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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觀點(관점)으로 생각하고 判斷(판단)을 하는가?(사 55:8~9)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어떤 사람이 약속 시간에 늦어서, 과속을 하면서 차를 급하게 몰고 있었다. 한참을 달리고 있는데, 단속 카메라가 눈에 들어왔다.
✔ 깜짝 놀라서 재빠르게 속도를 줄였는데, 자신의 차가 지나 가자, 단속 카메라가 찰칵하면서, 촬영을 하는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자신은 속도를 기준 이하로 낮추었다. 그러나 카메라에 왜 자신의 차가 찍히게 되었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호기심이 많은 이 사람은, 약속도 잊어 버리고, 다시 돌아가서 속도를 늦춘 다음에, 카메라가 있는 곳을 천천히 지나 갔다.
✔ 그런데 단속 카메라에, 자신의 차가 또 찍히는 것이다.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어서, 다시 한 번 속도를 최대한 낮춘 다음에, 그 앞을 다시 지나 갔다. 그러나 또다시 찰칵하고, 자신의 차를 찍히는 소리가 들렸다.
✔ 며칠 후에 이 사람에게, 고지서 세 장이 날아 왔다. 그런데 고지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안전벨트 미착용"이었다. 이는 속도가 아니라, 안전벨트가 문제였다.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마음을 감찰하시느니라"(잠 21:2).
✔ 이 예화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에게는 저마다 자신의 기준이 있고, 자신이 그 기준에 맞추어서, 잘 살고 있다고 착각을 한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이 기준에 맞지 않을 경우에는, 비판을 하고 판단을 하고 욕을 하고, 심지어 정죄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는 기준과, 하나님이 보시는 관점은, 우리들의 기준과는 다르고, 우리들의 관점과는 전혀 다르다. 인간의 겉으로 나타나는 행위가 아니라, 마음의 중심이 중요한 것이다.
✔ 얼마나 버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용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재산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재물을, 이웃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얼마를 사용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 얼마나 높은 직책에 오르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정과 일터와 공동체인 교회 안에서, 얼마나 선한 영향력을 끼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사람의 외모를 보고 판단을 하는, 어리석고 무지한 우리네 인간들은, 이 세상을 살아 가면서, 얼마나 많은 착각을 하고 사는지 모른다.
※ 인간은 세 가지 착각과 교만에 빠져서 산다
▪젊었을 때에는, 언제나 청춘이기 때문에, 결코 늙지 않을 것 같은, 착각과 교만에 빠진다.
▪건강할 때에는, 자신은 아프지 않고, 병이 들지 않을 것 같은, 착각과 교만에 빠진다.
▪돈을 잘 벌고, 출세하고 성공해서 잘 나갈 때에는, 영원히 풍요롭게 살 것 같은, 착각과 교만에 빠진다.
그러나 부와 명예와 건강도, 하나님에게서 나오며, 이러한 모든 것을 다스리시고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다.
✔ 하나님은 인간의 생사화복과, 생사를 주관하신다.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신다.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신다. 높이기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신다.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대상 29:11~12).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신앙생활을 할 때에, 잘못된 관점과 판단으로 인한 오해와, 자신의 기준에 따른 생각으로 인한 실수가 참으로 많다.
하나님의 관점과 인간의 관점은, 어떻게 다른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광야를 지나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입구에 도착하여, 열 두명의 정탐꾼을 택하여,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하도록 했다.
✔ 열 명의 정탐꾼들은, 가나안은 난공불락의 성이다. 우리는 그들의 밥이다. 우리는 메뚜기에 불과하다. 가나안 땅은, 절대로 정복할 수 없다고 보고를 했다.
열 두명의 정탐꾼들 중에서, 열 명의 정탐꾼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정반대로, 인간의 감각과 이성과 경험에 입각한 보고를 했다.
✔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보고를 했다.
✔ 인간의 관점인 육신의 눈으로 보면, 가나안은 광야이고 사막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인 영적인 눈으로 보면, 가나안은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다운 땅이다.
인간은 현재를 보고, 그 안에서 체험을 해야 알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고, 경험을 할 수 없어도, 이미 이루어진 것을 보신다.
✔ 대적들의 숫자가 아무리 많고, 대적들이 아무리 강력한 무기가 있어도,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면, 그들은 이미 패배한 자들에 불과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은, 현재의 환경을 통해서 주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때에, 현재는 비록 광야일지라도, 장래는 젖과 꿀이 흐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의 꿈과 믿음으로 일어 난다. 우리가 하나님의 시각으로, 믿음을 가지고 꿈을 가질 때에,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 나는 것이다.
✔ 가나안 땅을, 하나님의 시각과 꿈과 믿음으로 보지 않고, 인간의 이성과 눈을 통해서 볼 때에, 가나안 땅은 사막과 광야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아멘으로 받아 들일 것이냐? 아니면 우리가 이성적으로 깨달은 것을 받아 들일 것이냐에 따라서, 우리의 운명은 달라 진다.
