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숲은 나무를 보여주지 않는다 / 권도운
1.
그는 나의 오래된 첫사랑, 좀처럼 다가갈 수 없었다 그는 내가 살아온 힘, 용기가 없었다 그는 나의 처녀림, 아주 신성한 숲이었다 바람과 구름과 별이 녹아 켜켜이 쌓여서 천 년에 한 번 핀다는 천년화가 피면 그가 나의 나무를 알아볼 수 있을까 그는 나의 오래된 숲, 잠자는 나의 나무에도 꽃을 피울 수 있을까 그는 내가 살아갈 힘이다
2.
안갯속에 아침 해가 쏟아지고 있었다 밤과 낮의 기온 차가 심한 계절, 나는 마음마저 붉게 상기되었다 숲의 표정에 따라 내 마음도 변했다 그는 나의 오래된 연인, 첫사랑이라고 모두 실패하는 사랑은 아니다 언제나 숲은 변하지 않았다 내 마음이 변했을 뿐, 그래서 그도 울었다고 했다 철길에 무너져 울었다고도 했다 안돼! 그 후로 숲은 더욱 나의 나무를 알아보지 못했다
3.
숲은 나의 우주다 입구가 없다 한 번 들어가면 길을 잃어버린다 첫 연애라고 모두 실패하는 연애는 아니다 어느 봄날, 산 벚꽃이 만개하던 날, 그는 꿈속에서 나의 나무가 되어 돌아왔다 그와 나는 하나가 되었다 산 벚꽃 향기 나는 그는 언제나 내가 살아갈 힘이었다
4.
그는 나의 처녀림, 아주 신성한 숲이었다 언제나 마음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는 내가 길을 잃을까 봐 나무를 보여주지 않으려고 다시 숲이 되었다 나는 나의 나무가 그와 함께 숲이 되기를 기도하며 한 때 그의 숲에 수혈하는 별의 각혈, 그의 수술실 앞에 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되었다
5.
나는 그를 알아보지 못할까 봐 그와 만나던 날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세안洗顏을 한다 나는 지금도 가끔 나의 나무를 찾아 그의 숲속에서 길을 잃는다
시가 말을 하다: 이생의 모든 희망과 절망은 나로부터 비롯된다. 이생의 모든 희망과 절망은 주관적이다. 인간 위주의 세상에 진정한 객관은 없다. 그러므로 아파하지 말자. 후회하지 말자.
시인의 말: 숲은 나무를 보여주지 않는다. 지구를 벗어나 우주로 가려는 노력은 좋지만, 숲이라는 지구부터 잘 가꾸어야 한다. 숲을 찾아 체험하고 나무를 찾는다. 그러나 진정한 목적은 나를 찾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나라는 답을 모른다. 찾으려고 노력은 하겠지만, 결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숲을 가꾸는 체험을 하며, 『숲 ―숲은 나무를 보여주지 않는다』는 주제로 숲속에서 나의 나무를 찾는 삶의 시를 쓰고자 한다.
(*숲이란, ‘나’라는 소우주에서부터 이웃이라는 ‘너와 나, 그리고 우리란, 지구와 우주를 뜻한다)
자평: 숲과 나무, 그가 숲인지, 나무가 나인지, 생을 더 살아보면 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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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그녀와의 인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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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옆 여자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어느 날 벽지로 사용된 신문에서 월남전 체험소설 당선 「병사의 일기」를 읽고 편지를 보내왔다. 날마다 쏟아져 들어오는 수많은 편지 중에서 단연 글씨도 뛰어났고 내용도 작가 수준이었다. 수많은 팬레터 중에서 국내의 유명한 대학교 교수님들의 평론이 ’세상에 없는 문체‘라는 말씀만 기억한다. 동료 중에서 키도 크고 잘생긴 통신병이 그 소설을 오려서 돌려가며 읽고 소대장, 중대장님들께 읽기를 권유하는 눈빛이 행복한 천사였다. 누구든 읽는 순간 천국으로 빠져들었다.
첫댓글 강선 : 세상에 없는 문체라는 말이 실감이 납니다.
뒤지 않으면서도 여운이 살아있는 독특한 문체입니다.
반드시 남겨 보존해야 할 시편들입니다.
끊임없이 창작하시길 빕니다.
제대 몇 년 후부터 겪고 있는, 표현할 수 없는 연속의 좌절! 하지만 남자들의 군대 생활 자랑 그 수준입니다. ㅎㅎ
여전히 수고하시는 회원분들을 위하여―바쁘시더라도 잠시 참여하시고 읽어주시는 분들이 늘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연말에 댓글을 많이 달아주시는 분 중에서 최소한 열 분 이상을 선정하여 저의 사비로라도 작은 선물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공수표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는 현재 위급한 대로 전신마취 수술을 끝내고 겨우 깨어났으나 또다시 뇌수술 등 전신마취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전신마취에서 무사히 깨어난 것도 모두가 여러분의 염려와 긍정의 힘인 줄 알겠습니다. 이에 대하여 은혜에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작품의지력의 부족으로 뼈대 구성만 해놓은 것 같은 미숙이 보이더라도 양해하시고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어릴 적부터 특별한 삶으로 무엇을 하든 천재와 신동이란 호칭을 달고 살아서 못나 보이려고 노력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못난이가 된 것 같기도 하고 또한 월남전에서 네이팜탄 설치와 밀림작전 중 고엽제로 인한 말초신경 후유증으로 전신이 마비되고 여러 차례 필름이 끊어져서 형제지간에도 내 것을 찾지 못하고 오히려 성공하도록 돕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불교와 유교의 천성을 타고 나기도 했지만, 남을 돕는 정신이 몸에 배어 있어서 문학도 남을 돕는 데만 연구하고 자기 작품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은 아직도 철부지에 머무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