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충고(忠告)와 조롱(嘲弄)
- 은유시인 -
남을 간섭하는 데는 간섭하려는 자의 의도와 그를 받아들이는 자의 수용 자세엔 분명히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충심으로 남의 허물을 고치도록 타이르는 것을 충고라 한다면, 남의 허물을 빌미로 비웃거나 깔아뭉개려는 것을 조롱이라 한다. 이처럼 남의 못마땅한 점을 지적하는데 극명한 차이가 있음에도 사람들 가운데 이 둘의 차이를 염두에 두지 않고 남에게 함부로 간섭하려 드는 사람들이 뜻밖에 많다.
“내가 충고를 한마디 하겠는데…….”
란 말로 시작하여 한껏 열심히 해보려는 상대의 자존심과 패기를 꺾어 결국 그 일을 포기하게끔 하는 행동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나이 오십 가까이 되어서야 뒤늦게 글을 본격적으로 써야겠다고 다짐하고 그에 따른 대단한 각오와 열정으로 글을 써온 지 이제 겨우 4년여밖에 안 된 사람이며, 자신도 전문가로 인정받기까지 내 수준이 이제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음을 잘 안다.
따라서 오랜 세월 전문적으로 글을 써온 사람들 대부분은 당연히 나보다 훌륭한 글을 써야 도리이겠지만, 반대로 평소에 글을 전혀 쓰지 않는 보통사람들과 비교하면 그래도 그간 써온 과정이 있어 그들보다는 글을 잘 쓰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는데, 이런 확신을 했다는 것 자체는 결코 오만이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자동차운전학원 강사가 수험생보다 운전을 잘한다 하여 콧대 세우는 것을 보았는가? 글쓰기도 일종의 기술이라 한다면 어떤 기술이든 전혀 배우지 않고 익히지 않은 사람에 비해 그래도 4년 넘게 그 기술을 갈고 닦은 사람이 그 기술에 있어서만큼은 못 배운 사람보다 월등하리란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몇몇 첫술에도 전문글쟁이 뺨 칠만큼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천부적 재능을 지닌 사람이라면 몰라도 그 외 글을 전혀 써보지 않은 사람들보다 내가 글을 더 잘 쓸 것이란 생각을 갖는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그런 이치는 비단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빗대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럼 왜 그처럼 당연한 사실 가지고 나란 인간이 핏대를 올리게 되었는가. 나는 내 주위 사람들에게 여간해서는 내 글을 보여주지 않는다. 내 주위엔 글을 쓰는 사람이 전혀 없어서 그들에게 기껏 글을 보여줘 봐야 결국 그들로부터는 비웃음밖엔 나올 것이 없다는 결론을 얻은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그 역시 초보시절을 의당 겪었겠기에 아무리 내 글이 허접스러운 글이라 할지라도 함부로 농간하려 들지는 않을 것이다.
처음 글이란 것을 완성했을 때 몇몇 주위사람들에게 내 글을 자랑스레 보여주었다가 큰 곤욕을 여러 번 치른 경험이 있었다. 분명히 그들은 글을 전혀 써본 경험이 없었음에도, 그렇다고 책이란 것을 사다가 열심히 읽는 부류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글의 내용을 대충 훑어보고 내뱉는 소리란 것이 ‘겨우 이 정도냐?’아니면, ‘누구만큼은 써야 읽어주지’ 따위의 결국 하나 마나 한 소리는커녕 괜히 감정을 들쑤셔놓기 다반사였다.
오래도록 글을 지겹게 써왔던 전문작가라면 몰라도 처음 글이란 것을 쓰기 시작한 사람들은 예외 없이 자신의 글이 남들한테 읽히고 그에 대한 솔직한 평을 듣기를 간절히 원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어떤 기술을 배울 때도 마찬가지인 것이 예를 들면 한 때 우리 사회에 스포츠댄스란 것이 유행처럼 번져나갈 무렵 나 역시 그걸 배워봤는데 내가 아무리 기본스텝을 충실히 밟아가며 그럴싸한 포즈를 잡으려 해도 남들이 지켜보면서 이리해라 저리해라 일일이 가르쳐 주지 않는다면 스스로 터득하기까지 몇 배 더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니 자신이 써놓은 글은 자신이 아무리 들여다봐도 어디를 어떻게 고쳐야 할지 망연할 때가 잦으며, 그때마다 올바른 사람을 만나 그로부터 제대로 된 충고를 듣게 된다면 더욱 좋은 글을 쓰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은 자명한 것이다. 그러니 ‘겨우 이 정도냐?’아니면, ‘누구만큼은 써야 읽어주지’ 따위의 맥 빠지는 소리는 물론, 더 나아가 ‘그게 글이라고 써놓은 게냐, 유치하기 짝이 없다’ 따위의 소리는 충고라기보다는 글을 쓰지 말라는 조롱으로 밖엔 들리지 않는 것이다.
