반영하고 있다. 또한 대학 서열화에서 비롯된 차별을 극복하자는 일관된 주장을 제기하는 글이다. 저자의 주장은 사회의 부정적인 측면을 지적하고 해결을 촉구하고 있기 때문에 타당한 주장이라고 볼 수있다.

  • 24.10.08 11:45

    <피노키오처럼 코가 길어지더라도>

    이 글은 출세를 위해서라면 어떤 행동이라도 서슴없이 하는 거짓말쟁이 변호사가 아들에 소원에 의해 거짓말을 할 수 없는 하루를 보내는 내용을 담은 영화인 <라이어 라이어> 의 내용을 비평하며 다양한 목적에 의해 우리사회에 팽배하는 거짓말들을 지양하고 정직만을 추구해야 하는것이 아니라 거짓말을 인간의 악한 본성과 공격성을 순화시키기 위해 개개인에 머릿속에 프로그래밍된 사회적 통제 장치로 표현하며 정직에 대한 죄의식에서 벗어나 우리 스스로에게 좀 더 넉넉하고 관대해질 필요성을 제기한다. 그 과정에서 근거로 제시된 제럴드 젤리슨 박사의 연구는 20명의 표본집단만을 가지고 진행된 실험인 점을 감안하면 신뢰성이 부족하고, 필자의 주장과 반대되는 입장을 너무 극단적으로 제시하였다는 점을 비판할 순 있겠지만, 나도 사회적 질서를 위해서는 상황에따라 거짓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전적으로 필자의 주장이 공감되었다.

  • 24.10.08 11:48

    글쓴이는 대학서열화에 대해서 구조적 불평등과 차별주의라고 하였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세상은 평등할 수 없다. 좋은 대학은 한정적이지만 그 대학을 원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우리는 경쟁을 해야할 수 밖에 없다. 흔히 사람들은 경쟁은 차별과 불평등을 유발시킬 수 있다 생각하고 안 좋게 볼 수도 있지만 경쟁은 이뤄낸 것에 대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고 학습에 대한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반대로 이루지 못해 좌절감이나 슬픔을 맛볼수도 있겠지만 그것 또한 경험이 되고 본인이 좀 더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에 나는 경쟁은 매우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경쟁이 과열되면 나보다 낮은 사람을 깔보고 무시하는 경우도 있기 떄문에 나는 적당한 정도의 경쟁으로 인한 대학 서열화는 오히려 좋다고 생각한다.

  • 24.10.08 12:27

    필자는 대학서열화를 갑질,을질에 빗대 비판하고 있으며 귀족세습과 다름이 없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부모의 능력과는 별개로 개인의 노력으로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대학입시는 귀족신분사회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한국은 자본주의 사회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은 당연한 것이다. 더 노력한 사람이 덜 노력한 사람보다 보상을 더 받는것이 자본주의 사회이다. 대학교 서열도 그 경쟁의 일부이며 학창생활에 얼마나 성실히 살았는지 보여주는 지표라고 생각한다. 현재 취업난을 겪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좋은 일자리를 향한 경쟁은 심화되고 경쟁의 일부인 대학 서열화도 덩달아 심화되어 가고 있다. 대학 서열화라는 일부에 대해 비판 할 것이 아니라 경쟁이 심화된 근본적인 원인부터 비판하며 고쳐나가야된다.

  • 24.10.08 12:41

    저자는 군주론이 정치적으로 유용하다고 본다. 또한 군주가 처한 환경적인 제약과 정치의 복잡성의 인지하고 효율적으로 권력을 행사하기 위한 구체적인 의견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반면에 권력의 도덕적 정당성의 부재가 있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필요에 따른 악행, 선한 품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이 행동하더라도 필요에 따라 약속을 저버릴 수도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악행을 저지른다는 것이 아닌, 필요에 따른다는 점이 중요한데 필요에 따른 다는 것은 즉, 득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다. 유연한 정치, 하지만 결단력있는 정치가 백성들을 위하는 또 다른 하나의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이상적인 정치나 도덕적 규범보다는 냉정한 현실을 기반으로 하는 군주론이 대의적으로는 비판 받아 마땅할 수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실용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점이 타당하다고 본다.

  • 24.10.08 20:44

    필자는 거짓말의 긍정적인 측면을 옹호하며, 이를 설명하기 위해 영화 <라이어 라이어>를 예로 든다. 이 영화는 하루 동안 거짓말을 하지 못하게 된 변호사가 겪는 곤란한 상황을 통해, 듣기 좋은 거짓말과 불편한 진실 사이의 가치를 다시금 성찰하게 만든다. 필자는 이어서 정직이 잘못된 신념과 결합할 경우 독재적 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는 결국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강조하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궁극적으로 필자는 사회에서 진실만을 강요하는 것이 항상 옳은 방향은 아니며, 일정 수준의 거짓말이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거짓말은 인간관계에서 흔히 발생하는 일인 만큼, 저자의 주장은 오늘날에도 충분히 공감할 만하고 유의미하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필자가 정직을 "행동과 말을 생각에 일치시키는 것"으로 정의한 부분은 다소 극단적인 해석으로 다가온다. 보편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정직은 도덕적 가치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정직을 추구할 때 때로는 직면하고 싶지 않은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는 경험을 포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짓말로 불편한 상황을 회피하고 싶을 때에도 정직을 지키고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신뢰와 도덕적 가치를 높여준다.

  • 24.10.08 20:45

    이러한 가치는 결국 인간관계와 사회적 윤리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며 정직을 도덕적 가치로써 빛나게 해준다.

  • 24.10.08 23:56

    필자는 거짓말이 이세상에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영화<라이어라이어>를 예로 들어 자신의 생각을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라이어 라이어> 라는 영화는 출세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거짓말이라도 서슴없이 하는 주인공이 하루동안 거짓말을 하지 못하게된 이야기를 다룹니다. 이 하루라는 짧은 시간동안 주인공은 여러가지 사건에 휘말리게 됩니다. 이렇듯 우리는 거짓말이 없으면 안된다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합니다. 칸트나 스피노자는 정직은 절대 의무며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 규칙이라고 말하지만 솔직히 이에 대해선 동의를 할 수 없다. 사람의 목숨이나 인생을 결정하는 중요한 순간에 거짓말이 필요하다면 그때 순간만큼은 거짓말을 해야하지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본래 본성의 약하고 악하다 만약 거짓말이 없다면 우리는 금방 상처받고 금방 지치고말것이다 그러니 조금 더 우리 스스로에게 넉넉하고 관대하게 절대적인 정직에 벗어나 자신을 용서하며 행복해지기 위해 거짓말은 필요하다

  • 24.10.09 00:25

    군주론에서는 정치인이 신의를 지키지 않더라도 기만과 힘을 통해 권력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우와 사자의 비유는 정치가 단순한 도덕적 기준으로 판단될 수 없음을 나타낸다. 많은 현대 정치인들이 도덕적 언사를 사용하지만, 실제 행동은 이를 반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현실은 정치인의 도덕성이 종종 형식적이고 수사적인 것에 그친다는 점을 드러낸다. 정치인은 유권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 도덕성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권력 유지에 필요한 기만과 계산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정치의 도덕적 기준을 약화시키고, 궁극적으로는 사회에 대한 신뢰를 해치는 결과를 초래한다. 정치인은 자신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도록 노력해야 하며, 진정한 도덕성이 실천되지 않는 한 권력의 정당성은 항상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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