✔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의 보고, 즉 하나님의 시각으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땅을 보지 않고, 열 명의 정탐꾼들의 인간적인 시각으로 보았다.
열명의 정탐꾼들의 보고를 듣고서, 하나님의 뜻을 반역했다.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시도를 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크게 진노를 하셨다.
✔ 하나님께서는 열 명의 정탐꾼을, 그 자리에서 재앙으로 죽여 버리셨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보았던, 여호수아와 갈렙이 후손들을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매사와 만사와 범사의 삶의 현장에서도, 하나님의 관점과, 인간의 관점을 잘 분별해야 한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삼상 16:7).
사람의 눈으로 보면, 외모와 재물과 학벌과 스펙과 가문 등, 겉 모습으로 판단을 하고, 제한적인 사람의 능력으로 밖에 볼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으로 보고, 꿈과 믿음으로 바라 보면,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이 주시는 복으로 사는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우리들 주위에서 다가 오는, 불안과 공포와 초조와 좌절과 절망같은 것들만 보고 있으면, 우리는 꼼짝할 수 없다.
✔ 그러나 우리는 다윗처럼,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에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 것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 우리가 모여서, 기도를 하고 예배를 드릴 때에, 눈에 보이는 사람만 보지말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남은 여생을 살아 갈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가 되기를 기도드린다.
🙏 기도문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눈 앞에 보이는 편리함과, 우리의 욕심과 우리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비판한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제부터는 기준으로 보지 않고, 영안이 활짝 열리어서, 하나님의 관점을 볼 수 있는 분별력을 허락하시고, 하나님의 시각으로, 인생과 사물을 보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시고,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살아 가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영적인 성장에 필요한 것
✔ 회개란 무엇인가? 이는 바로,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과 짝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서 죽이는 것이다.
그처럼 철저히 자기를 죽여야, 과거의 아픔과 상처를 딛고, 새롭게 일어날 수 있다.
더욱 철저하게 죽는 길이, 진짜로 믿음으로 사는 길이다.
출애굽 당시의 구원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하거나 의롭거나 거룩하거나 착했기 때문에,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었다.
✔ 출애굽한 사람들 중에는, 불의한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문설주에 뿌려진 양의 피의 흔적으로 인해서, 죽음의 사자를 피할 수 있었다.
✔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에 관심이 많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축복을 받아도, 예수님의 피가 없다면, 그 많은 축복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진짜로 믿고 의지하고 신뢰할 수 있는 친구란, 과연 누구인가? 이는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말씀을 보고 듣고 알고 은혜를 받고, 믿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말씀대로 순종을 하면서 살 때에, 그 말씀이 영생과 축복의 씨앗이 된다.
✔ 잘 산다는 것은 어떠한 것인가? 이는 바로, 주어진 모든 삶의 순간들을, 하나님의 선물로 여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사는 것이다.
✔ 말씀을 놓치게 되면, 행복은 미꾸라지 처럼 손아귀 사이로 어느새 빠져 나간다. 그러나 말씀을 붙잡으면, 행복의 신비한 파랑새가, 가까이 찾아 오는 것이다.
🔥 중국의 의화당 사건
✔ 1900년도에 중국에서는, 의화단 운동이 일어 났다. 무술을 연마하고, 미신을 섬기는 의화권이라는 비밀결사 단체가, 서양의 열강들을 몰아 낸다는 명목으로, 기독교를 공격하려고 일으킨 사건이었다.
이처럼 의화단 운동으로 인해서, 베이징에서 복음을 전하던 수많은 선교사들이 죽임을 당하고, 또한 추방을 당하게 되었다.
당시 베이징에 머무는 선교사들 중에서, 중심 역할을 했던 글로버라는 선교사는, 핍박을 피해서 숲으로 도망을 가면서, 하나님을 원망하는 기도를 했다.
✔ 하나님! 정말 살아 계십니까? 그렇다면 어찌하여 가만히 계십니까? 이제부터 중국에 복음을 전하기는 다 틀렸습니다.
✔ 그러나 함께 숲으로 도망을 가던 게이트라는 선교사는,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했다. 우리의 생각을 넘어서, 놀라운 역사를 행하시는 하나님이실 줄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이 순간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 의화단 운동은, 1년도 지나지 않아서 저절로 사라져 버렸다.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오히려 복음이 더욱 왕성하게 전파되었다.
세월이 지나고 난 뒤에, 우리가 알게 되는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은 절대로 실수를 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 우리의 생각을 뛰어 넘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늘 찬양하면서,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겨 버리기를 바란다. 반드시 복되고 형통할 것이다.
🔥 샤이 크리스천
시대가 진보적인 성향으로 흐르면서, 보수적인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의 성향을 드러 내기를, 매우 부끄러워 하는 경향이 있다.
✔ 자신을 드러 내는 것을, 부끄러워 하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샤이(shy, 수줍음, 부끄러움) 보수라고 한다. 수줍음을 많이 타서, 자신의 속내를 감춘다는 의미이다.