글을 잘 써야만 글 쓸 자격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글 쓰는 재주가 바닥이라 할지라도 글을 쓰는 그 자체가 격려의 대상이지 흉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글이란 것 또한 쓰면 쓸수록 그 실력 또한 느는 것임을 아무도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따라서 기껏 글을 쓰고자 각오까지 다지며 글쓰기에 열정을 지닌 사람에게 좌절감을 안겨주는 조롱에 가까운 충고야말로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성의 없이 내뱉으려면 차라리 아무 말도 안하는 것이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이다.
‘이 문장의 이 부분은 지나치게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선뜻 이해하기 어렵고, 이 부분은 상투적 수식어의 남발과 난해함으로 너무 지루하고, 이 부분은 너무 잔혹하거나 음란한 표현으로 거부감이 생기고……’란 식의 보다 구체적으로 관심을 갖고 평해 줘야 비로소 충고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인터넷에는 수많은 문학관련 홈페이지나 블로그, 카페 등이 있어 많은 작가지망생 혹은 글쓰기를 낙으로 삼는 사람들이 자신의 글이 읽혀지기를 갈구하면서 글을 올려놓을 뿐만 아니라, 올려놓은 글들을 열심히 읽어주고 때론 치하를 한다거나 글에 대해 진지한 평을 해주는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 나 역시 그런 곳을 찾아 글을 올리기도 하고 이미 올려진 남의 글들을 읽기도 한다. 그런데 그곳에도 충고한답시고 공개적으로 조롱하려드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도‘헛소리’라든가 ‘나그네’라든가 ‘별볼일없는넘’ 따위의 이상하고도 거짓임이 뻔히 드러나는 대명으로 자신을 철저히 숨기고 당당하게 글을 올리는 사람들을 겨냥하여 ‘그게 글이냐, 쓰레기지. 그런 쓰레기로 게시판을 도배하지 말라’, ‘당신의 시커먼 속을 잘 알고 있다’, ‘당신 같은 인간은 이곳에 발도 못 붙이게 하겠다’라는 식으로 상대를 초주검이 되도록 몰아가는 것이다.
그 자신도 글을 써서 남들로부터 읽혀지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그리도 남의 글을 헐뜯고 조롱하려 드는 막 나가는 행동을 과연 공개적으로 할 수 있겠는가. 자신을 드러내지 못할 만큼 비열한 인간의 충고라면 겉으로 보기엔 그 내용이 아무리 합당하다 할지라도 그런 자들만큼은 나뿐만 아니라 모든 글쓰기를 즐기는 이들이 자신이 겪는 일처럼 분개해야 하며 더 나아가 용납해서는 안 되리라.
충고와 조롱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충고는 더 좋은 글을 쓰도록 고무함으로서 결국 은혜를 베푸는 것이라 한다면, 조롱은 글을 쓰고자 하는 의욕을 깡그리 꺾어버리는 언어폭력이다.
아무리 사이버가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감출 수 있다지만, 굳이 캐려들겠다고 나선다면 숨어있던 존재를 백일하에 드러낼 수도 있는 것이다. 감춰진 신분을 방패삼아 남의 글에 한껏 조롱을 일삼는다면 그것만큼 비굴하고 야비할뿐더러 부도덕한 행위도 없을 것이다. 나의 자존심이 소중한 만큼 다른 이들의 자존심 또한 소중한 것이다. 다른 이들의 자존심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제멋대로 행동한다면 그로인한 득은커녕 언젠가 반드시 큰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지금처럼 너나 할 것 없이 눈치가 빠삭한, 따라서 더불어 사는 방법을 모르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에선 제 기분대로 살아가려하는 독불장군이야말로 미래가 없기 마련 아닌가.
- 끝 -
(200자 원고지 20매 분량)
2004/11/02/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