✔ 교인들 중에서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신자임을 밝히지 않고, 숨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교인들을, 샤이 크리스천이라고 부른다.
샤이 크리스찬이 되는 이유가 무엇때문일까? 사회생활에서 행동에 제약이 따르고, 무엇인가 손해 보는 것 같고, 왠지 착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부담 때문일지 모른다.
✔ 예수님이 붙잡히셨을 때에,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했다. 베드로가 그 순간, 샤이 크리스천이 되고야 만 것이다.
예수님을 안다고 하면, 목숨이 위태로울 것이라 느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주변에 드러 내고 살았으면 좋겠다.
✔ 샤이 크리스천을 넘어서, 나는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마 10:32).
✔ 예수님은 우리가, 부끄러운 기독교인이 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예수님은 우리들이, 샤이 그리스찬이 되는 것을 싫어 하신다.
🔥 내 삶의 핵심가치
✔ 언젠가 "컨텐더"라는 영화를 보았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미국의 한 여성 의원이, 부통령의 자리에 오르는 과정이었다.
부통령의 자리에 오르늩 과정에, 그녀는 온갖 루머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지부동하지 않았다. 대꾸를 하지 않고, 오직 침묵으로 일관했다.
마침내 모든 것이 거짓으로 판명되었다. 그러자 대통령은,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왜 진작 해명을 하지 않았느냐고 물어 보았다.
✔ 그녀는 대답을 했다. 정직과 신뢰는 제 인생의 원칙입니다. 이것은 말로 변명을 해서, 회복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핵심가치를 세우고, 그것을 지키면서 살기 때문에, 언제나 당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승리를 하게 된 것이다.
✔ 특별히 크리스찬으로서, 성경적인 핵심가치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 다음은 일평생 씨름해 온, 나 자신의 핵심가치이다.
▪첫째, 복음의 열정이다. 복음의 능력으로 산다.
▪둘째, 사람 사랑이다.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긴다.
▪셋째, 온전한 헌신이다. 사심이 없이 봉사를 한다.
▪넷째, 항상 변혁해야 한다. 끊임없이 변화되어야 한다.
▪다섯째, 성령 충만이다. 매사와 만사와 법사에 성령님과 동행을 한다.
물론 이대로 사는 것은 쉽지가 않다. 때로는 오해와 비난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렇게 살 때에 당당하고, 자유롭고 승리하는 삶을 누릴 수 있다.
✔ 우리의 핵심가치는 무엇인가? “주의 의로운 규례들을,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시 119:106).
♨ 호박 잎의 효능
1. 뼈 건강
우리나라 사람들의 섭취중에 가장 부족한 영양소가 칼슘인데 호박잎에 많이 들어 있습니다. 특히 늙은 호박보다 6배나 많다고 합니다.
칼슘은 성장기 어린이는 물론 뼈에서 칼슘이 빠지기 시작하는
중장년증의 골다공증 예방에도 필수입니다.
2. 피부미용과 피로회복
호박잎에는 비타민C가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습니다.
비타민C의 주요효능은 면역력을 높여주고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하여 피로회복을 도와주고 감기등의 질병을 예방해줍니다.
또한 비타민C는 피부미용에 좋은 대표적인 영양소인데요.
비타민C가 피부조직성분인 콜라겐 합성을 도와주는 기능이 있어 피부를 탄력있고 매끈하게 합니다.
3. 눈 건강
호박잎에는 비타민A , 루테인과 특히 베타카로틴의 함량이 많아 눈건강에 아주 좋습니다.
눈의 피로를 풀어주고 시력을 보호하고
안구건조증과 야맹증이 있으신 분들도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4. 항암효과 및 성인병 예방
호박잎은 짙은 녹색을 띄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태양에너지를 받아 만들어진 엽록소
혹은 클로로필이라고 합니다.
요즘 각종 암과 성인병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지면서 엽록소가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호박잎의 짙은 녹색이 바로 엽록소입니다.
손상된 세포를 재생시키고 그로인해 상처치유도 빨리되고
항산화물질이 풍부해서 암과 여러질병의 원인이 되는 활성산소를 제거해 주어 암을 예방하고 노화를 방지해 줍니다.
또 체내의 나쁜 콜레스테롤을 배출하고 혈압도 낮춰주어
동맥경화나 심혈관 질환에도 좋습니다.
또한 호박잎에는 비타민C와 베타카로틴이 풍부하기 때문에 체내에 쌓인
산화물질을 제거하여 항암작용, 암예방에 도움을 줍니다.
5. 다이어트와 변비예방
호박잎은 100g에 27kcal로 초저열량식품이고
다이어트에 부족할 수 있는 여러가지 비타민과 무기질등이 많이 들어있기 때문에 다이어트 식품으로 아주 좋습니다.
그리고 풍부한 식이섬유가 장운동을 활발하게 해주어
만성변비나 다이어트로 인한 변비등에 효과가 있습니다.
6. 엽산 보충
호박잎에는 엽산이 풍부하여 태아와 산모 건강에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